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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44화 (144/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44화

    “아, 형! 이거 아니라고. 하나! 둘! 원 투 원 투 쓰리 포! 하라니까, 왜 자꾸 하나! 둘! 원 투! 원 투! 원 투! 하는 건데!”

    “……뭐가 다른데?”

    “이게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아, 돌겠네 진짜.”

    단솔에게 타이틀 곡 안무를 가르치던 연규가 땀에 절은 수건을 집어 던졌다. 하얀 수건이 날아가는 폼이 꼭 항복을 외치는 것 같았다.

    원래부터 춤을 잘 추는 편이 아니기는 했지만, 한 달이나 의식이 없이 누워 있었던 데다가 지수의 과보호로 인해 연습도 하지 않고 한참이나 놀린 몸이 제대로 움직여 줄 리 없었다.

    연말 시상식 무대를 염두에 두고 준비하기에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상태라면 매일 열두 시간씩 준비를 해도 모자랄 것 같았다.

    “그냥 앉아서 부를까?”

    “댄스 곡을?”

    “발라드로 편곡하는 게 빠를 것 같은데…….”

    “형, 그러면 연규 형은 박수만 쳐야 할걸? 크큭.”

    옆에서 보던 민재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자 연규가 화가 난 듯 살벌한 눈빛으로 쏘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연규가 이 한 곡으로 단솔을 붙잡고 가르친 것만 3개월이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단솔은 이미 이 한 곡으로 수백 번의 무대를 하고 수천 번의 연습을 했을 멤버들에게 자꾸만 연습을 시키는 것이 못내 미안할 뿐이었다.

    게다가 지난 아시안 게임 무대부터 번번이 메인 댄서인 연규가 단솔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기고 있었다.

    물론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단솔의 공이 크긴 했고, 다들 단솔을 도와주는 분위기였지만, 단솔의 실력이 좀처럼 늘질 않자 멤버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서운한 마음에 욱하는 게 티가 나곤 했다.

    “미…… 미안해 연규야. 다시 한번 알려 주면.”

    “아, 됐어. 쉬었다가 해. 잠깐 바람 쐬고 올게.”

    단솔이 일으켜 주려 건넨 손을 뿌리친 연규가 밖으로 나갔다. 그의 한숨에 연습실이 차가운 물이라도 뿌린 듯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미안……. 밥 먹고 하자.”

    “그래, 밥 먹고 하자. 형이 이해해. 저 자식 시상식 무대 아니면 사실 메인에 설 일 없는데…… 형한테 빼앗긴 것 같아서 좀 서운한가 봐.”

    “자기가 노래 못해서 파트 없는 걸 누굴 탓해.”

    “민재야, 그러지 말고 뭐 먹을지나 정해.”

    단솔이 괜히 화제를 돌리며 자신을 두둔한답시고, 연규를 흉보는 말을 끊었다.

    단솔에게 멤버들은 식구였다. 싸우고 토라질 때가 있어도, 가끔은 서운해도 결국엔 함께 가야 하는 사이였다.

    “음…… 감자탕 어때?”

    “나쁘지 않네. 연규한테 전화해 감자탕집으로 오라고.”

    “앗싸. 밥값에 한도 제한 없으니까 완전 좋아.”

    * * *

    감자탕집에 도착하자 우현과 민재, 단솔이 나란히 앉고 나머지 멤버 4명도 자리에 앉았다.

    뒤늦게 온 연규가 단솔과 마주 앉는 걸 피하려고 했지만, 빈자리는 단솔의 앞자리뿐이었다.

    두 사람은 아직 아까 전의 여파가 남은 듯 어색하게 물 잔만 기울이며 감자탕집의 작은 티브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소주 한 잔 시킬까?”

    정적을 깨고, 우현이 말했다.

    “형! 나도!”

    “민재 너는 콜라.”

    “이모! 여기 콜라 하나 소주 하나요!”

    아직 미성년자인 민재는 짐짓 실망한 눈치였다.

    “연습은?”

    단솔이 연규의 눈치를 보았다.

    “한 잔 정도는 괜찮아…… 뭐. 혈액 순환도 잘되고.”

    “그래…….”

    역시 식구들끼리의 싸움은 어쩐지 허무한 구석이 있었다. 죽일 듯 덤벼들었다가도, 밥 한 끼 먹으면 스르륵 아무 일 없던 듯 사라지는.

    그때, 감자탕집의 작은 티브이에서 뉴스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지난달 하송시 교도소로 이감된 배우 출신 유두현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입니다. 유씨는 살인 미수, 폭행, 강간 미수, 불법 약물 유통 혐의를 인정받아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었는데요……. 경찰은 현재 타살 흔적은 보이지 않으며 유씨가 자신의 신변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단솔이 채 한 숟가락도 뜨기 전에, 뉴스에서 들려온 소식은 꽤 충격적이었다.

    단솔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매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깡그리 잊고 살지도 않았다.

    단솔은 요즘도 혼자서 길을 걷지 못했다. 늘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 들킬 일이 없었지만,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 칼을 들고 쫓아오는 상상을 하곤 했다.

    유두현이 죽었다는 말에 약간은 안심이 되기도 했고, 그게 꼭 그의 영혼이 풀려났다는 말 같아서 한편으로는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형,!”

    “어? 어…….”

    “괜찮아?”

    얼마나 얼이 빠져 있었으면 동생들이 부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단솔은 애써 표정을 갈무리했다.

    사건의 트라우마는 단솔에게만 남은 것이 아니었다. 뉴스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단솔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이잉.

    역시나, 지수였다.

    “여보세…….”

    ―솔아, 어디야?

    “아, 회사 앞에 감자탕집이요. 애들이랑 같이 있어요.”

    ―어…… 그렇구나.

    “형.”

    ―응?

    지수는 단솔에게 말을 아끼고 있었다. 단솔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뉴스…… 봤어요.”

    ―아…… 봤구나.

    지수가 애써서 숨기려 해 봤자 어차피 알게 될 일이었다.

    “저 괜찮아요. 애들이랑 밥 먹고 들어갈게요.”

    ―그래, 알았어.

    자리로 돌아온 단솔이 멤버들에게 웃어 보였지만, 여전히 멤버들은 죽상이었다. 특히나 연규가 그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단솔에게는 말도 걸지 않던 연규가 물었다.

    “형…… 괜찮아?”

    처음 사고가 났을 때만 해도, 멤버들도 단솔을 금이야 옥이야 했었다. 하지만 망각이라는 감각은 언제나 소중함을 잊게 만들었다.

    몇 개월째 같이 예전처럼 노래도 하고, 춤도 추다 보니 단솔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유두현의 사망 소식을 전해 주는 뉴스 뒤로 단솔의 사건 장면이 연신 지나갔다. 교도소 안을 찍을 수 없을 테니 방송은 자극적인 장면이 필요했을 테고, 그만한 데에는 유혈이 낭자한 당시 사고 장면만 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앞에 놓인 소주잔을 한 번에 들이켠 단솔이 중얼거렸다.

    “이놈의 방송은 변한 게 없네…… 이모! 여기 리모컨 좀 주세요!”

    * * *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언ㄹ마;ㅣ댲배ᅟᅥᆱ나ᅟᅵᆯ언마ᅟᅵᆷ;ㅓ야ᅟᅢᆸ더방금 시상식 다이노 소울 무대봄? 마지막 엔딩에 주단솔마즘? (천사가 나와서 춤추는 짤.jpg)

    ⤷맞는 듯

    ⤷아 뭐야 좀 길게 보여 줘요

    ⤷이게 다야?

    ⤷?

    ⤷헛것 본줄

    ⤷천사 아니야?얼굴 진짜 극락이네

    ⤷의상 뭐야 ㅠㅠㅠ솔이괜차뉴? 저 흰 천은 뭐야? 다음앨범스포인가?한지수씨 웃지만 말고 말해 줘요

    ⤷한사장 어디 있어요 단솔이 보느라 못봄

    ⤷객석에서 덩실덩실 웃고 있잖어

    ⤷덩실덩실 웃고 있대ㅋㅋㅋ누가 보면 주단솔 한지수가 낳은 줄 알겠네ㅋㅋㅋ

    ⤷정대수는 왜이렇게 인상 쓰고 있냐 무슨 연기 대상인줄 아냐 배우병 아직도 못고쳤네

    ⤷심취했는갑지

    ⤷ 그냥 자기가 왜 여기 와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뚝딱거리면서 리듬타는 정대수.jpg)

    ⤷뭐야........ 우리집 로못청소기가 춤 더 잘추는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로봇도 아니고 로봇 청소깈ㅋㅋㅋㅋㅋㅋㅋㅋ청소기도 춤추냐곸ㅋㅋㅋㅋ

    시상식 끝나고 숙소가서 민재가 라방 해줌ㅠㅠㅠ

    단솔이 연습 6개월 넘게 했는데 아직 몸 회복 완벽하게는 된 건 아니고 연규한테 조카 혼나면서 했대 근데 결국 동작 안 되는 거 많아서 그냥 짧게라도 나온 거고 흰 천은 다음 앨범 스포는 아니고 흉터 가리기용..... 다음 앨범 컨셉은 아직 정해진 거 없고 좀 쉬고 당분간은 놀고 먹을 계획이래 근데 단솔이가 활동하고 싶어해서 금방 또 나올 것 같대 ㅠㅠㅠㅠ

    ⤷미쳤다... 고마워 단솔아......

    ⤷흉터 심한가? 아 진짜 안타깝네 ㅠㅠ트라우마 없이 잘 회복하길

    ⤷이와중에 민재 진짜 친절하닼ㅋㅋㅋ궁금한 거 다 해결해줌 한사장한테 혼나는 거 아님?

    ⤷그 얘기도 했는데 한사장이 혼낼때는 단솔이 뒤에 숨으면 된대 단솔이가 실세라고

    ⤷왜?

    ⤷?

    ⤷얘 뭐지?

    ⤷뭐가?

    ⤷몰라서 물어?

    ⤷댓 머지;ㅎ 단솔이가 한지수보다 쎄? 왜? 한지수가 사장이잖아?

    ⤷....이건 무슨 컨셉임?

    ⤷윗댓 단솔이랑 한지수 사귀는지 모르는 듯

    ⤷?한지수랑 단솔이랑 사귄다고?진짜?언제부터?알오매치 찐커였음?와 미쳤네

    ⤷......

    (무대 내려오는 단솔이 안아 주는 한사장.jpg)

    ⤷아 둘이 연애하는데 왜 내가 눈물이 나냐 ㅠㅠ주책

    ⤷연예인 현커중에 제일 예쁜 듯

    ⤷요즘 저런 고난과 역경을 겪은 커플이 없어서 그럼 ㅋㅋㅋㅋ

    ⤷둘이 브이로그 24시간 찍어 줘요

    ⤷리얼리티 예능 이런 거 안찍나 알오매치 이후로 투샷 보는 거 처음인 듯

    ⤷제발 투샷 좀 줘.. 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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