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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42화 (142/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42화

“가만 보면 참 나쁜 애인이야. 사귄 지 얼마나 됐다고 병 수발을 다 들게 하고. 어? 너 내 몸값이 얼만 줄 알아?”

단솔은 대답이 없었다. 공허한 병실에는 기계음과 손톱을 깎을 때 나는 소음만이 울려 퍼졌다.

벌써 단솔의 손톱이 하얗게 자라났다. 손톱이 길면 지저분해서 싫다며 조금만 자라도 손톱을 깎던 단솔이었다.

이렇게 자랄 때까지 내버려 둬서 미안. 형이 바빴네.

방금 전 으름장을 놓을 때는 언제고, 지수는 또 듣지 못할 사과를 했다.

꼭 갱년기 같아. 왜 자꾸 이랬다가 저랬다가 해?

푸흐흐 단솔의 놀림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러게.

그때, 바깥에서 소음이 들렸다.

“형! 지수 형!”

“너넨 노크도 모르냐.”

다이노소울 멤버들이었다.

“하…… 지금 노크가 중요해요? 형, 뭐예요?”

단솔이 누워 있는 동안 리더 역할을 대신하게 된 우현이 나서서 말했다.

“뭐가 인마.”

“새 앨범에서 단솔이 형 파트 왜 빼요?”

“그럼 누워 있는 애한테 노래시킬까? 랩 하라고 해? 춤은?”

“……형 깨어나면.”

“언제 깨어나는데? 약속해 둔 날짜 있어?”

“형!”

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멤버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단솔이 누워 있어 듣지 못하는데도, 지수는 단솔 앞에서 떠드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특히나 오늘 해야 할 이야기는 단솔이 들으면 서운해할지도 몰랐다.

“나가, 나가서 이야기해.”

멤버들은 몰아내듯 떠밀려 나오면서도 지수가 채 소파에 앉기도 전에 본론부터 이야기했다.

“저희는 단솔이 형이랑 같이 활동하는 거 아니면 의미 없어요.”

“안 하면 뭐, 굶어 죽게?”

“의사도 장담 못 해. 깨어나도 다시 노래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그거 기다리다가 너네 좋은 시절 다 보낼래? 단솔이 깨어났을 때 너네 다 청년 백수 되어 있고, 나 거지 되어 있으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형…….”

“너희는,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최선을 다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테니까. 복수든, 애 살리는 거든.”

* * *

집에 몇 날 며칠 가지 못한 지수는 결국 멤버들에게 자신의 집 위치를 알려 주곤 짐을 챙겨 오라고 일렀다.

멤버가 많아 식비를 청구한 영수증을 볼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는데 이럴 때 보면 손이 많아 좋긴 했다.

이삿짐이라도 옮겨 온 건지 썰물처럼 멤버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지수와 단솔이 쓰던 물건들이 한가득 박스에 담겨 쌓여 있었다.

“되게 급하게 쳐들어오더니 살뜰하게도 챙겨 왔네.”

이건 또 뭐야. 지수가 집은 것은 구슬이었다. 아프리카에 갔을 때 부족의 전사인 모란에게서 받은 구슬.

그때 이 구슬을 건네주면서 그 자식이 뭐라고 했었더라. 어차피 아프리카 말이라 알아듣지도 못했겠지만,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지수는 구슬을 집어 들곤 단솔의 머리맡에 있는 협탁에 올려놓았다. 참 우스운 일이다. 겨우 이런 미신 같은 걸 믿다니. 한지수가.

“너 엄청 센 전사라며. 우리 솔이 좀 지켜 줘.”

지이잉.

“여보세요?”

―네, 저 주단솔 씨 사건 담당 형사입니다.

“말씀하세요.”

―그…… 유두현 자금을 추적하다 보니 한곳으로 흘러 들어갔더라구요. 한지수 씨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해명 도사라고, 방송 프로그램에도 나온 사람입니다.

지수는 잘 떠오르지 않는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돌팔이 점쟁이 말 때문에 지금 살인 미수 사건이 일어난 건가.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저희도 지금 추적 중인데, 아직 국외로 나간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놈 마누라랑 자식이 사는 거주지를 파악했으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금방 찾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 잠깐. 저……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소중한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면…… 어디 제정신으로 살 수 있나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나중에 단솔이 깨어나면, ‘형 왜 그랬어요.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하라니까. 형이 그러면 내가 창피해요.’라고 할까 봐 지수는 사과를 했다.

그랬을 뿐인데, 제가 건넨 사과보다 더 많은 위로를 받았다.

솔아, 넌 참 좋은 사람이야. 네가 알려 준 세상은 생각보다 꽤 괜찮은 것 같아.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 일어나서 더 알려 줘.

* * *

“……살고 싶어.”

지수의 영상이 끝난 뒤 들려오는 건 계속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들뿐이었다.

단솔을 추모한다느니, 주단솔 법이라느니 싸워 대는 것들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죽고 나서 벌어지는 일들은 소용이 없었다.

다시 태어난다고? 누구 마음대로?

완벽하진 않았지만, 두 번째 얻은 삶. 그 정도 자리에 가기까지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 힘든 연습생 기간을 거쳐서 데뷔를 하고, 악독한 사장을 만나고, 알오매치 서바이벌을 거쳐서 지수를 만났다.

이제 겨우 제대로 된 소속사에, 잘생기고 절륜한 애인도 생겼는데. 이렇게 또 죽고 다시 시작하라고?

단솔은 벌떡 일어나 영화관 벽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문은 나타나지 않았다.

“열어! 열라고! 나 죽기 싫어! 안 죽는다고 시발!”

단솔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언제까지 이 어두컴컴한 영화관에 갇혀 있어야 할까. 유두현이 죽을 때까지? 그러다가 유두현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걸까.

또다시 지수를 만날 수 있을까.

* * *

똑똑.

단솔의 침대 옆에 앉아 잠든 지수가 노크 소리에 부스스 일어났다.

문을 연 사람은 최 PD와 태오였다. 예전엔 앙숙처럼 으르렁대던 사람들이 마치 순번이라도 짠 듯 찾아오는 모양새에 지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들 시간표라도 짰어요? 정대수가 나 감시라도 하래요?”

“어떻게 알았지? PD님, 우리 들켰나 봐요.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게 싫으면 걱정을 시키지 말든가. 원래 간병이라는 게 환자보다 더 골병드는 일인 거 몰라요? 단솔 씨는 꼬박꼬박 간호사 선생님들이 시간 맞춰서 주사 놔 주시는데 우리 한지수 씨는 우리가 안 챙기면 아무도 안 챙기잖아. 마지막으로 밥 먹은 게 언제예요?”

지수는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게 언제였더라. 단솔이 일어나면 냄새난다고 싫어할까 봐 샤워는 매일 하지만 끼니는 거르기 일쑤였다.

“1, 2, 3. 봐, 봐 바로 대답 못 하지. 컴백은 다이노소울이 하는데 다이어트는 왜 한지수가 하는지. 얼굴이 소멸 직전이야. 관리한 김에 새 작품 들어갈 생각 없어요?”

“당분간은 없네요, 바깥양반이 출장을 좀 먼 데로 가셔서.”

최 PD의 너스레를 장난으로 받아친 지수가 아무렇지 않은 척 접견실로 나가 젓가락을 받아 들었다.

병실에 냄새가 나지 않게끔 배려한 듯 스시를 포장해 온 모양이었다. 단솔이도 초밥 좋아하는데. 비싼 초밥을 먹고선 이게 성공의 맛이라면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곤 했다.

“이게 뭐예요?”

초밥에는 관심이 없는 듯 단솔의 침대로 간 태오가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지난번 멤버들이 가져온 짐 속에 있던 물건이었다.

“아, 그거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거. PD님 저거 아시죠.”

“아……! 저거 그거 아니에요? 모란이 준거.”

최 PD가 초밥을 우물거리더니 태오가 서 있는 쪽으로 향했다. 문 쪽으로 다가온 태오가 최 PD에게 구슬을 건넸다.

“와, 이거 때문에 우리 다 뒈질 뻔했잖아요. 그때, 그 자식이 뭐라고 하면서 줬는데, 우리 카메라 감독이 찍었잖아. 편집되긴 했지만. 혹시 그 말 때문에 저기 갖다 놓은 거예요?”

“아뇨, 내가 아프리카 말을 어떻게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요?”

“이게 단솔 씨를 지켜 줄 거라고. 그랬는데.”

그 말에 지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잘됐네. 다시 거기 올려놔요. 나 요즘 미신에 많이 기대거든. 오늘의 운세도 보고, 별자리 운세도 봐요.”

“그래, 뭐라도 나쁠 건 없죠. 근데 그 해명 도사 그 새낀 뭐예요?”

데구루루.

“어……?”

콰직.

최 PD가 구슬을 올려놓고 돌아서는 순간, 협탁에서 구슬이 굴러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놀란 태오가 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구슬은 산산조각 난 후였다.

“지수 형…….”

* * *

“씨발…… 내가 어떻게 이룬 건데…… 다시 살기 싫다고…… 진짜…….”

데구루루…….

“어……?”

단솔이 손이 아프도록 영화관 벽을 때리다가 결국엔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구슬이 굴러와 단솔의 발치에 툭, 하고 멈췄다.

“이 구슬…….”

단솔에게도 익숙한 구슬이었다. 모란이 주었던 구슬. 아프리카에서 지수가 단솔을 구해 주었다는 증거였다.

지수의 집에 찾아갔던 날, 지수의 집에 두고 왔었는데…… 이게 왜 여기 있지? 혹시 지수 형이 여기 와 있나?

단솔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지수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와 똑같이 사방은 모두 어둠이었다.

도대체 그럼 이게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때, 스크린 화면이 바뀌었다.

―주단솔 씨, 즐거운 관람 되셨나요? 지금부터 비상 대피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본 상영관의 우측 초록색 화살표 방향을 따라 나가시면 온갖 고생과 눈물이 가득했던, 현생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다만, 현생을 택함으로 얻는 장애와 역경, 고난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좌측 붉은색 화살표 방향을 따라 나가시면 새로운 삶 3회차가 펼쳐지게 됩니다. 선택은 주단솔 씨의 몫이기 때문에 본 상영관은 절대 선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쾅, 단솔의 양옆으로 문이 열렸다.

좌측은 붉고 선명한 데다 반짝반짝한 붉은 화살표, 우측은 낡고 다 떨어져 초록색인지 뭔지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화살표.

강요하지 않는다더니, 이게 강요가 아니면 뭐지?

하지만 단솔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오른쪽을 택했다.

아무리 반짝거리는 새로운 삶이어도, 지수가 없는 곳이라면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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