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 (57)화 (57/256)

52화

더불어 김윤조는 악몽을 자주 꿨다.

원래 실전 참가 군인이면 으레 PTSD 증상 한두 가지쯤 달고 있긴 마련이다. 멀쩡한 대낮에 발작을 일으키지 않고, 평소 판단력이 흐려지지도 않는다. 악몽만 꾸는 건 스트레스성 장애 중에서도 굉장히 온건한 증상이어서 불면증이 동반되지 아니면 특별히 질병 취급을 받지도 못 했다.

그렇다고 막연히 아무 일 없다고 하기는 또 어렵다. 겉보기에 멀쩡해도 어디가 고장 나도 단단히 났을 거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심지어 성공할 뻔했던 수혁과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 따먹으면서 사는 자체가 상식 초월이 아닌가. 이렇게 버티는 자체가 광기에 이르는 고집이었다.

정말로 정신 나간 또라이가 아닌 이상.

정말 또라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수혁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구질구질한 짓을 일삼는 상부 차원에서 김윤조의 가이드 실험 참가를 차단하고도 남았다. 더불어 심나연은 본인이 또라이라서 다른 또라이를 용납하지 못한다.

약간 고장 나긴 했어도 원래는 멀쩡한 놈이라고 보는 게 맞다. 대신에 수시로 꾸는 악몽으로 미루어 보건대 과거에 뭔가 일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목숨을 걸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제 살인미수범과 얼굴 맞대는 끔찍한 일조차 각오하도록 하는 개인의 역사가.

“이참에 너도 숨기는 거 있으면 털어놔.”

“없는데요.”

연두부 새끼가 미끄덩하게 나왔다.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 너, 군에 왜 들어왔어?”

“취준이 힘들어서요.”

참기름도 추가했다. 놈은 희멀겋게 멀뚱한 낯짝을 하고서도 눈빛에는 제법 경계심이 어렸다. 손만 살짝 대도 뭉그러지는 주제에 수혁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진심이야?”

“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취준은 장난이 아니니까요. 입대하면 오갈 데 없는 놈도 먹여 줘, 재워 줘, 입혀 줘. 얼마나 좋아요.”

“네가 오갈 데가 왜 없어? 부모 형제가 있을 거 아냐.”

수혁이 반박했다.

“고아인데요.”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수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압박하던 몸을 살짝 떼고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눈깔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거짓이 조금이라도 비칠 시에는 패널티고 나발이고 아작을 내놓을 생각으로.

하지만 놈은 진지했다. 한 치의 거짓이 없다는 듯이 당당하기도 했다. 이게 연기면 이 새끼는 군인이 아니라 배우가 되어야 했다.

“왜 고안데?”

“고아니까 고아죠. 고아에도 이유가 있습니까?”

기분이 상했는지 놈의 말투가 퉁퉁 튀었다.

“이유 말고 그러니까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버렸다든가 아니면 네 혓바닥 놀림새가 부모 입장에서도 너무 좆같아서 너 버리고 야반도주했다든가 뭐 그런 거 있을 거 아냐.”

“왜 버리는 쪽으로만 생각하세요? 소령님은 버림받았나 봅니다?”

회심의 반격인 듯 보였지만, 애석하게도 수혁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어.”

이번에는 두부 새끼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성격이 이렇게 삐뚤어졌다느니 그런 좆 같은 망상. 수혁은 놈이 개소리를 뱉기 전에 덧붙였다.

“너 같으면 태어나자마자 자의식도 없이 강력한 염력을 쓰는 애를 감당할 수 있겠냐? 당연히 정부 관리 양육이지. 버린 건 맞는데 버려져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나는.”

정곡이었는지 놈은 열었던 입을 다물었다.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드디어 수혁의 질문에 똑바로 대답했다.

“양친 다 돌아가셨습니다.”

“사고로?”

“네.”

매번 아무렇지 않은 듯 반드르르하던 낯에 어둠이 비쳤다. 또라이나 인형, 혹은 기계가 아닌 대단히 인간적인 슬픔이.

대각선 아래로 스르륵 굴러가는 검은 눈동자를 따라 수혁의 심장 또한 한 뼘쯤 주저앉았다. 찢어진 뱃가죽 사이로 내장이 쏟아진 적은 있어도 멀쩡한 채로 저절로 울렁이는 건 또 처음이었다.

어색한 공기를 참기 힘들었다. 수혁은 괜히 입을 열었다.

“차 사고?”

“그건 아니고요.”

놈은 잠시 뜸을 들였다.

“예전에 서울 동북부에 살았습니다. 거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

서울 동북부.

G형 게이트가 발생한 곳. 수도가 반토막 나서 온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대사건. 당시 수십만 명이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부상자까지 합치면 피해자가 이백만이 훌쩍 넘는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정부는 군 중심으로 개편되었고 수혁의 인생 또한 크게 바뀌었다.

“대충 알겠네. 가이드가 되어서 에스퍼와 팀을 꾸린 다음에 외계인 소통하여 부모 원수를 갚겠다, 뭐 이런 계획이네.”

“아닌데요!”

부정하는 놈의 목소리가 격했다. 정곡이었다.

이렇게까지 모든 걸 내버리고 가이드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이유를 알긴 알았는데 시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리어 썩은 물을 마신 기분이었다. 차라리 아무 생각도, 개념도, 특별한 동기도 없는 상또라이 쪽이 나았다.

연두부 새끼가 딴에는 절절한 눈빛으로 수혁을 노려봤다.

“아니긴. 내가 그런 놈을 한둘 본 줄 알아?”

수혁의 입가에 냉소가 걸렸다.

“부모님 원수를 갚겠다는 노력은 가상한데 그러다가 조속하게 골로 가는 수가 생기니까. 그냥 정신과 치료받고 털자. 그게 제일이야.”

“그렇게 가볍게 말하지 마세요!”

“가볍게 말한 거 아니야.”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건 제가 아니라 소령님 아닙니까? 툭하면 항명에 테러에.”

김윤조의 말에 수혁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봤으니까 추천하는 거겠지?”

상대가 당황했다. 잠시 할 말을 찾던 놈은 이내 비웃음을 지었다.

“상담이 소용이 있었으면 지금 이렇게 망나니짓을 하지 않았을 텐데요. 자폭 장치에 가이드도 필요 없을 거고요.”

“치료 마치기 전에 정신과 의사, 상담 전문가 가리지 않고 의문의 사고사를 줄줄이 당해서 말이야.”

“…….”

놈이 멍한 눈길로 수혁을 봤다.

“군의 최중요 자산이잖아. 나 자체가 군 기밀이라고. 전에 너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수혁은 옅게 웃었다.

“가이드가 된 순간부터 말 그대로 너는 군의 ‘자산’이야. 인권도 뭐도 없는 자산. 인권도 없는 새끼가 부모 원수를 왜 갚아? 애초에 너 부모가 있는 건 확실해? 기억 조작 아니고?”

“기억 조작이 쉬운 일인 줄 아십니까?”

놈이 날을 세웠다.

“장세인 통하면 쉽지. 정신 조작에 저항력 있는 에스퍼도 아니고 일반인은 시나리오만 짜 주면 뚝딱이야.”

“…….”

“더불어 트리플 S급과 관련된 가이드는 멋대로 뒈질 자유도 없어. 부모, 형제도 없는 마당에 김윤조라는 인간 자체에 신경 쓰는 사람은 전국에 나뿐일걸? 그러니까 곱게 말할 때 알아처먹어. 혹시나 복수심이 있다면 그냥 버려라. 이미 가이드가 된 걸 되돌린 순 없으니 최대한 조용히 사는 게 제일이야, 우린.”

“아니 왜 그따위로 말씀하십니까? 제가 언제 복수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복수 좀 하면 어때서요?”

정색하고 부정하는 자체가 실토나 다름없는 걸, 김윤조는 모르는 눈치였다. 이상한 곳에서 순진하다니까.

“‘복수 좀 하면 어때서요?’ 하, 이런 또라이를 봤나. 만약 네 부모가 태풍에 휘말려 죽었으면 태풍을 상대로 복수를 꿈꿨겠냐?”

“그건.”

“게이트는 일종의 천재지변이야. 너희 부모는 그냥 재수 없었을 뿐이라고. 외계인 새끼들? 그 새끼들이 정말로 무슨 악감정을 가지고 지구를 침략했을 것 같아? 일말의 접점도 없던 새끼가 갑자기 와! 우주 반대편에 있는 인간을 죽이자! 이러면서 우주 저편에서 굳이 게이트 열고 자빠졌겠냐?”

“그럼 시발, 우주 반대편까지 왜 쳐들어오고 지랄인데요!”

김윤조가 기를 세우고 대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수혁을 한 대 칠 기세였다.

“그냥 자극받아서 날뛰는 것뿐이야. 따지고 보면 그 새끼들 쪽이 오히려 불쌍한 피해자라고.”

피해자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수혁의 턱에 충격이 발생했다.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수혁에게 어떤 상해를 입히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계속 주먹질을 거듭했다. 정곡 수준이 아니라 아킬레스건인 모양이었다.

“시발! 개새끼야! 외계 괴물이 불쌍해? 시발! 그 괴물들이 피해자야? 네가 뭘 알아? 태어나면서부터 힘을 가진 주제에. 사람이 우습지, 너는? 좋겠다! 괴물 새끼도 불쌍해 보여서! 이 개새끼야!”

연두부 새끼의 낯이 아귀처럼 일그러졌다.

거듭되는 주먹질에 관절 나가는 소리가 섞였다. 당연하게도 수혁 쪽은 아니었다. 김윤조의 손마디가 나갔다. 수혁은 놈의 손목을 잡았다.

“그렇게 때려 봐야 소용없어. 네 손만 아파.”

크게 벌어진 놈의 안구에 물기가 미쳤다. 흉하게 일그러진 입매 사이로 이가 딱딱거렸다.

“뒤져, 시발.”

정수리에 뭔가 찌릿했다. 뒤이어 강렬한 충격이 수혁을 감쌌다.

“!!”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수혁은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으……어어어.”

숯불에 내장과 신경이 불타는 격렬한 고통은 평소의 패널티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이것을 수혁은 딱 한 번 겪어 봤었다. 김윤조를 처음 만났던 그 날에.

“크……아……악.”

수혁은 거실 바닥을 벌레처럼 기었고, 분노에 찬 가이드는 그를 냉랭한 눈빛으로 쏘아봤다.

“제 얘기, 계속하실 겁니까?”

“아…… 아니.”

“심플하게 갑시다. 심플하게.”

미친 새끼가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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