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 (16)화 (16/256)

15화

가이드가 되는 순간 강수혁이 첫 목표일 줄은 미리 알았다. 윤조가 가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지만, 강수혁의 안정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보조 격인 강화 인간을 만드는 프로젝트라는 당시 상관의 설명도 제법 역할을 했다.

상관을 원망할 생각은 없다. 실제로 그는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강수혁이 이렇게까지 개호래자식인 줄은 상관도 몰랐다는 점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국가적 위기에서만 출동하는 최강의 에스퍼.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에 아우라를 지닌 최종 병기. 마른 성격에 우수 넘치는 눈빛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찬양받는 국민 영웅.

가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 그 강수혁의 파트너가 되어 게이트와 외계 생명체에 대항한 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물론 작전은 드물지 않게 있다. 강수혁이 기분이 매우 좋을 때나, 혹은 기분이 극심하게 나쁠 때. 그는 출동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게이트로 돌진했다.

반대로 이도 저도 아닌 평상시에는 완벽한 게으름뱅이가 되었다. 그는 부대 어딘가에 처박혀 아무리 호출해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심지어 부대 시찰하러 온 쓰리스타의 호출도 씹었다.

힘만 믿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에 개망나니.

그것이 강수혁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였다.

-개새끼. 빌어 처먹을 개……새끼.

뒤늦은 억울함이 치가 떨렸다. 세웠던 중지를 말아 주먹을 쥐어 내질렀다. 인큐베이터 유리가 퉁퉁 울렸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 이깟 비참함과 억울함을 못 이길 거면 애초에 목숨을 걸고 가이드 프로젝트의 피실험체로 나서지도 않았을 거다.

윤조에게는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

가이드로서도, 군인으로서도 아닌, 인간 김윤조로서 반드시 이루고 싶은 강렬한 목표가.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강수혁이라는 인간 말종을 반드시 손아귀에 넣어야 한다.

그까짓 구멍이 찢어져도, 척추가 내려앉아도 재생만 되면 그만이다. 산 채로 몸이 짓이겨지는 공포와 충격도 버텨 냈는데 이까짓 하찮은 가학 따위.

얼마든지 벌려 주고 얼마든지 찢겨 줄 거다. 비참함에 자존심이 산산이 조각나고 억울함에 분노가 차올라도 괜찮다.

그래 봤자 강수혁은 김윤조의 손아귀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한다. 그처럼 유용한 에스퍼를 절대로 놓아줄 수 없다.

8년 전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졌던 그날.

입대를 결심하면서 세웠던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절대로.

퉁. 퉁.

주먹이 인큐베이터를 내리칠 때마다 흔들리는 인공 양수가 뜨거워진 눈시울을 씻어 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