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49화 (149/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49화

“근데 단솔이가 처음으로 우리 집에 인사 가는데 너는 왜 오냐?”

“글쎄, 전 며느리 후보로서 진짜 며느릿감이 어떤지 구경 가는 거랄까.”

지수가 괜히 대수를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캐리어를 끌면서 걷던 대수가 단솔을 흘낏 돌아보며 농담을 던졌다.

아무래도 결혼하겠다는 폭탄선언을 방송을 통해 식구들에게 알려 주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지수와 단솔은 본방송이 나오기 전, 부랴부랴 지수의 본가에 내려갈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그 일정에 동행하게 된 것은 단솔과 지수 두 사람뿐만은 아니었다. 처음엔 대수가 운전을 자처하더니, 길성이 나섰고, 그다음엔 다이노소울 멤버들까지 자신들을 데려가 달라 성화였다.

“아니, 거기가 어디라고 너희를 데려가!”

“나름 상견례인데 우리가 안 가면 누가 가?”

“아, 상견례 그런 거 아니거든……⁈ 지수 형!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당황하는 단솔에 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자신의 부모나 형제들이 보통 기운을 가진 사람들은 아닌지라 단솔이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긴 했다.

차라리 시선을 분산시킬 겸 시끄러운 놈들 한 명이라도 더 오는 게 나을 성도 싶었다.

“같이 가, 못 갈 것도 없지 뭐. 방도 많은데.”

결국, 그 많은 인원을 지수의 고향 집에 데려가기 위해 지수는 전세 버스까지 빌려야만 했다. 마침 길성이 대형차 면허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원래 결혼 전에 인사 갈 때 이렇게 많이 가는 게 맞나…….”

“너희 식구들이라면 오히려 좋아하실걸? 일손 많다고.”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까지도 지수는 긴가민가한 것 같았다. 일면 단솔의 눈치를 보는 것도 같았다. 그런 지수의 어깨를 대수가 툭툭 두드리며 차에 올라탔다.

“대수 형은 형네 식구들을 잘 아시나 봐요.”

지수는 부모님이나 형제들 이야기는 좀처럼 꺼내지 않았다. 오메가로 형질을 숨기고 활동하는 내내 서먹하게 지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차에 다들 올라타자, 지수는 단솔에게 대단한 결심을 한 것처럼 물었다.

“이제 와서 무르기 없기다?”

“알았어요.”

“나…… 형제가 일곱 명이야.”

“에? 진짜요……? 형이 몇 째인데요?”

“어…… 아마 여섯째일걸.”

“와…….”

단솔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멤버들을 다 데려가도 좋다고 했던 거였나. 멤버들이 많은 덕분에 얼추 쪽수가 맞아서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다둥이…… 뭐 그런 건가. 재산 분쟁이나 시집살이…… 명절 증후군……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았던 단어들이 휙휙 지나갔다.

“형제들 성격이 어떤데요?”

“……그냥…… 다들 데면데면해.”

제대로 말을 하지 않고 빙빙 돌려 말하는 지수에 단솔은 자꾸만 지수의 식구들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지수와 닮았을까, 아니면 전혀 닮지 않았을까.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데요.”

“어…… 돈 많아.”

“에? 뭐예요. 자기 부모님한테.”

지수는 막상 단솔 앞에서 자신의 부모님을 설명하자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앞에 앉아 있던 대수가 고개를 돌려 설명했다.

“진짜야, 얘네 부모님 진짜 돈 많아. 아마 그 동네 부동산 가면 너 그거 할 수 있을걸?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어어, 그거 다 한 사장네 땅인데.”

대수는 평소답지 않게 말을 길게 하며 급기야 부동산 아저씨 목소리를 흉내 냈다.

그의 억양에는 경남 쪽 사투리가 묻어 나왔다. 사실, 대수가 처음 미국에서 한국으로 와 가장 많이 한국어를 배운 곳은 지수의 집이었다. 해서, 대수에겐 한국에 있는 고향 같은 곳이기도 했다.

“어…… 근데 형네 부모님도 진짜 부자면…… 빈부 격차가…….”

“허튼 생각하지 마. 너 데려가면 분명히 좋아하실 테니까.”

지수는 짐짓 심각해지는 단솔을 보면서 아프지 않게 단솔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겼다.

지난번에도 허튼 생각을 한 전적이 있는 단솔이었다. 단솔이 워낙 ‘이 돈 받고 우리 애랑 헤어져’ 같은 대사나 내뱉는 막장 드라마가 취향인지라 지수는 단솔이 곰곰이 생각에 잠길 때면 지레 걱정이 되곤 했다.

“과수원 같은 것도 하고, 양식장도 해. 소도 키우고. 농장 같은 거…… 땅은 많은데 땅덩어리가 암만 커도 서울이 더 비싼 거 알지? 그리고 내가 더 부자니까 넌 나만 따라오면 돼.”

괜히 불안해진 지수가 단솔의 손에 깍지를 꼈다. 단솔이 지수의 말에 유순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뒤에서 다른 멤버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이 돈 받고 우리 애랑 헤어져!’ 하고 돈 봉투 주면, 얼마쯤 받으면 헤어질 수 있지? 일억? 이억?”

“야, 그거 가지고 되냐? 그래도…… 아파트 한 채 값은 받아야 되지 않을까?”

“아파트? 어디에 있는 아파트인지 중요해.”

그들의 대화를 듣던 지수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단솔을 쳐다보자 단솔이 꽤 진지하게 ‘이십억……?’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이십억? 무슨 이십억.”

“아뇨?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씨…… 너 쟤네랑 놀지 마. 내가 이십오억 줄게.”

“진짜요?”

“와…… 너 진짜.”

“아니…… 준다는데…… 안 받아요 그럼?”

“그래, 너 다 가져라.”

* * *

길성이 길을 몇 번 헤매긴 했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과수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단솔은 짐짓 씩씩한 척을 하긴 했지만 긴장이 돼서 차에서 내리기가 겁이 났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지수에게 결혼하자고 선전 포고를 한 건지 모르겠다.

제일 먼저 차에서 내린 것은 좁은 좌석에 벌받는 것처럼 내내 앉아 있던 대수였다.

“어머니, 며느릿감 왔어요!”

평소의 그답지 않게 고래고래 소리치는 대수의 등짝을 퍽퍽 때리는 소리가 났다.

새까만 대형 세단 앞에 기사와 함께 서 있는 지수의 모친은 거친 말씨와는 다르게 기품이 흐르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키는 아담했지만, 얼굴은 영락없이 지수와 판박이인 모습이었다.

“어데?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우리 아들 신붓감 얼굴도 모를까 봐! 여기도 인터넷 다 들어온다!”

차에서 일어나 내리려던 단솔이 그 소리에 돌처럼 굳었다. 단솔의 겉옷을 들고 있던 지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단솔을 바라보았다.

“형! 어떡해요. 어머니 화나셨나 봐요!”

평생을 서울에서만 살아온 단솔에게는 아무리 봐도 화난 사람 같은 말투였지만, 창문을 힐끗 바라본 지수는 작은 형이 한국대에 합격했을 때보다 밝아 보이는 모친의 얼굴을 보며 확신에 차 말했다.

“화난 거 아닌데? 우리 엄마 기분 최고 좋은 상태야 지금.”

별로 믿기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기에 단솔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이며 발을 뗐다.

단솔이 내리지 못하는 바람에 뒤에 엉켜 있던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마쳤다.

“꺄아! 어머 어머! 왔어요! 내 얼굴 좀 보자!”

단솔이 버스 계단에서 발을 떼기 무섭게 대수와 지수를 헤치고 나타난 지수의 모친은 단솔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담한 체구에서 저런 힘이 어떻게 나오는 건지 장장 네 시간을 버스에 실려 온 단솔의 몸이 팔랑팔랑 좌우로 흔들렸다.

“어어……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는 다이노소울의…… 아니 저는 주단솔입니다!”

“어머…… 실물이 훨씬 이쁘네. 반가워요. 저는 한지수 엄마, 김현정이에요.”

“어머님, 말씀 편히 해 주세요.”

“어머님……. 그 소리 너무 듣기 좋다. 그럼 그럴까?”

만나자마자 지수의 모친은 단솔에게 팔짱을 꼈다. 단솔은 그 다정한 모습이 싫지 않았다. 지수의 다정한 챙김이 누굴 닮았나 했더니 어머니를 닮은 모양이었다.

“우리 엄마 개명했다 사실은? 원래 김말자야. 그리고 엄마, 왜 갑자기 되도 않는 서울말을 써?”

“야! 한지수!”

지수가 모친의 비밀을 고백하고 키득거리는 사이, 다이노소울 멤버 일곱 명이 버스에서 내렸다.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다이노소울입니다!”

“어머, 내 다 안다! 이거 맞지?”

자신의 어머니가 다이노소울의 시그니처 포즈인 D 자를 만들어 보이자 지수는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네! 맞습니다, 어머니!”

“오래간만에 북적이니까 좋네.”

“아버지는요?”

“어…… 회 떠 먹인다고 양식장에. 새벽부터 나갔는데 바다에 빠져 죽었는 동 아직도 무소식이네.”

그들만의 표현법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단솔이 안절부절못하자 지수가 단솔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 엄마식 농담이야. 아버지 조금 이따가 오실 거야.”

“아…… 응.”

“우와! 어머니! 집이 진짜 크고 좋아요!”

민재가 과수원 뒤에 있는 커다란 전원주택을 보며 외쳤다. 통유리로 짜인 3층 집이었다. 멀찍이 서서 집 구경을 하는 민재를 보며 지수의 모친이 호탕하게 웃었다.

“저거? 집 아닌데.”

“네? 집 아니면…… 뭐예요? 별장?”

“저거…… 농막 아이가. 농사지을 때, 쉬라고 만든 거.”

* * *

대수의 말이 맞았다. 지수의 부모님은 진짜 부자였다. 과수원 뒤편으로 올라가자 펼쳐진 지수의 본가 건물은 아까 본 3층 전원주택이 진짜 농막처럼 보일 정도로 커다란 성에 가까웠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내주는 음식들도 무슨 전문 음식점에서 먹는 음식들 같은 모양새였다.

“우리 꼭 용궁에 끌려 온 것 같아.”

“지수 형 저희 간 떼어 가는 거 아니죠?”

“허, 누가 보면 억지로 끌고 온 줄 알겠네. 애초에 나랑 솔이랑 오는 거였는데 딸려 온 객식구들 주제에. 헛소리할 기운 있으면 밥 먹고 나가서 잡초나 뽑아.”

잡초가 있긴 있나. 정갈하게 정리된 평야 같은 정원을 보며 단솔이 떡갈비를 씹고 있을 때, 지수의 모친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아가, 입에는 좀 맞나.”

“네, 너무 맛있어요.”

“그래도 회 들어갈 배는 좀 남겨 놔야 된데이, 아부지가 니 온다고 지 마음에 드는 자연산 나올 때까지 새벽부터 기다렸단다. 웃기지도 않는다. 지는 양식장 하면서. 하하하하.”

단솔은 어머니의 말이 너무 빨라 반은 알아듣고, 반은 알아듣지 못했다. 어느새 단솔이 많이 편해졌는지 어설프게 교양 있는 말씨를 쓰던 어머니는 점점 사투리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늦으셔서 기분이 나쁘신 건가…… 아니야, 아까도 화난 건 아니라고 하셨으니까…….’

같은 한국말인데도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지 단솔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하하하…….”

“별나다 별나, 그치? 그래도 좀 네가 참아라, 우리 집 첫 결혼 아이가.”

“네……? 첫 결혼이요?”

“으응……? 지수가 말 안 하드나?”

단솔이 눈이 동그래져서 지수를 쳐다보았다.

“그거 뭐 자랑이라고, 다 결혼 안 했어. 형이랑 누나 전부 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