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45화
<전지적 주변인 시점 Q&A>
Q : 제보할 게 있으시다고……?
A : 네! 한지수 씨랑 주단솔 씨를 고발하려고 합니다!
Q : 아…… 저희는 고발하고 그러는 프로그램은 아닌데…… 두, 두 분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나저나, 그쪽은 누구세요?
다이노소울의 앨범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시작한 반응이 너튜브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 도착하기까지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녀도 아무도 못 알아보던 망돌은 이제 할아버지나 할머니도 흥얼거리는 노래의 주인공이 되었다.
신데렐라니, 역주행의 아이콘이니 이런 수식어를 갖다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큰 성공이었다.
그 뒤로 멤버들은 개인 활동을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8명이 한꺼번에 앨범 활동을 하면 회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사이즈가 커져 버려 내린 선택이었다.
물론 싱글이니 미니 앨범이니 하는 것들을 내면서 종종 그런 이벤트를 기획하긴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이벤트.
돈이 없어서 정규 앨범을 내던 때와는 달랐다. 8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스케줄을 3주 이상 하면 수 엔터는 그야말로 업무 한계치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A : 저는 드라마 ‘환희의 땅’ 조연출인데요. 두 분이 친해도 너무 친해서 드라마에 너무 방해가 돼요…….
Q : 아니…… 두 사람이 친하면 안 되나요?
A : 당연히 안 되죠! 범인을 잡는 데 혈안이 된 형사랑 사이코 패스의 두뇌 게임인데요……! 맨날 싸워야 하는 두 사람이 알콩달콩해서 저희도 난감하다구요!
두 사람이 한 드라마에서 절체절명의 라이벌로 만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였다.
* * *
“솔아, 형 이번에 새 드라마 들어가면 바빠질 텐데, 그 전에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그럴까요? 무슨 역할인데요?”
“형사, 사이코 패스 때려잡는.”
“으…… 무서워.”
그때만 해도 단솔은 무사히 앨범 활동을 마무리하고 월드 투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실은 그 핑계로 지수가 본격적인 드라마 촬영 준비에 들어가기 전, 짧은 여행을 좀 갔다가 멤버들과 게임을 하면서 한참 동안 쉴 예정이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다 나은 척을 하긴 했지만, 격렬한 안무와 제대로 잠도 잘 수 없는 살인적인 일정은 멀쩡한 사람도 골병들게 하기에 딱 좋았던지라 단솔에게 지금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휴식이었다.
“형, 내일 지수 형 드라마 첫 촬영이라고 하지 않았어?”
“응. 왜?”
그날도 누워서 드라마 정주행을 하던 단솔에게 우현이 인터넷 기사 하나를 내밀었다.
[환희의 땅, 사이코 패스 연쇄 살인마 역할 채희, 해익동 사거리 방면에서 만취 상태로 음주 운전하다 적발, 면허 취소 수준…… 한지수 복귀작 브레이크 걸리나?]
“헤엑! 얘 음주 운전했대? 미친 거 아니야? 내일 첫 촬영인데 술을 마셨다고? 아니…… 그럼 얘만 자르면 되지 왜 지수 형 발목을 잡아!”
“와 이번에 제작비도 장난 아니지 않나…… 투자한 회사들 난리 나겠네. 잠깐만, 형. 근데 우리 회사도 여기 투자한 거 아니야?”
“……어? 맞을걸……?”
단솔이 사이코 패스 연쇄 살인마 역할을 맡게 된 데에는 절대적으로 우연이 작용했다. 하지만 우연히 맡게 된 것치고는 단솔은 마치 그 역할을 위해서 짜 맞춘 사람처럼 잘 어울렸다.
마침 지수의 대본 연습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따로 대본 리딩을 할 시간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상태였고, 아이돌계에선 딱히 춤을 잘 추는 축에 속하지 못했지만, 배우 쪽에서는 웬만한 액션 배우만큼이나 몸을 잘 쓰는 편이었다.
원체 마른 체질이라 예민하고, 날이 선 인물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따로 살을 빼야 할 필요도 없었다.
정작 지수는 단솔의 이미지에 도움이 안 될뿐더러, 단솔이 뭐가 모자라서 음주 운전한 새끼의 대타를 맡냐며 반기지 않았지만, 작가와 감독은 쌍수 들고 단솔을 환영하는 눈치였다.
“제작비에 투자한 돈도 많잖아요, 형.”
“그거 다 날려도 돈 많아.”
“나 아니라도 이 역할 할 사람 많다는 소리로 들려요, 형.”
“그런 말 아닌 거 알잖아. 이거 힘들어. 더군다나 드라마는 더 힘들어. 알잖아 솔아.”
“형이 있는데 뭐가 힘들어요. 우리 오랜만에 지겹도록 같이 있을 수 있겠다. 난 벌써 설레는데.”
결국, 지수를 최종적으로 설득한 것은 역시 단솔이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친해도 너무 친하고, 붙어 있어도 더 붙어 있어야 하는 사이라는 게 문제였다.
“차 형사, 날 그렇게 잡고 싶어? 근데 넌 안 될걸. 넌 나 잡고 싶다고 나만 보잖아. 나는 네가 쫓아온다고 해서 너만 보지 않거든. 내가 죽이고 싶은 것들을 보지.”
“이 개새끼가!”
퍽, 퍽,
“윽…….”
“지금도 봐…… 넌 내 눈만 보느라, 내 손에 칼이 들린 것도 못 봤잖아. 배에 구멍이 뚫려야 아픈 줄 알지. 아직도 나만 보네. 갈게. 다음에 또 보자, 차 형사.”
“개새끼…….”
컷! 감독의 컷 소리가 들리자마자, 지수는 무슨 스프링이라도 달린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단솔에게 달려갔다.
“솔아, 괜찮아? 아까 잘못 맞은 거 아니야?”
“아니야 형, 저 진짜 괜찮아요.”
“아니던데, 아까 진짜 둔탁한 소리가 났다니까. 아이 씨…… 이쁜 얼굴에 분장을 해 놔서 진짜 상처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어야지. 감독님! 이거 분장 잠깐만 지우고 다시 가면 안 돼요?”
“형! 왜 그래요! 진짜! 나 진짜 괜찮다니까요?”
“아니, 아까 진짜 제대로 맞았다니까 그러네?”
“형, 착각이에요 착각. 내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착각했나 보네 이 형, 빨리 다음 신 찍으러 가요. 네?”
두 사람의 모습에 다른 스태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드라마 홍보 차원에서 제보한 조연출도, 두 사람의 일상을 찍으러 온 예능 카메라도 해당 장면을 클로즈업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다이노소울 포털>
(주단솔 극성팬 촬영장 난입.jpg)
근데 그게 상대배우임
⤷근데 그게 소속사 사장임
⤷근데 그게 남친임ㅋㅋㅋㅋ
⤷저 와중에 둘이 완전 꿀떨어지는데 드라마 보면 세상 철천지 원수지간처럼 보이는 게 개신기하다 배우는 배우인 듯
⤷한지수 눈빛 잡아먹을라고 그러는 거 보소
⤷어떤의미로는 잡아먹을라는 거 맞을지도?
채희 음주운전이 여러모로 환희의 땅 제작진한테 호재인 이유
1. 채희보다 단솔이 연기 더 잘함
2. 채희보다 단솔이 액션잘함
3. 한지수랑 케미 더 오짐
4. 같은장면 다른 느낌 다른딕션 비교
⤷이렇게 놓고 보니까 확실히 다르긴 하네
⤷채희가 잘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까일 정도로 못한 건 아닌거 같은데 ㅠㅠ 채희는 대본리딩이고 단솔이는 본촬영아님? 같은 장면이라고 보기에도 좀... 물론 단솔이가 잘하긴 하지만....
⤷채희가 했어도 망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이 정도 화제성이나 해외에서 반응은 안나왔을듯 지수단솔 관계성도 그렇고
⤷앞부분만 놓고 보면 그런데 뒤로갈수록 포텐은 단솔이 잠재력 오지는 듯 뭔가 아이돌 답지않은 한이 있어 ㅋㅋㅋㅋ
숙소에 돌아온 지수는 인터넷 게시판 글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탁, 하고 핸드폰을 덮었다. 지방에서 촬영을 하느라 제일 좋은 호텔을 잡았어도 동네 모텔 수준이 최선이었다.
“아…… 개새끼들 방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니까.”
“됐어, 놔둬요. 스태프들도 힘든데…….”
스멀스멀 올라오는 담배 연기가 안 그래도 열악한 숙소 환경을 한층 더 열악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홧김에 프론트로 전화를 하려는 걸 단솔이 만류했다. 얼굴엔 옅은 멍을 달고 있었다.
“거봐, 제대로 맞은 거 맞다니까.”
귀신을 속이지 차라리.
아니라고 박박 우기더니 막상 숙소에 와서 분장을 지워 보니 진짜 멍이 들어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단솔도 몰랐다. 액션 신을 찍고 나면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분비되기라도 하는 건지, 아픈 줄도 모르고 숙소에 들어오곤 했다.
오늘도 여전히 지수의 과잉보호겠거니 했는데 상처가 난 얼굴을 보고 큰일 났다 싶긴 했었다.
평소엔 쓰지도 않는 뿔테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써 보고 모자도 눌러써 봤지만, 역시나 손바닥 안이었다.
마지막 촬영까지 끝낸 지수는 아예 퇴근을 단솔의 방으로 했다. 이튿날이 되면 가라앉을까 하고 편의점에서 사 온 구운 계란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있던 단솔은 딱 걸리고 말았다.
“바보같이. 구운 계란으로 문지른다고 그게 없어져?”
“날계란으로 문질러야 하는 줄 누가 알았나. 얻어맞을 일을 해 봤어야 알지.”
“누군 되게 맞을 짓하고 산 줄 알겠어.”
“크큭. 형, 근데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되게 이상한 거 알아요?”
“그러게?”
꽃무늬 벽지가 화려하게 수놓인 낡은 모텔, 얼굴에 멍이 든 단솔은 지수의 무릎을 베고 있고, 지수는 조심스레 어디선가 구해 온 날계란으로 단솔의 멍 자국 위를 달래고 있었다.
“진짜 구질구질한 로맨스 영화 같아.”
“대타하길 잘했다.”
“응?”
“내가 대타 안 했으면, 언제 형이랑 이런 데서 이러고 누워 보겠어요. 깔끔쟁이 한지수는 서울에 있는 5성급 호텔도 찝찝해서 잘 안 가는데.”
“왜? 5성급 호텔 가고 싶은데 못 가서 서운했어?”
“아니, 난 우리 집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