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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포인트 (45)화 (45/256)

41화

추웁. 쪽.

살짝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맞붙었다. 이번엔 수혁이 혀를 내어 상대의 입 안을 침범했다. 매끄러운 점막을 훑었다.

“흐……읍……읍.”

상대의 비음이 커졌다. 덩달아 수혁의 날숨도 거칠어졌다.

목을 끌어당겼던 놈의 손이 이번에는 수혁의 어깨를 붙잡고 밀어냈다. 싫은 기색 때문에 오히려 더하고 싶어졌다. 수혁은 놈의 허리에 감은 팔에 힘을 주었다.

“흐……으…….”

놈의 비음에 괴로움이 섞였다. 꼭 숨이 막힌 사람처럼. 이제는 숫제 수혁의 어깨를 잡아 뜯고 있었다. 그래 봤자 간지럽지도 않다. 오히려 야릇한 자극만 더할 뿐이다.

쿵쿵 울리는 놈의 맥박에 기분이 들떴다. 혀끝에서는 고소한 맛이 났다. 깨끗한 살냄새도 함함했다.

싫은 척하던 놈이 저항을 포기했다.

“으으…… 으응.”

‘귀여운 소리도 낼 줄 아네.’

뇌가 저릿저릿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김윤조에 관한 한 수혁의 예상은 늘 빗나갔다.

잠시 뒤 정수리에 보이지 않는 불벼락이 수혁의 정수리 한가운데 내리꽂혔다.

“억.”

단말마와 같은 신음과 함께 수혁은 놈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짧지만 강력한 한 방이 수혁의 뇌를 뒤흔들었다.

“야! 무슨 짓이야!”

찌릿한 뒤통수를 잡은 수혁은 씩씩대는 놈을 향해 삿대질했다.

“소령님이야말로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뭘 잘했다고 망할 새끼가 더 큰소리를 쳤다.

“누가 키스를 그렇게 무식하게 해요? 아무리 그래도 숨 쉴 틈은 줘야죠! 숨차서 죽는 줄 알았네.”

“뭐? 무식?”

수혁이 미간을 구겼다.

“제가 무슨 물고기라고 아가미로 숨을 쉽니까? 아니면 도롱뇽처럼 피부호흡 할까요? 입을 그렇게 다 막으면 어떻게 합니까?”

숨차다는 놈이 놈은 씩씩대면서도 할 말을 따박따박 늘어놓았다. 숨차서 죽기는 개뿔. 우주에서도 산소통 없이도 수혁의 고막을 거뜬히 터트릴 놈이.

“코는 뒀다가 국 끓여 먹냐?”

수혁은 검지와 중지 마디로 놈의 코를 꽉 잡아 뺑코 빼듯이 쭉 잡아당겼다.

“아야!”

빨개진 코끝을 놈이 양손으로 가렸다. 수혁을 바라보는 눈초리에 불만이 가득했다.

“혓바닥이 떨어질 것 같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코까지 부러뜨리려고요?”

“혓바닥 떨어졌어? 어디 봐.”

말을 할 때는 얄밉고 짜증 나는 혓바닥이지만 감촉과 맛은 최상이었다. 손상이 간다면 몹시 아쉬울 거다.

수혁이 시선을 던지며 손을 내밀었다. 턱을 벌리려고 하자 놈이 기겁하며 수혁의 손을 쳐냈다. 그러곤 제 손으로는 입을 꾹 막았다.

“보긴 무엇을 봅니까?”

웅얼거림에 화가 잔뜩 끼었다.

“혓바닥 떨어진 놈이 말은 잘하네.”

“떨어졌다고 했습니까? 떨어질 것 같다고 했지.”

“안 떨어졌으면 그만 입 다물지.”

그러면서 수혁은 “진짜 끊어놓기 전에.”라고 덧붙였다.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막상 어투는 느긋했다. 키스 한 방에 돌던 꼭지가 제자리를 찾았다.

가이드 시스템은 말이 뇌파 동조를 이용한 에스퍼 정신 안정화 프로그램이지, 실상 대상 에스퍼를 강제로 욕구불만 상태로 몰아넣고 죽지 않을 만큼만 찔끔찔끔 해소하면서 길들이는 지저분한 프로그램이 분명했다.

적어도 수혁에게는 그런 방식으로 작동했다. 어떤 강제 안정화보다, 어떤 패널티보다 키스 한 번이 더 강력한 안정 효과를 발휘한다.

그렇다면 아까부터 발기해서 아픈 성기도 키스로 잠재울 수 있을까?

“야.”

“왜요?”

“한 번만 더 하자.”

“예? 싫은데요.”

놈이 대번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줄 알았다.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수혁이 다시 입술을 겹쳤다. 놈은 진저리를 치면서도 고개를 돌리려 들진 않았다.

* * *

윤조의 허리에 길고 강한 팔이 감겼다. 입술이 밀리는 통에 뒤로 젖힌 등을 단단한 팔뚝이 떠받혔다. 위로 들리면서 자연스럽게 까치발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팔을 상대의 목에 감았다.

윤조도 신장으로 어디 가서 꿀리는 상황이 아닌데도 상대의 키가 너무 컸다.

‘하필 그때 그런 짓을 하고 있을 게 뭐야. 시발.’

자기는 남의 화장실 사정도 다 들었으면서. 무슨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자위 좀 들켰다고 노발대발하기 있나. 하여간 둘의 타이밍은 최악이었다.

목이 잡혔을 때 AI가 자동으로 패널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분노 패턴 이상 감지. 대상 에스퍼 강수혁. 자기 보호 명령에 따라 패널티 절차를 준비합니다.

‘정지! 정지! 패널티 정지!’

윤조는 머릿속으로 긴급 브레이크를 밟았다.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납작 기라고 명령했다. 기어야 할 때다. 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찰을 하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패널티는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

패널티를 받더라도 이미 잡은 윤조의 목 정도는 뜯어낼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수혁은 가능하다.

역시나 중지 안 하면 끝장이란다. 사이키 조명처럼 돌아가는 눈깔을 봐서는 70% 정도 진심이었다. 그런데 자기 보호 명령에 따라 AI는 윤조의 중지 명령을 무시했다. 말이 안 통하는 기계와 망나니 사이에서 자신만 피를 보는 형국이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미친 망나니가 자위하던 중임에 착안해 ‘그쪽’으로 나갔다. 예상은 잘 맞아떨어졌다.

혀를 내민 건 좋아서가 아니라 다급함에 벌어진 실수였는데 강수혁이 열렬히 반응했다. 어쨌거나 목을 잡은 손에 힘이 빠졌다.

자기 보호 명령이 해제기를 기다리면서 윤조는 강수혁의 정신을 빼놓으려고 애를 썼다. 키스는 점점 길고 깊어졌다. 이윽고 윤조는 AI의 패널티 절차를 중단했다.

이제 끊어도 되는데. 강수혁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숨막히는 키스가 계속 이어졌다. 질식사가 우려될 정도였다. 목이 졸려 죽는 걸 피했더니 결과적으로 동일했다. 떨어지라는 신호도 무시당했다. 하는 수 없이 패널티를 부과했다. 1초 정도. 대신에 충격은 맥스로.

분리에 성공하긴 했다. 망나니의 눈깔도 광기 어린 빛깔에서 평상시 재수 없는 색깔로 돌아왔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또 입술이 맞붙어 있다. 심지어 이번에는 입술뿐만이 아니었다.

전봇대 같은 다리가 윤조의 가랑이를 파고들었다. 벌어진 다리 안쪽에 딱딱한 뭔가가 닿았다. 미니미 전봇대의 정체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자위한 거 아니었어? 왜 아직도 이 상태인 건데.’

설마 키스하면서 또 섰나? 와, 놀라운 짐승 새끼.

쪽. 쪽.

처음과 달리 두 번째는 여유를 찾았는지, 키스는 느긋하고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욱 불편하고 이상했다.

반대로 하체를 노골적으로 비벼 댔다. 딱딱한 성기가 반바지 끝에 걸렸다가 허벅지 안쪽 살을 꾹 눌렀다.

윤조는 강수혁과 잤다. 그것도 이골이 날 정도로 여러 번. 매우 격렬하게.

순수한 자의가 아니어도, 그래서 마음에 몹시 안 들어도, 항상 툭탁거리고 짜증을 내면서도 성적인 자극에 착실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건 일종의 조건반사였다.

“흐음.”

코로 숨을 쉬다 보니 자꾸 비음이 났다. 발열이 심상치 않은 핵연료봉 같은 게 자꾸 엉뚱한 곳을 찔러댔다.

‘거기가 아니야. 이 멍청아.’

제대로 닿을 수 있도록 윤조는 골반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등을 헤매던 손 하나가 내려오더니 윤조의 엉덩이 한쪽을 꽉 잡았다. 그러곤 강하게 끌어당겼다.

바지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성기가 교차했다. 곧 상대의 열기가 윤조의 것에도 번졌다.

“하고 싶은데…… 괜찮아?”

내내 맞붙었던 입술이 떨어졌다. 가라앉은 음성이 윤조의 귀에 닿았다.

“안 괜찮으면 안 할 겁니까?”

“…….”

역시나. 강수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럴 거면 처음 하자 할 때부터 곱게 하지 왜 성질을 부려서 귀찮게 하고 그래.’

웃겼다. 하지만 윤조도 성욕에 제대로 불이 붙었기에 상대를 조롱할 여유가 없었다.

“괜한 거 묻지 말고 그냥 합시다.”

그러면서 윤조는 침대 쪽을 곁눈질했다.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대단히 빠른 상대가 얼른 윤조를 침대로 이끌었다.

털썩.

윤조가 먼저 침대 가운데 쓰러지듯 앉았다. 상대가 두 손으로 매트리스를 짚었다.

상대가 다가오는 동안 윤조는 뒤로 기어서 침대 위로 올라갔다. 머리가 침대 헤드에 가까이 갔을 때 윤조는 반바지를 발로 걷어차 스스로 벗었다.

강수혁은 제 양 무릎을 반쯤 누운 윤조 허리 옆에 두었다. 윤조 위에 드리운 그는 한쪽 손으로 윤조의 티셔츠를 끌어 올렸다. 민둥민둥한 가랑이가 드러났다.

윤조의 성기를 바라보는 상대의 시선이 뜨거웠다. 괜히 눈을 피했다.

부끄러운 새색시 같은 반응이라니. 자기혐오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혼자 수치사 할 순 없었다.

“저만…… 벗습니까?”

물었더니 뚫어져라 보던 상대가 윗몸을 들었다.

그는 본인의 허리춤에 양팔을 교차했다. 티셔츠 자락을 든 그는, 무슨 모델처럼 멋있는 방식으로 옷을 위로 벗어냈다. 하여간 허세와 하드웨어 하나는 끝내주는 인간이었다.

꿈틀거리는 거대한 흉통이 드러났다. 겉보기에도 대단한 몸이었다. 그러나 윤조의 호흡이 흐트러진 건 남다른 체격과 체형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략핵에 비견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저 몸 안에 도사리고 있다. 저 몸을 처음 받아낼 때는 온몸이 부서졌다. 행위가 반복되면서 손상 정도는 점점 작아졌다. 그래도 여러 가지 의미로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얼마나 아플까. 아니면 얼마나 미칠 것 같을까. 특히 후자가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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