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 (60)화 (60/256)

55화

보통은 세 번으로 끝나곤 했다. 한 번은 다리가 살짝 풀리긴 해도 그럭저럭 걷고 움직인다. 두 번은 허리의 통증으로 사지로 기어 다닌다. 여기까진 그래도 씻을 수는 있다.

세 번부터는 다르다. 침대에 누운 채로 반나절 요양이 필수적이다.

네 번은 적어도 만 24시간 이상 요양해야 할 수도 있다. 막연한 짐작을 뒷받침하듯, 전신의 감각이 너무 둔했다. 지나친 체력 소모로 인해 미열까지 났다.

커다란 몸이 윤조를 계속 짓눌렀다.

땀이 식으면서 체온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자가발전으로 인해 항상 뜨끈한 에스퍼의 몸을 끼고 있는 편이 좋긴 했다. 하지만 물먹은 담요처럼 무겁게 짓눌러서야, 온기를 느끼기 전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무겁습니다.”

“…….”

“숨쉬기 불편해요.”

“그럼 네가 밀어내든가.”

정말이지 유치하게 나온다. 그러나 너무 시달린 직후라 화를 낼 체력이 전혀 없었다. 윤조는 천장을 물끄러미 보면서 덧붙였다.

“밀어낼 힘이 있으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강수혁은 윤조 위에서 내려올 생각은 않고 오히려 꿈지럭댔다.

깔린 입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리저리 치여서 아팠다. 그렇지 않아도 삭신이 쑤셔 죽겠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윤조를 완전히 뭉개려고 했다.

“으, 내려갈 거 아니면 차라리 가만히 있어요.”

없는 힘까지 짜내서 신경질을 내 볼까 하던 참이었다. 꿈지럭대던 상대의 손이 어느새 윤조의 중심에 닿았다.

커다란 손이 성기에 감기는 순간 윤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벌떡 들었다. 그러니까 고개만.

“무슨 짓입니까?”

“밀어낼 힘은 없어도 여길 세울 힘은 있나 본데?”

“건드리니까 서죠.”

“어쨌든 섰잖아.”

의무적인 행위를 통해 지독한 통증을 느끼는 대신에 성적 쾌감을 얻을 수 있게 된 건 제법 가상한 발전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어야지 이렇게까지 사람의 골수까지 털어먹으려고 들면 곤란하다.

보란듯이 중심을 주무르는 손길에 윤조는 기겁했다. 다리를 모아 닫아 보고 싶지만 두툼한 허벅지가 양다리를 짓누르고 있는 통에 불가능했다.

강수혁이 주도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그의 사이클에 맞춰져 있었다. 윤조가 절정을 맞는다고 해서 특별히 한 박자 쉬는 배려 따윈 없었다. 도리어 절정으로 인해 구멍의 조임이 강해지면 좋다고 더 들이박기나 했다. 미치광이가 따로 없었다.

사정 시에 더 강하게 박히는 데 익숙해지면서 신체가 이상한 습관이 들었다. 설명하자면 박히면서는 절정이 수월하게 찾아왔다. 그런데 그 반대는 버거웠다.

강한 악력으로 문지르자 재빠르게 서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딱딱한 귀두를 짓누르고 비벼도 절정에 쉽게 닿지 못했다. 느끼지도 못하는데 자꾸 만지니까 도리어 아팠다.

“아픕니다.”

“그래?”

갑자기 손의 놀림이 부드러워졌다. 아픔은 한결 가셨지만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다. 그냥 쉬고 싶었다.

“기 다 빨려서 내놓을 것도 없어요. 그만 만져…… 윽.”

계속 강수혁의 손에 놀아나다가는 조만간 손독이 올라서 거기를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 인큐베이터를 통해 완벽하게 재생할지라도 기분이 더러운 상황은 피하고 싶다.

“따갑습니다. 제발 그만 만져요. 부탁입니다.”

진심 위에 엄살로 울먹임을 더했다. 음흉한 시선이 윤조의 안색을 빤히 살폈다. 진짜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듯했다.

“진짜야?”

“심플하게 작전 중에는 숨기는 거 없기. 이거 작전이잖아요.”

윤조는 아까 강수혁이 제 입으로 직접 한 말을 되짚었다.

자기가 나서서 한 제안을 먼저 깨트릴 순 없는지, 강수혁은 아쉬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뗐다.

드디어 해방되었다. 정말이지 이 이상은 의식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윤조는 갓 뒤집기를 배우는 신생아처럼 안간힘을 써서 돌아누웠다. 급소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집요한 행위에 대한 가벼운 시위였다.

“저는 잡니다.”

일방적으로 선언한 후에 눈을 감았다.

전신이 찝찝했다. 특히 가랑이는 진짜 물수건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힘이 하나도 없었다.

똥물이나 다름없는 강물이나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씻지도 못한 채로 15일씩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혹독한 훈련 과정을 떠올렸다. 그러자 찝찝함이 한결 덜 거슬렸다. 인간적으로 모멸감이 들어서 여러 방면으로 괴로운 기억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잠에 빠지려는 찰나였다.

묵직한 것이 등에 반쯤 걸쳐졌다. 느낌이 딱 망나니였다. 무거운 눈꺼풀이 다시 올라갔다.

쪽쪽.

간지러운 감촉이 어깨 뒤쪽에 내려앉았다. 뭐 하는 짓이냐고 묻기도 귀찮았다.

은근한 손길이 허리에 감겼다. 짧은 입맞춤은 어깨에서 좀 더 넓은 범위로 움직였다. 날개뼈 있는 곳이나 등 가운데에도 축축하고 뜨끈한 느낌이 났다.

‘더럽게 질척이네.’

아픈 건 아니니 내버려 뒀다. 미련 가득한 손길이 허리에서부터 허벅지 바깥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뒤이어 우람한 몸이 꼼꼼하게 맞붙었다. 엉덩이골에 딱딱한 막대기가 닿았다. 반쯤 감긴 눈꺼풀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짐승인가. 네 번 하고도 또 세워?’

비비적대는 낌새가 심상찮았다. 여기서 더 하자고 달려들면 심 박사의 경고고 나발이고 다 씹고 패널티를 거하게 날릴 심산이었다.

“나도 어쩔 수 없어. 가이드한테 자꾸 반응하는데 어떻게 해.”

패널티 조짐을 느꼈는지 짐승 새끼가 귓가에 대고 변명했다.

“안고만 있을게. 됐지?”

신뢰도가 제로에 수렴하지만, 그래도 믿어 보기로 했다. 이쪽이 믿는데 저쪽이 배신하면 그땐 뇌를 완전히 튀겨 버려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하리라.

나름대로는 내뱉은 말을 지키려는지 망나니는 윤조를 가만히 끌어안고는 자세를 편안하게 고쳤다. 미친 새끼가 드디어 주무시려나.

“하필 너 같은 거랑 엮여서 이게 뭐야.”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속으로 대답한 후 윤조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윤조는 다음 날 늦은 오전에 눈을 떴다. 옆자리는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그리고 각종 분비물로 더러웠던 몸도 깨끗했다. 심지어 침대 시트도 새로 빤 거였다.

누구의 짓이랄 것도 없다. 윤조를 깨우지 않고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동거인뿐이었다.

내려가자 주방에선 구수한 된장 끓이는 냄새가 났다.

윤조의 근간을 이루는 민족의 DNA가 이건 당장 먹어야 한다고 외쳤다. 자극을 받은 배가 우렁차게 울었다.

“곧 다 돼. 앉아.”

팔짱을 낀 채로 칼과 국자를 지휘하던 강수혁이 뒤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식탁 의자가 저절로 뒤로 빠졌다.

자리에 앉자 냉장고 문이 열리면서 물병이 날아와 윤조 앞에 놓였다. 심지어 뚜껑까지 저절로 열렸다.

죽을 날짜 받아 둔 노인네도 아니고. 간밤에 영혼까지 털렸어도 성인 남자인데 뚜껑 정도는 직접 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물병을 잡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손가락에 힘이 심하게 없었다. 물병을 놓칠 정도는 아니어도 뚜껑을 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손에 힘이…… 어, 목소리가?

손에 힘도 없거니와 목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쉰 건 아닌데 완전히 잠겼다. 목 안에 뭐가 끼인 느낌이었다. 물을 마시면서 목을 푸는 윤조를 강수혁이 봤다.

“뜨거운 국물 먹으면 풀릴 거야.”

곧이어 국그릇에 김이 폴폴 나는 된장국이 담겨 배달되었다. 탱글탱글한 두부가 차돌박이와 함께 산처럼 쌓였다. 한 5인분은 될 듯했다. 역시나 트리플 S급 쉐프께서는 손 크기도 트리플 S급이었다.

“밥은?”

“일단 이거부터 먹고요.”

일전에 된장찌개의 존엄에 대해 온갖 궤변을 동원하여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때 강수혁은 김치찌개가 민족의 얼이라면서 맞받아쳤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다툼의 끝은 ‘반찬 투정하지 말고 해 주는 대로 처먹어!’라는 강력한 어퍼컷에 강수혁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그 뒤로 참지, 꽁치, 고기를 동원한 각종 김치찌개에 고추장찌개, 순두부찌개, 심지어 청국장찌개까지 두루두루 나왔으나 된장찌개만큼은 식탁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된장찌개도 아니고 국이라니. 딴에는 어제 일을 신경을 쓴다는 뜻일 거다.

“맛은 어때?”

맞은편에 앉아 윤조의 몫보다 두 배쯤 되는 그릇을 향해 막 수저를 대던 수혁이 물었다.

매번 ‘그럭저럭’ 혹은 ‘먹을 만하다’라고 대충 답했다. 솔직히 맛있었는데 그런 말을 하기가 어쩐지 낯간지러워서였다. 하지만 오늘까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맛있습니다. 제 입에 딱 맞아요.”

“그래?”

되묻는 상대의 음성이 한결 가벼웠다.

괜히 쑥스러웠다. 된장국에 집중하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다가 물을 마신다는 핑계로 고개를 들었다.

이쪽을 바라보는 상대의 낯이 들어왔다. 수저를 들고 이쪽을 빤히 보는 강수혁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평안하고 부드러웠다.

잘생기고 멋진 몸매를 가진 사람이 정갈한 주방을 배경을 두고 저러고 있으니 꼭 조미료나 주방 기구 CF에 나오는 모델 같았다.

‘왜 저렇게 좋아해?’

된장국 잘 끓였다는 칭찬 한마디에 싱글벙글한 낯을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싫은 건 아닌데 뭔가 이상했다. 묘한 느낌에 괜히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앞으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할 수 있으면 해 줄게.”

기묘한 분위기에 상대가 쐐기를 더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