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훗. 놀랐냐?”
제 잘난 건 너무나도 잘 아는 망나니 새끼가 비웃었다.
“으음.”
일부러 강수혁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얼굴을 팍 구겼다. 말을 못 하니 얼굴로 최대한 의사를 표현했다.
“어디서 찌그러진 얼굴을 들이밀어.”
활짝 펼쳐진 손이 윤조의 얼굴 정면을 잡고 뒤로 밀었다.
강수혁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딱히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양배추, 버섯 봉투, 베이컨으로 추정되는 패키지 등등이 주르륵 날았다.
“여기 있었는데.”
뭔가 찾는 물건이 없는지 강수혁이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반찬통이 주르르 나왔다.
“찾았다.”
깊은 곳까지 들여다본 강수혁은 작은 반투명 반찬통을 꺼냈다. 그가 돌아서자마자 나왔던 반찬통이 질서 있게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다 정리되자 냉장고 문이 저절로 닫혔다.
‘와. 능력 사용이 이 정도로 생활화되어 있구나.’
그런데 안 보고 다 할 수 있는 거면 청테이프와 저 작은 반찬통은 왜 굳이 직접 찾았을까?
청테이프가 감긴 테이블과 강수혁 손에 들린 반찬통을 번갈아 봤다.
“어떤 건 직접 찾는 이유가 궁금해? 이거 처음 본 사람은 다들 그걸 묻더라고.”
이런 반응이 익숙한지 강수혁이 꺼낸 물건을 조리대 위에 올리면서 물었다. 윤조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물건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면 안 보고 조작할 수 있어. 그런데 어디 있는지 모르면 직접 눈으로 찾아야 해.”
“아아.”
“네게 굳이 위성을 단 이유가 있잖아.”
맞다.
위성의 역할은 단지 강수혁과의 뇌파 동조를 유지하고 그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투 시에 시각으로 파악하기 힘든 타격점을 파악하여 그 위치를 강수혁에게 전달한다.
즉, 윤조와 AI 위성은 강수혁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위한 레이저 포인트이자 내비게이션이기도 했다.
싱크대 위로 도마와 칼이 둥실 떠오르더니 세척 양배추를 찹찹 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사람 손길 없이 말이었다.
더불어 버섯은 알아서 포장지에서 나와 개수대에서 자율 샤워를 마치곤 알아서 짝짝 갈라졌다. 큰 냄비며 프라이팬이며 저절로 켜지는 가스레인지까지. 모든 것이 알아서 움직였다.
반찬통에서 나온 마늘 덩어리가 알아서 프라이팬으로 다이빙하고 뒤집개가 알아서 마늘을 휘저었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스파게티 봉지가 저절로 뜯어지더니 노란 국수 가락이 보글보글 끓는 냄비 속으로 들어갔다. 눈꽃 같은 소금 행렬이 그 뒤를 따랐다.
‘세상에.’
윤조는 입을 떡 벌렸다. 고전 만화에 이런 게 있었는데.
강수혁의 화력이 압도적인 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전봇대 크기의 거대한 텅스텐 막대 수십 기를 동시에 극초음속으로 던져 G형을 반나절 만에 패퇴시킬 수 있는 위인이다. 텅스텐 막대가 모자라면 주위 고층 빌딩을 뜯어서 철근을 뽑아 즉석에서 창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화력의 문제지 컨트롤 실력은 아니다.
이런 수준의 다중 정밀 컨트롤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읍읍.”
강수혁은 멀뚱히 서서 도구들이 알아서 움직이는 걸 보고 있었다. 윤조는 그의 앞에 끼어들어 시선을 마주쳤다.
“할 말 있냐?”
윤조는 힘을 주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말해.”
“마법사세요?”
대단한 광경이라 윤조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마법은 무슨. 염력이지.”
강수혁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아까처럼 양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이번에는 잘난 척해도 어쩔 수 없다. 정말로 잘났으니까.
“능력 사용이 생활감 넘치네요. 늘 이렇게 직접 식사를 준비하십니까?”
말이 생활감이지 이건 생활감으로 지칭할 수 없다. 마법이다.
“처음에는 다중 정밀 조작 연습이었는데 이제는 버릇이 되었어. 혼자 하는 게 편하고 내 입에도 맞아.”
15분 후.
강수혁이 조리를 하는 동안 윤조가 한 건 청테이프 식탁에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취사를 안 시켜서 다행이긴 한데. 초능력을 이렇게 사용할 수도 있구나. 다른 놈들은 못하는 건가 아니면 안 하는 건가. 아무래도 못하는 거겠지? 망나니 주제에 정말 천재, 만재긴 하네. 개차반으로 굴어도 군부에서 포기 못 하는 이유를 알겠어. 차원이 다른 화력에 다중 정밀 조작 능력까지 있다니. 말만 잘 들으면 지구 정복도 가능하겠는걸.’
더불어 이런 마법 같은 능력이 윤조 자신에게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저런 능력이 자신에게도 있었다면. 지금 이 꼴은 아닐 텐데.
윤조가 눈을 반짝이는 동안 우쭐한 강수혁은 알아서 식사 준비를 마쳤다. 메뉴는 역시나 파스타였다.
화초 물받침 크기의 대형 접시에 파스타가 고봉밥처럼 쌓였다. 아무리 집에서 만드는 파스타가 1인분으로 시작해 3인분으로 끝나는 게 국룰이라지만 이건 심했다.
‘뭐야? 급식이야, 뷔페야? 한 봉지 다 썼나?’
아니 윤조의 접시보다 두 배쯤은 더 쌓인 상대의 파스타를 보니 세 봉지는 쓴 듯하다. 양을 의식하는 윤조의 마음을 알아챈 강수혁이 포크 대신에 젓가락을 주면서 말했다.
“원래 머슴은 밥을 잘 먹여야 하는 법이야.”
머슴이라니.
부하라는 괜찮은 단어를 두고 꼭 저따위다. 또 밥 양으로 따지면 그쪽이 두 배 아닌가?
‘특작부 머슴이긴 하지. 게이트와 관련 없는 작전이라도 조금이라도 빠그라진다 싶으면 바로 강수혁 얘기부터 나오니까. 본인이 말을 안 들어서 그렇지.’
윤조는 내심 웃었다. 그런데 엄청 재미있진 않다. 그 머슴에 딸린 버금 머슴이 바로 자신이니까.
청테이프로 수리한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먹어.”
요리 과정을 지켜봤다. 각종 식품은 전부 공산품을 직접 뜯어 사용했고 그 외에 첨가물은 소금과 버터, 올리브유 정도가 다였다. 강수혁은 조리하는 중간 맛도 봤다.
수상한 물질이 첨가될 틈이 없었기에, 윤조는 거리낌 없이 파스타를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맛이 어때?”
윤조는 파스타가 잔뜩 든 입을 꾹 닫고 보란 듯이 씹었다.
말을 하지 말라고 해 놓고 정작 대화가 되지 않아 불편한 건 강수혁이었다.
“내가 다시 입 다물라고 하기 전까지 말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윤조는 입에 든 걸 냉큼 삼켰다.
“그럭저럭.”
솔직히 맛있다.
국수 반, 베이컨 반에 엄청난 마늘 향까지, 가정집에서 만든 파스타 스타일이라 첫눈에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간이 딱 맞았다. 소스도 안 느끼하고 딱 좋았다. 재생을 반복하는 동안 인공 양수 안에 든 영양소로만 버텼다. 그것만으로도 윤조의 건강 상태는 완벽했다.
그러나 사람이 가진 3대 욕구 중 첫 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식욕 아닌가. 인공 양수 속 영양소로는 이로 씹고 혀로 맛보고 위로 소화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긴 부족했다.
특히나 몸을 많이 쓰는 젊은 남자에게 탄수화물 폭탄은 가히 마약이나 진배 없다. 윤조는 젓가락으로 잔치 국수처럼 후루룩 먹어 댔다.
우악스럽게 먹어 대는 윤조를 보던 강수혁이 피식 웃었다.
“요즘엔 그럭저럭이 ‘엄청나게 맛있다’ 이런 뜻인가?”
망할 집주인 놈이 왠지 뿌듯한 낯짝을 했다.
‘밥맛 떨어지게 왜 저래?’
그래도 맛있는 걸 해 줬으니 굳이 초를 칠 필요는 없다. 윤조는 대답 없이 먹기에 열중했다.
강수혁은 제 파스타를 해치울 생각은 않고 자꾸 윤조만 봤다. 심지어 물잔을 윤조 앞에 내밀었다.
“물 마셔 가며 천천히 먹어. 안 뺏어 먹어. 모자라면 더 하면 돼.”
순간 식도를 내려가던 파스타가 역류할 뻔했다. 이게 무슨 외조모가 3일 굶은 막내 손주 밥 챙겨 주는 상황인가. 그래도 자기 몫을 나눠 준 건 아니라 다행인가.
‘이게 무슨 상황이야?’
뭔가 대단히 어색하고 객쩍다. 이럴 때가 바로 초를 칠 타이밍이다.
“그런데 머슴은 양식보다는 한식이 좋다고 합니다.”
“주는 대로 처먹어.”
곱게 웃으면서 욕질한 강수혁은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꺼냈다. 캔 뚜껑이 따는 경쾌한 소리에 윤조 또한 구미가 당겼다.
“맥주, 저도 주세요.”
“물이나 마셔. 툭하면 고장 나는 새끼가 어디서 술을 마셔.”
강수혁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윤조 보란 듯이 단숨에 한 캔을 비우더니 다른 캔을 또 꺼냈다.
“맥주 정도는 괜찮습니다.”
“낮에 일 좀 했다고 일사병 운운한 새끼가. 아까 살살할 때도 죽겠다고 질질 짰으면서. 맥주 마시고 싶으면 인큐베이터부터 고치고 말해.”
“…….”
인큐베이터 핑계를 댄 전적이 화려해서 윤조는 더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물 싫으면 두유 줄까?”
강수혁이 물었다.
“됐습니다.”
윤조는 젓가락으로 파스타를 푹 찍었다. 강수혁은 즐거운 듯이 낄낄 거렸다.
그 많던 파스타가 두 사람의 위장 속으로 사라졌다. 강수혁은 정말로 무슨 청소기처럼 파스타를 해치웠다. 그러고 나서도 맥주를 세 캔 더 마셨다.
몇몇 특이체질을 빼고 에스퍼는 취하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강수혁은 40도 보드카를 물처럼 마셔도 끄떡없다. 맥주는 물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열량이 물보단 많으니 스포츠음료라고 해야 하나? 어쨌건 취하지도 않으면서 왜 아깝게 술을 낭비할까.
밥을 다 먹고 나서 윤조는 강수혁이 예언한 대로 인간 식기세척기가 되었다. 거대한 접시뿐 아니라 조리 도구까지 꼼꼼하게 다 정리하고 나자 손이 쪼글쪼글해졌다.
배도 부르고 나른해서 좀 쉬려고 거실 소파로 갔다. 강수혁이 있는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털썩 주저앉을 때였다.
“여기 와서 앉아.”
“예?”
“여기 앉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