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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주 포인트 (1)화 (1/256)

1화

00. 프롤로그

“아 씨! 김윤석! 또 내 양말 신었어?”

제 방문을 연 윤조가 집 안을 향해 소리를 왈칵 질렀다. 거실 소파 앞에 주저앉아서 사과를 깎으며 TV를 보던 엄마가 고개를 들었다.

“왜애?”

“아 씨. 윤석이 새끼가 또 내 양말 신고 처박아 뒀잖아! 오늘 나갈 때 신고 갈 거였는데.”

윤조는 매번 제 물건을 탐내는 쌍둥이 형을 규탄했다.

재수 없는 범인 새끼는 소파 한구석에 구겨져 앉아 히죽 웃었다. 스무 살이나 처먹어 놓고는 비리비리한 몸을 웅크리며 엄마가 깎아 주는 사과를 게으르게 받아들었다.

고작 한 조각.

스무 살 남자라면 입에 한 번에 처넣고 우적우적 씹어도 모자랄 판에 윤조 눈치를 보면서 무슨 요조숙녀처럼 깨작거린다.

재수한다더니. 아직 점심때인데 독서실에 있지 않고 집에서 노닥거리는 꼴을 보니 공부는 벌써 때려치운 모양이었다. 병신 새끼.

“시…….”

“아니 윤조 너! 형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욕을 써?! 그깟 양말 다른 것도 많잖아!”

끝말을 다 잇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귀신같이 알아듣고는 과일 깎던 과도를 공중에 휘두르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쌍둥이로 10분 차이도 안 나게 태어난 주제에 형은.

“이건 다른 거라고요. 아 씨. 하필 꼭… 개새끼.”

“야! 김윤조!”

“아, 몰라요!”

윤조는 그런 엄마를 외면하면서 맨발을 스니커즈에 구겨 넣었다. 다른 양말을 가지고 고민하기에는 아르바이트 면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디 가는데?”

“몰라요. 학교요.”

엄마의 물음에 윤조는 스니커즈 끈을 매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요즘 게이트가 수시로 열리잖아. 휴일인데 웬만하면 집에 있어.”

“무슨 게이트가 서울 한복판에 열려요. 방어 시스템 있는데.”

“그래도. 너 엄마 친구 미애 아줌마 알지? 그 아줌마 딸이 가까운데 여행 갔다가 갑자기 게이트 열려서 죽었어.”

“아, 백 번 들었어요. 귀에 딱지 앉겠네.”

스니커즈를 신은 윤조는 몸을 일으키고 바지 맵시를 정리했다.

“알면서 왜 나가.”

“걔들은 무단으로 방어 시스템 밖으로 나갔다가 당한 거잖아. 나는 학교 간다니까요. 세연대. 우리 학교 어딨는지 몰라요?”

도시 한복판에 있는 윤조 모교의 위치를 엄마가 모를 리가 없다. 국내 최고의 대학은 아니라도 어디서든 자랑스럽게 내뱉을 정도의 등급은 되는 상위권 대학이다. 하지만 윤조에게는 썩 마음에 차지 않는 곳이었다. 집에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밀어줬다면 한국대도 가능했을 거라는 입시 상담 선생님의 말이 아직 응어리로 남은 탓이다.

“그리고 내 전공 방어공학이잖아.”

고작 한 학기 들은 전공 핑계에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위험할 거면 집이 더 위험해. 여기 방어 시스템, 재구축해야 할 만큼 낡았고 우리 학교 근처는 최신 특수 시스템까지 있어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세운 방어 시스템은 상당히 오래된 구형 모델이었다. 얼마 전에 지자체장 선거에서 구청장이 방어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었다. 업그레이드 사업이 늦어도 올 연말에는 시작될 거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에 비하면 유명 대학인 윤조의 모교는 주변 다른 대학과 연계하여 일대에 항상 최상의 시스템을 유지했다. 비상사태가 터지면 인근 주민들이 모조리 학교로 대피하도록 하는 지침도 있을 정도였다. 애초에 삼중 방어 시스템을 구축한 대도시 한복판에서 비상사태가 터질 이유가 없지만 말이다.

“늦어요.”

“너, 그러고 나가? 어? 너 형한테 사과 안 해? 나중에 아빠한테 이를 거야.”

뒤늦게 엄마가 뒤에서 잔소리를 덧붙였다. 그러든 말든 윤조는 아파트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쾅.

철제문이 거세게 닫혔다.

“무슨 게이트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려. 기왕 열릴 거면 쓰레기 같은 김윤석이나 잡아갔으면 좋겠네.”

윤조는 저주를 퍼부으며 마을버스가 오는 정거장까지 사나운 발걸음으로 향했다.

퍽!

“아윽!”

거센 몸짓 한 번에 과거를 헤매던 윤조는 별안간 현실로 돌아왔다.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도, 짜증 나는 형도 없는 현실로.

조명이 꺼진 어두운 호텔 객실 안.

킹사이즈 침대 위에 누운 윤조 위에 거대한 인영이 올라탔다. 키는 크지만 약간 마른 편에 속하는 윤조와는 차원이 다른 우람한 체격이었다. 울퉁불퉁 솟아오른 근육을 가진 만큼 굉장한 완력을 가진 그는 윤조의 손목을 구속한 채로 하체를 격렬하게 움직였다.

영업이 중단된 호텔에 무단으로 침입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침대는 제 위에서 벌어지는 난폭한 행각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끼익. 끼익.

우수한 품질을 자랑했을 침대 스프링이 팅팅 울렸다. 그러나 방 안을 가득 메운 건 침대가 지르는 나약한 비명이 아니었다.

“흐……읍!”

호흡이 끊어질 때마다 짧게 퍼지는 신음성엔 고통이 가득했다.

벌써 여러 번 대 줬다.

거대한 성기가 좁은 속을 비집고 들어오면서 열상을 냈다. 덕분에 위로 밀려 올라간 내장은 폐를 짓눌렀다. 힘을 주었던 입술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흑익…… 허윽!”

“시끄러워.”

냉랭한 음성이 윤조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 위로 쏟아졌다.

터졌던 입술은 다시 꼭 맞붙었다. 거친 호흡은 반 토막이 나서 폐와 기도 안에서만 굴렀다. 빠져나가지 못한 더운 기운은 양 고막을 부풀렸다.

먹먹한 청각이 실제와 현실감 사이에 엷은 장막을 드리웠다. 가랑이의 끔찍한 고통이 마치 남의 일 같았다.

철퍽. 퍽. 철퍽.

살 부딪히는 소리가 엇박자로 이어졌다.

근육과 뼈가 툭툭 불거진 넓고 단단한 어깨 위에 희고 곧은 정강이가 걸쳐져 있었다. 턱턱 살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종아리 끝에 달린, 유달리 흰 발이 덜렁거렸다.

‘보기 싫다.’

윤조는 제 발과 다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28세 성인 남자. 그리고 하사관 출신 직업 군인. 하지만 굵은 목을 가운데 두고 벌어진 무릎 위와 아래로 이어진 흰 피부는 마치 유아처럼 결이 곱고 희었다. 성인도, 남자도, 하물며 군인의 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적당히 탄 피부 위로 보기 좋게 솟아올랐던 쪼개진 허벅지 근육은 이제 사라졌다. 대신에 눈처럼 흰 피부가 매끈한 근육을 덮고 있었다. 윤조를 유린하는 남자의 질기고 단단한 살가죽에 대조되어 더욱 창백해 보였다.

허리를 말아 들어 올린 허벅지 안쪽 살을 잡아 비트는 손길이 사나웠다. 강철같은 손가락 끝은 무른 살을 푹푹 파고들었다. 부채꼴로 파진 자리마다 흰 살과 핏기가 뒤엉켰다.

한때 자랑스러웠던 근력이 몽땅 사라진 다리를 보고 있기 힘들었다. 고개를 돌려 버렸다. 공교롭게도 가까운 벽에 붙은 큰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그늘이 진 침대 위에 기이할 만큼 흰 몸이 반쯤 접힌 채 놓여 있고, 흰 몸보다 확연하게 크고 굵은 몸이 그 위에 길게 걸쳐졌다. 피부색의 대조와 더불어 둘의 자세가 오묘했다. 꼭 긴 회를 얹은 초밥 같았다.

‘나 좆밥 맞네.’

언젠가 들었던 욕설이 갑자기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질 뻔했다. 작렬하는 통증이 웃음은 막았으나 대신 입꼬리 한쪽이 삐죽 솟아올랐다.

그때 내벽을 두들겨대던 막대한 성기가 끝까지 빠져나갔다. 귀두가 입구에 걸렸다. 저릿한 통증을 뚫고 뭉근한 성감이 피어올랐다. 격렬하던 움직임이 멈췄다.

윤조는 퍼뜩 정신을 끌어모았다. 그러곤 삼십 센티미터 거리에서 저를 노려보는 남자를 응시했다.

“웃어?”

낮고 냉기 어린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찰나임에도 윤조는 목을 가다듬었다.

“죄송합니다.”

“죄송이라.”

남자는 반사적으로 뱉은 윤조의 사과가 마음에 들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남자는 잠시 상체를 들고 기가 막힌 듯이 삐뚜름하게 허공을 둘러보았다.

아래에 깔린 윤조의 시야에 남자의 날카로운 턱 선이 들어왔다. 그 아래로 이어진 굵은 목도. 화가 난 남자는 턱관절을 실룩였다. 동시에 윤조의 표정이 굳었다. 등골이 서늘했다.

“그래. 내 꼴이 우습겠지. 위대하신 가이드님에게는.”

낮게 울리는 마른 음성. 소름이 돋을 만큼 싸늘한 어조. 당황한 윤조는 즉시 부정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최강이니, 국가적 영웅이니. 으스대면 뭐 해. 이젠 힘만 썼다 하면 뭐 네 구멍에 미쳐서 좆 대가리를 휘두르는 머저리 변태 새끼인데.”

“아닙니다. 제가 웃은 건 그 때문이 아니라…….”

윤조는 상대를 향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염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달리 새까만 머리카락이 젖은 이마를 스쳤다.

“이젠 웃은 걸 부정하지도 않아, 하.”

사납게 비틀린 음성 끝에 허탈한 코웃음이 매달렸다. 명치가 쑥 꺼지는 감각에 윤조는 몸을 들고 그에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려고 했다. 상대가 아닌,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었다고.

그때였다.

퍽!

빠져나갔던 성기가 돌진했다. 단숨에 끝까지 치고 들어온 딱딱한 귀두가 판판한 뱃가죽 위로 존재를 불쑥 드러냈다.

“?!”

눈앞에 불똥이 번쩍 튀었다. 윤조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코보다 위로 솟은 턱이 덜덜 떨렸다. 입이 뻐끔 벌어졌으나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퍽!

순식간에 끝까지 빠져나간 성기가 재차 돌진했다. 귀두가 뱃가죽 안을 죽 그었다.

“아……으…….”

곱아든 발가락처럼 잔뜩 쪼그라든 성대가 미미하게 떨렸다. 뒤로 꺾인 정수리 때문에 묵은 냄새 나는 베개가 푹 파였다.

창백한 허리가 뜨고 매끈한 등이 뒤로 굽었다. 상대의 두꺼운 허벅지 위에 올려진 엉덩이 양쪽으로 큰 보조개가 움푹 파였다.

퍽퍽퍽.

전에 없이 사나운 몸짓이 이어졌다. 덜컥거리는 턱 때문에 혀를 씹지 않도록 윤조는 억지로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상대가 윤조의 내장을 짓이길 때마다 놀란 폐가 얇은 날숨 조각을 밀어냈다.

“아! 으! 억!”

하얗게 번졌던 시야가 금방 까맣게 꺼졌다.

전신을 두드리는 강렬한 통증.

상대에게서 쏟아지는 냉랭한 증오.

전혀 거부하지 못한 채로 다리를 벌리고 있는 자신에 대한 혐오.

그것이 윤조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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