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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50화 (150/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50화

“아버지 오셨네. 아가, 니는 앉아서 계속 묵고 지수 네가 나가서 모시고 들어온나.”

예비 시아버지가 왔다는 소리에 단솔이 마치 군기가 잘 잡힌 이등병처럼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손이 빨랐다.

단솔의 어깨를 눌러 앉힌 그녀가 지수를 일으켰다. 단솔과 영 떨어지기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지수는 못이기는 척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우리 다이노서울 멤버들은 다 형질이 어떻게 되나? 요즘 이런 거 물으면 실례지요?”

“어머니, 다이노서울 아니고 소울이요. 안타깝게도 예비 며느님 빼고 다 알파랍니다.”

“에휴.”

대수의 대답에 지수의 모친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난 또, 짝 맞춰서 왔길래 단체 미팅이라도 할라는 갑다 했지.”

“요즘은 형질 그런 거 안 따진다니까 그러시네. 어떻게, 원하시면 짝 맞춰서 미팅해 드려? 그리고, 아직 막내는 발현도 안 했다면서. 실망하긴 너무 이른 거 아니에요?”

“아이고, 갸가 키가 190센치가 넘는데 오메가로 나오면 재앙이다. 재앙. 밥 더 줄까?”

“아! 더 주시면 감사합니다! 반찬이 너무 맛있어요!”

넉살 좋은 민재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지수의 모친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조용했던 식탁이 금방 시끄러워졌다.

“와, 진짜 마음은 불편하고 의자는 편하고 밥은 맛있어. 나 태어나서 이런 자리 처음이야 형.”

“어떻게 너는 이런 자리에서도 밥은 두 공기를 먹냐.”

“내 시댁도 아닌데 뭐. 단솔이 형은 완전 깨작깨작 먹네.”

“그나저나, 지수 형한테 동생도 있어요? 완전 막내일 것 같은 이미지인데? 의외네.”

윤성이 육전을 두 장씩 집어 먹으며 대수에게 물었다.

“어, 있어. 지수 동생 여수. 늦둥이야 아마…… 민재랑 동갑일걸?”

민재는 해가 바뀌어 올해로 열일곱 살이 되었다.

“오, 친구네 친구! 친해져야겠다.”

“근데 아마…… 친해지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노력해 봐, 쉽지는 않겠지만.

대수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는 민재는 새로운 친구를 사귈 생각에 방방 들떠 있었다.

그 순간 신나 하는 민재의 뒤로 지수의 부친인 한창일 사장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민재를 보면서 웃던 단솔의 얼굴에서 금방 웃음기가 사라졌다.

단솔은 순간, 자신이 또 시간 여행을 해서 지수가 노인이 된 먼 미래로 온 게 아닐까 착각을 했다. 예비 시아버지는 마치 지수에게 흰머리 분장을 시키고 주름을 조금 그려 넣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지수와 똑같은 외모를 갖고 있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주단솔입니다.”

“어…… 앉아라. 일어날 거 없다.”

“오랜만에 봬요, 아버지.”

“어, 대수도 왔나.”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다이노소울입니다!”

앉으라는 소리가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져 다른 멤버들도 눈치껏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런 멤버들을 훑어보는 눈조차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젊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니까, 오랜만에 집이 훈기가 도네. 내는 밥 먹었으니까 밥 먹고 이따 술이나 한잔하세.”

“네!”

정작 단솔은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다른 멤버들은 유심히 살피는 눈초리에 단솔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었다. 혹시라도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 싶어 눈길 하나하나에도 온통 신경이 쓰였다.

그때, 아버지를 뒤따라 들어온 지수가 손에 바리바리 들고 있던 것을 식탁 위에 무게감 있게 내려놓더니 얼른 단솔의 옆에 앉았다.

“저게 다 뭐예요?”

“각종 생선, 개불, 멍게, 해삼, 낙지 기타 등등.”

“우와…… 역시 바닷가라 그런가.”

“아닌데? 난 여태 구경도 못 해 본 것도 많아.”

“응?”

“아버지가 솔이 너는 쳐다도 안 보지?”

“네? 그걸 어떻게…….”

“걱정 마, 부끄러워서 그래. 오는 내내 걱정하더라 얼굴 빨개지면 어떡하냐고. 첫 만남이라 약간 위엄 있는 시아버지 하고 싶으신가 봐. 술 한잔 먹어서 빨개진 척하러 가셨으니까 봐도 못 본 척해 드려.”

* * *

이 세상 마지막 식사라도 하는 듯 먹던 멤버들은 더 먹을 배가 없다며 정원으로 도망쳐 버리고 대수도 다른 형제들과 인사를 하러 간다며 나가 버린 사이, 단솔과 지수, 지수의 모친만이 지수의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서재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에 비해 좁았지만, 여전히 궁궐 같은 집 내부에 단솔은 문을 열 때마다 작게 감탄했다. 알 수 없는 한자들이 쓰인 빼곡한 책들 너머 테라스에 앉아 양주잔을 굴리고 있었다. 기품이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술기운에 약간 상기된 듯한 얼굴빛에 단솔은 저도 모르게 지수의 말이 생각나 미소를 지었다.

“어…… 왔나.”

“대수랑 다른 애들은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부르다나 봐요. 시끄러울 것 같아서 그냥 나가서 놀라고 하고 내보냈어요, 아버지.”

네 사람이서 먹기에는 많은 양의 해산물들이 커다란 테라스 테이블에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긴장이 되어 밥을 제대로 못 먹긴 했지만, 단솔은 영 식욕이 돌지 않아 그저 제일 가까이 있는 흰 살 회만 몇 점 집어 먹고 있을 때였다.

“우럭 좋아하나 보네.”

“아…… 네.”

사실, 단솔은 제가 집어 먹고 있는 회가 우럭인지 광어인지도 몰랐다. 단솔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 결혼 선물로 줄 건 없고…… 우럭 양식장을 줄까.”

“풉, 켁.”

단솔이 회를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지수의 부친이 한참 만에 내뱉은 말에 단솔은 저도 모르게 사레가 들렸다.

“솔아, 괜찮아? 엄마, 물 좀 주세요.”

“어어, 아이고 이 양반이 또!”

“아니…… 켁…… 어머니! 저 괜찮아요…… 큽…….”

어머니가 건넨 물 잔을 받아 들고 원샷을 한 단솔이 애써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삼켰다. 아버지는 타박하는 어머니에게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와! 우럭 좋아하네!”

“큽…… 저…… 저는…… 잡는 건 안 좋아합니다, 아버님……. 살아 있는 우럭은…… 본 적도 없구요.”

“니는 안 잡아도 된다! 그건 고마 다 사람 쓰는 거지……!”

“그…… 그래도……! 그건…… 좀!…….”

단솔이 안절부절못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수는 그런 단솔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 건너편에서 키득거리며 웃기만 했다.

그때, 난처한 기색의 단솔의 눈치를 읽은 듯 지수의 모친이 말을 거들었다.

“아무래도 그런 건 관리를 해야 하니까 좀 귀찮지! 줄 거면 현금이나 건물! 주식으로 주소! 요즘 애들 좋아하는 거 뭐지 지수야?”

“가상 화폐?”

“어! 그래 그것도 좋고!”

“아…… 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저!”

간단한 술자리를 끝내고 지수의 방에 잠깐 들어왔을 때, 단솔은 씻지도 않고 바로 기절해 잠에 들 수 있을 정도로 혼이 빠진 상태였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이렇게까지 체력을 다 쓴 적은 처음이었다.

“이십억이니, 이십오억이니 주는 대로 다 받을 기세였으면서 막상 준다니까 왜 다 괜찮대?”

“결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알았으면, 그날 프러포즈 같은 거 하지 말 걸 그랬어요.”

발만 빼꼼 침대 밖으로 내놓은 채, 얼굴은 잔뜩 베개에 눌려 이야기하는 모양새가 귀엽기도 하고, 귀여운 얼굴로 한 말이 밉기도 했던 지수가 단솔의 볼을 장난스레 찌그러트렸다. 단솔의 통통한 입술이 금붕어처럼 툭 튀어나왔다.

“네가 안 했어도 내가 하자고 했을 거야. 저 두 노인네 신나서 어깨춤 추는 거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그래도, 미워하시는 것보단 예뻐해 주시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

헤헤, 평소라면 귀찮게 하지 말라며 뿌리쳤을 텐데 오늘은 그럴 힘도 없는지 단솔은 지수에게 얼굴이 붙잡힌 그대로 잠이 들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자신 때문에 발목을 잡히는 건 아닐까. 지수는 단솔의 결심이 기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에 양말을 벗기고, 편하게 뉘어 준 후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혹시나 불편할까 싶어 목 끝까지 잠긴 단추를 두어 개 풀고 있을 때, 어느새 깨어난 단솔이 지수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그런 거 말고, 이리 와서 팔베개라도 해 줘요 형.”

“오늘 진짜 힘들었나 보네, 안 하던 짓을 다 하고.”

“응, 나 사실 어른들이랑 있는 거 되게 어려워요……. 형이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우리 엄마, 아빠랑도 이렇게 오래 있어 본 적이 없어서. 실수하지 않았나 자꾸 신경 쓰여.”

지수는 자연스레 단솔의 옆에 누워 단솔의 감긴 눈가에 손을 갖다 댔다. 눈가가 뜨끈뜨끈한 게, 미리 두통약을 좀 챙겨 놔야겠다 싶었다.

“하나도 실수 안 했어. 우리 부모님은 네가 아마 브레이크 댄스를 춰도 좋아하셨을걸.”

“결혼식에…… 부모님 안 부르고 싶어.”

지수와의 미래를 그리면서 계속 고민했던 문제였다. 혼수상태였던 단솔은 회귀 전, 자신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은 친부모를 기억해 냈다.

지수의 부모님을 마주하자, 자신의 부모에 대한 반감은 더 커졌다. 단솔의 부모는 생물학적 부모, 그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난 그것만 하면 돼요. 다른 건 필요 없어. 근데 형네 부모님이 안 좋게 보시면 어떡해요?”

“그럼 우리 부모님도 부르지 말지 뭐.”

“나빴어.”

“응, 나 나쁜 놈이야. 솔아, 나는 앞으로 밖에 나가서 나쁜 놈 할게. 자기 식구, 자기 배우자,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나쁜 놈. 욕먹고 다치고 구르더라도 돈 많이 벌어 와서 좋은 거 예쁜 거 많이 보게 해 줄게. 그러니까 네가 앞으로 안에서 나 많이 예뻐해 줘.”

지수가 단솔의 손을 연신 만지작거리더니 입을 맞췄다. 평생 부모의 사랑이 뭔지 모르고 살아 온 단솔은 그 장난 같은 말에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단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고마워요. 어쩌면 나는 이 순간을 위해서 태어났는지도 몰라요.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길 잘한 것 같아요.”

단솔의 회귀 사실을 여전히 모르는 지수는 그저, 두현의 사건만을 염두에 둔 채 대답을 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마음이 다르지는 않았다.

“고마워, 살아 돌아와 줘서. 내 옆에 와 줘서.”

##########################공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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