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급식실은 굉장히 넓고 엄청 깨끗해보였다. 급식도 금성 초등학교와는 비교도 안 되게 훌륭했다.
물론 나는 금성초에서도 급식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하긴 했는데, 어차피 메뉴를 보면 매일 김치찌개, 된장찌개, 기껏해야 카레라이스였고 그 외의 반찬은 김치나 장아찌 약간밖에 없는 것 같았다.
반면 여기는 주메뉴 말고도 반찬이 다섯 가지나 되었다. 오늘의 주메뉴는 새우튀김과 계란말이였다. 반찬은 장조림과 시금치나물, 감자 샐러드, 열무김치, 된장국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불만스러운지 여기저기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우도 콜레스테롤, 계란도 콜레스테롤, 영양사가 화학 전공인가?”
쳇, 유식한 놈들 잘난 척은. 콜레스테롤이고 뭐고 나는 부지런히 먹었다. 맛으로 치면 그저 그랬다. 몇 끼 얻어먹지도 못한 주제에 내 입은 이미 루나의 손맛에 길이 든 것 같았다.
내 옆에서 나 못지않게 와구와구 밥을 퍼먹는 놈이 하나 있었으니, 그 녀석 이름은 이선호였다. 이선호는 기분 나쁘게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키가 큰 것 빼고는 괜찮은 녀석이었다. 얼굴도 그럭저럭 생겨먹었는데 첫인상에 걸맞게 좀 맛이 간 놈이었다.
“너 왜 아까 혀 날름거렸어?”
“내가? 언제?”
“시치미 떼는 거냐?”
“시치미가 아니라 안 그랬다고.”
“나 자기 소개할 때 너 분명히 혀 날름거렸거든.”
그랬더니 이 살짝 상한 녀석이 히죽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내가 뱀이냐? 혀를 날름거리게.”
“이 새끼 또라이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정은별.”
“저기 생수통 앞에 앉은 여자애 보여?”
“체크무늬 리본?”
“아니, 그 옆에.”
“분홍 머리띠?”
“아니. 그 옆에.”
“안경?”
“어. 쟤 이름도 은별이야. 조은별.”
“그래? 그래서?”
“그렇다고.”
“이 새끼 진짜 또라이네.”
“새우튀김 진짜 줘?”
“응.”
이선호는 나를 슬쩍 흘겨보고는 마지못해 새우튀김 하나를 내 식판에 놓아주었다. 나는 녀석이 도로 가져갈까 봐 그것부터 후딱 먹어 치웠다.
“새우튀김 줬으니까, 우리 친구다.”
“왜?”
“말했잖아. 새우튀김 줬으니까.”
“누가 그래? 새우튀김 주면 친구라고.”
“친구도 아닌데 누가 자기 새우튀김을 주냐?”
“쳇. 우리 루, 아니. 우리 형은 매일 이거보다 백 배는 맛있는 거 만들어주거든. 이건 음식도 아냐.”
“지금 그게 갑자기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 너네 집에 놀러 가도 되냐?”
“왜?”
“이 자식은 무슨, 왜밖에 몰라. 우리 친구니까.”
“안 돼.”
“왜?”
“이 자식이야말로 왜밖에 모르나.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왜는 뭐가 왜야?”
“너 못됐다는 말 많이 듣지?”
“아니.”
“나 너네 형 팬이야. 월영이 형. 친하게 지내고 싶어.”
이게 뭔 소리야?
“네가 왜 우리 형 팬이야?”
“아이돌같이 생기셔서.”
“우리 형은 아이돌 같은 거 아니고 커피숍 사장님이거든. 팬이라니,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
“아니.”
“이 자식이, 개이상하거든.”
“우리 학교에 나 말고도 너네 형 팬 대땅 많아.”
“뭐라고?”
“이 동네에서 엄청 유명하셔.”
“우리 형이?”
“이거 볼래?”
이선호가 휴대폰을 꺼내 들이밀 때까지도 나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뭐냐?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휴대폰을 빼앗았다.
“뭐야?”
아니, 왜 루나 사진이 이 녀석 휴대폰에 들어있어? 루나는 테이블을 치우고 있었고, 한창 바쁜 시간인지 테이블은 빈 그릇과 컵으로 어지러웠다. 유리창 너머에서 안쪽을 찍은데다 각도와 일에 열중한 루나의 모습으로 봐서 몰래 찍은 것이 분명했다.
이건 명백히 도촬이었다. 내 심사가 굉장히 뒤틀렸다. 루나도 이 상황을 알고 있나?
“이거 네가 찍은 거야?”
내 험악한 얼굴과 날 선 목소리에 이선호가 찔끔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선 방향을 가리켰다.
“아니, 쟤가 찍은 거야.”
“저 밤송이?”
“아니, 그 옆에.”
“저 안경?”
“아니, 그 옆에.”
“저 덩치?”
“응. 최지환이라고 해.”
최지환이라는 녀석은 두 줄 건너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었다. 덩치가 산만 한 놈이었다. 좌우에 밤송이머리를 한 빼빼와 금테안경을 쓴 범생이가 앉아있었는데, 어쩐지 최지환이 그 애들을 ‘거느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쟤들 말고 다른 놈들도 어딘지 최지환에게 굽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 벌떡 일어났다. 오늘 화제의 주인공은 나인 모양인지 그 녀석도 시종일관 나를 주시하고 있었음을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자기를 향해 걸어오는 건가 긴가민가한 모양이던 녀석은 나를 주시하다가 제 뒤를 슬쩍 돌아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슬쩍 웃었다.
안 웃을 땐 하마처럼 보였는데 웃으니까 어딘가 간지러운 하마처럼 보였다.
슬슬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내게 집중되었다. 이선호가 후다닥 뛰어와 내 앞을 막았다. 그리고는 몸을 잔뜩 굽히고 속삭였다.
“정은별. 설마 너 쟤한테 따지려는 거야?”
“비켜.”
“미리 말해두는데, 최지환은 우리 학교 짱이야. 한번 찍히면 편하게 학교 못 다녀.”
“비켜, 새끼야!”
“쟤네 큰아버지가 교장 친구라고.”
“너부터 처맞고 싶냐?”
“어우, 이 밤톨만 한 새끼가 진짜! 생각해줘도 지랄이네.”
나는 이선호를 쓱 밀어놓고 직진했다. 최지환의 테이블 앞에 선 나는 앞에 앉은 아이의 등을 툭 쳤다.
“딴 데 가서 먹어.”
풋! 웃음소리가 터졌다. 모두들 내 작은 몸집을 비웃는 것이겠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최지환이 고갯짓을 하자 아이가 식판을 들고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나는 턱을 한껏 추켜올리고 물었다.
“네 이름이 최지환이냐?”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최지환이 재미있다는 듯이 싱글거렸다. 그 얼굴은 어딘가 심각하게 불편한 하마 같았다. 최지환은 옆에 앉은 친구들과 눈을 한 번씩 맞추더니 귀여운 동생 어르는 것 같은 투로 물었다.
“어. 내가 최지환이다, 왜?”
“우리 형 사진을 네가 찍었다던데.”
“너네 형? 아, 루나커피 사장님.”
“그래.”
“그게 왜?”
“남의 사진을 허락도 없이 찍고 배포까지 하는 건 엄연히 불법이야.”
“불법? 내가 너네 형 사진으로 돈을 벌었냐, 인터넷에 올렸냐? 애들이랑 같이 본 것뿐이잖아.”
“그것도 불법이야.”
당연히 나는 그때 초상권침해 같은 어려운 단어는 알지 못했다.
슬슬 웃던 최지환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얼굴은 호랑이가 빙의한 하마처럼 보였다. 짧고 굵은 눈썹과 양 끝이 솟은 실눈. 이미 아이의 느낌을 잃어가는 얼굴이었다.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제 험악한 인상을 아주 잘 활용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한층 더 인상을 구긴 녀석이 한껏 뜸을 들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이제 급식실의 시선은 모두 우리를 향해 쏠렸고 실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뭐 잘못됐냐?”
이선호가 촐싹거리며 뛰어와 내 앞을 막아섰다.
“어어! 지환아, 얘가 오늘 전학 와서 분위기 파악을 못 해서 그래. 어딜 봐서 얘가 너한테 대들겠냐? 그지, 정은별?”
이선호가 어깨너머로 나를 돌아보며 눈짓을 해보였다. 나는 또 한 번 이선호를 밀쳤다.
“넌 좀 빠져.”
이선호가 비실거리며 들릴 듯 말듯 투덜거렸다. 미친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라고.
“긴말하지 않겠다. 고소하기 전에 사진 지워.”
최지환이 굵직한 입술을 비틀며 피식거렸다. 나는 급식실 전체를 향해 외쳤다.
“우리 형 사진 갖고 있는 놈들! 지금 당장 지워라!”
어리둥절하거나 키들거리거나 무감하거나, 반응은 세 가지였다. 무감한 애들은 사진을 갖지 않았다는 얘긴데, 그런 애들은 썩 많지 않았다. 나는 뱃속에서부터 숨을 한껏 모아 한 번에 분출했다. 나도 조금 놀랐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목소리가 터졌다.
“마지막 경고다! 우리 형 사진 가진 놈들! 당장 지웟!”
헉! 소리가 급식실을 울렸다. 아이들은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내 옆에서 알짱거리던 이선호도 후다닥 휴대폰을 꺼냈다.
그런데 정작 불법 유포자인 최지환은 여전히 나를 비웃고 있었다. 녀석이 제 휴대폰을 내 쪽으로 들어 보였다. 액정 화면에 루나의 사진이 떠 있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네 형이냐?”
“왜? 형이면 어쩌게?”
“척 봐도 외국인이잖아.”
“내가 친형이라고 했냐?”
“친형도 아닌데 네가 무슨 권리로 지우라 마라 지랄이야!”
식판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급식실에 비명이 터졌다.
다들 내가 처맞았을 거라 짐작했겠지만 당연히 나는 그깟 것도 피하지 못할 만큼 둔치는 아니었다. 빗나간 식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굴렀다.
그걸 피함과 동시에 내 손은 옆자리의 국그릇을 잽싸게 잡아챘다. 그릇은 정확하게 최지환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그릇이 툭 떨어지자 남아 있던 된장국이 최지환의 이마를 타고 주르륵 흘렀다.
녀석은 자신이 그걸 맞았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는지 쪽 째진 눈을 부라렸다. 옆에 앉아있던 녀석 둘이 벌떡 일어나 수선을 떨었다.
“지, 지환아, 괜찮아?”
“어떡해, 아프지?”
“씨발, 비켜!”
녀석은 냅다 욕을 내뱉고는 테이블 위로 기어 올라왔다. 체격이 커서 그런지 녀석의 동작은 그리 민첩해 보이지는 않았다.
반면 나는 몸집이 작은 대신 굉장히 민첩한 편이었다. 녀석이 테이블 위에서 무식하게 발을 휘두르는 순간 나는 의자 뒤로 몸을 숙임과 동시에 의자 다리를 번쩍 들었다. 녀석의 발이 의자 등받이에 걸렸다. 발에 의자가 낀 녀석이 테이블에서 추락했다. 엄청난 소리가 났고,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비명을 질러댔다.
누군가 선생님을 부르며 뛰어나갔고 주방 쪽에서도 소음이 들렸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급식실에 휴대폰 셔터 소리가 울려댔다.
“이 쥐새끼!”
“이 범죄자!”
이제 이판사판이다. 녀석과 나는 서로 질세라 달려들었다.
나는 남자답게 서서 싸우고 싶은데 이 비겁한 녀석이 덩치로 나를 누르고 얼굴을 한 대 갈겼다. 씨발, 겨우 고구마 신세 면했는데 또 터졌어. 참을 수 없다!
똑같이 한 대 쳤더니, 이 씨발 새끼가 웃어?
“킥킥, 그것도 주먹이냐? 간지럽다, 난쟁이!”
“개새끼! 누구한테 난쟁이래!”
녀석의 주먹이 날아왔지만 이번에는 환상적인 몸짓으로 피했다. 씹! 이 멋진 포즈를 루나한테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때였다.
급식실은 당연히 소란스러울 테지만 그 소음은 내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의 목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은별아!”
소리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린 순간 이때다 하고 주먹이 날아왔다. 그리고 또 그 순간이 왔다. 모든 것이 멈춘 순간.
비열한 하마 같은 얼굴도 멈췄고, 내 코앞으로 돌진하던 주먹도 멈췄다. 놀라거나 웃거나 사진을 찍는 아이들도 멈췄다. 막 문으로 들어오던 선생님도 멈췄다. 석상이 된 그들 너머로 루나의 놀란 얼굴이 보였다.
헐, 망했다.
“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