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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포인트 (14)화 (14/256)

13화

퍽!

거친 발길질 한 번에 대퇴골이 바로 박살 났다. 날카롭게 부러진 뼈가 허벅지 살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충격적인 고통에 윤조의 성대가 얼어붙었다.

퍽!

주먹에 왼쪽 가슴을 가격했을 때는 갈비뼈가 으스러졌다. 두 번 맞았을 때는 갈비뼈 반이 날아가고 폐와 위가 터졌다. 심장이 터졌다. 부러진 다리에 망가진 가슴을 지탱하지 못한 채 윤조는 바닥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철퍽.

고개가 피 웅덩이 위에 고꾸라졌다. 바닥에 닿은 윤조의 뺨을 축축하게 적신 피는 이내 희멀겋게 탈색된 머리카락마저 붉게 물들었다.

당시 윤조의 머릿속을 지배한 건 고통이 아니라 의문이었다.

왜?

그에게 어떤 잘못도 한 일이 없다. 아니 잘못을 저지를 기회라도 있었던가? 심지어 통성명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설사 잘못을 했다고 해도 영창도, 기합도 아닌 즉결 처분? 아무리 외계 침략자와의 전쟁이 이어지는 전시 상황이라지만 이건 부당한 처분이었다.

“강수혁, 이 미친 새끼야!”

찢어지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심나연 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는 산발에 옷은 군데군데 찢어지고 무릎과 손에는 붉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김윤조한테서 떨어져!”

“박사님! 위험합니다!”

대(對) 에스퍼 헌병대가 나타나 발작적으로 소리치는 박사를 뒤로 끌어냈다. 심 박사는 놓으라며 비명을 지르면서 발광했다. 그런 제2의 창조주를 윤조는 허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디서 눈깔을 굴려? 재수 없는 인형 새끼.”

욕설을 뱉은 강수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윤조의 흰 손과 발을 지그시 짓밟았다.

군홧발에 전신의 뼈가 바스러지고 모든 내장이 터지고 찢어졌다.

고통스러운 개조 과정을 인내하고도 막상 에스퍼를 통제해 보지도 못한 채 허망하게 생명이 꺼져 갔다. 인조 강화된 덕분에 비록 몸은 곤죽이 되어도 의식은 일반인보다 훨씬 오래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피가 빠져나가고 뇌에 산소 공급이 차단되면서 의식이 금세 가물거렸다.

꺼멓게 꺼져 가는 시야 사이로 카메라 플래시 같은 섬광이 터졌다.

입대 이후 계속 잊으려고 노력했던, 하지만 결코 잊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과를 깎던 마르고 따뜻한 손, 매번 윤조를 약 올리던 자식의 얄미운 입매, 좀 사이좋게 지내라며 타박하는 메시지 그리고 손에 덜렁덜렁 들린 작은 쇼핑백.

불길한 주황색 하늘, 고막을 찢은 금속성 괴성, 끔찍한 몰골의 거대 외계 괴물, 창공을 가로지르는 에스퍼, 불을 뿜는 대공 포신, 무너지는 아파트 단지,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

‘내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죽어 나가는 사람이 연잇는다는 가이드 프로젝트 실험체 모집에 망설임 없이 자원했을 때부터 품었던, 아니 모든 걸 뒤로 하고 입대했을 때부터 내내 품었던 강렬한 소망을 이룰 첫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미련이 철철 남았는데…….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그때 운명처럼 선명한 신호음이 들렸다.

삐삐삐.

가이드 보조와 수호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 위성 AI가 윤조를 불렀다.

-긴급 상황 발생으로 인해 자기 보호 절차를 강제로 시행합니다. 에스퍼 스캔 및 뇌파 동조를 승인하시겠습니까?

목 아래로 완전히 곤죽이 된 윤조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마지막으로 본 건 남은 머리를 짓이기기 위해 높이 든, 피 묻은 군화 밑창이었다.

‘승인.’

바로 그때. 윤조의 가이드 프로세서가 첫 구동을 시작했다.

-명령 입력 완료. 가이드 자기 보호 명령에 따라 긴급 뇌파 동조를 시작합니다. 대상 에스퍼 강수혁, 가이드 손상 정도에 따라 임의 패널티를 적용합니다.

특수 위성 내에 있는 AI의 산뜻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일하게 남은 부위인 머리를 부수려던 강수혁이 멈췄다. 들어 올렸던 발은 허공을 떠돌다가 이내 엉뚱한 곳을 짓밟았다. 결과적으로 윤조의 머리카락 끝에도 닿지 못했다.

“크아아아악!”

머리를 쥐어뜯던 강수혁의 무릎이 하나씩 꺾였다. 고꾸라진 그는 이마를 바닥에 처박고 전신을 떨었다.

강수혁은 여타 S급을 능가하는 강력한 재생력을 소유했다. 사소한 부상은 통각이 뇌로 전달되기도 전에 낫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일이 거의 없었다. 뼈가 부서져도, 소장이 다 터져도 특유의 짜증 섞인 표정을 지으며 잠시 숨을 고를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악! 크으으으으!”

너무 강해서, 그래서 모든 것이 개미처럼 하찮아서. 늘 냉소를 머금고 살던 오만한 에스퍼가 바로 강수혁이었다. 그런 그가 짓밟힌 벌레처럼 몸부림치는 광경은 연구실에 있는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왜 저래?”

“폭주인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심나연 박사였다.

자신을 뒤로 끌어내던 병사들이 당황한 틈을 탄 그녀는 인큐베이터에 연결된 컨트롤 패드를 집어 들었다. 서너 가지 그래프와 숫자를 확인한 그녀는 탄성을 터트렸다.

“성공이야! 성공이라고!”

심 박사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러다가 박살 난 윤조를 향해 다가왔다. 그 옆엔 발작하며 뒹구는 강수혁이 있었다. 헌병 하나가 다가와 심 박사를 뒤로 끌어내려 했다.

“박사님, 위험합니다!”

“아니. 괜찮아.”

“폭주 직전 에스퍼입니다. 당장 대피하셔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박사님만은 무사히 확보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괜찮다니까!”

심 박사는 헌병을 뿌리쳤다. 그러곤 강수혁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퍽 찼다. 폭주 직전의 에스퍼를 건드린다고? 헌병대 전체가 바짝 얼어붙었다.

“아프지? 그런데 반항하지 못하겠지? 꼴좋다, 미친 새끼야.”

“크으으으윽.”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하는 강수혁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눈앞의 중년 여성을 노려봤다.

마비된 듯 떨리는 손을 억지로 움직여 심나연의 발목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심 박사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방금 탄성을 터트렸던 사람답지 않게 검지로 컨트롤 패드 표면을 느긋하게 움직였다.

“강수혁, 이젠 말 좀 듣자?”

비웃음 가득한 충고와 함께 그녀는 패드 화면을 가볍게 터치했다. 순간 윤조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러곤 특수 위성에서 강력한 신호가 발산되었다.

“커억!”

강수혁은 번개에 직격당한 사람처럼 눈을 까뒤집고 사지를 덜덜 떨었다. 비명을 지를 힘도 없어 보였다.

그사이 심나연은 재빨리 김윤조를 살폈다.

“김윤조? 안 죽었지? 살아 있지?”

저를 부르는 절박한 음성에 윤조는 눈동자를 간신히 굴렸다.

충격적이게도 김윤조는 목만 남은 상태로도 여전히 숨이 붙어 있었다. 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각종 신체 기관의 내구성을 극도로 끌어올린 덕분이었다.

시선을 마주하자 심 박사는 걱정으로 표정이 굿은 중에도 잠시 웃었다.

“안 죽었네. 신체 강화도 이만하면 대성공이야, 김윤조.”

그러곤 심나연은 상황 파악이 늦은 헌병대를 향해 소리쳤다.

“거기! 나 좀 도와요!”

“예? 예.”

에스퍼 헌병대가 우르르 달려왔다. 그들은 심나연의 지시대로 완전 박살이 난 김윤조의 신체를 조심스럽게 추슬러 올렸다.

“인큐베이터 안에 넣어요.”

윤조의 박살 난 몸이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가자마자 인공 양수가 차올랐다. 덮개를 닫기 전 심 박사는 거대한 바늘을 윤조의 망가진 몸 여기저기에 찔러넣었다.

“김윤조, 죽지 마. 버텨. 알겠지?”

흔들리는 인공 양수의 저쪽에서 심 박사가 윤조를 향해 말했다.

-네. 박사님.

윤조의 대답은 인큐베이터 패널 화면에 떴다.

인공 양수만으로도 느린 재생이 시작되었다. 재생 전용 약물이 투입되고서는 바이털 사인의 붕괴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재생이 별 탈 없이 진행된다는 신호였다. 그러는 중에도 특수 위성과의 연결은 끊기지 않았다.

“다른 기관이 다 파괴되어도 뇌만 남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거군.”

심나연이 냉정하게 파악했다. 김윤조의 뇌는 현재 특수 위성과 동조 중이었다. 미세 조정은 시작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더 분석을 해 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생명 유지 프로그램이 특수 위성의 시동 절차를 건너뛴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그 덕분에 막대한 시간과 자산을 들여 간신히 완성한 프로토타입을 허망하게 잃는 일은 피했다.

재생 프로그램이 안전하게 작동하도록 프로그램을 맞춘 후 심나연은 뒤를 돌아봤다. 강수혁은 어느새 기절한 상태였다.

“박사님, 강수혁 소령은 어떻게 할까요?”

“격리실로 옮겨요.”

“강수혁 소령님에겐 소용없을 텐데요.”

에스퍼를 구속하기 위한 격리실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통상의 에스퍼에게만 통하는 수단이었다. 강수혁은 여러모로 규격 외였다.

“당분간 얌전할 겁니다. 저도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심나연의 말대로 강수혁은 격리실에서 눈을 뜬 후에도 부수고 나오는 대신 가만히 있었다.

“충격을 받긴 했겠지.”

CCTV를 통해 강수혁의 동태를 살핀 심나연은 조소했다.

특수 위성에 남은 첫 가이딩 기록을 샅샅이 훑었다. 분석하던 중 심나연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김윤조의 보복은 정말로 대단했다.

가이드는 에스퍼의 뇌파에 동조하여 흥분과 고통을 경감시키고 침착함과 이성을 돋우도록 설계되었다. 즉, 에스퍼의 감정과 감각을 외부에서 조정하는 인간 모습의 리모컨이었다.

반대로 동조 시스템이 있는 한 가이드는 필연적으로 에스퍼에 깊게 공감할 수밖에 없어 그 정도가 지나쳐서 군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가이드와 연결된 특수 위성 AI 내에 비상 제동 장치와 비슷한 수단을 마련해 두었다. 하지만 그걸 사용할 일은 요원해 보였다.

“김윤조가 너를 동정하기는 글렀다. 네 유일한 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잃었어. 멍청한 새끼.”

격리실 안 바닥에 가만히 누운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는 강수혁을 보면서 심나연은 냉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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