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커피 2호점-19화 (19/103)

<19화>

루나는 주말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미오 사건으로 조금 짜증을 내기는 했지만, 필립과의 협상 후에는 이내 기분이 풀린 눈치였다.

그런데 그때 그 협상을 엿들은 바에 의하면, 루나는 내 첫인상과는 상당히 다른 면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루나는 천사의 모습과 마음을 가진 성숙한 남자였는데 함께 지내본 결과 뭐랄까, 나보다 어린아이 같다고 하면 너무 심한가 싶지만, 솔직히 그랬다.

그리고 그 감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다방면에서 루나의 유아기적 성향을 발견하곤 했다.

“미오를 새장에 가두지 않을게요.”

“야옹, (잘 생각했다.)”

“대신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아빠가 잘 감시하셔야 해요.”

“야옹, (다 큰 애를 감시해 봤자지.)”

“좋아요. 그럼 미오가 집 밖에 나가면 나머지 애들 중 아무나 잡아서 털을 싹 밀어버릴 거예요.”

“야옹! (뭐라고?)”

“날 얕잡아보지 마세요. 진심이니까.”

“야옹, (한창 멋 부릴 때다. 그런 애들 털을 싹 밀어? 제정신이야?)”

“아빠가 미오만 잘 지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에요.”

“야옹, (어쨌든 그러면 안 돼.)”

“좋아요. 그럼…. 옳지, 뭉크가 있네! 본보기로 뭉크를 삭발해야지.”

테라스 구석에서 엿듣고 있던 나는 입을 턱 막았다. 뭉크의 야옹거리는 소리가 집안을 울려댔고, 루나가 가위질을 하는지 찰칵거리는 금속음도 요란했다.

“야옹! (진정해, 루나! 내가 미오 감시하면 되잖아.)”

“아빠 털을 걸고 맹세하세요.”

“(아, 알았어! 털털!)”

“너희들도 다 들었지? 대머리 되기 싫으면 다 같이 미오 잘 감시해, 알겠어?”

“야오오옹….”

고양이들이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야옹거렸다.

나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테라스 창문을 통해 내 방으로 들어왔다.

“후우!”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뭐야, 유치하게.”

유치하기도 하고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 같아 나는 좀 울적해졌다. 고양이들이 어떤 고양이를 만나 사귀든 그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아무리 이복동생들이라지만 고양이는 고양이 아닌가? 고양이가 사기꾼을 만날 리도 없고, 지들이 좋다는데 저렇게까지 말릴 이유가 뭐람.

그 일 빼고 루나는 평소보다 더 명랑해 보였다. 일요일에는 가게 문까지 닫고 온종일 내 옆에 착 붙어 있었다. 루나와 붙어 있으니 나야 완전 좋았지만, 등교할 때 입을 옷을 챙겨주고 심지어 속옷까지 챙겨주고 가방이며 준비물도 챙겨주는데 나중에는 기분이 묘했다.

급기야는 단골 미용실에 데려갔는데 주문사항이 너무나 용의주도했다.

“우리 은별이 얼굴이 굉장히 작잖아요. 올백을 하면 귀엽겠죠? 아니면 살짝 펌을 할까요? 그게 좋겠다고요? 그럼 펌을 해주세요. 머리를 좀 길게 해볼까요? 그건 아니라고요? 그럼 짧게 해서 앞머리를 풍성하게 할까요? 좋다고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루나가 관심을 가져주는 건 좋지만 왜 애완견이 된 기분이 드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루나의 노력 덕분에 나는 뜬금없이 예뻐져서 루나의 ‘예쁨’을 독차지했다.

*

눈부신 여름이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학교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금성시 촌구석에 있던 예전 학교보다 열 배는 넓고 깨끗한 학교였다. 새 학교 이름은 하늬 초등학교, 내가 들어갈 교실은 5학년 2반이란다.

상담실에 도착하니 담임이 될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안경을 쓴 여자 선생님이었다. 통성명한 후 선생님이 루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학부모는 아니신데 은별 학생과 어떤 사이이신지요?”

“그냥… 후견인입니다.”

“후견인?”

선생님은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은별이 집이 금성 초등학교…. 그 근처였나 보죠?”

“그렇죠.”

선생님은 뭔가 생각하던 것과 잘 맞지 않는지 고민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웃었는데, 좀 부자연스러운 웃음이라 함께 웃고 싶지는 않았다. 흘긋 보니 루나도 마찬가지인 듯 조금도 웃지 않고 있었다.

선생님도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은별이 성적이랑 생활통지표 말인데요.”

“아, 어떤가요?”

“제가 짐작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뭔데요?”

“성적은 그렇다 치고, 영어 학습 이외의 모든 항목이 ‘안 함’으로 되어있더라고요.”

“안 함?”

“네. 그런 통지표는 처음이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이번에는 루나가 고민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냥…. 은별이가 조금 단절된 생활을 했어요.”

“오…. 혹시 집사가 있고 그런 집이었나요? 성 같은 곳?”

그러나 루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그가 뒤늦게 상념에서 깨어나 대충 답했다.

“네? 아, 네네.”

“오오! 그렇군요. 이제 은별이 교육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 보살피도록 하겠습니다.”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은별아. 그럼 교실로 갈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은 내가 엄청 부잣집 아이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원래 후견인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데다가 주로 미성년자인데 유산이 있는 상속자를 보살피는 사람을 칭하는 거라서 오해할 만도 했다.

이것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루나가 내 옷장에 넣어둔 옷이 대부분 명품이라서 그걸 입고 등교한 바람에 더더욱 오해를 샀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 순간 나는 조금 우울했다. 예전에는 학교에 가기 싫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학교 다니기가 싫어졌다. 그냥 매일 루나커피에서 알바나 했으면 싶었다.

루나가 그런 내 표정을 읽고 자그맣게 말했다.

“은별아, 괜찮지? 형은 이만 가볼게. 공부 열심히 하고 친구도 사귀고, 알겠지?”

“웅….”

“왜?”

“보고 싶을 거 같아요.”

“응? 학교 끝나면 볼 텐데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한시도 떨어지기 싫은데 루나는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자, 아침 활동 시간이 끝나기 전에 애들하고 잠깐 인사 나누면 좋을 것 같아. 빨리 가자.”

우리는 상담실을 나왔다. 어깨가 절로 축 처졌다. 나는 루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담임을 따라 교실로 향했다.

걷다가 돌아보니 루나는 복도에 그대로 서 있었다. 루나가 지켜보고 있으니 더 처량 맞게 보이고 싶은 묘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 어깨는 탈골 일보 직전까지 쳐졌다.

“은별이는 어떤 과목을 좋아하니?”

“루나커피요.”

“뭐라고?”

그제야 정신이 돌아와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뭐라고 하셨어요?”

“은별이는 어떤 과목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제대로 공부한 기억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그, 그래? 혹시 영어 좋아해?”

“좋아할 정도는 아니에요.”

“음…. 그럼 음악은?”

“박치는 아니에요.”

“아니, 그걸 물은 건 아니었는데…. 그럼 미술은?”

“낙서는 잘해요.”

“체육은?”

“그건 좀 자신 있어요.”

“그래?”

“우선 싸움이 났다 하면 이기든 지든 끝까지 물고 늘어지거든요.”

다음 질문은 할 시간이 없었다. 5학년 2반 교실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아침 활동 시간이라 교실은 부산했지만 금성 초등학교 정도는 아니었다. 금성은 학생 수도 많지 않은데 여기보다 열 배는 시끄러웠다. 여기엔 척 봐도 금성의 아이들보다 훨씬 세련된 아이들이 많았다.

“자! 잠깐만 조용히 해봐요.”

아이들이 착석하자 교실은 이내 조용해졌다. 와, 말 잘 듣네.

신기해서 둘러보니 아직 인사도 안 했는데 이쪽을 향해 혀를 날름 내미는 녀석이 있었다. 저 녀석 뭐야?

원래 내가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어떻게 복수를 해줄까 생각하며 녀석을 쏘아보았다.

“오늘은 새로운 친구가 왔어요. 이름은 정은별. 자! 누구 은별이에게 자기소개 부탁해볼까?”

조용.

아무도 부탁하는 애들이 없는 가운데 아까 그 녀석이 또 혀를 날름 내밀었다. 저, 씹….

“은별아?”

“네?”

“친구들이 아직 수줍은가 보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해.”

“아, 네.”

나는 턱을 바짝 쳐들고 아이들을 쓰윽 둘러보았다. 미약하게 비웃음이 터졌다. 나는 발꿈치를 살짝 들었다.

“이름 정, 은, 별. 금성초등학교에서 왔다.”

“우우!”

내 눈이 뱀 혓바닥 같은 그 녀석에게 꽂혔다. ‘우우’는 메롱 날리던 그 녀석 입에서 나왔다. 다른 아이들도 킬킬거리며 따라 했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또 혀를 날름 내민다. 저 새끼가 진짜 미쳤나?

“그게 다야?”

담임의 질문에 나는 머리를 약간 굴려보았다.

마음 같아선 루나커피에 산다고 자랑하고 싶었지만, 이 멍청이들이 루나커피를 알 리가 없으니 소용없는 일 같았다. 그런데 또 루나커피를 모르는 놈들이니 자랑해도 될 것 같기도 했다.

“루나커피가 우리 집이야.”

“…….”

역시나 한심한 녀석들. 지척에 있는 루나커피가 마법의 커피점인 줄도 모르고 살다니,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침묵이 좀 쓸데없이 길었다. 심지어 담임까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뿐만 아니라 뱀 혓바닥을 슬쩍 보니 혀를 빼문 채 집어넣는 걸 잊은 것처럼 보였다.

‘왜들 이래?’

그다음에는 귀청이 ‘뽀사지는’ 줄 알았다. 아이들이 일제히 떠들어댔다. 심지어 담임까지 합세해 고래고래 질문을 던졌다.

“루나커피?”

“거기가 너네 집이라고?”

“어머나,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는데! 그럼 은별아, 아까 오셨던 네 형님이 루나커피 사장님이야?”

“쌤! 그 사장님 이름 우월영이에요!”

“어머나! 그러고 보니 아까 통성명할 때 그런 이름이었지!”

아이들이 일제히 떠들어댔다.

“아이돌처럼 잘생긴 형!”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스웨덴 사람 같대요.”

“요정요정!”

뭐, 뭐야…? 루나커피를, 이 바보들이, 알아?

알고 보니 루나커피의 땡스타그램은 팔로워가 자그마치 4만 명이 넘었다. 대형 커피 체인도 아닌데 그 정도면 대단한 숫자였다.

그 인기의 이면에는 요정처럼 생긴 남자 우월영이라는 사장이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금발의 남자가 루나커피를 오픈한 이후 주변의 관심은 꾸준히 늘어나 인터넷을 타고 번지는 중이었다. 그래봤자 루나커피 땡스타그램에 루나 사진이 올라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혹시나 하고 팔로우한 사람들이 소문의 루나 얼굴 한번 보겠다고 일부러 먼 곳에서 루나커피로 원정을 왔다가 빵과 커피 맛에 홀딱 반해 사진을 찍어 올린다고 했다.

사실 루나커피의 커피와 빵들은 한국 최고라고 자부해도 된다. 그 맛과 품질에 비하면 하루에 판매하는 양이 적어서 장사가 잘되는 편은 아니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면 루나는 얼마든지 벌 수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듣고 보니 체인점을 내자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루나도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날까 봐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의 흥미를 돋운 모양이었다.

젠장, 빵도 빵이지만 이게 다 루나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거다. 하긴, 내 눈에만 그 얼굴이 보이는 것도 아닐 테니까. 우쭐해보려고 한 말인데 짜증 나게 초조해지는 건 왜지?

아무튼 그날 나는 순식간에 하늬 초등학교의 스타가 되었다. 뱀 혓바닥도 살살거리며 내게 접근했다. 기분 나쁘게 그 녀석은 키가 아주 컸다. 코가 조금 낮기는 하지만 혀를 날름거리지 않을 때는 그럭저럭 귀여운 얼굴이었다.

“정은별? 난 이선호라고 해. 이따 점심 같이 먹을래?”

“글쎄.”

“오늘 반찬 새우튀김 나온대. 보통 네 개씩 나오는데 내 거 하나 줄게.”

나는 못마땅한 얼굴로 녀석을 쓰윽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우튀김에 넘어간 건 절대 아니었다.

“정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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