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위잉.
레이저 함포에서 고주파가 발생했다.
“1번 레이저 조준 사격 개시.”
“2번 레이저 조준 사격 개시.”
연이은 복창과 함께 레이저 함포가 번쩍였다.
레이저는 빛을 이용한 무기다. 빠르기 또한 당연히 빛의 속도다. 구식 무기와 달리 발사점에서 목표점까지 시차가 없다. 그러니까 날아오는 레이저는 빛이기에 당연히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붉은빛을 보았다고 더러 착각하곤 하는데 그건 발사된 레이저가 아니라 발사 직전 가열된 렌즈의 반사광일 뿐이다. 번쩍이는 섬광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이미 늦다.
발사 직후 피할 도리가 없다는 점에서 에스퍼를 제압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물론 개발 목적은 어디까지나 플라이형을 위한 것이지만.
짙은 안개가 끼거나 우천 시라면 레이저는 무용지물이다. 공기 중 물방울에 산란해 효과적인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또한 주변에 사물이 있다면 뒤로 피해도 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형 레이저에 해당하는 얘기다.
제주도함에 장착된 레이저는 신형이었다. 비와 안개 정도는 레이저 자체의 열기로 증발시키기에 별다른 문제가 안 된다. 탁 트인 해면이라 숨을 곳도 없다.
이런 어마어마한 무기를 사소한 이유로 가동한 함장에 대한 충격과는 별개로 윤조는 강 소령이나 임 중위가 당할 거라고 믿지 않았다.
‘알아서 피하겠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드론도 아니고 고작 함포 두 기(機)다. 함선 고정형이기에 공격 각도와 범위에 한계가 있다. 일반인이나 일반인이 조종하는 항공기는 즉시 뚫리거나 썰려도 S급 에스퍼가 당할 확률은 낮다.
강수혁은 물을 이용해 레이저 열기로 증발시키기 버겁게 두꺼운 수막을 만들거나 혹은 수면 바람을 이용해 해상 토네이도를 만들어 레이저를 얼마든지 무력화할 수 있다. 임 중위는 위험을 감지한 즉시 어딘가 함 내로 피할 거고. 아무리 화가 난 쓰리스타라도 본인의 함대를 향해서 발포하진 않을 거다.
레이저 뒤꽁무니에는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레이저 반사 거울이 장착되어 있어 조준 각도를 확인하기 쉬웠다. 초당 만 번의 레이저를 발사하는 함포 두 기의 머리는 역시나 함대와 자체 함교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움직였다. 그런데 포신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어?”
기이한 움직임을 포착하자마자 함장이 조용히 읊조렸다.
“전 함대, 난수 조준 개시.”
“전 함대, 난수 조준 개시.”
함장의 말을 부함장이 복창하자마자 각 장교의 연이은 복창이 이어졌다.
전 함대? 지금 함대 전체에 달린 수십 기 레이저를 동시에 가동한다고? 난수 조준은 또 뭐야, 무작위로 쏜단 말인가?
“헉.”
옆에 있던 최정 또한 놀라는 소리를 냈다. 그가 보는 방향을 향해 윤조도 시선을 돌렸다.
실제로 멀리에 있는 구축함의 레이저 함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주도함의 레이저가 ‘방어’에 집중하는 무기라면 구축함은 말 그대로 파괴, 즉 공격형 레이저다.
레이저들이 일제히 랜덤 각도로 쏘기 시작했다. 과열을 막기 위해 일정 시각 돌아가면서 쉬었다가 다시 고개를 드는 레이저 함포는 서로 동조한 듯 조화롭게 움직여 제주도함을 중심으로 반구형 레이저 장막을 만들어 냈다. 그 장막이 일시에 사방으로 훅 퍼졌다.
펑!
중간에 검은 연기가 발생했다. 둘 중 누군가가 레이저에 맞았다는 얘기다.
“난수 장막 저격 프로그램이 완성되었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는데. 레이저 출력을 감당 못 해서 포기한 줄 알았는데 실전 배치까지 했을 줄이야.”
최정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북북 문질렀다. 그러자 함장이 뒤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우리 해군의 기술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가까운 미래에 에스퍼 없이 게이트 처리가 가능해질 걸세.”
위성 스캔으로 윤조는 방금 벌어진 상황을 파악했다.
보통 조준 사격은 큰 방 안에서 개별 전기 파리채를 휘두르는 것이라면, 난수 장막 저격은 방 안을 레이저로 가득 채워 그 안에 든 모든 벌레를 한꺼번에 지지는 방식이었다. 레이저 출력에 따라 사거리 한계는 있으나 S급 에스퍼가 당하는 걸 보면 적용 범위가 상당했다.
이 함장이 흡족하게 웃었다.
“특작부 문제아들 덕분에 피지에 도착하기 전에 요격 시험을 해 볼 수 있게 되었어.”
그 말에 윤조는 눈을 번쩍 떴다. 갑자기 레이저 함포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꺼내길래 사람이 약간 미쳤나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새 전술 프로그램 훈련이라고?
펑!
또 맞았다. 그때는 윤조를 포함하여 심 박사까지 움찔했다. 최정이 확 늙어서는 함장을 아주 간절하게 쳐다봤다.
“함장님. 저희 애들이 잘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걱정하지 말게. 죽진 않을 거야. 사살 모드는 아니니까. 피부는 좀 그을리겠지만 말이야.”
함장의 어조는 우아하고 차분해서 더욱 냉정하고 잔인했다. 아까 함교 장교들이 바싹 얼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윤조는 주먹을 쥐었다. 반감이 피어올랐다.
‘사살 모드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에스퍼를 뭐로 생각하는 거야? 아무리 자조적으로 자산, 자산 한다지만 정말로 자산으로만 취급하다니.’
펑. 펑.
레이저 장막이 퍼질 때마다 파란 하늘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나일 때도, 혹은 둘일 때도 있었다. 아무리 빨라도 빛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강수혁은 그렇다치고 임 중위까지 당한 듯했다. 아무래도 순간 이동할 여유를 잃을 것 같았다. 임 중위의 재생력이 A급이었던가.
아무리 난동을 피웠다지만 저건 너무했다.
저건 적절한 징계나 혹은 ‘매’가 아니었다. 난동을 핑계 삼아 두 에스퍼를 상대로 새 저격 전술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에스퍼에게 사전 동의를 받지도, 그렇다고 경고를 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사살 모드는 아니라도, 에스퍼를 사격 연습용으로 저렇게 패는 건, 제제를 가장한 학대다.
에스퍼도 사람이다. 초월적인 공격력과 재생력을 지녔다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동거 후에 윤조를 가장 놀라게 한 사실은 강수혁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파스타 1인분 만들기가 제일 어렵다고 주장하고 빨래를 개는 법에 대해서 특별한 철학이 있으며 동거하는 이상 그 짓을 안 해도 잠은 꼭 함께 자야 한다고 우기는 망나니의 평범한 일상이 윤조의 뇌리를 스쳤다.
트리플 S급 에스퍼든, 솔로 플레이로 G형 게이트를 닫든 말든, 등에 소형 핵폭탄을 지고 원치 않은 가이드를 초면에 피떡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들, 한편으로는 첫 해외여행에 신이 나서 마트에서 파는 싸구려 선글라스를 끼고 설레 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이건 인간 취급도 아니잖아. 시발.’
강수혁 대신에 억울함이 울컥 솟았다.
자신은 에스퍼 강수혁의 가이드다. 가이드는 어떤 경우에서든 에스퍼의 안정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에스퍼의 안정은 불필요한 학대 방지로부터 시작한다.
“이제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율희 중장님.”
윤조는 상대의 계급과 권위를 깡그리 무시했다.
“음?”
만족스럽게 전방을 주시하던 함장이 돌아봤다.
“즉시 사격을 중지하십시오.”
가만히 서 있던 윤조가 함장을 향해 한 걸음 나섰다. 단순히 어조를 강조하기 위함일 뿐인데 함장을 중심으로 대각선 반대편에 있던 부함장이 방어하듯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손은 허리춤에 있는 장교용 권총에 가 있었다. 홀더 잠금은 이미 풀린 상태였다.
그의 시선은 단순히 윤조뿐 아니라 최정 대령과 심 박사에게도 향했다. 아까 셋을 함교까지 안내한 장교는 함교 경호를 담당하는 중이었는지, 부함장과 비슷한 태도로 권총을 잡고 윤조 일행을 경계했다.
얼음장 같은 함교 분위기를 전혀 모르겠다는 듯, 함장은 눈매를 살짝 접었다. 이제 보니 함장은 곱게 미친 인간이었다.
“지금 일개 준위가 내게 말한 건가?”
“준위가 아닙니다. 가이드로서 말씀드린 겁니다. 이쯤 하면 매는 충분히 드신 것 같습니다.”
이 함장이 부드럽게 웃었다.
“특작부 내 기강이 매우 특이하다고는 들은 적이 있지. 준위가 대령과 막역하고 중장에게 직언도 한다고 말이야. 직접 겪으니 아주 신선하고 민주적이야. 유치원 운영하면 딱 맞겠어.”
욕설 한마디 없이 비꼬는 것이 수준급이었다. 윤조의 어금니와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중장 새끼들이란 다 하나같다. 하나는 손수 키운 병사의 등에 핵폭탄을 달지 않나, 하나는 고작 신경 좀 거슬렸다고 함포 사격을 하지 않나.
“에스퍼도 사람입니다.”
“사람은 날아다니지 않거든.”
이율희 함장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순간 윤조는 이 함장이 왜 이렇게 잔인하게 나오는지 눈치챘다. 상대는 이세명과 똑같은 부류다.
“지구 순수주의자.”
“음?”
윤조의 규탄에 이 함장은 마치 전혀 모르는 말을 들은 것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가증스러웠다.
“현재 우리 군은, 우리 국가와 사회는 에스퍼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에스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걸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윤조가 에스퍼를 옹호하자 이 함장이 흥미롭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는 중에도 밖에서는 레이저는 계속 작동 중이었다.
“저들이 아무리 강하고, 심지어 날아다닌다고 해도 한편으로는 똑같이 먹고 자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편리한 과녁이 아니란 말입니다. 즉시 사격 중지하십시오.”
이 함장은 윤조를 빤히 봤다.
“그건 가이드로서의 의견인가, 아니면 애인으로서의 걱정인가?”
“함장님!”
치졸하게 상대는 이쪽의 사생활을 걸고넘어졌고, 윤조의 음성이 한층 고조되었다.
그러자 부함장이 권총을 아예 빼서 제 허벅지 옆에 차분히 붙였다. 그러고는 제 검지를 격발 장치 옆에 딱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