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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커피 2호점-72화 (72/103)

<72화>

하도 기가 막혀서 귀를 파보았어요.

“아빠. 이제 하다 하다 임신까지 하셨단 말이에요? 아빠는 남자, 아니 수컷이잖아요! 그리고 무정자….”

“야옹, 뭐라는 거냐! 내가 아니라 라라가 임신했다고.”

아하, 그나마 다행이네요.

“아니, 블링 낳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또 임신을 해요?”

“야옹, 고양이들이 그렇지. 고양이 처음 겪어봐?”

“고양이 커플은 처음 겪어보죠. 아빠는 이 여자 저 여자, 아니 이 암컷 저 암컷 집적거려서 커플이랄 수는….”

“야옹! 말끝마다 애비를 깎아내려? 이 후레자식!”

“그런데 라라가 기운이 없어 보여. 살도 많이 빠졌고.”

은별이의 말이었어요. 그새 텐트 속을 들여다보고 있네요. 라라를 품에 안아 들고 제게 보여주는데 제 눈에는 여전히 뚱땡이였어요.

“그게 빠진 거야? 여전히 뚱뚱한데.”

은별이가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저었어요.

“그런 말 하지 마. 형도 라라 좋아하면서 괜히 그러더라.”

“내가? 라라를? 말도 안 되는 소리.”

라라 저 앙큼한 것이 또 처량 맞은 얼굴을 하고 저를 올려다보네요. 그러고는 은별이 품에 파고들었어요. 쳇! 그러면 누가 정들었다고 인정할까 봐? 어림없어요.

그새를 못 참고 텐트에서 미오가 나오더니 은별이 무릎 위로 뛰어올랐어요. 라라의 몸을 되는대로 핥아대는 꼴이, 아주 그냥 세기의 커플 나셨네요. 눈꼴시어서.

“원래 임신하면 기운 없어.”

제 퉁명스러운 일침에 은별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요.

“입덧이 심한가 봐.”

“하! 그렇게 걱정되면 순대라도 사다 주려무나.”

“그러지 마, 형. 꼭 시집살이시키는 시어머니 같….”

“뭐라고?”

“아니야.”

블링까지 냐냐거리며 은별이의 무릎 위로 기어 올라갔어요. 필립이 블링의 목덜미를 물어 자신의 등에 휙 얹어놓았어요.

“야옹, 착하지, 블링. 당분간 엄마 귀찮게 하지 마라.”

은별이가 라라의 뺨에 부비부비하며 말했어요.

“내일 병원에 데려가 봐야겠어요.”

“야옹.”

*

다음 날 아침, 하품을 하며 방에서 나오는데 은별이가 벌써 나와 있었어요. 뭐가 그리 걱정돼서 그러는지 텐트 앞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라라를 안고 있네요.

지금 보니 확실히 라라가 살이 빠지기는 한 것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벌써 일어났어?”

“라라 걱정돼서. 병원 데려가려고.”

“생각해보니 토요일이잖아. 문 안 열었을걸.”

“좀 전에 원장님 폰으로 문자 보냈는데 답이 왔어. 와도 된대.”

“뭘 그렇게까지 해? 월요일에 데려가도 되는데.”

“큰 병이라도 있을까 봐 그러지. 그리고 고양이들도 임신하면 각종 부작용에 시달린대. 자주 검진해야 한다나 봐.”

“아주 그냥 상전 나셨네.”

제 투덜거림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은별이 케이지를 가지고 와 라라와 미오를 들여보냈어요. 도통 둘이 떨어지려고 하지를 않으니 함께 데려갈 수밖에 없었죠.

굳이 제가 끼지 않아도 은별이와 필립이 잘하고 있으니 저는 빠져도 되겠네요. 소파에 몸을 깊이 묻고 앉는데 은별이가 빤히 쳐다봤어요.

“형도 갈 거지?”

“나 없어도 되잖아. 둘이 잘 보살펴줘.”

“야옹.”

은별이가 피식 웃으며 제 팔을 잡아당겼어요.

“심통 그만 부리고 일어나.”

“누, 누가 심통을 부려? 형 장사해야지.”

“아직 문 열 시간 안 됐잖아. 그리고 토요일이라 손님도 적으니까 오픈 조금 늦는다고 써 붙여놓으면 되지!”

“어어, 얘가 왜 이래….”

굳이 저를 끌고 가고 싶다니 어쩔 수 없네요.

오픈 준비를 대충은 해놓으려고 가게로 내려갔더니 새로운 단골손님이 문밖에 서 계셨어요. 문 열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이에요. 서둘러 문을 열자 활발하게 떠들며 들어오시네요.

“아하! 이런이런, 제가 실례를 범한 것 같죠?”

이노마 대표였어요.

“아니, 실례는 아닌데 아직 오픈 시간이 아니라서….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닙니다. 한 10분 됐나. 20분만 기다렸다가 안 나오시면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하하!”

“그러셨구나. 그런데 따로 용건이 있으신 건가요?”

그때 마침 은별이가 필립과 함께 내려왔어요. 이노마 대표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어요.

“어이! 은별아! 마침 나오네. 나 기억나지?”

대표를 본 은별이가 훕 숨을 들이쉬네요. 우리는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어요. 이노마 대표는 꿈에도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그는 큰일을 겪었잖아요. 아무 일 없이 지나가서 천만다행이지만 죄책감은 남네요.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어딜 가는 길이니?”

은별이가 들고 있던 케이지를 눈으로 가리켰어요.

“지금 동물병원 가야 해서요.”

“바쁜데 잡아서 미안하다만, 딱 10분만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내가 오늘부터 2주 일정으로 상하이에 가야 해서.”

은별이가 저를 돌아봤어요. 저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 창가 자리를 가리켰어요.

“저쪽으로 앉으세요. 아침 안 드셨으면 간단하게 준비해드릴까요?”

“우와, 좋죠. 아무거나 주세요.”

“그럼 햄에그 머핀이랑 커피 준비할게요.”

“감사합니다!”

저는 두 사람 자리와 가까운 곳에서 커피를 내렸는데 괜스레 귀를 기울이게 되네요.

“혹시 장래 꿈이 있니?”

“농구선수요.”

은별이가 머뭇거리지도 않고 똑 부러지게 대답하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

“제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딴지 거는 건 절대 아니다만, 농구선수를 하려면 키가 아주 커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오…. 키 얘기는 은별이에게 여전히 민감한 부분인데. 물론 지금은 저보다 크지만 은별이는 키만큼은 꾸준히 욕심을 부린답니다. 은별이 목표는 195cm래요. 아마도 농구선수가 꿈이라 그렇겠죠.

“계속 크고 있거든요.”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만약 농구선수 할 만큼 안 크면 말이다. 배우를 해보면 어떠니?”

“왜요?”

“아저씨가 보기에 은별이는 농구보다 연기를 훨씬 더 잘할 것 같거든. 혹시 연기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드라마는 매일 봐요.”

“그것참 훌륭한 취미를 가졌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핀과 커피를 준비해 테이블로 가져갔어요.

“어이구! 아침 못 먹었는데! 잘 먹을게요. 사장님도 앉으시죠.”

“그럴까요?”

은근슬쩍 은별이 옆에 앉았어요. 이 대표가 머핀을 한입에 넣고 우물거렸어요.

“정말 맛있네요.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은별이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거요.”

“정말요?”

제가 너무 반색했나요? 저도 모르게 흥분했나 봐요. 제 반문에 은별이가 저를 쳐다봤어요.

“진짜?”

“응? 뭐가…?”

저는 어쩐지 실수했나 싶어서 은별이 눈치를 살폈어요.

“내가 농구선수보다 배우가 되는 게 좋아?”

“아, 아니. 난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좋아.”

이 대표가 커피를 꿀꺽꿀꺽 마시더니 말했어요.

“한번 생각해보면 어때? 아직 중학생이니까 생각할 시간은 많아. 네가 마음만 정한다면 정식 계약하고 최고의 훈련을 시켜줄게. 대학 진학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야. 물론 연기 관련 학과에 진학한다면 말이지만.”

솔직히 저는 귀가 솔깃했는데 정작 은별이는 별로 감흥이 없는 눈치였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동물병원 진료를 예약해둬서요. 이만 가봐야겠어요.”

“알았어. 언제든 결심이 서면 연락해라.”

은별이가 케이지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저는 먼저 나가 있으라는 손짓을 해보이고는 이 대표에게 말했어요.

“대표님.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정말요? 루나 사장님께서 제게 궁금한 게 있다니 영광입니다.”

“은별이가 배우를 하게 되면 고생스러운 일은 없을까요?”

“고생스럽지 않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적성 문제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배우의 조건 중에는 미모가 한몫하잖습니까? 그런 점에서 은별이는 타고난 배우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 말에 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어요.

“하긴, 제가 드라마를 백만 개도 더 봤는데 은별이 같은 얼굴은 본 적이 없어요. 그럼 우리 은별이가 주인공을 맡게 되나요?”

“하하하!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제 의지를 말씀드리면 저는 은별이를 저희 회사의 간판급 스타로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우와!”

제 감탄사에 이 대표가 조그만 눈을 빛냈어요.

“저희 회사가 여러 가지 면에서 탄탄하기는 하지만 아직 대형 스타가 없거든요.”

“아하.”

“은별이가 갑자기 고구마가 되지 않는 이상 저 얼굴이면 별나라도 갑니다.”

“고, 고구마라뇨, 절대 그럴 일 없어요.”

“그럼요. 이를테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장님께서 은별이를 좀 설득해주시죠.”

솔직히 저는 이 대표의 제안이 무척 솔깃했어요. 농구선수도 좋지만 매일 밤 제가 즐겨보는 드라마에 은별이가 출연한다는 상상만 해도, 어유, 짜릿하기 이를 데 없네요.

“강요는 할 수 없지만 말은 해볼게요.”

이 대표가 제 손을 덥석 잡는 바람에 깜놀했지 뭐예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직 결정된 것도 아닌데요.”

“아무튼 도와주신다니까 고맙죠. 그런데 북유럽의 짝사랑 오빠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 없으신가요?”

“네, 루나커피를 하루도 비울 수가 없답니다.”

이 대표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직 오픈 전이기 때문에 그와 함께 가게를 나와 문을 잠갔어요. 교차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별이가 꾸벅 인사했어요.

“안녕히 가세요.”

“그래, 은별아. 또 보자!”

이 대표는 활발하게 손을 흔들고는 골목에 세워둔 승합차에 올라탔어요. 우리는 그의 차가 도로로 진입해 멀어질 때까지 지켜봤어요. 신호등이 아직 빨간불이었거든요.

토요일 아침이라 하늬로는 한적했어요. 날씨는 바람 한 점 없이 청명했어요. 은별이가 제 손을 잡았어요.

“파란불. 건너자.”

왜 그랬을까요? 저도 모르게 주변을 슬쩍 살폈던 것 같아요. 불과 1년 전만 해도 은별이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일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은별이가 제 손을 더 꼭 잡았어요.

“형, 왜 그래?”

“응? 뭘…?”

“걱정 있는 사람 같아서.”

“아, 아냐. 그냥.”

“형도 은근히 라라 걱정되는 거지?”

“아냐. 근데 너 안 무거워?”

은별이가 손에 든 케이지를 내려다보았어요.

“아니. 이까짓 게 뭐가 무거워.”

저는 문득 녀석을 돌아봤는데, 어? 뭐죠? 왜… 왜 때문에 눈높이가 안 맞는 거죠? 제가 은별이를, 올려다보고 있나요?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각도 0이었는데 왜 +10이죠?

제가 당황한 것을 알아챈 걸까요? 은별이가 싱긋 웃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

“야옹, 무슨 소리냐?”

앞서 걷던 필립이 우리를 돌아봤어요. 저는 당황해서 괜스레 외쳤어요.

“무슨 소리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은별이가 조금 더 웃었어요.

“지금 엄청 시끄러워.”

“응…?”

은별이가 차로를 가리켰어요. 아닌 게 아니라 트랙터가 땅굴을 파고 있었어요. 공사 중이네요. 저도 모르게 후유 한숨을 쉬었어요. 도무지 이해가 안 갔어요. 왜 저 소리를 제 심장 소리로 착각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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