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뭐? 강수혁?
대책이 있다는 얘기에 신나 했던 최정 대령이 대번 기겁했다.
-야! 김윤조! 지금 불구덩이 피해서 화산 용암 속에 잠수하잔 얘기야? 강수혁이라니. 에스퍼 중에 한두 명만 부르면 되잖아.
그렇게 반색하던 사람은 어디로 갔나? 최정이 정면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윤조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 외에 제가 임의로 호출할 수 있는 에스퍼가 없습니다. 또 강수혁 소령이면 혼자서 상황 정리가 가능합니다.”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 새끼는 내 명령이 아니라 스타, 아니 대통령이 와도 꿈쩍도 안 할 놈이야. 어떻게 끌어내려고?
“제가 위험에 처하면 알아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파트너’ 아닙니까.”
-미친…….
최정이 기겁한 듯 숨을 들이켰다. 잠시 말이 없던 그가 갑자기 벼락같은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야! 김윤조! 그거 에스퍼에 대한 공갈 협박이야 알아? 강수혁이 얼마나 지랄할지 뒤는 생각해 봤어? 너 오늘로 다 살려고? 아무리 강화 신체를 가졌어도 뇌가 깨지면 죽잖아! 우리 쉽게 가자, 응? 내가 알아서 수습할게. 아니아니 알아서 제대할게. 그러니까 너마저 개짓거리하지 말고…….
“어? 통신이? 어? 대령님? 어어? 대령님? 신호가!”
씨알도 안 먹힐 교과서 읽기를 시전한 윤조는 최정 대령의 통신을 무음으로 처리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세명 때문에 슬슬 열이 받던 시점이었다.
쓸모없는 밥버러지인 이세명을 사지 멀쩡하게 구출하고, 이 상황을 만든 최정에게도 적당히 한 방 먹이려면 역시 미친개가 제격이다.
최정을 비롯한 일반인 출신은 대개 가이드가 에스퍼라면 가리지 않고 다 조종할 수 있는 줄 착각한다. 이론상으로는 참인 명제다. 하지만 실전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하진 않다. 김윤조가 반강제적인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에스퍼는 현재 강수혁이 유일했다.
현재 윤조는 무너진 아파트 단지 바깥쪽 8차선 도로변의 상가 건물에 매복 중이었다.
여기 위치를 기준으로 이세명 대위는 1시 05분 방향 137m 거리에 있었다. 강수혁 소령의 에스퍼 능력이 미치는 범위를 가늠할 때 거리를 더 벌릴 필요가 있었다.
‘조종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조련인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윤조는 이세명 반대쪽으로 500m 정도 이동했다. 건물 사이에 있다가 강수혁의 힘에 파괴된 건물 파편에 맞아 죽는 건 사양이므로, 사방이 뚫린 도로로 나갔다.
파괴된 콘크리트 조각과 버려진 차량 등이 뒹구는 도로 위에서 윤조는 사방을 경계했다. 이세명이 총을 쏘며 갖은 지랄을 해서 괴물이 그쪽으로 다 몰려갔다. 덕분에 윤조 인근에는 어떤 괴물도 보이지 않았다.
특수작전사령부의 표준 반자동 소총은 띠를 이용해 등 뒤로 돌렸다. 뒤이어 손목에 찬 전투복의 컨트롤 패드를 조작했다. 전투복 전원을 끄겠다고 하자 경고가 떴다.
-방사능 수치 : 위험
“알고 있어.”
경고등을 끄기 위해 윤조는 패스워드를 입력했다. 삐릭 하면서 정말로 끄겠냐는 확인 창이 떴다. 통신이 끊기기 전에 윤조는 최정 대령에게 신호했다.
-야! 그래도! 걔가 잘못 난리 치면 내 모가지가 아니라 특작부 전체가 군에서 호적 파이는 수가 생겨! 전에도 아군 전차 3대에 수송 헬기를 그냥 박살 냈잖아! 신형 전차는 나보다 비싸!
무음으로 전환한 이후로도 최정은 내내 고함을 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득음의 경지에 오른 소리꾼 같은 처절한 음성에 윤조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수신기 볼륨을 최소로 줄였다.
“이번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겁니다.”
-확신할 수 있어?
“아뇨.”
윤조는 상큼하게 웃었다. 그러자 최정이 별안간 조용해졌다. 충격을 받았나? 윤조는 컨트롤 패널을 조작하면서 보고했다.
“지금 제 전투복 전원 끕니다. 5초 뒤에 응급 구조 신호가 강수혁 소령에게 전달될 겁니다.”
-야, 김윤조! 김윤조! 야, 이 미친 새끼야! 내 말 안 들어? 넌 꼴랑 준위고 난 대령이야! 직속상관이 우스워? 지금 항명하는 거야, 뭐야? 너 죽을래? 아니 윤조야, 내가 미안하다. 아니 그러지 말자. 우리 인간적으로 강수혁 그 새끼는 아니잖아.
삐익. 삐삐삐 삐익.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전투복 전원이 하나하나 나가기 시작했다. 시야에 뜬 바가 빠르게 차면서 전투복 조인트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마지막으로 산소 발생기가 꺼졌을 때 윤조는 목에 있는 작은 덮개를 밀어 열고 안에 든 버튼을 눌렀다.
푸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헬멧 잠금장치가 풀렸다.
전원이 들어와 있는 상태로 눌렀다면 바로 비상 알림과 함께 아군에게 SOS 신호가 갔을 거다. 하지만 전원이 없는 상태로는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
헬멧을 완전히 벗고 고개를 들었다. 옅은 바람이 윤조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후우.”
특작부 건물 바깥 공기를 마시는 건 오랜만이었다.
윤조는 코끝을 실룩였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방사능 수치는 일반인이라면 즉시 정신을 잃고 코피를 터트리며 기절했을 농도였다. 하지만 윤조는 멀쩡했다.
공식적으로 강화 인간이라고 불리는 여타 에스퍼보다는 못해도 현재 윤조의 신체는 일반인보다는 훨씬 강한 방사능 내성이 있었다. 이 또한 가이드 프로젝트의 산물이었다.
“목숨 걸고 가이드 될 만한데. 오염 지역에서 바람도 맞고 말이야.”
누구도 예상치 못한 다른 부작용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긍정적 측면에 집중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긍정적 사고를 시작해도 결말은 암울한 예측으로 곧장 이어졌다.
“이번엔 인큐베이터 신세를 얼마나 질까. 이틀? 사흘?”
그때는 강수혁 소령의 임무에 윤조가 동원된 형국이었다. 그래서인지 강수혁은 적당히 하고 떨어졌다. 기대치도 않았던 자비 덕분에 재생용 인큐베이터에서 반나절만 누워 있다가 나왔다.
삐삐삐.
뇌 내 신호가 울렸다.
전두엽에 장착된 주(主) 프로세서이자 위성과의 송수신을 담당하는 가이드 프로세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방사능을 감지하고 윤조를 보호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따라 구조 신호를 발산했다.
항상 윤조에게 고정된 가이드 전용 특수 위성이 그 신호를 받아 특정 에스퍼, 이 경우에는 강수혁 소령에게 전달했다.
헬멧을 벗은 지 정확히 12초 후.
쐐애액.
전투기 비행음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도 맑은 하늘을 가르는 삼각형 그림자는 찾을 수 없었다. 작은 뭔가가 휙 지나갔을 뿐이었다.
쾅!
윤조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뭔가 내리꽂혔다. 어마어마한 충격파는 도로에 크레이터를 생성하고도 모자라 진동과 함께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흙먼지와 함께 파괴된 아스팔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읏.”
균형을 잡기 위해 반사적으로 무릎을 굽힌 윤조는 얼굴로 날리는 파편을 팔로 막았다. 탄소 소재로 만들어진 전투복 강화 패드에 작은 돌멩이가 팅팅 부딪쳤다.
방금 내리꽂힌 충격은 고작 권총 따위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인근 10km 내에 있는 모든 슬라임 괴물이 이쪽으로 방향을 틀겠는걸.’
이세명은 목숨을 부지했다. 방금 일어난 국소 지진으로 인해 콘크리트가 무너져 깔려 죽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적어도 외계 괴물이 발산하는 방사능과 진동에 내장부터 익는, 끔찍한 죽음은 피했다.
자욱한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크레이터 안에서 커다란 인영이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저 남자가 바로 크레이터를 만든 장본인이자, 윤조의 ‘파트너’ 강수혁 소령이었다.
“김윤조.”
싸늘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전두엽에 박힌 가이드 프로세서가 비범한 뇌파를 감지했다.
-패턴 분석 : 노여움, 분노, 짜증.
굳이 뇌파 분석을 하지 않아도 됐다. 냉랭한 어조만 들어도 뚜껑이 반쯤 열린 게 확실하니까.
‘당연히 열받았겠지. 비번에 갑자기 호출당했으니. 이거 삼 일로도 모자라겠는데.’
둘 사이가 점점 좁아지면서 흙먼지에 가려졌던 강수혁의 모습이 뚜렷해졌다.
여긴 게이트가 닫힌 후 외계 괴물 소탕이 완료되지 않은 작전 필드였다.
아무리 최강 능력을 자랑하는 에스퍼라지만, 전투복 없이 고작 일반 군용 바지에 검은색 티셔츠 차림으로 나다닐 곳이 아니었다. 얼마나 열받았으면 전투복을 갖추지도 않고 날아온 걸까. 등골이 서늘했다.
겁을 먹은 티를 낼 수 없다.
윤조는 반사회적 성향의 에스퍼 유화 및 회유라는 거창한 명목하에 가이드로 재탄생했다. 말이 유화고 회유지, 실상은 미친개 길들이기였다. 미친개 앞에서는 겁을 먹은 티를 내서는 절대 안 된다. 떠는 순간 바로 잡아먹힌다.
표정을 가다듬은 윤조는 차분하게 경례부터 붙였다.
“강수혁 소령님.”
강수혁은 경례를 깔끔히 무시했다. 대신 윤조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원래부터 고운 적이 없었던 눈길은 현재 한층 험악한 기세로 윤조에게 내리꽂혔다.
멱살이 잡힌 윤조는 상대를 향해 씩 웃었다.
‘더러운 성질머리 하곤.’
딱딱한 전투복 목엔 멱살이랄 게 없으므로 엄밀하게는 헬멧 결합 부위인 조인트를 강하게 틀어잡았다는 게 맞다. 실제로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조인트가 커다란 손아귀에서 우드득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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