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루나는 그날 밤 오메가로 발현했다.
나는 오메가에 대한 상식이 거의 전무했기에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루나에게 뭔가 다른 변화가 생긴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날 아침 우리는 서로에게 안긴 채 단잠에서 깨어났다. 간밤의 기억은 온통 달콤했고 아침의 공기도 평온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루나커피!”
직전까지 꿈을 꾸고 있어서 이 외침이 내 입에서 나온 건지도 긴가민가했는데, 깨보니 정말로 아침 6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토요일에는 알바생도 오지 않아 준비할 게 더 많은데 어쩌나 투덜거리고 있는데 정작 루나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 죽어가는 투로 말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임시 휴업한다고 써 붙여줄래?”
“어, 진짜? 알았어.”
나는 군말 않고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으며 방을 나섰다. 그때까지도 루나는 허공만 응시한 채 누워있었다.
그런데 복도로 나갔다가 뭔가 이상해서 되돌아와 물었다.
“형, 아파?”
그러나 루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만 휘저었다. 어서 가, 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게로 내려왔다. 사무실로 들어가 도화지와 매직펜을 꺼내 휴업 문구를 써넣은 후 출입문에 붙이고 블라인드를 다시 내렸다. 그제야 아침 공기에 감싸인 루나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젠장….”
그리고 그제야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난 것이다. 어제가 역사적인 첫날밤이었는데 아침에 깼으면 키스부터 했어야지.
“이런 바보, 멍청이.”
나는 다시 이층으로 올라갔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침대 앞에 섰다.
그런데 키스고 뭐고, 나는 바위처럼 굳고 말았다. 루나가 울고 있었던 것이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무릎에 얼굴을 묻고 훌쩍거리고 있었다.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이 다 훑고 지나갔다. 혹시, 순결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여전히 내 존재가 탐탁지 않아서? 아니면… 그저 아파서?
“형….”
대답 없이 훌쩍거리기만 하기에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옆에 걸터앉았다. 벗은 등에 시트를 감아주고는 지극히 의도적으로 한껏 낮춘, 매우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형. 왜 울어?”
그렇게 물었는데도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던 루나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퉁퉁 부어 얼핏 바지락을 붙여놓은 것 같았다.
“난 이제 망했어….”
“망했다고?”
아시다시피 나는 자격지심이 전혀 없이 해맑기만 한 인간은 못 된다. 내 태생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니 루나가 나와 밤을 보낸 일을 후회한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루나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순식간에 나는 루나 앞에서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꼬마 정은별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일종의 패배감이었다.
“형…. 아직 형한테는 탐탁지 않겠지만….”
“나, 나….”
“나, 잘할게.”
“그게 아니라….”
“응?”
“나 이제 오메가야.”
“오…?”
나는 오메가가 뭐더라? 머리를 굴렸다. 루나는 이제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고 있었다. 오메가, 오메가….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생각났다. 루나커피에 온 지 며칠 안 지났던 날 로저가 필립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내가 알파로 발현할 거라는 그 말을 엿들었을 때 뜻밖에 이선호가 오메가에 대한 정보 몇 가지를 알려줬었다.
그와 동시에 어제 루나가 퍼뜨렸던 그 강한 향기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 향기를 맡은 순간 나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욕망에 사로잡혔다. 비단 향기 자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라고 할까, 루나 블랑슈라는 인간을 향기로 만들어놓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오로지 나만을 위한 페로몬 같아서 그 순간 내가 루나를 안는 행위가 너무나 정당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아무튼 감정과 감각과 본능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해주는 촉매제와 같은 향기였다.
그런 생각을 하느라 멍해진 나를 보며 루나가 재차 말했다.
“어제 오메가로 발현했다고.”
“발현?”
그렇구나. 알파와 마찬가지로 오메가도 어느 날 발현하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인데 왜지? 아니, 그보다 루나가 이렇게 울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알아야 했다.
“형. 오메가가 정확히 뭔데?”
루나는 어린애처럼 손등으로 눈물을 쓱쓱 훔쳤다.
“오메가는, 아주 불편한 거야. 그게….”
설명을 해주려던 그가 문득 나를 쳐다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됐어. 넌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형 짝인데 당연히 알아야지!”
“짝…. 그, 그렇지만….”
“말해 봐. 난 형이 불편한 거 싫어. 어떤 점이 불편한 건데. 알아야 도울 거 아냐.”
루나는 조금 쉰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평소와는 달리 다소 횡설수설하며 해준 설명을 종합해보면, 오메가란 대충 이런 거였다.
주로 지구 나이로 10대 후반에 발현한다. 그러니까 루나는 좀 늦은 거였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히트 사이클이라는 것을 겪게 된다. 주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여자들의 월경과 비슷하다. 그 때문에 알파를 만나야 팔자가 편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오메가는 임신이 가능하다!
“헐…!”
내 감탄사를 오해한 그가 또 훌쩍였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을, 왜 나한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형, 진정해. 그러니까 그거, 오메가란 거 되게 생산적인 거네?”
실언이었나? 내 말에 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신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정말 지독한 인생 아니니? 난 내 인생이 제법 괜찮은 줄 알았어. 누구보다 평화롭고 자연스럽다고 여겼어. 그런데 계속 땅볼이야. 이젠 완전 막장이고. 신이 여기에 있다면 목을 졸라 죽여 버리겠어!”
오…! 꽤 섬뜩하기는 했으나….
그가 증오에 사로잡혀 캐릭터를 바꾼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내 머리는 또 무지하게 바빠졌다. 루나가 오메가라면 루나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알파가 아닌가? 그럼 내가 알파로 발현하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로저의 말을 백 프로 확신할 수 있나? 게다가 내가 알파로 발현해 오메가인 루나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 해도, 그걸로 루나의 플럼버 행을 막을 수는 없지 않나. 아무리 오메가가 알파 없이는 살기 힘들어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이곳에서 사는 것보다는 플럼버로 가 다른 알파를 찾는 편이 더 안전한 길일 것이다.
결국 원점이었다. 희망에 부풀었다가 이내 시무룩해진 얼굴로 나는 루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를 끌어안았다. 루나는 내 품에 안기자마자 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를 달래야 마땅한데 나도 울어버렸다. 다른 알파라니, 루나가 나 말고 다른 알파를 구하다니,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 황당해서였다.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
그로부터 두 시간쯤 후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실컷 울고 난 후 내 방에 가서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루나는 주방에 있었다. 언제 울었냐는 듯이 말끔한 얼굴이었다.
“뭐 해? 앉아.”
식탁에는 어제 손도 대지 못한 음식 몇 가지와 미역국이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말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미역국 시원하다.”
나는 왕성한 식욕을 보이며 잘 먹었고, 루나 역시 깨작거리기는 해도 잘 먹었다.
“필립이랑 고양이들은 오늘도 안 와?”
“오겠지. 로저네 집에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응.”
그가 밥에 김을 싸서 오물거리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은별아.”
“응…?”
“며칠 전에 이 대표가 루나커피에 왔었잖아.”
“응.”
“그때 그러더라.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아주고 싶다고.”
“숙소?”
“응. 종일 훈련받는 데 도움 될 것 같대. 강남에서 여기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무시 못 하고, 또 대학도 강남 쪽이니 그게 효율적이지 않겠느냐고.”
나는 단박에 대답했다.
“싫어.”
“왜?”
“왜라니, 난 루나커피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갈 거야.”
“하지만 어차피….”
루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할 말을 내가 대신했다.
“알아. 형을 못 가게 잡는 거 아니고,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그때까지는 여기서 지낼래. 그렇게 해줘.”
루나는 어두운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런데 그거….”
내가 어물거리자 그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나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건, 괜찮은 거야? 건강에는 문제가 없나?”
오메가로 발현한 것을 말하는 거였다. 히트인지 뭔지가 오면 힘들다고 했는데 지금 루나의 상태는 평소와 다름없어보였던 것이다.
“그래. 보통 때는 아무렇지도 않아. 갑자기 발작처럼 히트가 오면 그때 짐승이 되는 거야.”
“짐승?”
다소 횡설수설하는 루나의 말을 정리해보면, 알파와 오메가는 주기적으로 러튼지 히튼지 짐승의 발정기와 비슷한 사이클을 겪는데 오메가는 그 주기가 불규칙할 때가 많단다.
아무튼 루나가 가장 황당해하는 건 임신 때문인 것 같았다.
“배리가 얼마 전에 오메가로 발현했어.”
“응?”
“그리고 며칠 전 임신했어.”
“뭐?”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우리 집안에는 오메가로 발현한 케이스가 없는데 무슨 일이냐고 했어. 나 완전 바보 같지?”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러지 마, 형. 알파든 오메가든 형은 그냥 형이야. 루나 블랑슈. 세상 최고로 아름다운 남자.”
그가 마지못해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남은 시간을 평화롭게 보냈다. 텅 빈 루나커피에서 커피를 마신 다음 공원까지 산책하고 돌아오니 로저와 필립이 고양이들을 데리고 와 있었다.
로저는 우리 두 사람을 한동안 쳐다보더니 술 냄새가 풍기는 입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좀 아프군. 오늘은 집에 가서 종일 잠이나 자야겠네.”
나는 그에게 대체 언제 알파로 발현하게 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일단 그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어쩌면 우리 관계가 본격적인 연인관계로 돌입한 것을 리딩으로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는 루나가 싸준 음식 보따리를 축 늘어진 어깨에 짊어지고 돌아갔다.
필립도 어딘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루나는 로저가 술을 먹인 것 같다며 분개했지만 필립에게서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날 늦은 저녁, 몸이 불덩어리가 되어 텐트 속에 처박혀 있는 필립을 내가 발견했다. 우리는 곧바로 미니밴을 타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루나는 라라의 임종 때를 떠올리며 초조해했다.
나 역시 불안했다. 필립이 죽으면 루나는…. 알고 보면 루나는 고양이 동생들만 있을 뿐 고아나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 이미 어른인 그에게 고‘아’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가 혼자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필립과 루나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떠나 허물없는 친구 같았다. 필립이 없는 루나라니, 내 가슴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