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심나연의 예상대로 산채로 몸이 바스러지는 극한의 공포를 느낀 가이드 윤조는 에스퍼 강수혁에게 어떤 동정심도 발휘하지 않았다.
윤조의 공포심이 적정 수준으로 잦아들 때까지, 강수혁은 일정 간격으로 고문을 당했다. 말 그대로 고문이었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에스퍼 전용 격리실에는 끔찍한 비명이 이어졌다.
AI가 전송한 데이터에 따르면 윤조의 명령에 따라 AI가 강수혁에게 가한 패널티는 산채로 불타는 통증에 준했다. 다중 장기 파열과 심장 마비도 겪어야 했다. 사실상 그런 일이 발생하진 않았으나, 뇌에 직접 자극을 주는 만큼, 강수혁에게는 실제였다.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지만, 결과적으로 가이드 프로젝트가 성공했고 첫 가이딩도 완료했다는 관련 보고를 받은 군 상부는 대단히 기뻐했다.
점점 말을 안 듣는, 그래서 이점보다는 단점이 커지는 최강 에스퍼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 수단을 드디어 찾은 것이다. 심지어 흥분한 난동을 부리던 강수혁이 매 맞은 개처럼 조용해졌다는 후속 보고를 듣고는 가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막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윤조는 지금도 등골이 서늘했다.
강수혁이 무섭다. 그의 존재가 끔찍하다. 처음으로 에스퍼에 혐오감을 느꼈다. 한편으로 억울하고 화도 난다. 하지만 그보다 윤조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허망하게 죽을 수 있었다는 두려움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떤 각오로 가이드가 되었는데.’
몸 따위 수십 번이 망가져도 재생하면 그만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강수혁을 길들여 소망하는 바를 이루리라.
“그래도 그 새끼가 난동 부리면 화를 내. 너는 그 지랄 맞은 개새끼의 가이드지 화풀이 대상이 아니란 말이야.”
-앞으로 그러겠습니다.
심 박사의 걱정 어린 잔소리에 윤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누가 연락했습니까?
뻔한 질문을 했다. 특수 위성 혹은 최정 대령의 통보가 있었을 거다. 하지만 심 박사의 대답은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개망나니가 직접 데려왔어.”
이번에는 윤조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도 모자라 윤조는 양수를 헤치며 인큐베이터 유리에 찰싹 붙었다.
-강……수혁 소령님이 직접 말입니까?
“그래.”
심 박사가 코웃음을 쳤다. 윤조가 아닌,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에스퍼를 향한 조소였다.
“그 새끼가 죽을 때가 되었나 봐. 안 하던 짓을 하네. 이참에 정말로 콱 죽었으면.”
-신기합니다. 이번엔 특수 위성과 일시 분리 중이었습니다. 저는 동조 프로그램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의식 단절 후 위성 AI가 재구동했습니까?
“아니. 아직 꺼져 있어.”
-그런데 왜?
“모르겠어. 혹시 고통에 대한 트라우마인가.”
-그 강수혁 소령이 지레 겁을 먹고 저를 직접 여기로 옮겼다고요?
윤조가 반문하자 심 박사도 제 예상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깨달았다.
박살 난 몸을 재생하는 사이 김윤조는 내내 특수 위성과 교신했다. 미세 조정을 거치면서 기존 일에 대한 분석도 함께 진행했다. 강수혁이 다시 폭력을 사용할 때를 대비하여 이쪽도 효과적인 억제 수단이 필요했다.
심 박사의 도움을 받아 윤조는 제게 가한 폭력 수준을 일반인의 입장에서 느낄 고통을 폭력 가해 당사자에게 24시간 동안 되돌려 주는 뇌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것이 고통 동조 프로그램으로 심 박사는 ‘개망나니 전용 몽둥이’라고 불렀다.
전용 몽둥이가 발동하면 김윤조가 신경을 차단하여 고통을 지우기 전까지 잠깐 아프고 말 것을, 강수혁은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생생하게 겪어야 했다.
고통 동조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강수혁은 본인이 가한 고통의 결과를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패턴을 빠르게 인지했다.
그가 김윤조에 직접 손을 대는 일은 급격하게 줄었다. 대신 억눌린 혐오와 분노 패턴이 뇌파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김윤조에 대한 험악한 관심이 성적 가학심으로 연결된 건 이후였다.
“역시 말이 안 되지?”
-네.
심 박사는 심란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수혁 그 새끼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몽둥이부터 날려.”
-알겠습니다. 다른 이상이 있을 시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일단은 네 회복이 중요하니까 그 새끼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난 일이 있어서 연구실 비울 거야. 라이트 끌 테니 좀 쉬어. 무슨 일 있으면 호출하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재생 인큐베이터에 필요한 정보와 명령을 입력한 후 심 박사는 인큐베이터를 밝히는 조명을 끄고 나갔다.
조명이 꺼졌어도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연구실에 있는 각종 핀 조명과 기기들에 달린 작은 조명이 곳곳에서 반짝였다. 빨강, 초록, 형광 노랑 등등. 반딧불 같은 작은 빛이 인공 양수로 인해 굴절되었다. 꼭 비 내리는 도시 야경 같아 오히려 보기 좋았다.
보글보글.
따뜻한 양수에서 산소 거품이 떠올랐다. 윤조의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힌 거품은 이내 등줄기에 닿았다. 윤조는 몸을 살짝 움직였다. 붙었던 거품이 다시 움직이면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휘저었다.
인조 양수는 할머니가 계신 시골집 안방 아랫목에 펼친 포근한 이불 속 같았다. 실제로 양가 할머니 모두 어린 시절에 돌아가셔서 기억이 없지만. 표현이 그렇다는 거다.
물보다 밀도가 높은 양수는 적은 양으로도 윤조의 신체를 충분히 떠올렸다. 눈을 감고 양수 안을 부유했다. 이곳에선 괴로움도 슬픔도 없다. 그렇다고 평화가 있는 건 아니었다.
몸이 재생되는 동안 머리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대부분은 윤조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강수혁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직접 연구실로 옮겼다고?’
이런 전적이 전무했다.
그 개차반 미친놈이 갑자기 왜? 무슨 꿍꿍이로?
여태껏 강수혁은 윤조의 의식이 끊겨서 통제가 약해지는 기회를 포착할 때마다 윤조의 신체를 심하게 훼손하곤 했다.
정강이뼈를 부러뜨리거나 혹은 갈비뼈를 완전히 으스러뜨린 적도 있었다. 꼭 주인이 안 볼 때 목줄을 끊으려고 하거나 케이지의 약한 부분을 망가뜨리려고 애를 쓰는 짐승 같았다.
강수혁은 윤조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선 뇌파 동조로 인한 패널티를 통한 보복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추론한 모양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특수 위성 AI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나마 윤조 의식이 있으면 패널티를 적당한 시점에서 중단할 수도 있지만, AI에게는 그런 자비가 없다.
미친놈에 의한 불필요한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해 윤조가 의식을 잃자마자 특수 위성은 즉시 관련 사실을 사령부와 심 박사에게 통보한다. 또 패널티 부과를 준비하여 강수혁이 윤조의 몸을 손상시키는 즉시 제재를 가한다. 그러는 동안 본부는 상황에 따라 응급 구조팀을 급파하여 김윤조를 확보, 이송하고 심 박사는 인큐베이터와 재생 절차를 준비하는 것이 통상 절차였다.
심 박사가 한 설명에 따르면 척추와 내상 손상 등 부상이 꽤 컸다. 하지만 의식이 끊기기 전에 윤조가 인지한 부상 범위에 정확하게 일치했다. 즉, 성관계에 의한 것이지, 추가 훼손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의식이 끊겼는데 보복도 하지 않고 심지어 직접 연구실로 이송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의문’도 있었던가?’
분노, 혐오, 가학은 흔했다. 하지만 의문은, 하필 그 시점에서 떠오른 의문은 좀 의아했다. 뭔가 새로운 지랄 방법을 떠올리고 그 성공 여부를 가늠한 걸까.
갑자기 강수혁의 현재 심리 상태가 궁금해졌다. 애석하게도 특수 위성도 시스템 점검을 받고 있었다.
연결을 굳이 하려면 할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강수혁이 궁금한 건 또 아니었다. 특히 그놈 때문에 윤조의 하반신이 박살이 난 시점에서는 더더욱.
‘미친놈 속을 누가 알아. 변덕이겠지.’
눈을 감은 윤조는 심 박사의 지시대로 휴식에 전념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요한 어둠은 휴식은커녕, 꾹꾹 밟아 눌러 놓았던 최악의 기억을 야금야금 풀어놓았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하이톤의 비명. 형광 녹색, 주황색, 노란색, 붉은색과 불길한 검은 색이 뒤엉킨 거대한 게이트. 중력이 역류하여 위로 솟아오르는 차. 건물 파편, 행인들. 그리고 하늘에 나타난 까마득한 기둥. 비명을 먹으며 고요하게 가라앉는 검고 거대한 촉수. 그 아래 깔린 아파트 단지.
‘안 돼.’
윤조의 미간이 구겨졌다. 고개를 떨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워 냈다. 그러자 칩을 심은 뇌는 TV 채널을 돌리는 것처럼 다른 장면을 보여 주었다.
싸늘한 공기. 멍한 청각. 굉음과 함께 흔들리는 공간. 전신을 두드리는 끔찍한 고통. 툭 하고 떨어진 머리. 흐린 시야에 들어오는 피 묻은 군화 밑창.
-헉!
윤조는 눈을 번쩍 떴다. 극심한 공포와 분노가 전심을 휘감았다. 뻐끔 벌어진 입으로 양수가 들어왔다. 꿀꺽 삼키면서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둘러봤다. 연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발! 시발!
심 박사 앞에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욕설이 마구 튀어나왔다.
휴식 따위, 윤조에게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윤조는 양수 속에서 몸을 뒤틀었다. 그러곤 쌍 중지를 세웠다. 마침 특수 위성과 연결도 끊어진 마당이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어떤 지랄을 떨든지 기록에 남지 않는다.
간신히 움직이는 발끝으로 인큐베이터 유리를 찼다. 낮은 주파수의 충격음이 퉁퉁 울렸다. 양수가 출렁였다. 할 수 있는 욕설은 다 지껄이고 허용된 범위 내에서 저지를 수 있는 발광은 모조리 했다.
-시발.
뒤늦게 비참함이 몰려왔다. 윤조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굽은 등이 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