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 (71)화 (71/256)

65화

최정이 윤조 앞으로 나섰다. 최정이 아무리 모자란 삼촌이라지만 결국 특작부의 삼촌이다.

“함장님. 제 생각도 김 준위와 같습니다. 사격 중지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이번 훈련은 추후 저희 장선욱 중장님께도 경과와 결과를 자세히 보고드려야 하는데, 그러니까…… 자칫하다간 부대 간의 문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최정이 우물우물하면서도 끝까지 말을 이었다. 그러자 이 함장이 조소했다.

“지금 장선욱에게 고자질하겠다고 나를 협박하는 건가? 잘못 짚었어. 장선욱 따위가 나한테 뭐라고 할 계제가 된다고 생각하나.”

낮게 웃은 함장이 손을 들었다.

“후회할 일 만들지 마십시오.”

윤조가 날카로운 어조로 경고했다. 그러자 함교 장교들이 일제히 일어나더니 권총 홀더에 손을 올렸다.

이 함장이 황당한 듯이 헛바람을 내뱉었다.

“협박까지 하는군. 가이드가 이래서야 문제 에스퍼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겠나. 장선욱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역시 가이드 프로젝트엔 문제가 많아.”

“이건 가이드 프로젝트의 문제가 아니라 아군을 멸시하는 중장님 태도의 문제입니다.”

일개 준위가 중장을 향해 던진 말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모든 장교의 권총이 홀더에서 나왔고 즉시 사격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가 풀렸다.

대조적으로 고요한 함교와 달리 밖에서는 연이은 폭발음이 들렸다.

“김윤조.”

내내 침묵하던 심 박사가 윤조의 팔을 잡았다. 윤조가 돌아보자 상대는 눈을 맞추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하지만 여기서 숙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입을 꽉 다문 심 박사의 눈빛이 너무 형형했다.

함교의 분위기는 이제 수습할 단계가 아니었다.

“여긴 특작부가 아니야. 그러니 일단 후퇴하자, 김윤조.”

심 박사가 조용히 읊조렸다. 그쯤에서야 심 박사를 본 이 함장이 인자하게 웃었다.

“손님들을 함교 밖으로 모시게.”

“예, 함장님.”

함장의 지시에 따라 함교까지 안내한 장교가 세 사람을 함교 밖으로 내보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셋 다 입을 다물었다. 뒤따르던 장교가 사라진 후 셋은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말하지 않아도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방해 전파 때문에 신호가 약합니다. 동조율 최대치로 올립니다.”

윤조가 동조율을 올리자 강수혁 소령의 위치가 아까보다 선명하게 잡혔다.

“교신 시도 중, 응답 기다립니다.”

“전투 본부는 내 선실.”

심 박사가 앞장섰다. 셋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는 중에 최정이 황급히 장 중장에게 연락해 사태를 미주알고주알 설명했다.

“강 소령이랑 임 중위는 그냥 술래잡기 좀 했습니다. 평소에 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그냥 심심하니까 에스퍼 방식으로 좀 논 것뿐입니다. 잘못 하나도 안 했습니다. 네, 함선에는 흠집 하나 안 났습니다. 그런데 함대 측에서 아군 식별도 안 하고 비상부터 걸었습니다. 지금 저희 애들을 상대로 최신 레이저 장막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강 소령도 그렇지만, 임 중위까지. 지금 애들이 그냥 사정없이 전기구이 통닭 신세입니다. 우리 수혁이랑 성준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애들이 좀 날아다니면서 놀 수도 있지. 명백한 과잉 대응이라고 봅니다, 저는. 거기다가 중장님께 보고한다고 했더니 비웃었습니다. 예, 우리 특작부 전체를 무시하는 태도였습니다. 사전 경고 없었습니다. 동의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저희 대응은…… 응전하고 싶습니다. 전술 훈련이라고 하니까요. 저희도 성실하게 전술 훈련할까 합니다. 부상도 각오한 실전 훈련이니 저쪽과 같은 조건으로, 무통보에 최신 전투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네, 네. 살상 모드만 아니면 될 것 같습니다.”

최정은 평소 징징대던 실력을 아주 깔끔하게 발휘했다. 고자질 통화가 끝난 즉시 그는 실사 전투 모드 승인을 받아냈다면서 실실 웃었다.

“침몰만 아니면 함대에 피해 입혀도 된대. 중장님이 다 책임지겠대. 훈련이고 나발이고 이 함장 콧대부터 눌러 주래.”

“꼰대 아재가 반대할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피해를 입혀도 된다고? 안전 제일형이 웬일이야.”

선실 패드에 손바닥을 대던 심 박사가 고개를 들었다.

“열받은 거지.”

최정이 입을 삐죽였다. 장선욱을 향한 불만은 아니었다.

“저놈들이 아무리 차반이라도 우리 차반이야. 우.리. 차.반.이. 우리 애들이 뭐 배를 부수길 했어, 찌그러뜨리길 했어, 뭐 했어? 전투기보다 빠른 S급 에스퍼 둘이 승선한 거 뻔히 알면서 아군 식별도 못 하고 공격 비상부터 울린 놈이 멍청이지. 솔직히 이거 일부러 짜 놓은 함정 아니야?”

최정은 겉보기보다 팔이 안으로 많이 굽는 편이었다.

심 박사가 반색했다. 입고 있던 알로하 셔츠의 반팔 소매를 걷는 시늉까지 했다.

“맞아. 우리 개새끼들을 어떻게 지지고 볶든 우리가 알아서 할 거니까 엿 같은 다른 해군 새끼들은 꺼지라고 그래.”

선실에 들어서자마자 심 박사는 즉시 패드를 켜고 위성에 접속했다. 그러곤 AI 스캔 데이터를 바탕으로 레이저 장막 파훼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전 함대 위치 스캔 완료했습니다. 기동 예측에 들어갑니다.”

동시에 윤조도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 초등학생 방학 일과표에 불과해도 어쨌거나 훈련 일정표에 따라 미리 전투복을 갖춘 상태라 준비 시간을 벌었다.

그건 최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옆 선실에 있는 본인의 휴대 전자 장비를 들고 왔는데 혹시나 강수혁이 훈련에 협조해 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했던 건지, 화면을 켜자마자 각종 전투 프로그램이 이미 활성화되어 있었다.

“임성준 서포트는 내가 할 테니 위성 데이터 이쪽으로도 띄워 줘.”

“이미 들어갔어.”

심 박사가 대답했다. 뒤이어 윤조가 보고했다.

“반경 30km 딥 스캔을 시작. 전투 맵 완료까지 3분 7초.”

삐삐삐.

계속 발신 중인 윤조의 통신에 드디어 강수혁이 반응했다.

“강 소령, 응답 들어옵니다.”

“내 장비 스피커로 바로 연결할게.”

심 박사가 패드를 조작했다.

“강 소령님? 들리십니까? 김윤조입니다. 피해 상황 보고 바랍니다.”

윤조가 상대를 불렀다. 장비 스피커를 통해 싸늘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너희 전부, 거기서 나와.

다짜고짜 나오라는 말에 등골이 싸늘하게 식었다.

“어쩌시려고요?”

-장선욱한테 전해. 누를 생각이면 지금 누르라고.

흥분기가 전혀 없는 차분한 음성이었다. 그에 심 박사가 눈을 번쩍 떴다.

“뭘 눌러? 설마 ‘그거’ 말이야?”

“강 소령 지금 그거 아니면 못 말리는 급으로 난동 부리겠다고 선언한 거야.”

최정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방금까지 손상 허가받았다면서 실실 웃던 모습은 싹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 강망나니, 뚜껑 완전히 열렸는데.”

오픈 채널이라 뻔히 듣고 있으면서도 강수혁은 두 대령의 말에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계속 싸늘한 어조로 명령했다.

-임성준한테 점프 포인트 좌표 보내.

-임성준입니다. 순간 이동은 빛에 재밍(Jamming)돼서 광막 사이 점프는 불확실성이 큽니다. 저는 괜찮아도 동행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어디로 뜁니까? 여긴 태평양 한가운데입니다.

임성준이 반대했다. 아까 살려 달라고 징징대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단정하고 침착한 음성이었다.

-너희 좌표만 보내. 내가 직접 들어간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윤조가 반대했다. 그러자 스피커가 갑자기 침묵했다.

-분노, 가학, 짜증 급상승. 대상 에스퍼 강수혁

“화내지 마십시오.”

-시발, 화 안 나게 생겼어? 이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중에 가이드란 새끼가 협조를 안 하는데.

강수혁의 뇌파 그래프가 오랜만에 수위를 넘었다. 요동치는 분노 파장을 보면서 윤조는 침착하게 답했다.

“협조하기 위해 지금 연락을 드리는 겁니다. 헬멧 없으시죠?”

-헬멧 따위가 중요하냐고.

-네. 소령님도 저도 없습니다.

윤조의 물음에 임 중위가 대답했다.

아무리 두꺼운 장막이라도 막대한 출력을 감당하기 위해서 각 함포가 일정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쉬는 만큼 일부 공간에 구멍이 생겼다. 심 박사의 조력에 힘입어 AI는 미세한 구멍의 좌표를 도출해 회피 루트를 생성했다. 일반 에스퍼는 아예 시도도 못 할 만큼 복잡한 이동 루트를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해야 했다.

“스크린 확인이 불가능하니, 뇌파 동조 극대화를 통해 회피 기동 전달합니다. 강 소령님, 약간 어지러울 수 있으니 대비하십시오.”

-뭐…… 윽.

동조율을 한계까지 올리자, 두 사람의 뇌 활동이 일체화 수준에 이르렀다. 즉, 윤조의 사고가 강수혁에게 바로 전달된다. 동시에 강수혁의 생각 또한 윤조에게 바로 전달된다.

에스퍼가 느끼는 분노와 짜증, 역겨움, 인간에 대한 혐오 등이 어떤 거름망도 없이 윤조로 향해 흘러들었다.

지극히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행위는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다. AI와 연결된 뇌 내 칩이 각종 전기 신호를 발생하여 과도한 뇌 흥분을 억제했다. 한쪽에선 윤조의 뇌에 불을 지르고 한쪽에서는 뇌를 얼음물에 담그는 느낌이었다.

오감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윤조는 현재 강수혁이 느끼는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재생력이 있다지만, 레이저가 전투복 밖으로 드러난 안면과 손을 지질 때 통증이 일었다. 꼭 달군 다리미로 얼굴을 미는 느낌이었다.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고? 미친.’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에스퍼를 이따위로 취급하는 함장과 그 부하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부상 후 재생의 매커니즘을 충분히 알면서도 강수혁 또한 부상 시 고통을 느낄 것을 생각지 못한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동조를 통해 윤조가 느끼는 고통을 재차 전달받은 강수혁이 대뜸 말했다.

-갑자기 존나 아픈데 왜 이러지? 김윤조, 이거 너 때문이야?

“원래 레이저 맞으면 존나 아픈 게 정상입니다. 갑자기 아픈 게 아니라! 얼른 회피나 하세요!”

바보 같은 소리에 윤조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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