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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포인트 (31)화 (31/256)

28화

“예에?”

윤조는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뻔했다. 동시에 입구를 지키던 헌병이 움찔하며 윤조를 응시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윤조는 간신히 간이 의자에 엉덩이를 도로 붙였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전에 이세명 대위 건 말입니다.”

이세명 얘기가 나오자 장선욱 중장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그 새끼가 또 무슨 짓을 했는데?”

희대의 골칫덩어리 강수혁을 언급하던 때도 피로감만 가득했던 중장의 음성에 짙은 혐오감이 비쳤다. 장선욱 중장의 최대 적수가 바로 이청규 대표였다. 서로 정치적 공방을 이어가던 도중에 장선욱 중장이 한 방 먹으면서 이세명이 특작부로 발령 났다. 따라서 이세명이 활개를 치는 게 반가울 리가 없다.

“그때 이후로 잠잠합니다. 슬라임 형을 보고 겁을 먹어서 현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기세입니다.”

“그거 다행이군.”

장선욱이 삐죽 웃었다.

“그때 보고드린 바와 같이 비번인 강 소령이 구조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출동이라서 나중에 지랄을…… 흠흠, 강력한 항의가 있을 줄 예상했습니다만. 지금까지 어떤 반응이 없습니다. 사령부에서 마주치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설명에 장선욱 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렇게 생각하니 강수혁이가 많이 변하긴 했어. 이것도 가이드 효과인가. 심 박사 의견은 어떤가?”

“말씀하신 대로 가이드 시스템으로 인한 부수적인 안정화 효과라고 추정합니다. 앞으로 경과를 더 봐야 확실할 것 같습니다.”

“으음.”

까마득한 상관 세 명의 대화가 윤조의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내심 당황스러웠다. 여기서 강수혁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건 자신뿐인 듯했다. 하도 지랄을 옆에서 보고 들어서 이력이 생기는 바람에 변화에 둔감해진 걸까. 신뢰가 바닥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강수혁은 여전히 윤조를 모욕하고 툭하면 난폭하게 대하고, 매번 에스퍼 활성 상태가 되면서 위협한다.

‘그런데 직접 때린 적은…… 최근에 없긴 하네.’

얼마 전 두부 부상은 강수혁이 의도한 결과는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도 패널티를 얌전하게 받았다. 성관계는 여전히 난폭해서 신체상에 많은 손상을 남기지만, 재생 회복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김 준위 생각은 어떤가? 강수혁이가 변하고 있나?”

장선욱 중장이 물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거면 그런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런 것 같은 건 뭔가?”

“강수혁 소령의 태도는 같습니다. 다만 폭력 수위가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변덕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전조 없이 갑자기 공격한 사례가 두 차례 있었습니다.”

“그래?”

윤조가 대답하자 장선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장선욱 중장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 강수혁이의 심리부터 알아야겠군. 교란 작전일 수도 있으나, 진짜로 변했을 수도 있지. 그놈이 다른 사람을 이렇게 신경 쓰는 일도 처음이라. 똑바로 연애해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도 혼란스럽겠지.”

“쿨럭.”

장선욱 중장의 말에 최정 대령이 갑자기 사레들린 듯 헛기침을 했다. 심 대령은 미간을 구겼다. 심지어 부동자세를 유지하던 헌병대까지 찔끔했다.

아니 연애라니! 무슨 망발을!

윤조는 큰소리로 항명하려던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AI의 보조를 받아 침착을 유지하지 않았다면 장선욱 중장의 멱살을 잡고 그 개소리 취소하라고 난동을 피웠을지도 모른다.

혼란과 경악이 감도는 조사실에서 장선욱 중장만이 말을 이었다.

“사고는 강수혁이가 쳤지만, 김 준위가 강수혁을 자극했어. 일말의 책임이 있다.”

“예.”

“강수혁이가 아파트 단지 인근 산을 무너뜨려서 거주하는 장교와 일가족의 공포가 커. 이런 사태를 걱정해서 강수혁이 집을 외따로 마련했는데 말이야. 그 녀석이 김 준위 숙소를 드나들기 시작하면 의미가 없어지지.”

그때 윤조의 팔에 닭살이 돋았다. 뭔가 심각하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예감이 팍 들었다.

“김 준위는 앞으로 강수혁이랑 같은 집 쓰고. 거기 넓으니까 둘이서 써도 넉넉할 거야. 원래는 내 집인데. 쯧.”

“예에?”

윤조는 숙였던 고개를 벌떡 들고 중장을 빤히 봤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준위 주제에 하늘 같으신 중장을 상대로 반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만큼 경악했다.

장선욱 중장은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에 눈과 입이 동시에 벌어진 윤조를 향해 덧붙였다.

“같이 살면서 밀당을 제대로 해 보란 말이야. 강수혁이 그놈이 김 준위에게 넘어갈 것 같으니까 말이야.”

“미…… 밀당 말입니까?”

윤조는 말을 더듬었다.

장선욱 중장은 장난기 전혀 없는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건 경위 청문은 거기서 끝났다.

‘망나니 강수혁과 같은 숙소를 쓸 것.’

특수작전사령부의 최고 우두머리가 내린 결정이었다.

혼이 빠진 듯 멍하게 앉아 있는 김윤조 준위를 뒤로하고 장선욱 중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선욱 중장을 수행하는 행정 장교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안내하면서 다음 일정을 빠르게 보고했다. 최정과 심나연도 그 뒤를 따랐다.

최고 사령관의 행차이니, 차량에 탑승할 때까지 배웅해야 했다. 하지만 의전을 핑계로 권력자와 사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며 여러 가지 정보를 나누기에 유용한 시간이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 심 박사는 장선욱 중장에게 물었다.

“그 강수혁이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뭐가?”

“김 준위를 상대로 그렇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 말입니다.”

심 박사도 차마 연애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최정도 관심이 지대한지 중장을 곁눈질했다.

장선욱 중장은 심드렁하게 코웃음 쳤다.

“아무렴. 연애질이 아니면 그놈이 왜 그렇게 지극정성을 들이겠나?”

“패널티 때문에 생긴 교정 효과라고 봅니다.”

“교정?”

그 말에 장선욱 중장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교정 효과가 아예 없다고 할 순 없겠지. 하지만 말이야, 때려서 말을 들을 거면 애초에 가이드 시스템을 시작하지도 않았어. 알잖아? 강수혁이 등에 말이야. 그놈이 대가리 굵어지고 이젠 그것도 소용이 없어졌는데 머리 좀 때린다고 말을 듣겠어?”

장선욱이 눈짓했다. 심 박사는 그가 의미하는 바를 즉시 알아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재생력 덕분에 신체적 통증에는 별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대신 두통에 내성이 적어서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만약 심나연이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럼 김윤조를 안 건드리기만 하면 그만이지, 왜 잘해 줘? 방금 최정이랑 네가 강수혁이 놈이 김윤조에게 벌벌 긴다고 말했잖아.”

장선욱이 도리어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최정이 이번에는 심 박사를 거들고 나섰다.

“벌벌 기는 것까지는 아니지 말입니다. 동료처럼 챙기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강수혁이를 놓고 보면 천지개벽할 수준인 거지 그게.”

두 부하를 보고 장선욱이 답답한 듯 혀를 찼다.

“그 새끼는 인류가 불타서 멸망해도 그 불에 외계인 고기 구워 먹을 새끼야. 잘해 줄 이유가 없단 말이야. 발작이 일어나도 못 본 척했겠지. 혹은 일부러 더 부추겼을걸. 이참에 확 죽으라고 말이야.”

그 말이 맞긴 하다. 단순히 패널티를 모면할 심사라면 굳이 잘해 줄 필요까진 없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장선욱 중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리어 몸을 돌려 심 박사와 최정 대령을 번갈아 봤다.

“내가 강수혁이 그놈 요만할 때부터 봤어. 한창 자랄 때는 내 새끼보다 더 가까이, 오래 붙어 있었단 말이야. 내가 그놈을 알지, 몰라?”

“김 준위는 남자고, 강 소령도 남자입니다.”

최정이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그놈은 별종이잖아.”

장선욱 중장이 뚝 잘라서 선언했다

별종이 맞긴 하다. 하지만 별종과 성 지향성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심 박사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장선욱 중장은 심 박사의 의문을 바로 감지했다.

“초능력자 말이야. 강화 인간, 돌연변이.”

“그런데요?”

강화 인간이면 다 동성애자인가?

심 박사도 강화 인간이지만 연애 상대로는 여자보다는 남자가 좋다. 에스퍼에게 특정한 성적 경향이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없다. 성적 지향성에 있어서 에스퍼의 분포도는 평범한 인류와 같다. 소수자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다수가 아닌 소수.

강수혁은 한 번도 성적 소수자임을 밝힌 적도, 그런 낌새를 보인 적도 없다.

하지만 장선욱 중장의 생각은 달랐다.

“심나연이, 너는 세상에 잘생긴 오랑우탄이랑 여자만 남으면 누구랑 사귈 거야?”

“꼭 사귀어야 합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야. 그래서 어느 쪽이야?”

“그야 당연히 인간 쪽이죠.”

오랑우탄과 사람 중에는 당연히 사람이다.

성별보다는 종의 차이가 더 크다. 솔직히 아무리 잘생겨도 오랑우탄이랑 짝짜꿍하느니 독신으로 죽고 말거나 동성애자로 전환하는 편이 인류 보편적인 반응이 아닐까.

“돌연변이 별종 강수혁이에겐 우리가 오랑우탄이란 말이야.”

“그렇다면 김윤조도 오랑우탄일 겁니다.”

여전히 맥락을 이해 못 하는 심 박사를 향해 장선욱이 눈살을 찌푸렸다.

“똑똑한 줄 알았더니 영 맹추네. 김윤조 만드는데 강수혁이 DNA도 들어갔잖아. 비율상 동성동본쯤은 된다면서. 전에 심나연이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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