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예고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온 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고만장하기가 하늘을 찌를 시건방진 새끼를 쫓아내지도 못하고 두유를 가져다 바치고 침대나 얼씨구 바꿔 주는 제 등신 같은 모습도. 더불어 지겹기 짝이 없는 말싸움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한심함도.
‘저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하지?’
각종 물리적 제재는 동력을 잃었다. 겁을 주고 협박을 해 봤자 놈의 가시 돋친 주둥이에 독기만 한 바가지 더할 뿐이다.
‘어떻게 해야 내 마음대로 할까.’
그 전에…… 자신은 저 새끼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그것이 더 큰 수수께끼였다.
“소령님도 저 싫어하잖아요.”
그 말을 듣자마자 아니라는 대답이 자동으로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뭘 재고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다시 생각해 봤다. 반사적으로 한 말이나 숙고하여 내린 결론이 일치했다.
수혁은 김윤조가 싫지 않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신경 쓰인다.’였다.
언제 ‘싫지 않고 신경이 매우 쓰인다.’로 바뀌었을까.
징글징글한 가이드 시스템의 영향력이 점점 커진다. 강력한 진정 효과가 수혁의 일시적 감정뿐 아니라, 전반적인 정서까지 바꾸고 있다.
이성으로만 판단하면 거부감이 든다. 정확하게는 장선욱 그 새끼가 마련한 굴욕적인 시스템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모든 억압에 저항하라고, 이성은 그렇게 주장했다.
하지만 감정은 다른 얘기를 했다. 인위적인 조작일지라도 안정과 평안을 겪고 났더니, 이대로도 괜찮지 않냐고 슬쩍 물어 온다. 전신이 불타는 듯한 분노와 내장이 뒤집히는 역겨움에 늘 시달리느니, 김윤조라는 강력한 마취제에 몸을 맡기고 좀 편하게 살자고.
이렇게 멍하게 누워 있는 일도 얼마 만인가. 수혁은 김윤조를 만난 이후로 휴식이 무엇인지 배웠다.
“싫지 않아. 싫지 않은 게 문제야. 그게 문제라고.”
장선욱을 앞세운 이 나라의 정부와 군 상부, 나아가 각 대륙 정부와 인류가 저지른 짓을 떠올리면 지구를 가루로 만들고 인간을 갈아 마셔도 모자라는데.
지독한 분노를 계속 안고 사는 것도 때로는 피곤하다.
주변이 고요해지자 멀리서 우는 산새의 지저귐이 커졌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면서 백색 소음을 일으켰다. 하지만 가장 크게 들리는 건 따로 있었다. 오늘 오전까지 이 집에서 들으리라 기대하지 못했던 소리가 수혁의 민감한 고막을 두드렸다.
연두부 새끼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입체 사운드처럼 크게 울렸다. 한 대 치면 찌부러질 심장이 얼마나 힘차게 뛰는지.
김윤조 하나 때문에 살얼음 같은 균형을 유지하던 일상이 산산조각이 났다. 굳이 장 중장을 내쫓고 이 집을 차지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존재감 하나는 지독하게 큰 새끼.”
수혁은 툴툴대면서 베개를 구겨 귀를 막았다. 그래도 청각을 누그러뜨리긴 어려웠다.
인간이 싫다. 모든 감춰진 비밀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인간에 호의를 가져야 하는지에 관한 근원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혼자가 좋다.
이유는 간단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너무 시끄럽다. 더불어 냄새도 너무 심했다.
감각 둔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서 일상생활은 가능했다. 다만 능력을 사용한 직후가 문제였다. 능력을 쓰면 오감이 필연적으로 예민해진다. 그럴 때면 타인의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양 귀에 대고 큰 북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문제는 사방에 인간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수십, 수백 가지에 이르는 불쾌한 소음이 수혁을 괴롭혔다. 어떨 때는 혈액이 움직이는 소리까지 웅웅 들려서 미칠 것만 같았다. 미친 북소리 덕분에 홱 돌아 버려 주변을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일도 있었다.
척추 장치 이식에 동의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척추 장치는 수혁이 미쳐 버릴 수준에 이르면 수혁을 기절시킨다. 기절할 때마다 기분이 나쁘지만, 적어도 미치진 않는다.
“김윤조랑 연결한 뒤에는 그런 일이 없긴 하군.”
가이드 시스템은 극한까지 몰린 감각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확실히 있다. 대신 다른 문제가 발생하긴 했다.
수혁은 아까부터 발기한 상태였다. 슬슬 아프려고 한다. 워낙 재생력이 좋다 보니 해소되지 않은 채 지속적인 불쾌감을 유발하는 신체적 고통에 약하다.
김윤조가 워낙 도발한 덕에 발기 상태가 자연스럽게 가라앉을 가망도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다. 치욕스럽지만 혼자 하는 수밖에. 저 새끼는 수혁 수준의 청각이 없으니 조용히 하면 모를 거다.
“후.”
수혁은 딱딱하게 굳은 제 성기를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건넛방에서 짧은 헛바람 소리가 났다.
수혁은 그대로 멈췄다.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청각을 기울였다. 평범하게 뛰던 놈의 맥박이 3배쯤 빨라졌다. 꾹 막은 입 사이로 얇은 숨이 샜다.
수혁의 얼굴이 삽시간에 뻘게졌다. 가랑이에 댔던 손을 떼자마자 문도 아닌 벽을 향해 냅다 몸을 던졌다.
쿵!
“허억!”
벽을 무너뜨리면서 놈의 방으로 쳐들어가자 놀란 놈이 침대 위에서 펄떡 뛰었다.
“야, 이 시발! 김윤조! 개새끼야! 작전 아닐 때는 뇌파 검열 안 한다면서!”
수혁이 버럭 고함쳤다.
사색이 된 놈이 침대에서 구르듯 내려와 경계 태세를 취했다. 실전에 참여하는 군인으로서 당연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수혁을 상대로는 열만 받을 뿐이었다. 하, 연두부 새끼가 지금. 자신을 상대로 방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너무 조용해서 그냥 확인해 본 겁니다.”
하얗게 질려서도 혓바닥을 잘 돌아간다. 수혁의 정수리에 뜨거운 기운이 몰렸다.
“사생활 운운할 때는 언제고 이 개새끼가!”
다가가는 대신에 능력으로 놈을 잡아당겼다. 멱살을 잡으려고 했으나 분노한 손길이 티셔츠를 제때 낚아채지 못했다. 대신에 매끄러운 모가지가 손아귀에 들어왔다. 목에 손을 대는 건 오랜만이었다. 놈의 홍채가 벌어졌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닙니다. 사고예요. 사고.”
“사고는 무슨! 넌 뒈졌어.”
수혁이 윽박질렀다. 덩달아 손에 힘도 들어갔다. 덜렁 들린 놈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채로 지껄였다.
“대, 대낮부터 누가 그런 짓을 하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들켜 놓고 괜히 성질이야.”
“너는 시발 오줌 쌀 때도 5km 밖 퇴거를 요구한 주제에! 이 이기적인 새끼야.”
“자, 자위도 5km 밖에서 하기.”
순간 이성이 뚝 끊겼다.
이런 미친 새끼.
수혁의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능력을 극한으로 쓸 때, 마치 핵연료처럼 타오르기 때문이었다. 손바닥에도 열기가 모였다. 놈의 안색이 붉게 변했다.
“……는 농담입니다.”
“그래서?”
홍채는 오팔색으로 변하다 못해 아주 무지개가 뿜어져 나왔다. 실제로 발사되는 안광 덕에 놈의 미간에 무지개가 비쳤다.
귀 주변이 찌릿했다. 약한 전류 같은 것이 수혁의 뇌 안으로 퍼져나갔다. 신체에 위협을 느낀 가이드 새끼가 패널티 프로토콜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너…….”
이를 꽉 깨문 채로 수혁이 으르렁댔다.
“아, 아닙니다. 제가 아닙니다. AI예요.”
미친놈이 눈을 찌푸리면서 부인했다.
“시발. 여기서 끝장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중지해.”
“일정 이상의 위협이 있으면 실행되는 자동 절차라, 일단 소령님이 제 목을 놓아야 합니다.”
“놓자마자 바로 패널티 날릴 거잖아. 이 개새끼야.”
“속…… 속고만 사셨습니까? 숨…… 막혀요.”
“네가 먼저 중지해.”
“아…… 씨……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니까.”
버티던 놈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수혁을 저지하려면 전투기용 기관포를 쏴도 모자랄 판에 고작 맨주먹? 공기 같은 하찮은 힘으로 무력 저항이라니. 아주 죽으려고 용을 쓴다 싶었다.
무슨 생각인지 놈은 주먹질 대신에 수혁의 머리를 덥썩 붙잡았다. 그도 모자라 냅다 끌어당겼다.
박치긴가?
이러거나 저러거나 똑같다. 어디 박치기할 거면 해보라 싶었다. 제 두부 머리만 뭉그러질 텐데. 제풀에 머리나 깨 보라고 그냥 따라줬다.
이번에도 수혁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닿은 건 이마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아래였다.
춥.
놀란 수혁의 입술이 슬쩍 벌어지는 찰나, 말랑하고 매끄러운 살덩이가 쏙 들어왔다.
“으음.”
벌건 뺨에 반쯤 감긴 눈이 수혁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목에 두른 놈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반대로 하얀 모가지를 쥐었던 수혁의 손아귀는 점점 느슨해졌다.
목을 놓자 까치발이었던 놈의 몸이 수혁을 향해서 천천히 무너졌다. 그러면서도 놈은 한사코 입술을 떼지 않았다.
치열과 잇몸을 간지럽히는 혀의 움직임을, 수혁은 눈을 감고 가만히 느꼈다. 목을 잡았던 손은 상대의 어깨를 지나 옆구리로 향했다. 여전히 열감이 도는 손바닥을 놈의 등허리에 얹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조건반사처럼 수혁의 팔이 알아서 놈을 끌어당겼다.
키스는…… 해 본 기억이 없다. 할 때 입을 맞댈 때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을 들여 한 기억은 확실히 없다.
신기했다. 입술을 대고 혀를 비빌 뿐인데. 머리꼭지까지 차올랐던 격분이 점차 수위를 낮췄다.
“으……흐음.”
먼저 입술을 부딪칠 때는 언제고 수혁이 진심으로 나가자 놈이 머리를 뒤로 빼려 들었다. 수혁은 다른 쪽 손으로 놈의 뒷덜미를 감쌌다. 도망가지 못하게 붙든 채로 고개의 각도를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