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커피 2호점-82화 (82/103)

<82화>

쨍그렁!

갑자기 손가락이 떨리는 바람에 커피잔이 떨어져 산산조각 났어요. 왜일까요?

그제야 좀 전부터 제가 굉장히 불안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마침 그 순간 코앞에 좌표가 떴어요.

제 숨이 멈췄어요. 정말로 심장 멈추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요? 은별이가 차로를 구르고 있었어요. 품에 뭔가를 꼭 끌어안고 있었는데, 분명 고양이였어요. 제 시선이 머무는 곳이 확대되었고 얼룩무늬가 보였어요. 그건 배리였어요!

저는 이성을 잃고 말았어요.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어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운터를 나와 뒷마당으로 통하는 복도로 뛰었어요. 알바생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들리지 않았답니다.

좌표 안에는 지프차 한 대가 속력을 줄일 생각도 않고 달리고 있었어요. 은별이 그 차를 피해 배리를 끌어안고 몸을 구른 직후였어요. 문제는 건너편에도 택시 한 대가 달려오고 있다는 거였어요. 그 택시도 속력을 줄이지 않고 달려왔어요. 제 머리가 재빨리 계산을 끝냈어요. 그대로 뒀다간 은별이는 0.1783초의 딜레이 때문에 크게 다치게 될 거예요.

“은별아!”

손님들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저는 순간이동하고 말았어요. 1초 후 저는 도로 한복판에 와 있었어요. 다행히 정확한 지점에 도착했어요. 저는 재빨리 은별이를 감싸 안고 낫을 걸었어요. 지프차의 펜스가 제 팔꿈치를 쳤어요. 조금 아프긴 했지만 다치지는 않았어요.

문제는 은별이에요. 배리를 안고 구를 때 아마 다쳤을 거예요. 역시나 아스팔트에 쓸린 팔꿈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은별이가 꼭 감고 있던 눈을 떴어요.

“형…?”

대화를 나눌 여유는 없었어요. 그제야 제 눈에 도로를 뛰어오던 학생의 모습이 들어왔어요.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죠.

“최지환?”

바로 그 아이였어요. 그 아이는 분명 은별이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어요. 그 와중에도 저는 조금 놀랐어요.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그러나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요. 저는 은별이와 배리를 끌어안고 낫을 풀었어요. 동시에 순간이동 했어요. 순식간에 우리는 미니밴에 타고 있었어요. 은별이를 뒷좌석에 눕히고 저는 서둘러 차를 몰았어요. 다친 주제에 은별이가 다급하게 물었어요.

“형. 어떻게 알고 왔어?”

“너 제정신이야? 죽을 뻔했잖아!”

“좌표로 본 거야?”

“1초만 늦었어도 너 크게 다쳤어!”

“미안. 하지만….”

은별이가 말끝을 흐렸어요. 그리고는 품에 안고 있는 배리를 쓰다듬었어요. 배리는 우는 소리를 내며 야옹거렸어요. 저는 화가 나서 배리를 공격했어요.

“배리 너! 그 동네까지 왜 돌아다니는 거야? 너 때문에 형이 죽을 뻔했어, 알아?”

“야옹-”

“그만해. 미안하대.”

“네가 고양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해?”

“뭐… 꼭 알아들어야 듣나? 느낌이라는 것도 있… 앗…!”

저는 룸미러를 살폈어요. 은별이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어요. 고통을 참고 있는 거예요.

“은별아. 아파?”

“아, 아니, 괜찮아. 그냥 팔을 좀 삔 것 같아.”

“조금만 참아.”

“괜찮으니까 순간이동은 그만해. 병원 코앞이잖아.”

사거리 하나만 지나면 종합병원이 있기에 5분도 안 되어 도착했어요. 입구 앞에 차를 세우고 배리를 안에 놔둔 후 응급센터로 들어갔어요. 은별이의 팔은 그새 피투성이였어요. 간호사가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어요. 그녀는 커튼을 열고 침상에 은별이를 앉힌 후 응급처치를 끝내고 말했어요.

“엑스레이 한번 찍어보시는 게 좋겠어요.”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저는 접수를 하고 은별이를 영상실로 데려갔어요. 의사는 뼈에 금이 갔으니 당분간 팔을 쓰지 말라고 했어요. 결국 은별이는 팔에 깁스를 하게 되었어요.

차에 돌아오자 배리가 울먹울먹 야옹거렸어요. 은별이가 배리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줬어요.

“으응, 괜찮아, 배리. 형 아무렇지도 않아.”

저는 더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운전석 문을 부술 듯이 닫았어요. 쾅 소리에 배리가 외마디 비명을 야옹거리며 은별이 품에 머리를 묻었어요.

“형. 배리가 무섭대.”

“형 무서운 줄 알려면 멀었어!”

저는 투덜거리며 루나커피를 향해 차를 몰았어요. 솔직히 저는 배리의 엉덩이를 마구 패주고 싶을 만큼 화가 나 있었어요. 겨우 꾹 참고 있는 거랍니다.

통화를 위해 좌표를 열자 곧바로 로저가 나타났어요. 거실에서 작업 중이네요.

- 루나.

“로저. 죄송한데, 지금 은별이가 크게 다쳐서요.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 바로 가지.

은별이가 중얼거렸어요.

“나 괜찮은데.”

저는 대꾸하지 않았어요. 집에 도착했기에 차를 세우고 은별이를 부축하려는데 녀석이 투덜거리네요.

“다리는 말짱하거든. 바쁜데 형은 어서 가게로 가.”

“조용히 해. 한마디만 더 해. 배리랑 같이 엉덩이 때려줄 거야.”

“오….”

은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봤어요.

“왜, 뭐?”

“나 형한테 엉덩이 맞고 싶어.”

“뭐, 뭐야? 너 지금 농담이 나와?”

“농담 아닌데. 형한테 한 번도 엉덩이 맞은 적 없잖아.”

“형이 지금 많이 참고 있다는 생각 안 들어?”

그제야 눈에서 장난기가 없어졌어요. 저는 괘씸해서 더 사납게 노려보고는 대문을 콰당 열었어요. 거기서 은별이 방으로 순간이동 했더니 은별이가 저를 와락 끌어안았어요. 저는 그 행동이 기막혀서 등짝을 때려줬답니다.

“야!”

“어지러워.”

“…진짜?”

“웅….”

어지러울 정도로 출혈이 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혹시 머리도 다친 걸까요?

“의사가 머리 얘기는 안 했는데. 그러고 보니 머리는 봐주지 않았던 것 같아. 병원 다시 가보자!”

움직이려는 저를 은별이가 거센 힘으로 끌어안았어요.

“가만히.”

“얘가 왜 이래.”

“형 안고 있으니까 팔이 안 아파.”

“말도 안 되는…. 진짜야?”

“웅….”

그렇다면야, 라고 중얼거리며 저는 은별이를 안아줬어요. 그런데 왜 어색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네요. 애가 훌쩍 커버려서 제가 안아주는 게 아니라 안겨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더 어색한 것 같아요.

“아까 거기 최지환이라는 애가 있었어.”

“재수 없는 놈.”

“너 다친 걸 보고 뛰어온 것 같더라.”

“에이, 설마.”

저는 팔을 풀고 은별이의 얼굴을 쳐다봤어요.

“진짜야. 굉장히 놀란 얼굴을 하고 뛰어오는 중이었어. 그 상태로 낫이 걸렸다고.”

은별이도 놀랐는지 미간이 좁아졌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와중에 나도 깜짝 놀랐어. 그 녀석이 그런 행동을 하다니? 그런데 확실해.”

은별이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머리를 갸웃거렸어요. 그러다가 무심코 비명을 내질렀어요.

“아-”

“왜? 아파?”

“어떻게 움직이면 되게 아프네.”

“어서 누워.”

“우선 씻고.”

“누워있어. 형이 닦아줄게.”

“형이?”

“그래.”

은별이의 눈이 큼지막해졌어요. 가뜩이나 까만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네요. 무슨 생각으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요? 아무튼 엉뚱한 녀석.

제가 욕실에 들어가 더운물을 대야에 담아올 때까지 은별이는 가만히 누워서 저를 보고 있었어요. 꼭 해바라기처럼 말이에요. 저는 침대 가에 걸터앉아 은별이 얼굴에 더운 수건을 폭 눌러주었어요.

“우웅.”

“어리광부리지 마. 지금 형아 네 어리광 들어줄 기분 아냐.”

“우우웅.”

“요게.”

제가 요런 짓에 약하다는 걸 알고 일부러 더 그러는 거예요. 어디 받아주나 봐라. 휘말리지 않을 거예요.

얼굴을 꾹꾹 눌러 꼼꼼하게 닦고 수건을 걷어내니 입술을 쏘옥 내밀고 있네요.

“우웅-”

“치워. 산만한 게 징그럽게.”

“아이, 그만 화내. 그럼 뭐 배리 죽게 내버려 둬?”

“배리는 괜찮았을 거야. 운동신경 좋은 애라서 차 밑에 잘 웅크리고 있었을 거라고.”

“그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드나 뭐. 끔찍한 생각부터 드는걸.”

틀린 말도 아니고, 제가 은별이 입장이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은별이가 잘못한 건 없었어요. 판단 착오도 없었고요. 엄밀히 말해 은별이는 피붙이도 아닌데 위험을 무릅쓰고 배리를 구한 거잖아요. 정말이지 고맙고 훌륭한 행동이었어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요.

“형.”

은별이가 촉촉한 눈으로 저를 올려다봤어요. 저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어요. 리딩을 하지 않아도 저는 아이의 마음을 읽곤 한답니다. 비단 저만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종종 우리가 서로의 생각을 읽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아요.

“나 많이 다쳤을까 봐 걱정했어? 그래서 화났어?”

당연한 걸 물어보면서 제 마음 확인하려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그게 어리광이라는 자각까지는 하지 못하는 녀석이에요. 덩치는 산만해졌지만 아직도 아기고양이들이랑 똑같은 수준일 때가 있다니까요.

“엇, 웃었다.”

저도 모르게 웃었을까요? 실수. 저는 얼른 입을 다물었어요.

“형 지금 웃었지?”

“안 웃었어.”

“내가 봤는데.”

“그쪽 팔이나 내놔.”

지금 살펴보니 깁스를 하지 않은 팔에도 생채기가 있네요. 수건으로 팔을 닦아주는데 은별이가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옷, 벗을까…?”

얼굴에 수건을 던져버렸어요.

“뭐라는 거야!”

“어우 씨, 닦아준다면서. 옷 벗느냐고.”

“벗지 마. 나머지는 나중에 네가 씻어.”

“깁스했는데 어떻게 혼자 씻지? 흐웅….”

어쩔 수 없이 닦아줄 수밖에 없었어요.

“좋아. 벗어.”

“오예-”

은별이는 발딱 일어나더니 한 손으로 셔츠 단추를 풀었어요. 저는 조금 놀랐어요.

“야…. 너 언제 이렇게 됐어?”

은별이 가슴이 갑옷을 두른 것처럼 단단해져 있었어요. 게다가 그 아래에 여섯 조각의 초콜릿이 붙어있네요. 은별이가 배를 살살 문질렀어요.

“뭐야, 처음 본 사람처럼.”

“처음 봤어.”

“툭하면 목욕하고 이 꼴로 돌아다녔는데?”

“못 봤는데.”

“헐, 그 숱한 공연을 그냥 흘려보냈다고?”

그제야 잠시 가출했던 제정신이 돌아왔어요. 수건으로 갑옷과 초콜릿 조각들을 닦아내면서 어린놈이 벌써 이런 걸 달고 다녀! 라는 투덜투덜은 속으로만 했어요.

주제에 남자티를 내고 싶은 걸까요, 은별이가 끈끈한 눈으로 저를 쳐다봤어요. 드라마 남주들이 짓는 표정 말이에요. 진짜 낯간지러워서 배를 꼬집어줬더니 이내 키들거리는 꼴이 여전히 애는 애네요. 은별이가 베개를 던졌어요. 저는 수건을 던졌어요. 은별이가 수건을 던졌어요. 저는 다시 베개를 던졌어요.

그렇게 한동안 킬킬거리며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정신없이 웃던 은별이가 저를 불렀어요.

“형.”

“왜 또.”

또 뭔가 어리광을 부릴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틀렸네요.

“보여주면 안 돼?”

“뭘…?”

“형 몸에 새겨진 내 이름, 이제 나 봐도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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