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 (2)화 (2/256)

2화

01. 광견(狂犬)

[헉! 헉!]

거친 숨소리가 수신기를 타고 청신경을 자극했다. 모발과 같은 검은 색으로 염색한 미려한 눈썹이 꿈틀거렸다.

윤조는 이 상황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3일 전 구멍에 미친 개자식에게 다리를 벌린 여파가 아직 남아 컨디션이 별로였다. 오늘은 모처럼 비번이라 오늘은 종일 심나연 박사의 도움을 받아 컨디션을 끌어올릴 예정이었다.

막 심 박사의 연구실로 향하던 도중에 직속 상관인 최정 대령의 호출을 받았다. 어느 멍청이를 한심한 작전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고 팀에 합류했다. 하물며 에스퍼 하나도 없이 일반인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즉, 윤조가 낄 필요도, 낄 이유도 없는 인연 없는 팀이었다.

[빨리! 빨리 구출하라고!]

아까부터 울리던 거친 숨소리의 주인은 현재 무너진 아파트 단지 사이 어딘가에 몸을 숨긴 상태였다.

원래 대로라면 위성의 지원을 받아 상대와의 위치와 거리가 명확하게 나온다. 하지만 이 작전은 제대로 된 작전이 아니었기에 사령부의 귀중한 자산을 함부로 동원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내부 증거를 남기면 안 되는 작전이었다.

‘실상 작전도 아니지. 군 자산을 사적으로 유용한 거니까.’

윤조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삼켰다. 그러곤 통신을 열었다.

“이세명 대위님. 거기가 어딥니까?”

[몰라, 이 개새끼야! 네가 나를 찾아야지!]

핀치에 몰린 채 구조를 기다리는 주제에 이세명은 대단히 강압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로에 수렴하던 작전 수행 의욕이 마이너스로 내려갔다.

가벼운 순찰이라고 들어서 중화기를 두고, 가벼운 개인 무장만 해서 나왔다. 실상 손에 든 권총이 무장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했다. 처음부터 공중 순찰만 계획했기에 헬기에서 내릴 생각도 없었다. 저 망할 새끼가 착륙하자고 우기지만 않았다면.

“휴.”

유달리 붉은 기가 도는 입술 사이로 짜증 섞인 한숨이 샜다. 곧게 뻗은 단정한 콧등과 흰 미간엔 작은 주름이 새겨졌다.

타타타탕!

예고도 없이 실탄 사격 소리가 울렸다.

“미친 새끼가.”

최악의 대응이었다.

“진정하십시오, 이세명 대위님. 의미 없는 난사는 위치만 노출 시켜 이쪽에게 불리합니다.”

[시발, 이 새끼야! 내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는 거야? 내 전투복 배터리가 사망 직전이야! 시발!]

흥분한 상대는 윤조를 향해 윽박질렀다.

전투복 배터리는 완전 충전 한 번으로 열흘 이상 유지된다. 뭘 어떻게 관리했기에 고작 두 시간도 안 되어 배터리가 떨어지는 건가. 무겁다고 배터리를 간이용으로 갈지 않았다면 말이다. 물론 저 등신 머저리 새끼는 최경량 배터리로 바꾸었을 거다. 죽으려고 용을 쓰지. 망할 새끼.

[빌어먹을 개조 새끼들! 나는 자연 인간인데 죽게 내버려 둘 거냐고! 왜 안 와! 싹 다 영창에 집어넣어서 대가리를 싹 다 새로 맞춰야 해! 으아아아아!]

원래 징그러울 정도로 능글맞은 성격으로 알려진 이세명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상황이 정말로 안 좋긴 한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여기는 강진시(市) 한복판, 게이트 발생 사고 이후 아직도 구축(驅逐)작업과 제염 작업이 한창 진행되는 오염 구역이었다. 한마디로 방사능을 뿜어대는 외계 괴물이 돌아다니는 최고 위험 구역이었다.

뒤이어 총격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시발.”

뇌가 없는 새끼는 멍청한 짓만 골라서 했다.

굳이 시찰을 돌겠다고 우긴 놈도 저 새끼고 헬기를 굳이 착륙시킨 것도 저 새끼였다. 그리고 파동에 민감한 외계 괴물이 우글거리는 위험 지대에서 의미 없이 총을 마구 쏴대는 새끼도 저 머저리다.

[으아아악! 괴물이 나타났어! 괴물이!]

‘괴물 천지인 곳에서 실탄 사격을 하니 그 꼴이 되는 거다. 자기 위치 알리려고 용을 썼으면서 새삼.’

총성으로 윤조 또한 이세명의 대략적 위치를 파악했다. 하지만 콘크리트 더미를 일일이 뒤질 생각은 없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두 사람이 소속된 특수작전사령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만큼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윤조가 임의로 유용할 수 있는 수단이 있긴 했다. 개발 비용으로 수천억이 소요된 초대형 군사 기밀 프로젝트의 산물이자 괴물만큼이나 위험한 에스퍼라는 새로운 종(種)을 제어할 인류 최후의 수단이.

윤조는 눈을 감았다. 뇌 안에 장착한 프로세서를 활성화했다.

삐삐삐.

-G0001-pt 준위 김윤조. 시스템 준비 완료.

가이드 시스템이 켜졌다.

-반경 1km 스캔.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윤조만이 접속, 사용 가능한 가이드 전용 특수 위성이 뇌 내 명령을 받고 강진시 일대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삐삐삐.

스캔과 동시에 윤조의 뇌 신경과 바로 연결된 전투용 헬멧 화면에 형광색 라인과 마크가 어지럽게 떴다.

-응급 : SOS

투명한 화면 구석에는 붉은색 긴급 마크가 계속 점멸했다. 한쪽에 있는 파란 네모를 중심으로 집중선이 계속 이어졌다. 구조 대상인 이세명 대위의 위치였다.

움직이기 전 흥분한 상대를 진정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그렇지 않으면 구조 작전을 시도하기도 전에 이세명이 죽을 거다.

“사격을 중지하십시오, 대위님.”

[시발 닥쳐! 너는 나를 구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시발 새끼야!]

지금 누가 시발 새끼 짓을 하고 있는데. 윤조는 인상을 썼다. 목숨이 오가는 배틀 필드에서 멍청한 짓을 하면 계급이고 뭐고 다 떠나 쌍욕부터 박고 본다. 그렇게 살려 놓으면 대부분 윤조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생명의 은인이니까.

하지만 뒷배가 너무 큰 저 낙하산은 그런 놈이 아니었다. 분명히 항명에 상관 모독이라며 더럽게 나올 거다. 윤조는 울컥 올라오는 욕설을 꾹꾹 눌렀다.

“진정하셔야 제가 접근 가능합니다.”

흔들리는 이성을 가다듬으며 충고했다.

이세명은 콘크리트 파편 사이에 숨어 있어서 거기까지 접근해야 하는데, 주변에 외계 생명체가 너무 많아서 어려웠다.

[시발 누가 너더러 내 쪽으로 오래? 개새끼야. 저 새끼들은 네가 암내만 풍겨도 썩은 좆 벌떡 세우고 달려들잖아, 이 괴물 남창 새끼야? 당장 팬티 벗고 가랑이 안 벌려?]

저열한 욕설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세명이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외계 괴물은 일반인보다 에스퍼의 존재에 민감했다.

에스퍼의 어떤 점이 괴물을 자극하는지는 아직 불명확했다. 단 일반인과 에스퍼 둘이 떨어져 있으면 괴물은 백 퍼센트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에스퍼 쪽으로 향한다. 해당 에스퍼가 일반인과 별반 차이가 없는 D급이라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에스퍼 중 최강 개체의 DNA를 이용하여 개조한 가이드인 윤조에게도 외계 괴물은 강하게 반응했다.

‘근데 저놈들에게 좆이 있나?’

기분 나쁜 욕설을 곱씹던 중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피부가 흘러내려 꼭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슬라임같이 생긴 외계 생명체에 성기가 있는지는 명확지 않다. 아니 성별이 있는지도 불명이다. 내부 핵을 파괴하면 살점으로 추정되는 유기체는 다 녹아 버리고 뼈만 남기 때문이었다.

타타탕…….

반자동 소총 사격이 끊겼다.

이세명 대위의 실탄이 드디어 떨어졌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탕! 탕!

권총 사격이 이어졌다.

‘쏘지 말라니까. 저 덜떨어진 새끼. 그냥 뒈지게 둘까?’

[개새끼야! 너 나 죽게 내버려 두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속으로 한 욕설인데도 들린 모양이었다. 일반인으로 아는데, 혹시 텔레파시 능력자인 걸까.

[내가 누군지 알아?]

이세명이 통신을 통해 또 발광했다.

안다.

이세명 대위.

인성 파탄자에 전술 수행력은 고만고만하고 품행도 추잡하다. 딱히 전략 계통에 재능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상관이나 부하와 관계가 좋지도 않다. 장교로서 기본적인 통솔 능력도 마이너스에 가깝다. 그런데도 대위가 되어서 엘리트 중 엘리트인 특수작전부대의 오퍼레이터로 이름을 올린 건 다름 아닌 여당 대표 이청규의 고명 아들이라는 뒷배경 때문이었다.

거물 정치인 이청규 대표는 국회 법안 제정과 예산 편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동시에 ‘지구 순수주의자’로서 강화 인간에게 특히 가혹한 태도로 유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강화 인간이 모인 특수작전사령부에서는 늘 모자란 예산을 확보하느라 그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깜도 아닌 망나니 주제에 오로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군내에서 알아주는 엘리트 집단인 특수작전사령부의 간부가 되었다. 어떻게든 이청규와 잘 지내보려는 특작부의 눈물겨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발톱만도 못한 무지렁이 이세명은 툭하면 사고를 쳤다.

원래 위험한 야전에 이세명 같은 짐 덩어리를 데려가진 않는다. 하물며 막 잔여 게이트가 닫힌 작전 필드는 말해 입이 아팠다.

문제는 멍청한 이세명이 외계 생명체의 실물을 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점이었다.

“아버지가 강진시 상황이 어떤지 저더러 직접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그런 사실이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설사 이청규가 정말로 이세명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할지라도, 각종 법률을 위반하는 월권행위였다. 하지만 최정 대령은 기고만장한 부하의 고집에 어깃장을 놓을 배짱이 없었다.

괴물 두어 마리 정도는 에스퍼가 없이도 혼자서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는 막상 최하급인 슬라임 괴물이 나타나자마자 놀라서 숨었다.

겁쟁이면 겁쟁이답게 겁에 질려 떨기만 하면 좋으련만, 꼴에 알량한 자존심은 또 넘쳐서 총을 쏴 댔다. 이청규는 자식을 어떻게 키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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