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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포인트 (10)화 (10/256)

10화

윤조의 요청에 강수혁이 얼굴을 더 구겼다. 동시에 그의 성욕 패턴이 약해지고 분노와 짜증 패턴이 도드라졌다.

“네가 이렇게 구니까 덜떨어진 새끼들이 뒤에서 너를…….”

상대의 냉랭한 어조가 중간에 뚝 끊겼다.

“저를 뭘 말입니까?”

윤조는 짐짓 모르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인간의 힘으로 개조한 가이드의 존재를 거리끼는 부류가 있다. 이질적인 존재인 가이드가 많은 에스퍼 중에서도 하필 갖은 악명을 떨치는 강수혁과 함께 다닌다.

강수혁을 싫어하는 일반인 출신 장교들과 더불어 가이드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에스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뒤에서 욕을 했다. 입이 건 군인들이라 표현도 저열하고 지저분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대략 짐작했지만, 윤조는 강수혁이 직접 뒷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상대는 어금니만 사리물 뿐 말을 잇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이었다.

“강……망나니 전용 걸레?”

강수혁의 광대가 씰룩거렸다. 냉기를 뿜어내는 눈빛과 함께 턱관절이 미미하게 떨렸다. 뚜껑 열린 게 확실했다.

-위험. 폭력 충동 증가. 에스퍼 강수혁과 안전거리를 유지하십시오.

특수 위성이 경고했다. 직접적으로 감정을 전달받는 뇌파 동조 대신에 음성 보고여서 이성을 유지하기 수월했다.

하지만 윤조는 AI의 권고와 정확하게 반대로 움직였다. 피하는 대신 오히려 강수혁에게 더욱 밀착했다. 한 대 치면 아파 죽는 척하면서 바로 패널티를 부과할 심산이었다. 한 500%쯤. 그러면 이번 안정화 과정은 생략해도 될 거다.

도발적으로 턱을 치켜든 윤조가 다시 물었다.

“아니면 강지랄 전용 변기입니까.”

까맣게 가라앉았던 상대의 홍채에 언뜻 오팔색 이채가 비쳤다. 숫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대는 수준이었다.

망나니에 지랄이라는 별명이 그렇게 열 받을 정도인가. 본인이 한 짓에 비하면 귀엽고 깜찍한 표현인데. 듣기 싫으면 평소에 행실을 똑바로 하든가.

들어서 기분이 좋을 건 없으나 그렇다고 예민 떨면서 입에 올리지도 못할 말은 또 아니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무뎌졌는지 새삼 기분 나쁠 일도 없다. 엄밀히 말해 사실이기도 하고.

-분노, 의문, 가학, 성욕, 짜증.

바뀐 뇌파 패턴을 특수 위성이 바로 알렸다. 모호한 충동이 확실한 욕구로 바뀌면서 항목에 ‘성욕’이 떴다.

‘그런데 아까부터 뭐가 그리 궁금한 거지?’

분노에 이어 의문이 두 번째로 올라왔다.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지금은 도발에만 집중하는 편이 좋다.

-경고. 안전거리를 유지하십시오.

특수 위성이 재차 권고했다. 그리고 윤조는 또 무시했다.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기 쉬운 에스퍼 강수혁을 제어하고 교정하는 것이 가이드 김윤조에게 부과된 핵심 임무였다. 한마디로 미친개 길들이기.

이미 도발에 들어간 상태에서 어설프게 달래다가는 도리어 이쪽이 물려 죽는다. 상대가 파격적인 행각을 선보이는 미친놈인 이상, 배려와 양보 따윈 있을 수 없다.

이건 오로지 전진만 있는 전투다. 한번 싸움을 걸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야 한다. 이러다가 진짜로 물리면? 그거야말로 아까부터 김윤조가 바라던 바였다.

‘열받지? 그렇지? 자, 얼른 한 대 치고 패널티 맞자, 강수혁아. 우리 편하게 가자. 응?’

윤조는 도리어 얼굴을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입술이 닿을 거리였다. 시건방져 보이도록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대답 안 하시니, 그런 줄로 알겠습니다.”

계속 가만히 있으면 이번에는 아주 입술을 깨물려고 했다. 하지만 거기까진 허용할 수 없는지, 크고 강한 손아귀가 별안간 윤조의 입 양쪽을 거머쥐었다.

하얀 뺨이 짓눌려 오리 입술이 되었다. 웃긴 낯짝일 텐데. 강수혁의 눈빛에선 어떤 조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너, 뚫린 입이라고 다인 줄 아는 모양인데.”

겉과 속 모두 차분한 윤조와 달리 속에선 내내 태풍이 불고 있던 강수혁은 드디어 겉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이대로 턱뼈를 부술 수도 있어. 턱뼈가 없으면 망할 입을 좀 닥치겠지.”

강수혁은 그럴 힘도 있고 그런 전적도 있다.

‘좋아. 이제 쳐, 치라고.’

윤조는 신경 차단이 가능했다. 턱이 부서지자마자 통증을 차단하고 패널티를 가한다. 그러면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은 오로지 강수혁만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오늘따라 미친개가 평소답지 않았다. 뒤늦게 학습 능력이라도 생긴 건지, 턱을 거머쥔 손아귀에서 힘이 점차 빠져나갔다.

-분노, 성욕, 가학, 짜증, 의문.

-성욕, 가학, 분노, 짜증, 의문.

성욕이 제1 감정이 되었다. 상대의 턱이 꿈틀거렸다. 비틀린 입술이 벌어지더니 결국 욕설이 튀어나왔다.

“시발.”

낮은 욕설과 함께 강철 같은 손이 윤조의 허리에 감겼다.

내내 미적거리면서 빼던 놈이 결국 윤조가 가장 바라지 않던 쪽을 선택했다. 하여간 개새끼. 작은 것 하나 도움이 된 적이 없다.

턱을 잡은 손은 윤조의 얼굴을 우악스레 앞으로 잡아당겼다. 희멀건 얼굴이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뒤로 넘어갔다. 반사적으로 입술이 벌어졌다.

빠끔 벌어진 입술 사이로 옅은 한숨이 샜다. 입 안이 좁아진 덕에 살짝 불거지며 통통해진 혀 위에 마른 공기가 스쳤다.

뜨거운 시선이 윤조의 입술 사이로 내려앉았다. 뺨을 누르는 힘이 조금 강해졌다. 상대의 혀가 금방이라도 안 속으로 깊숙이 침범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수혁은 윤조의 입속을 강렬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그게 다였다. 할 거면서 왜 또 미적대고 지랄인지 모를 일이었다.

마른 공기에 윤조의 혀가 시시각각 말랐다. 목구멍마저 불편해지기에 윤조는 반사적으로 혀를 움직였다. 목구멍도 움찔거렸다.

별안간 뭔가 입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검지와 중지였다. 강수혁은 두 손가락을 보아 윤조의 혓바닥 중심을 꾹꾹 눌렀다. 그러면서 뺨을 쥔 손아귀에 힘이 살짝 빠졌다.

옅은 구역질이 올라온 덕분에 윤조는 눈매 끝을 일그러뜨렸다. 혀가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밀어냈다. 침샘이 자극을 받아 입 안이 금세 축축해졌다. 그래서 혀에 힘을 줄 때마다 젖은 소리가 났다.

추웁. 춥.

“…….”

강수혁의 표정이 더 냉랭해졌다. 가늘어진 눈매에서 나온 날카로운 시선이 윤조를 사정없이 찔러 댔다.

혐오스러운 시선과 달리 허리에 감긴 상대의 팔은 쇠 파이프처럼 윤조를 강하게 조였다. 자연스럽게 상대와의 접촉이 진해졌다. 군복을 걸친 다리가 헐벗은 허벅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음경 끝이 거친 군복에 쓸렸고 딱딱한 무릎에 고환이 짓눌렸다.

“흐음.”

성기를 자극당한 윤조는 눈을 감으며 옅은 콧소리를 냈다.

불필요하게 예민한 피부는 약한 접촉으로도 쓰라림을 쉽게 느꼈다. 그러자 윤조의 뇌 속에 있는 가이드 프로세서가 통증을 완화하는 각종 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했다. 통증 완화를 위한 호르몬은 대게 고양감을 가져온다. 더불어 고양감은 성적 흥분으로 쉽게 연결되곤 했다.

성폭행에 지나지 않는 짓거리에 흥분하는 제 몸뚱이가 구역질 날 정도로 싫었다. 하지만 이 혐오스러운 과정을 견디기 위해 윤조는 호르몬에 의존해야만 했다.

-성욕, 가학. 흥분도가 계속 상승합니다.

콧소리 좀 냈다고 가학 성향을 지닌 미친개가 더욱 흥분했다.

몸을 옭아맨 팔에 힘이 들어갔다. 가슴이 조이면서 금방 숨이 찼다.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자 뇌가 윙윙 울렸다. 눈살이 찌푸려졌고 콧소리에 통증으로 인한 신음이 섞였다.

“…….”

입술을 붙인 채로 강수혁이 뭐라고 읊조렸다. 험악한 음조로 추정컨대 욕설 혹은 저주였다. 그의 반응을 기록하는 동안 윤조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털썩.

옅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침대 위로 떠밀린 윤조의 나체 위로 강수혁이 사지로 기어 왔다. 그렇지 않아도 빛이 거의 들지 않는 방의 음영이 한층 짙어졌다.

강철 골조 같은 두 팔이 윤조의 양 귀 옆에 각각 박혔다. 윤조는 숨을 죽이고 저를 굽어보는 남자를 응시했다. 싸늘한 눈동자에 오팔색 이채가 떠올랐다가 곧 사라졌다.

강수혁이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도발은 이제 무용지물이었다. 되도록 곱게 입을 닥치고 편이 신상 유지에 이롭다. 윤조는 얼굴에서 감정을 지웠다.

강수혁은 천천히 한쪽 손을 들어 윤조의 가슴을 덮었다. 어루만지는가 싶더니 손끝에 유두가 걸리자마자 엄지손톱으로 유두 끝 갈라진 틈을 강하게 긁었다.

“읏.”

여린 살이 단번에 벗겨졌다. 호르몬에 흠뻑 젖어 몽롱한 중에도 꽤 따끔했다.

강수혁이 상처 낸 유두를 마른 엄지로 다시 문질렀다. 쓰라림이 한층 심해졌다.

윤조는 아픔을 무시하고 시선을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강수혁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냉랭한 눈동자에서는 가학 성향이 비쳤다. 윤조의 등골 쪽 솜털이 일어섰다.

유두를 짓이기듯 문지르던 손길이 멈췄다. 강수혁은 제 엄지를 들어 빤히 봤다. 첫 마디가 온통 붉은색이었다. 윤조는 고개를 살짝 들어 제 가슴을 살폈다. 유륜 주위로 피가 묻어 있었다.

할짝.

강수혁이 혀끝으로 제 엄지를 핥았다. 맛을 음미하듯 혀를 입 밖으로 내어 입술까지 핥던 그는 시선을 내려 피가 흐르는 유두를 빤히 응시했다. 그때 윤조는 강수혁이 제 유두를 핥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유두에서부터 명치, 배꼽을 지나 사타구니까지 이어졌다. 호르몬의 작용과 강수혁이 가한 가학적인 자극의 연계 덕분에 윤조의 음경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반쯤 일어선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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