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느긋한 해상 휴가를 보내던 찰나 여기서 갑판을 향해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점의 공간이 기이하게 떨렸다. 꼭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서 물결이 치는 것 같았다.
윤조를 비롯하여 한가한 장교 둘의 시선이 그쪽을 향하는 순간 떨림이 인간 형상으로 변하더니 익숙한 사람이 나타났다. 임성준 중위였다.
“저 좀 살려 주세요.”
새파랗게 질린 그가 한마디 하는 순간 저 멀리 항모 전대의 가장 뒤꽁무니에 있는 구축함 상공에서 쾅!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도넛 모양의 구름이 훅 퍼졌다.
“갑자기 소닉 붐…… 허억!”
최정이 소닉 붐을 향해 검지를 들어 올리자마자 1초도 지나지 않은 순간에 거센 바람이 날아와 선베드를 몽땅 날려 버렸다. 아이스박스도 와장창 뒹굴었다.
“으억, 시벌!”
“엄마야!”
휴가 모드였던 대령 둘이 바닥을 뒹굴었다. 윤조가 구겨져 있던 해먹도 거칠게 요동쳤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으아악!”
뒤이어 임성준이 비명을 질렀다.
쾅!
다시 한번 폭발음이 들렸다. 흰 도넛 모양 구름이 항모 바로 위에 생겼다.
삐융! 삐융!
비상 사이렌이 울리면서 갑자기 갑판이 어수선해졌다. 각자 할 일 하던 갑판 수병들이 다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이쪽으로 달려와서 나뒹구는 심 박사를 부축했다.
“빨리 함 내로 피신하십시오! 비상 상황입니다!”
“뭐…… 뭔데?”
마시던 아이스티를 뒤집어쓴 최정이 다급히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습격 같습니다. 아마도 플라이형이 아닐까 합니다.”
수병이 심 박사를 얼른 일으켜 세우는 사이 윤조도 해먹에서 내려왔다.
하늘은 너무나도 청아했다.
“게이트 전조 현상도 없는데?”
심 박사의 의문에 수병은 대답하지 못했다.
“일단 ‘전투 준비’라서요. 갑판 위에서 대피하십시오.”
멀리서 헤드셋을 쓴 항공기 유도병이 붉은색 발광봉을 마구 흔들었다. 비상시에 몸을 숨기는 강판 뒤 더크를 향해 수병 여럿이 뛰어들었다. 심 박사를 부축한 수병도 그쪽으로 향했다.
정찰용 드론이 우르르 떠올랐다. 거대한 빌딩 사이즈의 함교 곳곳에 붙은 레이더가 사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호위함과 구축함에서도 비상 알람이 정신없이 울렸다.
쾅! 쾅! 쾅!
그러는 중에도 소닉 붐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특수 위성 AI가 인근 해상에 어떤 게이트 전조 현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알렸다.
윤조가 보기에도 인간의 배에는 관심이 없이 공중만 날아다니는 저것은 아무리 봐도 플라이형은 아니다. 방사능 배출이 없다는 점에서 지구 출신-테란이 분명했다.
보통 초음속기는 음속을 돌파하면서 소닉 붐을 일으킨다. 이후 엔진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웬만해선 속도를 유지한다. 그러므로 음속을 돌파할 때만 발생하는 소닉 붐을 저렇게 방귀를 뀌듯이 계속 질러 댈 수가 없다.
저건 속도를 순식간에 음속 이하로 떨어뜨렸다가 다시 초음속으로 막 올려도 무방한 개체가 저지르는 짓이다.
제주도함 인근은 공해상이고 게이트도 없다. 여기서 저런 짓을 마구 저지를 수 있는 개새끼는 하나뿐이다. 무엇보다 아스라이 사라져간 임성준의 비명이 그것을 증명했다.
빨리 대피하라는 수병의 지시를 무시한 윤조는 갑판 한중간에 섰다. 그러곤 요란한 방귀를 뿡뿡 뀌어 대는 원흉 새끼를 찾았다.
항모 전대 인근 하늘에 공간이 흐릿하게 물결치면서 인영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직후 검은 인영이 그 자리에 쇄도했다가 다른 쪽으로 날아갔다. 각각 공중 포인트를 순간이동 하는 임성준에 그를 단지 물리적 속도만으로 따라가는 강수혁이 벌이는 짓이었다.
“숨바꼭질 한번 살벌하네.”
“쟤네 지금 뭐 하는 거야?”
멀뚱히 선 윤조 옆에 어느새 심 박사가 다가왔다.
“말릴 수 있겠어?”
“글쎄요.”
“패널티 먹일까?”
“일단 호출이나 한번 해 보고요. 말 안 들으면 바로 200퍼센트로 5초간 경고 때리겠습니다.”
“어, 그래.”
이마에 손을 댄 심 박사는 윤조가 보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던졌다. 두뇌는 A급 에스퍼라도 신체는 일반인인 심 박사는 지금 윤조가 보는 장면을 포착해내진 못했다. 그러기엔 두 S급의 이동 속도가 너무 빨랐다. 윤조 또한 특수 위성 AI가 인근 지역을 스캔하여 예측 경로를 보내주기에 간신히 포착할 수 있었다.
“임 중위랑 강 소령이야? 어쩐지 얌전하다 했다. 어휴.”
젖은 얼굴을 북북 문지른 최정은 전투 위치로 향하는 병사들을 쫓아갔다. 그중에서 장교를 찾아 하늘과 윤조를 가리키면서 뭐라고 설명했다.
잠시 후, 비상 사이렌이 멈췄다. 그러면서 함대 전체 사이렌도 멎었다. 하지만 각종 레이더와 레이더가 달린 포신은 공중을 계속 탐색했는데 그 움직임이 대단히 신경질적이었다. 저걸 조종하는 누군가의 분노와 짜증이 엿보였다.
“최 대령님! 그리고 같이 계신 분들! 함장님께서 함교로 오라고 하십니다!”
수병 하나가 뛰어와 소리쳤다. 그에 심 박사는 “아, 개망나니 새끼.” 하며 한탄을 금치 못했다. 인근에 서 있는 최정은 한층 늙은 기색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래서 새는 바가지는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 안 되는 건데.”
팍 늙은 최정의 뒤를 심 박사와 윤조가 따랐다. 세 사람을 이송할 함상(艦上) 카트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함교로 가는 도중에 패널티를 먹일까도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군이라는 인식은 있는지 공중에서 지랄할 뿐, 함대 자체에는 피해를 주고 있지 않아 조금 주저했다. 그러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항모의 주탑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 층에 위치한 함교에 도착했다.
셋을 안내한 장교는 경계를 붙이고 바로 뒤로 빠졌다.
특작부 내 작전 본부에 비견하는 복잡한 시설들이 즐비했다. 각각 헤드셋을 끼고 있는 함교 장교들은 모니터를 주시하며 컨트롤 패널을 조작했다.
지상 본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전방 180도를 아우르는 거대한 방탄 유리창 저쪽에 거대한 갑판과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것과 동시에 함교 한복판에 바퀴 모양의 거대한 조타가 있다는 점이었다.
항모 운항 프로그램을 양자 컴퓨터로 돌리면서도 막상 저런 구식 조종간은 전통이란 이름으로 유지되었다. 조타는 일등 항해사인 장교가 붙잡고 있고 그 뒤엔 언제나 배와 함께 운명을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함장이 서 있었다.
우람한 체격을 자랑하는 다른 함교 장교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작고 마른 체격을 가진 함장은 시선을 계속 정면을 향한 채 입을 열었다.
“최정 대령.”
“네, 중장님.”
최정이 대답했다. 그러자 상대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회색 머리를 바짝 묶어 쪽을 진 함장의 어깨에는 별 세 개가, 가슴에는 이율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곧 정년 퇴임을 앞둔 할머니답지 않게 형형한 눈빛을 가진 함장은 멋지게 주름진 입술을 움직였다.
“함교에선 함장이라고 부르게.”
“알겠습니다, 함장님.”
함장 이율희의 음성은 예상보다 훨씬 차분했다. 그래서 최정은 더욱 긴장했다.
“지금 저 에스퍼들이 저러는 이유가 뭔가?”
“그건…….”
원래 새는 바가지라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었다. 최정이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윤조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고요해서 더욱 카리스마 넘치는 함장의 시선이 윤조를 향했다.
“자네가 우리 측 가이드라고 했나?”
“준위 김윤조. 그렇습니다.”
윤조는 바로 거수경례를 붙였다.
검은색 반팔 해군 제복을 입은 이 함장이 천천히 다가왔다.
“에스퍼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는데 말이야. 우리 가이드의 생각은 어떠한가?”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윤조의 물음에 이 함장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솔직하지 않으면? 설마 내 앞에서 거짓 보고를 할 셈은 아니었을 테고.”
“죄송합니다.”
윤조는 다시 고개를 바싹 들었다. 이 함장은 그런 윤조의 팔을 허심탄회하게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그래서 솔직한 대답은?”
고요한 음성에 윤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옆에 선 심 박사조차도 바짝 얼어붙었다. 장선욱 중장과는 다른 기백이, 이 항모 전대 사령관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함상 생활이 지겹다고 지금 땡깡 피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강수혁 소령이 말입니다. 임성준 중위는 그저 시달리는 것뿐입니다.”
솔직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가 막힌 대답에 이 함장은 화를 내기는커녕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너지가 넘치는 에스퍼들이니 규율이 엄격하고 폐쇄적인 환경을 가진 함상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겠지. 이해하네.”
대자대비한 발언에 윤조를 비롯한 다른 대령 둘이 내심 옅은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함교에 있던 다른 장교들이 바싹 얼어붙었다. 그들은 작고 마른 그들의 할머니 함장을 두려운 눈으로 흘끔 쳐다봤다.
“우리 손님들께서 심심해 죽겠다는데 어떤가, 부함장. 모신 입장에서 좀 도와드릴까?”
조타를 잡은 일등항해사 저쪽에 있던 대령 하나가 이 함장을 응시했다. 부함장은 영문을 모르는 윤조와 다른 두 사람을 흘끔 보더니 대답했다.
“어디까지 할까요?”
“저 에스퍼들이 S급이지?”
부함장의 물음에 이 함장은 도리어 최정을 보며 물었다. 최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 함장이 우아하게 손을 들었다.
“그래도 아군이니까 레이저 유도 장치는 빼도록 하지.”
“네.”
유도 장치는 뺀다고? 잠깐, 그보다 레이저 유도 장치가 거론된다고? 깜짝 놀란 윤조가 움찔하는 사이 이 함장이 확 돌아봤다.
“동작 그만.”
속삭이듯 말했을 뿐인데도 왠지 모르게 전신이 얼어붙었다.
“여긴 내 함교야. 내 함선이고 내 함대이지. 내 허락 없이 난동을 피우는 놈들에겐 매를 드는 게 내 철칙이거든. 부함장, 1, 2번 레이저 차징 완료되는 즉시 조준 사격 개시.”
조곤조곤한 말끝에 무시무시한 명령이 마치 가벼운 부탁처럼 따라붙었다.
“1번 레이저 차징 개시!”
“2번 레이저 차징 개시!”
함교 장교들이 연이어 복창했다.
위이이잉
전방 방탄 유리창 넘어 레이저 함포가 차징을 시작했다.
‘미친.’
저건 대 게이트용 무기였다. 그러니까 중형, 소형 외계인을 한 번에 소멸시키는 막강한 최신 무기. 당연히 웬만한 에스퍼는 쪽도 못 쓰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자랑한다. 물론 S급 두 사람이 당할 확률은 낮겠지만 저걸 쓴다고? 스쳐 맞아도 골로 가는 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