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43화 (143/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43화

“지수 형…….”

깨진 구슬에서 이상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뭐야.”

“환…… 환기부터.”

젓가락을 던지듯 놓은 지수가 급하게 단솔이 누워 있는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태오가 창문을 열어 보았지만, 구슬에서 피어나온 연기는 빠지지 않고 단솔의 주변을 맴돌았다.

삐빅…… 삐빅…… 삐…… 삐…….

그때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기계음이 빨라지더니, 단솔의 상태가 불안정해졌다.

“이게 뭐야 시발. 의…… 의사…… 의사 불러!”

지수가 다급하게 벨을 누르던 그때,

“흐억.”

단솔이 장시간 숨을 참아 온 사람처럼 급히 산소를 들이켰다.

그 순간, 지수는 온 세상이 멈추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단솔은 이내 산소 호흡기에 하얗게 김이 서릴 만큼 큰 숨을 내뱉으며 지수의 이름을 불렀다.

“하…… 한지수…….”

단솔이 깨어났다.

* * *

“형! 어때요? 내 발끝에 서! 나를 봐! 올려! 헤이!”

“아직 안 돼, 무리하면.”

“이제 다 나았는데…….”

깨어난 지 6개월이 다 되어 가도록 단솔은 여전히 VIP 병실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만하면 재활도 거의 끝났고 목소리도 돌아온 상태였다. 물론 라이브를 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어차피 워낙 안무가 격해서 다른 멤버들도 툭하면 립싱크하는데.

“무대 서고 싶어?”

“당연하죠. 우리 팀 1위 하는 거 처음 보는데. 엔딩 요정도 얼마나 하고 싶었는데.”

“다음 앨범 때 시켜 줄게.”

“다음 앨범 때요? 맡겨 둔 1위 찾으러 가는 것처럼 말하네요, 형. 이 아이돌 시장이 얼마나 험하고 냉혹한데. 오늘의 1위가 내일의 1위라고 장담할 수 없다구요.”

“맨날 병실에서 티브이만 보더니, 완전 평론가 다 됐네 우리 애기.”

그런 단솔이 귀여운 듯 지수가 단솔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사실 지수도 알고 있었다. 단솔은 회복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진짜 모란이 준 구슬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의사도 뭐라 설명하기 어려워할 정도로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지수가 단솔의 퇴원을 늦추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이잉.

“아, 솔아 잠시만.”

―안녕하세요, 저 서울중앙지검 차태신 검사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저희 검사실에서 연락받으셨죠? 지난번에 부탁드렸던 증인…….

“아, 그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단솔이가 몸이 아직 많이 안 좋아서요. 가해자들을 대면하기도 좀 어렵기도 하구요.”

―네…… 아무래도…… 그러시겠죠.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칼을 들고 설쳐서 사람이 다쳤습니다. 운이 좋아 살았지만…… 하.”

지수가 떠올리기도 싫은 듯 이마를 짚었다.

“검사님, 이 사안이 꼭 증인이 필요한 사건이라고 보십니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저희 쪽 변호사와 하셔도 될 텐데요.”

―……잘 알겠습니다. 정 의사가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네, 끊겠습니다.”

지수는 단솔을 법정에 세우고 싶지 않았다. 두현은 재판 과정을 질질 끄는 것과는 달리 항소는 누구보다 빠르게 진행했다.

검사에게 적극적으로 두현을 처벌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지수에게 있어 두현을 처벌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단솔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그까짓 유두현을 벌하는 것쯤이야 돈만 있다면 굳이 감옥이 아니라도, 그 어디라도 지옥으로 만들어 줄 수 있었다.

“형.”

“어, 언제 나왔어.”

“나, 갈래.”

“응? 어디? 카페 갈까? 1층에?”

“아니. 증인 말이에요…… 법정 갈게요.”

단솔은 지수의 전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었다. 무언갈 숨길 때마다 저렇게 티가 나서야.

“솔아.”

“나 할 수 있어. 안 무서워. 죽었다가 살아난 놈이 뭐가 무섭겠어. 법정에 설게요. 거기도 가고, 우리 퇴원도 하자. 응?”

지수의 품에 안긴 단솔이 고개를 들어 지수를 올려다보았다. 못 이기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것처럼 지수가 말했다.

“내가 무서워서 그래, 내가.”

“내가 지켜 줄게 한지수. 우리, 집에 가자. 응?”

“더워, 떨어져. 귀여워도 소용없어.”

“나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집에 가자? 응?”

* * *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그날 단솔은 두 가지 숨김과 한 가지 보탬을 했다.

자신 역시 회귀를 했다는 사실, 해명 도사가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을 숨겼다. 그리고 해명 도사와의 연락 기록을 그저 단순한 점사 의뢰로 둔갑시켰다.

“워낙 일이 안 풀려서 신년 운세나 볼까 하고 연락을 드렸어요……. 한 번 행사장에서 우연히 뵀을 때 굿을 제안하긴 했지만 꺼림칙하기도 하고 이상한 말씀을 하시길래 관뒀습니다.”

“무슨 말을 하던가요?”

“회귀…… 뭐 그런 소리였는데, 사실 믿기 힘든 소리라 영…….”

“아…… 아니! 저놈이! 재판장님! 이건 진짭니다! 저놈도 회귀를 해 놓고! 거짓을!”

단솔은 분명 거짓을 말했지만, 위증의 벌을 받지는 않았다. 되레 해명 도사가 재판장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법정 모욕죄로 간주될 수 있다며 경고를 받았다.

유두현은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은 또 이렇게 마주 보게 되었다.

단솔은 재판이 끝난 후 검사에게 부탁해 면회실에서 두현과 잠깐 이야기할 시간을 만들었다. 지수가 영 못마땅해했지만, 지수도 모르게 둘이서만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뒈졌을 줄 알았는데, 살아났네.”

“아쉽겠어요, 선배. 아니…… 이제 선배도 아니니까 그냥 말 놓을게. 쿨톤인가 봐? 수의가 꽤 잘 어울리네.”

“씨발…… 많이 컸네. 너도 이제 방송하긴 글렀다. 한여름에 목티 입은 거 보니까 흉터가 꽤 깊은 모양인데.”

“왜? 한겨울에 컴백 하면 되지? 있잖아, 내가 죽기 직전까지 가 보니까 알겠더라. 다시 태어나는 거…… 꼭 같이 안 죽어도 되던데?”

“뭐?”

퀭하니 있던 두현은 그 말에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너 혼자 죽어도 어차피 다시 태어나는 게 삶인데…… 왜 그러셨어요, 멍청아. 근데 이젠 안 될걸. 이제 너한테 남은 선택지는 지옥밖에 없어서.”

“씨이발…… 뭐라는 거야…….”

“내가 알려 줄까. 새로운 삶을 얻으면, 제대로 사는 법?”

단솔의 말에 두현이 솔깃한 듯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단솔은 마치 대단한 비법이라도 알려 주듯이 두현에게 귓속말을 해 주려고 손짓했다. 두현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단솔에게 귀를 갖다 댔다.

“착하게, 열심히 사세요. 최선을 다해서. 남 괴롭히고 이상한 방법 같은 거 찾지 말고.”

“뭐? 이 개새끼가!”

두현의 손이 올라왔지만, 한쪽 팔이 면회실 테이블에 수갑으로 연결되어 있어 단솔의 얼굴 근처에 닿지도 못하고 다시 내려갔다.

“전 갑니다. 흉터 치료하러 가야 해서.”

쾅.

단솔은 들으라는 듯 문을 세게 닫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문 앞에 서 있던 지수가 단솔을 반겼다.

사실 뻔뻔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떨고 있었는데 지수를 보자마자 안심이 되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요.”

“얼굴이 하얘졌는데?”

“아니야. 나 진짜 괜찮아.”

단솔은 두현에게 말하는 내내 지수를 떠올렸다. 지수라면 어땠을까. 어떻게 했을까.

그를 떠올리니 악인 앞에서도 용기가 났다. 그는 어떻게 이런 힘을 가졌을까. 강자에게 강하고, 악한 자에겐 더 강한 사람.

“나 형을 닮아 가는 것 같아요.”

“그래? 난 너를 닮아 가는 것 같은데. 유두현이랑 무슨 얘기 했어?”

“어…… 비밀인데.”

“와 이제 범죄자랑 비밀도 만들고. 주단솔 나 진짜 서운해.”

“또 삐졌네.”

지수는 투덜거리면서도 주차장에 주차된 차 조수석 문을 열어 단솔을 태웠다. 삐진 와중에도 몸에 밴 매너는 단솔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내가 원래 이렇게 속 좁고, 매달리고 하는 사람이 아니야. 알파 오메가 안 가리고 어? 이놈 저놈 화려하게 두루두루, 한지수 지나갔다 하면 다 울고불고 난리, 난리 옛날에 만났으면 주단솔? 응? 그게 누구지? 했을 텐데 하…….”

이런 말을 하는 와중에도 지수는 단솔의 안전벨트를 채워 주고 나서야 시동을 걸었다. 지수의 차가 부드럽게 법원 정문을 빠져나갔을 때쯤 단솔이 말을 걸었다.

“형, 두루두루 이놈 저놈 많이도 만났나 봐요?”

끼익.

텅 빈 도로에서 지수가 브레이크를 잡았다.

“저는 형이 처음인데, 지난번에도 말했는데……. 근데 저는 진짜 진짜 많이 만났어도 그런 얘기는 안 할 거예요.”

단솔은 정말 서운한 척 고개를 숙였다. 매번 당하면서 지수는 매번 놀랐다. 10번을 하면 10번을 속는 장난이었다.

“저기…… 솔아…… 아…… 진짜 미안해. 내가 또 입방정을. 그게 내가 너무 미쳤나 봐. 오늘 유두현을 보니까 너무 흥분해서 그래. 그 미친 새끼. 아니…… 솔아? 울어?”

빵빵.

“아이, 저 새끼가! 아니 솔아 너한테 한 말 아닌 거 알지? 뒤에서 빵빵거려서.”

빵빵!

“아, 뺀다고! 빼!”

화가 난 지수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소리를 질렀다. 이러다 싸움이 날까 싶어 단솔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씩 웃어 보였다.

“형, 빨리 차 빼요.”

“어? 안 울었어?”

빵빵!

“당연히 장난이지! 빨리 차 빼요! 비상 깜빡이 켜고! 미안하다고 해!”

“어? 어…… 미…… 미안합니다! 예…… 예.”

“어떻게 맨날 당하면서도 맨날 속아…….”

“아…… 이런 것 좀 하지 마…… 형아 심장 떨어져.”

한 손으로 핸들을 돌리면서도 지수는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고 입 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말을 예쁘게 하면 되지.”

“알았어. 노력하고 있잖아.”

“어? 다이노소울이다.”

두 사람이 탄 차가 신호에 걸린 사이 공교롭게 다이노소울의 광고판이 걸린 버스가 옆에 멈춰 섰다.

단솔은 제 그룹임에도 활동을 오래 쉬어서 그런지, 꼭 남 이야기하듯 다이노소울을 부르곤 했다.

“이번에 게임 광고 나온 게 저건가 보네.”

“우와…… 진짜 멋있다.”

“저거, 네 지분도 있어. 네가 8시 뉴스 헤드라인 한 달 내내 차지해 준 덕분에 우리 광고비 많이 아꼈거든.”

“윽, 진짜 싫은데?”

“좋아해도 될걸? 수익 배분은 N빵이야.”

“오, 그건 좋아. 애들 잠도 재우지 말고 일하라고 해. 막 행사도 돌리고, 해외 투어 같은 것도 24시간 풀 가동. 원래 내가 자고 있을 때도 돈이 들어오는 게 진짜 부자래.”

“그럼 우리 소속사 직원 중에 네가 제일 부자일걸? 솔아, 활동하고 싶어?”

지수는 한참이나 버스 광고를 눈여겨보는 단솔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응…….”

단솔은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흉터 치료 다 하면?”

조심스러운 단솔의 태도에 오히려 지수는 마음이 아팠다.

“가리면 되지. 요즘엔 타투도 다들 하는데, 아니면 옷으로 가려도 되고. 활동 준비 슬슬 시작하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