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 (19)화 (19/256)

17화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했음에도 강수혁은 못마땅한 듯이 입매를 비틀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꼬리를 살짝 접고는 조소를 머금었다. 윤조도 별반 다를 게 없는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싸가지 없는 걸 보니 대가리도 이상 없네.”

“진심으로 감사드린 겁니다. 사람의 진심을 좀 믿어 주십시오.”

“생선 앞의 고양이를 믿지. 너를 믿겠냐?”

“너무하십니다.”

애초에 하반신이 엉망이 된 원인이 강수혁이라 그가 후속 조치를 해서 고마울 일은 없다. 그대로 놓고 가 버렸던 그 이전의 행각이 도리어 뺑소니범으로 가중 처벌해야 할 사안이고. 물론 강수혁을 누가 처벌하겠냐만.

하지만 버릇 나쁘고 성질이 비비 꼬인 미친개를 조련할 때 잘한 일은 확실히 칭찬하는 편이 좋다고, 인기 있는 개 훈련사가 방송에서 말했다.

“비번일 때 휴식을 방해했는데도 이 정도로 참아 주신 점, 저뿐 아니라 여러모로 이쪽 사정을 봐주신 거 아닙니까. 정말로 감사합니다. ”

“…….”

잘한 일을 콕 찍어 칭찬하자 강수혁은 조롱과 비난을 더 던지는 대신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칭찬이 효과가 있어 보였다. 역시. 미친개 조련에는 인간 심리 전문가보다는 개 전문가가 더 낫다.

현재까지 문제견 훈련법을 강수혁에게 적용해서 엇나간 적이 없었다.

원치 않는 일을 지시하고 개가 그것을 해냈을 때 큰 보상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귀찮음도 극복하고 주인의 지시를 따른 개에겐 맛난 간식이나 즐거운 놀이를 제공한다. 싫은 일에 대한 긍정 반응을 강화하는 방법이었다.

‘역시 예전 방송분부터 전부 유료 결제해야겠다.’

윤조는 속으로 개 훈련사를 향해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문제는 보상 방법이었다. 비뚤어진 최강 에스퍼를 상대로 말린 북어 조각을 내밀거나 딸랑이 장난감을 던질 순 없지 않나.

패널티를 이용한 정신적 통제가 유일한 방편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뇌파 동조를 세밀하게 조정하는 과정에서 희한한 반응이 터졌다.

최강의 에스퍼가 제 가이드를 상대로 강한 성적 충동을 강하게 품은 점이었다.

군 상부도, 가이드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실행한 심나연 박사뿐 아니라 가이드인 김윤조을 비롯하여 강수혁 본인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군 상부 입장에서는 잭팟, 막상 강수혁을 상대해야 하는 김윤조 입장에서는 ‘헬팟’인 상황이었다.

‘시발. 인생이 꼬이려니 이렇게도 꼬인다.’

미친개로부터 ‘섰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군 상부의 지시로 성관계를 하게 되었을 때. 윤조의 기분은 진창에 처박힌, 물러 터진 토마토 같았다. 붉은 살덩이가 짓밟혀 터지고 시큼한 체액이 줄줄 흐르는 더러운 오물. 그게 새로 탄생한 제 몸과 자신에 대한 첫 감상이었다.

당연히 역겹고 혐오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 이성애자인데 동성과의 성행위를 한다는 점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몸까지 몽땅 갈아치운 마당에 그깟 구멍 하나 제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냥 강수혁이 싫다. 좋아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와 잘 협력하여 게이트를 잘 막고, 외계 괴물을 빠르게 처단하여 나라와 민족의 평화를 찾겠다는 거창한 목표 따위 깡그리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갓 태어난 윤조를 짓밟아 죽이려고 든 미친 개새끼였다.

그런 놈과 몸을 얽는 일은 에스퍼 안정을 위한 구멍 제공일 뿐이고 죽는 것보다 낫다며 스스로 달래 보지만. 여전히 토악질이 쏠렸다. 면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장이 비비 꼬일 만큼.

그런 미친 개새끼를 칭찬하는 것도 보통 정신력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

‘이건 사람입네 하는 개야. 그러니까 감정적으로 대할 필요 없다. 개다. 개야.’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그러는 동안 윤조는 표정을 인형처럼 매끈하게 다듬었다.

이쪽을 보는 미친개의 눈빛이 유달리 서늘했다.

“감사하다는 놈의 눈깔이 왜 그래?”

“네?”

윤조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입술에는 반사적으로 옅은 미소가 걸렸다.

“눈빛이 기분 나빠.”

“제 눈빛이 말입니까?”

전혀 모르겠다는 듯, 윤조는 눈을 깜빡였다.

“그래. 더러워. 꼭 나를 무슨 오물 보듯이 하잖아.”

“아닙니다. 착각입니다.”

윤조는 정색하며 부인했다.

“오물이라니요. 제 목숨을 구해 주신 은인을 상대로 그런 심한 생각을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눈깔을 왜 그렇게 떠?”

“가이드라서 그럽니다. 가이드. 제가 인조인간이라서 눈빛이 좀 원래 이상합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시치미를 뚝 뗐다. 하지만 내심 약간 쫄았다.

뇌파 동조는 상방이었다. 그러나 해석은 윤조만 가능하다. 강수혁이 윤조의 뇌파를 읽고 그에 대응하게 되면 가이드 프로그램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뇌파 동조는 철저하게 일방, 즉 김윤조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강수혁이 윤조의 심리를 파악할 수단이 없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신기 가득한 무당이거나 혹은…….

‘설마 강수혁에게도 뇌파 프로세서 같은 걸 심었나? 척추에 있는 흉터는 그 흔적?’

화가 난다고 소속 부대를 상대로 테러까지 저지른 미친개를 무슨 수로 어떻게 제압해서 장치를 심었을까. 두 번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대규모 전투만 골라서 나가는 성미로 보아 전투 시에 날뛰다가 대단한 재생력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부상을 입었다고 보는 쪽이 훨씬 현실성 있다.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러면 텔레파시 능력자들이 알아챘겠지. 그냥 눈치가 빠른 편인가. 변태 주제에. 아니 변태라서 저런 눈치가 발달한 건지도 모르지.’

속과 다르게 윤조는 계속 엷은 미소를 유지했다. 눈빛이 이상하다니까 괜히 의식이 되어 그런지 눈을 자주 깜빡였다.

“또. 또 그렇게 보는군.”

“예?”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는 식으로 보고 있잖아.”

“설마. 오해이십니다.”

윤조는 싱긋 웃으며 극구 부인했다.

뭐가 어떻게 다르단 건지. 거울이 있다면 제 눈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좀 다르면 어떤가? 강수혁 소령이 윤조를 보는 눈빛은 뭐 곱고 상냥한가? 절대 아니다. 에스퍼 활성 상태의 무서운 눈깔로 MRI처럼 스캔하면 뼈까지 시리곤 했다. 그냥 대충 넘어가지 왜 자꾸 지랄인지.

“그럼 왜 그렇게 빤히 보는 거지?”

“이제는 보는 것 가지고도 뭐라 하십니까? 그냥 본 겁니다.”

“그냥 왜 봐?”

아, 진짜 유치한 새끼.

“언제 봐도 잘생기셔서요. 잘생기면 저절로 보게 됩니다.”

진짜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뱉었다. 그리고 아차 했다. 객관적으로 강수혁이 잘생긴 미남인 건 맞지만, 대놓고 칭찬하기에는 좀 배알이 꼴렸다. 윤조는 밑으로 처지려는 일그러지는 입매를 억지로 사수했다. 그러곤 속으로 하필 그런 얘기를 꺼낸 자신의 멍청한 뇌를 욕했다.

이쪽이 아차! 한 얘기니만큼, 저쪽의 반응도 그렇게 매끄럽진 않았다. 떨떠름하다고 해야 하나. 불쾌감이 가득하던 소령의 낯짝에 불신의 빛이 강하게 떠올랐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기는.”

믿지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 뭔가 말끝이 묘하게 둥글었다. 방금까지 눈깔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 따지던 사람답지 않았다.

“소령님의 외모는 전국적으로 유명합니다만. 못 믿으시겠으면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보십시오. 강수혁이라고 치면 연관 검색으로 ‘미남’이라는 단어가 뜹니다.”

청산유수 같은 대답에 강수혁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 시선을 다른 쪽으로 던졌다. 인형 새끼가 사람을 조롱하는 거냐 뭐냐 하면서 따질 거라 예상했는데. 계속 말이 없었다.

설마 부끄러워하는 건가? 아닐 거다. 너무 당연한 말을 해서 귀찮게 생각하는 쪽이겠지……. 아뿔사. 대화가 이렇게 끝나면 정말로 윤조가 강수혁의 외모를 진심으로 찬양한 것이 되지 않나.

‘이제 와서 농담이라고 하면 이 자리에서 갈비뼈가 가루가 되겠지?’

젠장. 갓 재생을 끝내고 해방되었는데 또 재생 절차에 들어갈 순 없다.

‘아우, 얄미운 새끼. 안 어울리게 왜 어색한 척해!’

윤조는 웃으면서 속으로 중지를 연타했다.

사감(私感)을 빼고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강수혁은 잘생겼다. 이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그를 혐오하는 윤조조차도.

우뚝한 코에 시원한 콧날. 빽빽한 머리카락에 깊은 눈매. 단정한 입술. 적당히 그을린 건강한 피부며 완벽한 체격까지. 거기다가 위험한 전투를 계속하는 데도 어디 한 군데 흉터가 남지 않았다. 강력한 재생력이 신체의 황금 비율을 보장한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였다.

외모야말로 진정한 트리플 S급이라는 찬사를 받는 강수혁의 상판을 열외로 치고서라도, 웬만한 에스퍼는 다 출중한 외모를 가졌다. 우월한 외모를 근거로 에스퍼가 우성 변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도 있다. 에스퍼의 일관된 인성 파탄은 열성으로 봐야 한다는 반대 주장 덕분에 큰 힘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김윤조도 제법 생겼는데 강수혁 앞에서는 명함도 꺼내기 힘들었다.

외모만이 아니다. 재생력, 근력, 속도. 심지어 군인으로서의 커리어와 연봉까지. 강수혁 앞에선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다.

누구는 죽을 각오로 뺑이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누구는 그냥 능력 하나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갖은 행패도 눈감아주고 심지어 보상도 많이 받는다. 하여간 존재 자체가 재수 없는 개새끼였다.

‘하필 이런 놈이 첫 테스터가 되어 가지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가이드가 되기 전부터 충분히 알았고 각오했는데도 괜히 탓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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