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5화 (82/256)

5화

원래는 검은색일 강수혁 소령의 홍채가 오팔색으로 반짝였다.

오팔색 안구는 화보나 영상으로 보면 대단히 신비롭고 멋졌다.

남성성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에서 어떻게든 옷을 한번 입혀 보겠다고 갖은 수작을 부릴 만큼 멋진 몸과, 그 몸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조각 같은 마스크를 가진 에스퍼 강수혁의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로 손꼽혔다.

그러나 예쁜 외견과 달리 오팔색 눈은 대단히 위험했다. 에스퍼 능력이 극단적으로 활성화된 상태로, 까딱하다간 강수혁 손아귀에 남긴 멱살 외에 윤조의 나머지는 형체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헬멧은 왜 벗었지?”

관광 나온 정당 대표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미끼로 던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는 강수혁을 상대로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랬다간 무시무시한 뒷감당을 감수하고 살린 이세명이 흔적도 없이 산화될 거다. 물론 작전의 책임자인 최정 대령도. 나아가 이청규와 해당 정당 자체가 와해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 대혼란.

평소엔 미친 망상으로 치부했겠지만, 오팔색 눈깔을 마주하고 있자니 강수혁이 거기까지 충분히 해내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절대로 들켜선 안 된다.’

속내를 능숙하게 감춘 윤조는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차분한 어조로 개소리를 늘어놓았다.

“바람이 좋네요.”

참 다행인 점은 뇌파가 동조된, 그래서 감정과 감각을 공유하는 에스퍼-가이드끼리도 사고(思考) 내용을 자세하게 알진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윤조가 강수혁의 본심을 파악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으나, 동시에 강수혁도 윤조의 본심과 의도를 알아채진 못한다.

“하. 이게 감히 나를 상대로 장난치네.”

영혼 없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직후 강수혁 소령의 홍채가 불현듯 반짝였다.

콰쾅!

대로변에 있는 반파된 건물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놀람 여부와 관계없이 반사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한 윤조와 달리 강수혁은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건물 붕괴의 원인이 바로 강수혁 본인이니까.

물리력으로 단연 첫 손에 꼽히는 트리플 S급 에스퍼.

쿠르르릉.

건물이 연이어 무너지면서 굉음과 함께 국소 지진이 다시 발생했다. 자욱한 흙먼지가 방사능을 듬뿍 머금은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뻗었다. 날카로운 파편이 마구 튀었다.

대부분 피했으나 어른 주먹 크기의 파편 하나가 재수 없게 윤조의 옆머리를 스쳤다. 비껴 맞았지만, 워낙 빠른 속도로 날아든 단단한 물체라 통증이 상당했다.

‘재수 없게.’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윤조는 손으로 맞은 부위를 가늠했다.

이쪽을 내내 노려보던 오팔색 홍채가 떨렸다. 날카로운 눈매가 천천히 일그러졌다. 굵은 눈썹이 움찔거리고 치악력이 강해지면서 하악 관절 부분이 불거졌다. 살짝 실룩이는 광대까지.

정작 아픈 사람은 이쪽인데 저쪽이 왜 갖은 아픈 척을 다 하는지 의문이 들던 때, 내내 냉랭한 무표정을 유지하던 강수혁이 얼굴을 구긴 이유를 문득 깨달았다.

‘역시.’

프로세서 상태를 살핀 윤조는 내심 낭패감을 억눌렀다. 두부(頭部)에 가해진 타격을 감지한 프로세서가 자기 보호를 위해 에스퍼-가이드 동조 프로그램을 즉시 구동했다.

빠득.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났다.

원래는 강수혁이 직접 가한 폭력이 아니면 구동되지 않는다.

이번은 강수혁이 직접적 타격을 한 건 아니지만 강수혁이 원인이라고, 특수 위성의 AI가 그렇게 판단한 모양이었다.

“너, 페어링 당장 안 꺼?”

“죄송합니다. 인지 즉시 종료 시도 중인데 위성 AI가 거부합니다. 아무래도 두부 손상이라.”

현재 국내에 있는 가이드는 윤조 하나뿐이었다. 수백 명씩 존재하는 에스퍼보다 훨씬 중요한 자산인 만큼 자기 보호가 어떤 명령보다 우선한다. 심지어 윤조 본인의 명령보다도.

특히 윤조의 뇌는 다른 신체 부위보다 월등한 중요도를 띤다. 따라서 가벼운 타박상에 불과할지라도 심각한 가해로 분류되었다. 그 결과 특수 위성 내 AI는 두부 부상의 원인으로 판단한 강수혁에게 강력한 패널티를 부과했다.

“350% 패널티가 부과되었습니다. 지속 시간은…… 15분.”

앞으로 15분간 강수혁은 윤조 본인이 느끼는 실제 고통의 3.5배에 해당하는 고통을 계속해서 느껴야 한다. 그게 종종 페어링으로 불리는, 에스퍼-가이드 동조 프로그램의 본질이었다.

“미친.”

강수혁은 윤조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는 강력한 염력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재생 능력을 보유했다. 그래서 지속적인 통증을 견뎌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가끔 격렬한 전투 중에 사지 일부가 소실되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첨단 전투복이 자동으로 강력한 마취제를 투여하여 통각과 신경을 차단한다.

결정적으로 최강으로 잘 나신 에스퍼님은 머리가 깨진 적이 여태껏 한 번도 없다. 그래서 평범한 수준의 두통에도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뇌 신경 자체에 가해지는 충격이라 두통약도 듣지 않는다.

우드득.

강철 같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면서 윤조의 헬멧 조인트가 완전히 망가졌다. 그러면서 윤조를 향한 눈빛에서 새삼 불똥이 튀었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능력이 있었다면 윤조는 지금쯤 통구이가 되었을 거다.

강수혁은 용케 이성을 유지했다. 열 받는다고 힘을 마구 써 대지도 않았다. 패널티 효과가 아주 좋았다. 미친개에게는 자고로 몽둥이가 제일이었다.

“이리 내.”

강수혁은 윤조가 들고 있는 헬멧을 거칠게 빼앗았다.

그걸 윤조의 머리에 도로 씌웠는데 조인트를 망가뜨린 바람에 결합이 전혀 되지 않았다. 덜그럭거리며 돌아가는 헬멧을 확인한 강수혁의 입매가 비틀렸다.

“시발. 연두부 같은 새끼.”

강수혁의 입에서 기어이 욕이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헬멧은 왜 벗어서는.”

타격과 방사능에 저항력이 있는 강화 인간을 연두부라며 하찮은 취급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강수혁 입장과 기준에서는 연두부 취급도 대단히 높은 평가였다. 다른 인간은 아예 벌레 취급이었으니.

우악스러운 손길이 헬멧의 조인트 부분과 망가진 전투복 조인트를 한꺼번에 구겨 버렸다. 티타늄 합금은 찰흙처럼 합쳐졌다. 알루미늄 포일로 잔반이 든 용기를 봉인하듯, 강수혁은 망가진 조인트를 꼼꼼하게 구겼다. 그러자 공기 흐름이 막혔다.

“슈트 전원 껐는데요.”

헬멧 덕분에 윤조의 목소리가 고여서 먹먹하게 울렸다.

돌아오는 대꾸가 없었다. 윤조의 손목을 들어 올린 강수혁은 이로 제 장갑의 끝을 물어 뺐다. 그러곤 엄지를 꺼진 컨트롤 패드에 댔다.

원칙상 전투복 패드는 본인과 메딕 특수 코드를 받은 소수 외에는 그 누구도 임의로 조작할 수 없다. 전투복이 생명 유지와 밀접한 만큼 인명 보호를 위한 기본 보안 사항이었다.

가이드인 윤조의 전투복은 그중에서도 특수했다. 전투복 자체가 가이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윤조와 특수 위성을 연결을 원활하게 하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그만큼 기밀 자산이었다. 일반 메딕에게도 접속 권한이 없다. 윤조 전투복의 접속 코드는 윤조 본인과 윤조를 가이드로 만든 장본인인 심나연 박사뿐이다.

당연히 접속 거부되어야 하지만, 놀랍게도 윤조의 전투복은 강수혁의 생체 코드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삐빅.

“뭐? 접근 승인?”

윤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강수혁은 당사자인 윤조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패드를 멋대로 조작했다. 산소 발생 수치를 맥스로 올리고 전투복 내 간이 제염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제 전투복에 대한 접근이 언제부터 가능해진 겁니까?”

“어떤 미친 새끼가 자해 공갈 짓거리를 일삼을 때부터.”

“예?”

맥락 없는 설명에 윤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자 강수혁이 조소했다.

“네가 별거 아닌 일로 뒈지면 그때는 정말로 모든 게 끝장인 걸, 늙다리들도 알거든.”

끝장.

가이드라는 중요한 자산을 잃어서 외계 괴물 박멸과 게이트 소멸에 큰 지장이 생겨서 큰 혼란에 빠질 거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강수혁은 세상의 안녕을 바라는 기본적인 인류애가 결핍되어 있다. 안 그랬으면 미친개 길들이겠다고 가이드라는 에스퍼 전용 리모컨 인간을 만들어 낼 이유가 없지 않나.

“끝장…… 말씀입니까? 제가 그렇게 유용한 자산인 줄은 몰랐습니다.”

윤조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물었다. 그러곤 뒤늦게 침을 꿀꺽 삼켰다.

“유용? 그래. 내 손발을 묶었다는 점에서는 늙다리들에게 상당히 유용하긴 하지. 네가 살아 숨 쉬는 덕분에 그 새끼들 목숨이 하루하루 연장되고 있으니까.”

역시. 끝장은 강수혁 본인이 모든 걸 다 때려 부순다는 의미였다.

‘미친 새끼.’

오만하다 못해 대가리가 홱 돌아간 이 또라이 에스퍼 놈은 인간을 무시하고 멸시하다 못해 혐오했다. 특히 군 상부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

이유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가족의 원한이 있다느니, 예전에 상부 누군가에게 엄청나게 학대당했다느니 하는 믿지 못할 낭설이 나돌았다.

강수혁의 성격상 원한을 가진 상대는 벌써 요단강을 백 번도 더 건너게 했을 거고, 감히 누가 강수혁 머리카락 하나 건드릴 수 있겠는가. 소년 시절부터 S급이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트리플 S라는 헛웃음 터지는 랭크를 기록하는 에스퍼를 상대로 그랬다간 세포를 찢는 염력에 존재 자체가 소멸할 거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