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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41화 (141/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41화

    “오랜만이네요. 지수 선배.”

    지수는 경찰서 앞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다 이연을 만났다. 이연은 지수의 손에 묻은 두현의 피를 보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손수건을 건넸다.

    지수는 오물을 닦아 내듯 이연의 손수건으로 꼼꼼하게 손을 닦더니 주차장 휴지통에 손수건을 버렸다.

    “하나 사 줄게.”

    “됐어요.”

    “그나저나, 여긴 웬일이야? 방송국 주차장도 아니고, 경찰서 주차장에서 이렇게 다 보네.”

    “아마, 선배랑 같은 사람을 만나러 온 거겠죠.”

    담배를 다 피운 지수가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담배 피우지 말라는 단솔의 잔소리가 귓가에 엥엥 울리는 것 같아 피식 웃었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이러다 정말 미쳐 버리는 게 아닐까.

    “죄송해요.”

    “뭐가?”

    “알고 있었어요…… 유두현이 단솔 씨한테…… 적의를 갖고 있었다는 거.”

    “뭐? 언제부터. 왜 말 안 했어.”

    “프로그램 촬영할 때, 전화 통화를 어쩌다 들어서.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저도…….”

    “이 새끼가.”

    지수가 이연의 멱살을 잡았다. 흘낏흘낏 쳐다보던 주변의 시선이 대놓고 꽂히는 게 느껴졌다. 숨을 거칠게 내쉬던 지수가 손에 힘을 풀었다.

    “오랫동안 스토킹 당했어요, 유두현한테. 그래도 이런 짓까지 벌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한테 약을 먹였을 때 그냥 신고했더라면 이런 일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 됐다.”

    지수는 화를 삭이듯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은 이연도 피해자였다.

    그를 탓한들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런 데서 시간을 허비하느니 단솔의 옆을 지키는 게 나았다. 구겨진 이연의 옷깃을 툭툭 털어 낸 지수가 자신의 차로 걸음을 옮겼다.

    * * *

    다행인지 불행인지, 단솔은 지수가 나갔을 때 본 그 모습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잘 자네. 주단솔.”

    이젠 나도 좀 자고 싶다.

    잠만 자는 단솔과 달리 지수는 단솔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 내내 뜬눈으로 곁을 지키는 벌을 서고 있었다.

    똑똑.

    “저 왔어요. 좀 어때요?”

    민혁이었다. 민혁의 시선이 단솔을 향했다. 이젠 누워 있는 단솔보다 그를 지키고 있는 지수가 더 환자 같은 몰골이었다.

    “똑같아. 너무 똑같아서 지겨울 만큼.”

    “가이드 나왔는데. 들어 볼래요?”

    민혁에게 맡긴 음반의 가이드였다. 단솔이 누워 있는 병실에 민혁이 부른 가이드 음원이 울려 퍼졌다.

    “섹시하네, 매력 있고. 솔이가 부르면 다 홀리겠다.”

    지수는 무대 위에 선 단솔을 생각하며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짓는 웃음이었다. 그토록 기다린 정규 앨범 음원에도 단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 제갈민혁 진짜 골 때린다 너. 이런 상황에 이런 걸 갖고 오다니. 잔인한 건지, 친절한 건지.”

    지수는 눈물이 고인 모습을 감추기 위해 병실 밖으로 향했다.

    “나와, 애 자는데 방해하지 말고.”

    그 뒤를 민혁이 모르는 척 따랐다.

    “뭐 마실래?”

    “아뇨.”

    “너 좋아하잖아, 토마토 주스 같은 거.”

    지수가 병에 든 토마토 주스를 건넸다. 단솔이 민혁의 작업실에 오던 날 사 왔던 그 음료수였다.

    “병실 주인 취향을 잘 아시네요.”

    “어, 우리가 뇌트워킹이 좀 잘 돼.”

    “다이노소울 앨범…… 작업 어떻게 할까요.”

    민혁에게 새치기를 해도 좋으니 최대한 빨리 작업 완성해 달라고 부탁해 놓은 지수였다. 단솔이 누워 있는 이상 앨범 작업이 무기한 연기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진행시켜. 애들 기다리잖아.”

    “네?”

    “의사가 그러더라 언제 일어날지, 일어난다고 해도 멀쩡할지 모르겠다고. 솔이 기다리는 건 기다리는 건데 그렇다고 다른 멤버들 좋은 세월 다 가게 만들 수는 없잖아. 진짜 좆 같은 건 뭔지 알아? 이제 겨우 2주밖에 안 지났다는 거야. 한 2년은 지난 거 같은데 겨우 2주밖에 안 지났어. 2주밖에 안 지났는데, 솔이 목소리가 기억이 안 나.”

    애 목소리가 어땠더라. 분명 나만 아는 목소리가 있었을 텐데. 생각이 안 나네.

    마치 오늘 날씨를 말하는 듯 담담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더 슬프게 느껴졌다. 커다란 병실 소파에 기다랗게 누운 지수가 형광등 불빛이 눈부신듯 손등을 이마에 갖다 댔다.

    눈물을 가리는 건지 정말 눈이 부신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민혁은 그대로 못 본 척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혹시 유두현은 만나 보셨어요?”

    “어. 그 새끼 여전히 헛소리 지껄이더라. 너도 뉴스 봤지? 다시 태어나고 어쩌고, 완전히 맛이 갔던데. 솔이랑 같이 죽어야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나. 약이라도 했나 싶어서 검사해 봤는데 깨끗하대. 심신 미약 받으려고 용을 쓰더라.”

    민혁은 단솔이 회귀자라는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두현이 밝힌 범행 동기는 사건 초기, 뉴스에서 하도 떠들어 대는 통에 이미 알고 있었다. 만일 그 말이 진짜라면, 그렇다면…….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민혁은 뒤돌아 지수에게 말했다.

    “……만약 그 말이 진짜면…… 형 어떡하실 거예요?”

    “뭐?”

    “……아니 ……그 ……회귀. 뭐 그런 거요.”

    민혁은 말을 뱉으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자신 역시 몇 번을 의심한 끝에 믿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수 같은 사람이 이 말을 믿어 줄까. 하지만, 소생 가능성이 없는 단솔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이편이 더 낫지 않을까.

    “뭐라는 거야 진짜. 너까지 쌍으로 돌았냐. 둘이 뭐…… 같은 종교 믿어? 사이비야?”

    “아…… 아뇨, 그게 아니라.”

    “헛소리할 거면 꺼져. 너도 심란하게 하지 말고.”

    “죄송해요.”

    “애들 앨범이나 일정대로 진행시켜…… 솔이 파트도 잘…… 나눠서.”

    “네. 형도, 몸 잘 챙기세요.”

    * * *

    “한지수 보고 싶다.”

    단솔은 여전히 어두운 상영관에서 자신이 죽고 난 뒤 세상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꽤 오래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배고픔, 다리 저림 따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시간의 흐름 따위가 멈춘 것 같은 공간이었다.

    [네, 정말 안타깝습니다. 촉망받는 두 명의 아티스트가 목숨을 잃은 사건인데요. 저희 스튜디오에 배우 한지수 씨를 모시고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한지수……!”

    단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영관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단솔이 스크린에 가까이 가기 위해 제일 앞자리로 오도도 달려왔다. 가까이 오니 목이 부러질 것 같긴 했지만, 지수를 이렇게 볼 수 있는 건 그런 데로 기분이 좋았다.

    “역시 잘생겼어.”

    ―아,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을 바로 하셔야죠. 한 명은 목숨을 잃은 거고, 한 명은 목숨을 끊은 거 아닙니까?

    “와…… 저 싸가지…….”

    방송은 두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의 시점이었다. 유명한 앵커가 나와 진행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단솔은 과부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전직 국민 욕받이인 저보다 더한 사람이라 다행이었다.

    ―아…… 네, 그렇죠. 이제 안타까운 사고로 돌아가신 주단솔 씨. 그리고 그 이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두현 씨. 두 사람과 생전에 어떤 관계였는지 말씀 좀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같은 프로그램에 오메가 멤버로 출연하셨죠?

    ―좋아했습니다, 주단솔 씨요.

    ―아…… 굉장히…… 괜찮은 동생이었다. 뭐 그런 말씀인가요?

    ―아뇨, 제가 사실 알파거든요.

    ―네?

    좀처럼 당황하는 법이 없어 별명이 돌부처인 앵커의 목소리가 음 이탈이 났다.

    그 모습에 단솔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전생에서부터 지수가 자신을 좋아했던 건가. 워낙 접점이 없어서 몰랐다. 회귀 전에는 얼마 안 있어 지수가 춘몽도를 떠나기도 했고.

    ―첫눈에 반했거든요. 근데 뭐…… 아무래도 제가 형질을 숨기고 있다 보니까 티를 낼 수는 없고…… 근데 얼굴만 봐도 벌떡벌떡. 아,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있다가 들킬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제작진한테 이야기해서 첫 주에 바로 하차했습니다. 그 프로그램.

    ―저…… 한지수 씨. 지금 본인이 하고 있는 이야기. 책임질 수 있으십니까?

    ―아, 제정신이냐고 물으시는 거죠? 네, 저 약 안 했고, 술도 안 먹었어요. 궁금하시면 지금 바로 검사해 보셔도 되구요. 여기서 싸 드려요?

    ―네?

    ―소변.

    단솔은 마치 재미있는 만화를 보는 어린애처럼 접힌 상영관 의자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달랑거리며 지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꽤 험악한 내용이 오가는 영상임에도 지수를 바라보는 단솔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푸하학, 진짜 또라이네. 한지수.”

    너무 웃어서 광대뼈가 아플 정도였다. 마구 웃던 단솔이 미끄러지듯 펼쳐진 의자에 앉았다.

    웃긴데, 웃긴 와중에 눈물이 났다. 미치도록 한지수가 보고 싶었다.

    “보고 싶어…… 보고 싶다고!”

    소리쳐 봤지만, 영화관의 푹신한 카펫은 단솔의 목소리를 흡수할 뿐,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이 칠흑 같은 어둠에서 빠져나가는 문은 보이질 않았다.

    그때, 영상 속 지수가 말했다.

    ―주단솔 씨는 괴롭힘을 당한 거죠. 유두현뿐만 아니라, 악마의 편집을 한 제작진, 알면서도 방관한 출연자. 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그걸 스포츠처럼 즐긴 시청자, 이렇게 시청률 빨아 먹으려고 자극적인 콘텐츠만 만드는 방송국. 돈 벌어먹으려는 소속사. 죽은 멤버 이용해서 제 이름 한 번 더 알려 보려는 그 그룹의 멤버들까지. 그냥 살아 있는 사람들은 다 가해자인 겁니다. 부끄럽지 않으세요? 살아 있는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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