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 (65)화 (65/256)

07. 태평양 연합 훈련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게이트가 그렇게 마구 열리고 그러지 않는다. 방사능 덩어리에 한 번 발생하면 다량의 외계 괴물을 토해 놓고 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이 수시로 일어난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망하거나 지구를 버렸을 거다.

소형 게이트도 한 번 발발하면 주변에 대단한 피해를 남긴다.

발생 위치도 중요하다. 지표면 70퍼센트가 바다인 만큼 발생하는 게이트도 비슷한 비율로 바다 위에 나타난다. 방사능 영향이 수자원과 각종 어류 자원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기 때문에 각국은 초 국가적 기구를 조직하여 방사능 제거 작전에 역량을 합친다.

바다 방사능이 점점 올라가는 문제가 있지만, 방사능 제거에 관한 연구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면서 최근 들어 바다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육지에 나타나면 얘기가 다르다. 물론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나 시베리아 벌판 황무지에 나타나면 최적이다. 해류를 따라 흐르는 바다에 비해 제염 작업도 훨씬 쉽다.

문제는 게이트가 밀림 한가운데나 인간이 사는 지역 한복판에 발생할 경우다. 전자는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방사능에 노출되어 괴롭게 죽어가는 동물들 사진이 넘쳐난다. 후자는 말할 것도 없다.

소형 게이트는 삼사 년마다 한 번씩 주거 지역에서 터진다. 혹시나 대도시 한가운데 터지기라도 하면 그 국가 차원에서 휘청여서 주변국이 서둘러 구조 활동에 나선다.

소형 게이트도 난리인 마당에 초대형인 G형 게이트가 육지, 그것도 대도시 한복판에 나타나면 나라의 명운까지 휘청인다.

8년 전, 이 나라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서울 북동부가 한꺼번에 날아간 G형 게이트.

흔히 ‘서울 게이트’라고 불리는 그 참사는 자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큰 충격을 남겼다. 인류에 대한 심각한 위협 앞에서 정치 알력과 외교 분쟁을 초월한 전 세계적인 대(對) G형 대응 기구가 각 권역 별로 출범했다.

태평양과 그 주변국 일대를 주로 방어하는 다국적 연합체인 ‘태평양 연합’에는 북중미 3개국과 남미 4개국. 또 남태평양의 주요국 2개 및 동남아 6개국, 마지막으로 동북아 4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그 외에도 연합국은 아니라도 협력국이 다수 있다.

그중에서 가이드를 보유한 국가는 미국, 캐나다와 호주 및 러시아, 중국뿐이다. 정확하게는 캐나다와 호주는 미국이 개발한 가이드인데 혈맹인 나머지 두 국가에 넘겼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의 가이드 시스템의 경우 매우 불안정하여 실전용은 아니었다.

이번 피지 합동 훈련에서 가이드 미보유국은 해상 방어 및 방사능 집중 제거에 훈련 역량을 집중하고 가이드 보유국 중에서도 실전 배치가 어려운 국가는 게이트를 통과하여 지구에 착륙한 외계인 섬멸 훈련에 참여한다.

직접적으로 게이트 공격 훈련을 수행하는 국가는 미국, 호주, 캐나다뿐이며 이번에 특수하게 우리나라도 공격대 참가가 결정되었다. 정확하게는 우리나라 특작부 전체가 아니라 ‘강수혁 및 그의 가이드’라고 명시되었다.

“우리도 여태껏 소개(疏開), 수송이나 제염 훈련에만 참여했지, 게이트 공략 훈련은 이번이 처음이야.”

최정이 신난 듯이 훈련 일정을 알렸다. 개인 수신기로 일정을 확인하던 윤조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가이드가 없어서요?”

“그것도 그렇고. 사실 서울 사건 이전에는 강수혁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그런 막강한 에스퍼가 있는 줄 몰랐으니 그냥 시시한 것만 시킨 거지. 우리도 특별히 강수혁을 공개할 마음이 없었고 말이야.”

“아, 그 사건으로 강 소령님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긴 했죠.”

강수혁 파일 열람이 거절되었기에, 윤조는 그가 과거에 어떤 작전에 참여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강수혁이 ‘8년 전 G형 게이트’의 영웅이란 건 상식이었다. 뉴스에도 줄창 나왔다. 지금도 ‘에스퍼 하면 강수혁!’이라는 말이 국민 대부분의 입에서 자동 완성으로 튀어나온다.

“와, 그때 내가 강수혁을 달리 봤잖아. G형이 느닷없이 서울 한복판에 나타나서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강수혁이 소닉붐을 일으키면서 게이트를 향해 돌진하더니 막!”

최정은 마치 눈앞에서 본 듯이 손발을 총동원하여 설명했다.

“대 게이트용 특수 텅스텐 빔을 다 날리고도 모자라서 무너진 건물에서 H빔 뽑아서 날리는 걸 네가 봤어야 하는데 말이야. 와, 원맨쇼로 G형 게이트를 닫더라니까. 그때 강수혁 없었으면 우리나라 진즉에 망했어. 나랑 우리 가족은 전부 난민 신세였겠지.”

최정이 또 과장된 망상을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나라는 안 망했어도 그날 이후로 나라가 망한 것과 진배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은 많았다. 윤조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특작부 전체가 대응한 줄 알았는데요.”

“당시 특작부가 별거 있었겠냐? ‘단군 할아버지가 보우하사 우리나라에 게이트 없음’이 유행어인 시절이었는데. 딱히 실전 경험이랄 게 없어서 데리고 있는 에스퍼가 사고 안 치게 막는 문제아 수용소 수준이었어.”

그러면서 최정은 당시 특작부는 곧 강수혁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어떻게 G형을 닫습니까.”

“아니 내 말을 왜 안 믿어.”

윤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면 아파트 단지 다 날아가기 전에 잘 좀 막지 그랬답니까.”

“아, 그건.”

신나게 떠들던 최정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서울 사건 얘기가 윤조 앞에서 막 할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뭐 대령씩이나 되시는 분이 고작 준위를 상대로 감정을 살필 필요까진 없지만 말이다.

“김 준위네 집이 사고 지역에 있었다고 했나?”

“네.”

“그럼…….”

최정이 운을 뗐다. 그가 무엇을 물어볼지 뻔했다. 사고 피해자 가족이라고 하면 으레 물어보는 질문이 정해져 있다.

윤조는 고개를 들고 속사포 랩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해 본 적이 드물었는데, 사건 당시에 하루에 열 번도 더 말하고 다녔더니 입에 익어 버려서 이젠 자동으로 줄줄 나왔다.

“어머니, 아버지, 쌍둥이 형. 셋 다 집에 있다가 사망했습니다. 저는 그때 마침 알바 면접 본다고 서울 다른 지역에 있어서 살았고요. 조부모님은 사고 전에 다 돌아가셨고 남은 친지는 지방에 사시는 이모 한 분. 그 외에 아버지 쪽 삼촌과 고모 있습니다만 연락은 원래 잘 안 합니다. 그때 제가 대학 새내기 때여서 사고 이후 자취하다가 입대했고 이후에 하사관 입대로 말뚝 박았습니다. 따라서 대학은 휴학 상태. 아마도 중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거주 아파트는 게이트 바로 인근이라 단지째로 전파되었고, 유품이나 유해는 건진 거 하나도 없습니다. 유해가 남았다고 해도 방사능 오염 때문에 바로 폐기되었을 거라서요. 실종자 합동 장례식 치렀고 위패는 추모공원 위령탑에 이름 새긴 것으로, 제사는 올해도 추모공원 참배로 대신합니다. 올해도 다녀왔습니다.”

한바탕 랩이 끝나고 나자 최정이 떨떠름하게 입을 다물었다.

“어, 그래. 그랬구나.”

어색함을 감출 줄을 모르는 상대를 향해 윤조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 사건으로 가족 잃은 사람이 저 하나뿐이 아니니까요.”

“흐흠. 부모님이 지금 김 준위를 보시면 씩씩하게 잘 살아서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

딴에는 기특하다고 한 말이겠지만, 윤조는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아무렴,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잖아. 우리 군 최초의 가이드에 이젠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하는 재목인데.”

최정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래 봤자 에스퍼 따까린데요. 그것도 성질 무지하게 더러운 분의 그렇고 그런 따까리.”

“허흠흠.”

그제야 김윤조가 강수혁에게 몸까지 바치고 있음을 깨달은 최정이 괜히 헛기침을 반복했다.

아들 가진 부모가 미쳤다고 게이도 아닌 아들이 다른 남자에게 다리 벌리는 걸 자랑스러워할까. 오히려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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