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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포인트 (3)화 (3/256)

3화

삐삑.

통신 신호가 들어왔다. 응답하자마자 작전 책임관 최정 대령이 외쳤다.

-김윤조, 지금 무슨 지랄 중이야? 다른 병사 보고에 총격 소리가 들린다는데?

“이세명 대위가 슬라임을 상대로 실탄 사격 중입니다. 머드형 말입니다.”

윤조는 습관적으로 민간 명칭을 사용했다가 이내 군 내에서 사용하는 정식 명칭으로 정정하여 보고했다. 그러자 최정이 발작했다.

-아니 머드형은 진동 감지 능력이 있다는 거 몰라? 실탄 발포하면 여기 나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꼴인데. 미친 새끼! 시발! 누가 그 새끼에게 실탄을 줬어?

“본인이 챙겼습니다.”

-어휴 미친 새끼!

붉은 점이 푸른 점에 거의 닿았다.

전투복에 기본 방어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고 외계 생명체와의 물리적 접촉은 금물이었다. 잠시 잠깐이면 몰라도 접촉 시간이 길수록 전투복이 견디지 못하고 녹기 때문이었다. 특히 슬라임 괴물이라고 칭하는 머드형이 더 그랬다.

80년 전.

대규모 게이트 집단이 발생했다. 대륙과 대양을 가리지 않고 전 지구상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게이트는 강력한 방사능을 뿜었다. 높이로는 위성 궤도상에 주로 분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권역 내 생명체에 방사능 피폭이라는 큰 악영향을 미쳤다.

거기다가 게이트는 점점 지상과 가까워졌다. 현재는 성층권에서 주로 발생했다. 아직까지 오존층이 버티고 있긴 하다. 하지만 게이트 발생 빈도가 높아질수록 오존층도 얇아져서 지상에 닿는 우주 방사능의 농도 또한 짙어졌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열렸다가 닫히는 게이트가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형태를 유지하는 게이트도 있었다. 그런 게이트는 말 그대로 우주 저 어딘가와 시공간을 연결했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차원의 문을 통해 초대한 적이 없는 이형(異形)의 지성체가 나타났다.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게이트를 열고 지구까지 왔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들과 교신은 여태껏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들의 존재가 지구 생명체에 치명적이라는 점만은 확실했다.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방사능을 뿜고 있으니.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불가한 외계 지성체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곧 외계인에서 ‘괴물’로 바뀌었다.

외계 괴물은 총 세 가지로 분류되었다. 초고층 빌딩을 능가하는 거대한 크기의 자이언트(G)형, 웬만한 전투기 크기에 실제로 날아다니는 플라이(F)형, 그리고 땅을 기며 점액질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머드(M)형이었다.

머드형은 인간 크기에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체였다. 뼈대는 있으나 피부와 내장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늪에서 솟아오른 진흙 괴물이 계속 녹아내리는 형상이었다. 악취에 기괴한 파동을 발하는 슬라임 같아서 보통은 슬라임이라고 불렀다.

진동에 민감한 그들은 강한 진동을 발생시키는 능력도 있었다. 그들이 발하는 초고주파를 발생하면 인간은 산채로 전자레인지에 돌려지는 신세가 된다.

무수한 희생 끝에 파동을 무력화할 대(對) 머드형 역 파동 생성기가 만들어졌고,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운용 중이다. 게이트 소멸과 외계 괴물 소탕을 주목적으로 설립된 특수작전사령부에도 넉넉하게 있다.

그런데 이세명의 조용한 관광 모드를 예상했기에 순찰팀은 그런 중화기는 준비하지도, 애초에 가져올 생각도 안 했다.

게다가 불길하게도 이세명의 권총이 아까부터 잠잠했다.

‘드디어 진정했나?’

움직일 생각으로 윤조는 특수 위성이 보낸 적외선 화면부터 확인했다. 붉은 형체의 이세명은 미친 사람처럼 격발 장치를 계속 당겼다. 안 쏘는 게 아니라 쏴도 발사되는 총알이 없는 상태였다. 윤조는 최정 대령에게 통신했다.

“이세명 대위의 탄약이 떨어졌습니다. 권총도요.”

-아니 그럼 자기 거기 있다고 난리 발광 쳐 놓고 빤스도 없이 홀라당 다 벗는 격이잖아! 당장 역파동기 보낼게. 그때까지만 버텨 봐. 그 새끼 죽으면 우리 모두 모가지야.

“늦을 것 같은데요.”

윤조가 시니컬하게 답했다. 역파동기를 풀 충전해서 시동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린다.

느릿느릿한 머드형은 이세명을 중심으로 이미 위험한 위치까지 이동한 상태였다. 진정하고 조용히 움직여서 콘트리트 파편 사이를 빠져나오면 될 것을. 이세명 새끼는 쥐덫이나 다름없는 틈 사이에서 버티고 있었다.

[빨리 오라고 이 시발 족 같은 반 괴물 새끼들아! 전투복 배터리가 떨어지고 있다고오! 전투복 배터리 나가서 방사능 오염되고, 그래서 내 장래 아들이 기형아 되면 너희가 책임질 거야아? 내가 우리 집안 삼대독자라고오오!]

이세명이 쉬지도 않고 고함쳤다. 무섭긴 무서운지 끝말이 길게 늘어졌다.

“아주 우네, 울어.”

윤조는 혀를 찼다. 저런 머저리 때문에 가이드 시스템을 사용하는 자체가 낭비였다.

“삼대독자면 사리고 여물고 다니지. 왜 나대서는. 후. 저런 놈 구하자고 목숨 걸고 가이드가 된 거 아닌데.”

혀를 차며 투덜거리면서도 윤조는 접근 루트를 가늠했다. 하지만 권총 하나로 돌파할 구석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이세명 하나로도 짜증 나는데, 이 상황을 불러온 또 다른 유책임자가 성화였다.

-저 새끼가 하는 말대로 뒈지거나 어디 크게 다치면 다 같이 죽는 거야. 에스퍼 새끼들은 협조 요청에 눈 하나 깜짝 안 해. 건방진 새끼들. 계급도 낮은 주제에. 상관의 명령을 뭘로 아는 거야.

최정은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이번 ‘투어’를 기획하고 실행한 사람은 최정 대령 본인이었다. 실제로 모가지 된다고 해도 최정 대령의 목만 잘릴 확률이 높다.

콧대 높은 에스퍼들은 아무리 상관이라도 일반인의 명령을 원래 잘 안 듣는데 하물며 거지깽깽이 같은 머저리 관광에 관심이 있겠는가. 이세명이 이 자리에서 형체도 남기지 않고 뒈져서 특작부가 발칵 뒤집힌다고 해도 에스퍼들은 숙소에서 낄낄대며 웃기만 할 거다.

울기 직전인 건 이세명 뿐만이 아니었다.

-잘리면 우리 와이프 병원비는 어떡하고. 방사능 치료비 감당 안 되는데.

들으란 듯이 크게 내지른 최정의 혼잣말이 통신을 타고 윤조에게 잘 전달되었다.

‘부인이 피폭되었나? 처음 들었는데.’

피폭되면 멀쩡한 DNA가 파괴되고 세포가 이상하게 재생되어 암으로 변한다. 죽을 만큼 고통스럽고, 실제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일정 이상 방사능에 피폭되면 치료도 불가능해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는 수밖에 없다.

더불어 피폭 치료는 돈이 많이 든다. 아무리 군인 보험으로 커버해도 최신식 의료는 비급여인 경우가 많았다.

-시발. 인생 왜 이렇게 꼬이냐.

최정 대령의 목소리에 피곤함이 실렸다. 짙은 절망과 무력감도 함께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 딸, 이제 입시 준비 중인데. 대학 학비는 어떡하고.

감 잡았다. 분명히 윤조의 동정심을 자극하려고 일부러 꺼낸 말이다. 넘어가선 안 된다.

-엄마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진짜. 확인도 없이 덜컥 넘어가선 안 되는데. 눈을 질끈 감고 통신을 끄려는데 최정이 최후의 한마디를 날렸다.

-우리 마누라와 딸내미는 내가 책임져야지. 불명예제대를 해도 퇴직금을 약간은 건질 수 있을 테니까.

아. 시발. 윤조는 하늘을 보며 원망했다. 왜 이런 짓거리에 끼어든 걸까.

-김윤조, 고마웠다.

온갖 치졸한 짓을 다 하는 최정이지만, 그래도 이세명 때문에 온 가족이 풍비박산 나게 둘 수는 없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그래도 최정 대령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경질될 가능성은 농후했다. 그렇지 않아도 온갖 꼴통 소굴인 특작부에 또 어떤 꼴통이 낙하산 타고 내려올지. 상상만 해도 골이 아프다.

큰 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하던 짓 딱 한 번 더 하는 거다. 잃을 건 없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윤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후의 수단이 있긴 합니다만.”

-있어? 뭔데?

최정 대령이 대뜸 반색했다.

‘이렇게 나올 걸 알고 있었어. 이 여우 같은 아저씨.’

일반인으로 오로지 정치력과 작전기획력 하나로 특작부 대령까지 오른 중년 남자는 뻔히 알면서 모른 척하는 데 선수였다. 얄밉지만 고작 이런 일로 좌천되는 건 또 싫었다. 정확하게는 최정 자체가 아니라 최정을 새로운 누군가가 대체하는 상황이 싫다. 또 이세명 같은 놈이 오면 어떻게 하나.

“이세명이 죽으면 저도 곤란해집니다. 이창규 의원이 가이드 프로젝트 반대파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저와 대령님은 한배를 탔다고 봅니다.”

-그래! 그거야! 내 마음을 딱 알아주는 사람은 역시 김윤조밖에 없다니까. 그래서? 에스퍼 호출할 거지? 위성으로 신호 한 번 딱 쏘면 알아서 나타나게 되어 있잖아.

가이드라는 개념이 탄생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또 개발 완료하여 실전 배치된 가이드는 지극히 드물었다. 현재 북미. 유럽을 제외한 권역에서는 김윤조가 유일했다. 그러다 보니 온갖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통용되었다. 심지어 윤조가 있는 특작부 내에서도.

“아뇨. 저는 그럴 능력 없습니다.”

윤조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럼? 에스퍼 안 부르면? 네가 육탄 공격하게?

“그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제가 날고 기어도 혼자서 권총 하나로 슬라임 다수를 어떻게 상대합니까. 자살 행위입니다.”

-어쩌려고?

최정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재촉했다. 윤조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물었다.

“오늘 강수혁 소령님, 비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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