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40화 (140/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40화

“자세한 정황은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CCTV 확인 결과, 칼을 들고 위협하는 피의자를 피하려고 도망치다가 골목에서 나오는 트럭과 충돌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그따위 설명 듣자고 중환자 지키고 있는 보호자 부르신 겁니까? 그딴 정황은 저도 눈 달려서 압니다. 그러니까 유두현 그 미친 새끼가 왜 우리 단솔이한테 칼을 들고 쫓아온 건지. 그게 궁금하다구요, 난.”

“그건 좀 더 조사를 해 봐야…….”

“씨발! 그러니까…… 사람을 오라, 가라 할 거면…… 조사를 제대로 하고 부르시라고. 네?”

지수가 VIP 병실의 접견실에 놓인 휴지통을 발로 걷어찼다. 스테인리스로 된 휴지통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나동그라졌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이 공간 안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수가 신경질적으로 병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함께 접견실에 앉아 경찰을 마주했던 대수가 지수를 붙잡으려는 경찰을 만류했다. 피곤한 듯 마른세수를 하는 대수 역시 날카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벌써 2주째였다. 지수의 시간은 단솔이 의식을 잃은 채 피투성이가 되어 실려 온 그날로 멈춰 있었다.

“여보세요? 솔아, 아까는 형이…….”

“한지수 씨? 저는 구급대원입니다. 지금 길에서 사고가 나서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 전화드립니다. 혹시 주단솔 씨 가족의 연락처를 알고 계시면…….”

단솔을 알아본 구급대원은 기사를 통해 접했는지 단솔의 핸드폰 화면에 뜬 지수의 이름을 보자마자 지수에게 상황을 고했다.

침착한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마치 드라마 속 대사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제 눈앞에 단솔이 누워 있는 지금도 지수는 그런 환청을 들었다. 그 목소리가 들릴 때면 주먹을 연신 쥐었다 폈다.

단솔의 심장이 뛰고 있음을 알리는 기계음에 맞춰 땀이 배어나는 손을 접었다 펴다 보면 금방 현실로 정신이 돌아왔다.

지독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그날 약간의 다툼을 하고 집을 나갔던 단솔은 유두현과 함께 차에 치였고, 같이 넘어지면서 어깨와 목 사이를 칼에 찔려 과다 출혈이 일어났었다. 조금만 더 깊게 찔렸으면 경동맥을 찔려 현장에서 사망할 뻔했다는 의사 말을 듣고선 지수는 망나니처럼 날뛰었다.

대수가 말리지 않았다면, 이번엔 지수가 살인 사건 용의자로 입건될 뻔했다.

더 아픈 사실은 단솔의 부상이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갈비뼈와 쇄골 뼈 골절, 뇌진탕, 왼쪽 다리가 트럭 바퀴에 깔렸다.

단솔은 그야말로 멀쩡한 곳이 한 곳도 없는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 단솔의 전용 잠옷이었던 지수의 옷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솔이 모든 충격을 흡수하는 바람에 유두현의 부상은 약간의 타박상에 그쳤다.

“솔아, 시끄럽게 해서 미안. 화내서 미안해.”

지수가 여전히 미동 없이 잠들어 있는 단솔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무도 멀쩡하게 경찰서에 잡혀 있는 두현과 달리 단솔은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없어 멀쩡한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한지수, 너 예민한 건 알지만 저 사람들도.”

“심신 미약 받으려고 수작 부리는 미친놈의 헛소리에 동조하라고?”

화가 난 지수를 달래러 들어온 대수는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현행범으로 잡힌 그 순간부터 유두현은 미친놈처럼 헛소리를 해 댔다.

단솔과 제가 회귀자라느니, 둘 다 죽어야 다시 태어난다느니, 해명 도사를 불러 주면 모든 의혹을 풀 수 있다느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지만, 유두현 측 변호사는 최근 유두현의 계좌 거래 내역에서 거액의 돈이 알 수 없는 루트로 사라진 것과 악플에 시달린 정황, 우울증 치료 이력을 들어 심신 미약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거 살인 미수야. 저 새끼 감형받거나 정신 병원 입원하면 내가 직접 죽일 거야.”

“그러지 말고 직접 한번 만나 보지 그래?”

“뭐?”

“유두현 말이야. 경찰 얘기 들어 보니까 널 만나고 싶어 한다던데. 그럼 진짜 이유를 말해 주겠다고 말이야.”

“이 씨발 새끼가 지금 누굴 갖고 놀려고.”

* * *

범죄자 새끼한테 휘둘리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어느새 지수는 경찰서 앞에 와 있었다.

단솔이 다치고 나서 자리를 비운 것은 처음이었다. 그사이 단솔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지수는 이 자리에서 유두현의 목을 졸라 죽일 수도 있었다.

“나…… 나오셨네요.”

지난 조사 기간 동안 지수의 성질머리를 익히 들은 경찰들은 서에 직접 등장한 지수가 못내 부담스러운 듯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두현이 있는 곳으로 재빨리 안내했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라 그들의 입장에서도 여간 골칫거리가 아닌지라 불편해도 빨리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쪽입니다.”

젊은 형사를 따라 도착한 복도 끝 퀴퀴한 취조실 안에는 수갑을 찬 유두현이 방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한쪽 벽면은 불투명한 유리창이 나 있었는데 내부에서는 그 너머가 보이지 않고, 유리 반대편에서만 반대편이 보이게끔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는 듯했다.

지수는 취조실 안으로 들어가 두현의 반대편에 앉았다. 커다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두현과 지수가 마주 보고 있었다. 젊은 형사는 불안한 듯 지수의 뒤에 서 있었다.

“저희 둘이 이야기 좀 하게 자리 좀 비켜 주시죠?”

“아…… 원칙상…….”

“어차피, 저기서 다 지켜보고 계실 거 아닙니까.”

지수가 유리창을 가리켰다. 저것도 있구요. 취조실 안 CCTV의 빨간 불빛도 마찬가지였다.

“원칙이 있다는 건 아는데, 계속 거기 서 계시면 어차피 이 새끼 입 안 열 거 같은데요. 이쪽에서 빨리 입을 열어야 그쪽들도 편해질 거 아닙니까.”

유두현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자는 사람처럼 보였으나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의 움직임이 보였다.

차라리 지금이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었던 조선 시대나 고려 시대였다면 당장이라도 유두현의 목을 잘라서 단솔의 앞에 갖다 바쳤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열없는 상상마저도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잠깐이면 됩니다.”

“문 앞에 서 있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답지 않게 감사 인사까지 한 지수는 형사가 나가자마자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두현을 노려보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두현 역시 그제야 고개를 들어 지수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오셨네요. 선배.”

“누가 네 선배야 씨발 놈아.”

“아, 무서워라.”

“연기하지 마 새끼야, 연기도 못하는 게. 네 발 연기 볼 시간 없으니까 똑바로 말해. 왜 그랬어.”

지수는 코트 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묻는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두현이 지수에게 자신도 담배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두현이 움직일 때마다 수갑이 짤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수가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도로 꺼냈다. 담배를 꺼내 주는 줄 알았으나 그는 가운뎃손가락을 꺼내 보이곤 담배 연기만 내뿜었다.

“어디서 본 건 많네, 근데 넌 내가 지금 네 모가지 비틀어 죽이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겨야 해. 똑바로 얘기해. 왜 그랬냐고.”

“하, 하하, 역시. 선배님은 이럴 줄 알았어요.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거예요. 제발 저 좀 죽여 주실래요? 아, 혹시…… 주단솔은 깨어날 가망이 있어요? 저희 둘이 같이 죽어야 다시 태어날 수 있거든요.”

“이 미친 새끼가……!”

“윽!”

“한지수 씨!”

지수가 담뱃불을 던지곤 책상을 발로 차 밀어 버렸다. 그 바람에 두현이 가슴팍을 책상을 맞곤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두현을 흠씬 두들겨 패 주고 싶었으나 문 앞에 있던 형사가 들어와 지수를 붙잡는 바람에 더 이상 두현을 건드리지 못했다.

“이거 좀 놔 봐요, 아직 할 얘기가 아직 안 끝났다니까?”

“다시 태어나면 나도 이이연이 아니라 선배를 잡아야겠어요……! 선배가 이렇게 순정파인 줄은 전혀 생각을 못 했는데……!”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와중에도 두현은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아, 제가 흥분했어요. 진짜 괜찮다니깐요. 잠시만 놔주세요. 옷 구겨지잖아요.”

퍽!

“한지수 씨!”

이성적인 척, 만류하는 형사의 손을 떼어 낸 지수가 기어코 바닥에 쓰러진 두현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불시에 얻어맞은 두현의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겨우 한 대였지만, 두현은 반쯤 기절한 듯 보였다. 해롱해롱한 두현의 멱살을 잡은 지수가 그 얼굴 위로 침을 뱉었다.

“아프지? 근데 너는 이걸로 아프면 안 돼. 왜냐면 내가 앞으로 네 인생을 아주 지옥으로 만들 생각이거든.”

“……선배님이 지옥을 알아요? 세상 사람이 다 날 보고 손가락질하는 그…… 생지옥을 아냐고요…….”

두현은 이제 거의 흐느껴 울었다. 쓰러진 의자며 집기를 세운 형사는 곤란한 듯 주변을 살피더니 아예 문을 닫았다.

제발 죽여 달라고 염불을 외는 두현의 귀에 대고 지수가 말했다.

“고작 그게 지옥이야? 다행이네. 난 네가 더 강한 놈이면 어쩌나 했지. 두현아 너 못 죽어.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감히 내 걸 건드리고도 네가 멀쩡하게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냥 죽여 달라고요…….”

“또 보자, 두현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