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커피 2호점-43화 (43/103)

<43화>

모든 게 나 때문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비밀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좀 안 좋아 보인다. 정정하겠다.

우리의 만남은 달과 별이 만나듯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것이었는데….

“경찰입니다. 이 카페 사장님 되십니까?”

드디어 경찰이 끼어들었다!

공부하라는 루나의 말을 받들려 했지만 준이가 궁금해 도통 글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선호네 집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로저네 집에 갈 생각으로 가게로 내려간 참이었다. 남자 두 명이 루나의 코앞에 경찰 신분증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때 그 옆에 있던 덩치 작은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 동료의 옆구리를 팔로 쿡쿡 찔렀다. 덩치 큰 남자가 굵직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네가 정은별이냐?”

루나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고는 경찰에게 물었다.

“아이한테 왜 그러시죠?”

덩치 큰 남자가 말했다.

“저 아이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조용한 곳 없을까요?”

루나는 세윤이 형에게 손님을 맡아 달라 지시하고는 두 남자에게 카페 사무실을 가리켰다. 눈치 빠른 세윤이 형이 굳은 표정을 지우고 생글거리며 손님들의 주의를 돌렸다.

“이쪽에서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덩치 큰 남자가 내게 손짓했다.

“너도 따라와라.”

마지막으로 들어가던 내가 막 사무실 문을 닫으려는데 어디선가 필립이 나타났다.

“야옹.”

나는 필립을 안아 들었다. 두 남자는 나와 필립을 흘긋 쳐다보았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무실의 원형 탁자 앞에 둘러앉았다. 루나가 재빨리 말했다.

“아이한테 뭘 물어보시려고요?”

“별거 아닙니다. 잠깐이면 되고요.”

덩치가 큰 남자는 박 형사라고 했다. 덩치가 작은 남자는 조 형사라고 했다. 박 형사가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놓았다. 이모네 부부의 사진이었다.

“네 이모지?”

“네.”

그가 또 다른 것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반으로 접은 필름 용지였다. 휴대폰 화면을 캡처한 출력물이었다.

“이게 뭐예요?”

모르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루나커피의 블로그와 SNS 화면 이미지 여러 장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인터넷에서 캡처해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해둔 것 같았다.

마지막 장에는 다른 사람들의 SNS 페이지 사진이 있었다. 모두 루나커피에 관한 사진을 올려놓은 것이고, 가끔 원거리에서 찍은 루나와 내 모습도 보였다. 모르는 사람은 알아보기 힘들어도 이모라면 그게 나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사진을 들여다본 루나가 물었다.

“누군가 우리 가게 관련 포스트를 스크랩한 것인가요?”

“은별이 이모가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왜요?”

“은별이가 집을 나갔다면서요. 가출한 조카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박 형사에 이어 조 형사가 다음 말을 계속했다.

“조금 혼냈는데 조카가 뛰쳐나가서 안 들어오기에 걱정이 되어 사방으로 찾던 와중에 누군가 여기 블로그를 보여주더랍니다.”

나는 기가 막혀서 실소를 토했다. 나를 본 박 형사가 물었다.

“왜 웃니?”

“이모가 날 찾았다니까 웃겨서요.”

“왜지?”

나는 아직도 뺨과 팔에 남아있는 멍 자국을 가리켰다.

“이거, 그리고 아직 내 몸에 남아있는 수많은 상처들 다 이모랑 이모부가 때려서 난 상처거든요.”

두 형사는 잠자코 내 얼굴만 쳐다보았다. 얼핏 로봇 같은 얼굴이라서 좌절감이 느껴졌지만 나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더 있다가는 맞아 죽을 것 같아서 뛰쳐나왔어요.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던 박 형사가 갑자기 루나에게 물었다.

“꼬마랑 어떤 관계시죠?”

“아저씨. 저 꼬마 아니거든요.”

“은별이는…. 그냥 우연히 만났어요.”

“우연히 만났다고요? 어디서 만나셨나요?”

“음, 여기서요. 루나커피.”

이번에는 조 형사가 내게 물었다.

“은별이 네가 여기로 찾아온 거야?”

“네.”

“금성시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니?”

이건 뭔가 함정 같았다.

“야옹, 대답하지 마. 대답할 의무 없다.”

“그게 왜 궁금하세요?”

나 대신 루나가 되묻자 두 형사는 서로 시선을 맞췄다. 조 형사가 대답했다.

“단순히 궁금해서요. 은별이가 어떻게 금성시에서 서울 마포구까지 왔는지 이상하기도 하고.”

“그보다, 아이 이모라는 사람 얘기를 해보시죠. 그 사람이 왜 루나커피를 스크랩했나요?”

“그게…. 어제 이 근처에서 권미옥이라는 여자가 체포됐습니다.”

“네에?”

루나는 놀랐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는 궁금해서 물었다.

“이모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데요?”

두 형사는 또 한 번 시선을 주고받았다. 박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 형사가 나를 흘긋 보고는 루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 태권도 학원을 운영하는데, 도박하다가 학원 보증금까지 날려 먹은 모양입니다. 지난 6월 홍수 피해로 살 집이 없어져서 학원에서 숙식을 해결한 모양인데 라면 끓이다가 불도 냈고요. 빚쟁이를 폭행해서 전치 5주 나왔고 그길로 도망쳤어요.”

“세상에.”

이번에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 부부가 이제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마도 홍수로 집이 무너지고 갈 데까지 간 상태에서 당연한 수순으로 도박판에 기어 들어갔을 것이다. 온전한 정신력이라고는 없는 부부니까.

조 형사가 내게 말했다.

“네 이모는 잡았는데 이모부라는 사람은 도망쳤어. 그 사람은 도박판에서 이미 한번 체포됐던 적이 있어 재범인 셈이야. 그래서 혹시나 하고 이 근처를 잠복수사하고 있었어.”

“그 사람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 이해한다. 혹시라도 이모하고 연락이 되면 이 번호로 알려줄 수 있어? 내 명함이다.”

“연락될 리가 없는데요.”

“만약 된다면 말이다. 네가 여기 있으니 찾아올지도 모르고.”

“그런데 이건 순전히 호기심인데요.”

조 형사가 루나를 향해 물었다.

“국적이 어디신가요?”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실례지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젊은 나이에 혼자 가게를 운영하며 생판 모르는 아이를 돌본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닐 텐데요.”

“야옹, 너 같으면 애가 처맞고 죽게 생겼는데 냅두냐? 썩을 놈아.”

필립이 야옹거리자 두 형사가 흘긋 보았다. 루나가 대답했다.

“아저씨들 같으면 애가 처맞고 죽게 생겼는데 냅두겠어요?”

두 형사는 영혼 없는 얼굴로 감탄하는 척했다.

“훌륭하십니다.”

“이렇게 젊은 분이, 놀랍네요.”

박 형사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그래도 엄연히 법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절차는 제대로 밟으셨나요?”

루나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죠. 제게는 가족이 없어서 마침 유산을 남겨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은별이를 보자 마침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아이의 법적 후견인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 말에는 어지간히 놀랐는지 조 형사가 입을 쩍 벌리고 물었다.

“생판 남한테 유산을 남긴다고요?”

“왜, 불법입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과 관련해 법적 절차도 밟으신 겁니까?”

“그럼요.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니 별 제재는 없었어요. 다만 돈세탁이나 부정한 용도의 신청인지 조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직접 법정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법정에 나가기도 했다고? 이는 나도 몰랐던 일이라서 무척 놀랐다.

“대단하십니다. 젊은 분께서 그 엄청난 재산을 모은 것도 대단하고 생판 남인 아이를 상속자로 지정하고 후견인이 되신 것도 대단하고요.”

그 말에 루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뭐라고요? 저는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얘기한 적이 없는데, 꼭 자세히 알고 계시기라도 한 것 같은 말투시네요?”

그러자 두 형사의 안색에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아니, 그런 절차를 밟으실 정도면 재산이 많을 거라는… 그런 생각에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야옹, 거짓말이야. 널 캐고 있다.”

“뭐라고요?”

루나가 필립에게 되물은 것을 꿈에도 모르는 형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 형사가 대뜸 물었다.

“네? 뭐가요?”

“아니, 형사님께 물은 게 아니에요.”

그러자 조 형사가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럼 저요?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야옹, 이모란 사람이 은별이를 빌미로 너한테 돈을 뜯어내려고 한 모양이야. 그러다가 도박판 때문에 체포된 모양인데.”

“그런데 왜 제 뒤를 캐요?”

루나가 필립과 대화하는 것을 꿈에도 모르는 두 형사는 당황해서 횡설수설했다.

“아, 아닙니다! 절대 사장님 뒤를 캔 게 아니라….”

부자는 형사들을 머저리라고 단정한 모양인지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야옹, 그냥 수상하다고 이 멍청이들 상사가 캐보라고 했대.”

“헐! 그런 이유로 죄도 없는 일반인 뒷조사하고 그래도 돼요? 그거야말로 불법 아니에요?”

이제 두 형사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서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우물쭈물 일어났다.

“절대 오해십니다. 저희는 법과 질서를 사수하는 대한민국 경찰….”

“야옹, 불법 사찰이야. 공권력 남용.”

“맞아! 진짜 공권력 남용이네요.”

두 형사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혀,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안녕히 계세요.”

“잠깐만요, 형사님들!”

두 형사는 루나의 부름을 못 들은 척하며 나를 향해 전화 받는 시늉을 해보였다.

“은별아. 이모한테 연락 오면 알지? 전화 부탁한다.”

“나한테 전화할 정도로 이모랑 안 친해요. 그리고 내 번호를 이모가 알 리 없는데요. 이전에는 핸드폰이 없었거든요. 혹시 아저씨들이 가르쳐줬어요?”

“아, 아니거든!”

두 형사는 허둥지둥 사무실을 뛰어나갔다.

“야옹-.”

루나가 들으라는 듯이 문을 향해 외쳤다.

“뭐 이런 거지 같은 법이 다 있어!”

“야옹, 위험하다. 자꾸 캐기라도 하면 허점이 하나라도 드러날 텐데.”

“그렇게까지 캘 리가 있겠어요?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야옹, 아주 없지는 않지. 잊었어? 우리 신원 자체가 불법이잖아.”

“그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공기를 마시는 게 불법이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달라요.”

“야옹, 저런 사람들한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아.”

루나가 나를 흘긋 보고는 필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해요.”

루나는 ‘아직 어린’ 나를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나는 말할 수 없이 불안해졌다. 다만 루나가 짐작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불안했다.

필립의 말이 모두 옳았다. 두 형사는 루나에게 궁금한 점이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명백히 호감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뭔가 건수를 노리고 루나를 계속 조사한다면, 그리고 그러다 루나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루나가 이번에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넌 걱정 안 해도 돼.”

이게 모두 나 때문이다. 내가 루나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가봐야겠다. 넌 올라가.”

“아, 저 선호네 집에 가도 돼요?”

“응…?”

“같이 공부하려고요.”

루나는 나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대신 다닐 때 조심해. 너네 이모부가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워치도 챙기고, 핸드폰에 위치추적 앱도 늘 켜놓도록 하고.”

“알겠어요.”

“저녁 먹을 때까지는 올 거지?”

“그럼요.”

나는 카페를 나와 로저네 집으로 향했다. 교차로를 건널 때 얼핏 뿔테안경이 눈에 들어온 것 같아 재빨리 둘러봤지만 동서남북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래도 잘못 본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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