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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39화 (139/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39화

두현은 지난 몇 달간 단솔을 찾아다녔다. 애초에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때부터 업계에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중에는 두현이 한 일도 있었고 하지 않은 일도 있었다.

애초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두현은 그런 일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말과 글로 한 번 죽은 몸, 다시 태어나는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유명하다는 점집부터 사이비 종교 단체까지, ‘회귀’에 대해 떠드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 하지만 마땅한 소득이 없었다.

포기하고 또 목숨이라도 끊어야 하나 싶어 소주를 잔뜩 사서 집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해명 도사가 두현을 찾아왔다.

“내가 그날 자네를 먼저 봤어야 하는 건데.”

알오매치 서바이벌에 나왔던 돌팔이 무당이었다.

방송 당시 두현은 그날 촬영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점쟁이가 아니라 셀럽이 되고 싶은 거 아니냐며 뒤에서 해명 도사를 비웃기도 했다.

“당신 뭐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이런 데 숨어 있었구먼.”

“미친…… 스토커야? 할아버지. 나 알아요?”

“인생을 두 번 산 놈치고는 깨닫는 바가 없구나, 너.”

해명 도사의 말은 그냥 미친 노인네라며 무시하고 지나가려던 두현의 발을 붙잡았다.

“주단솔 그놈은 내가 소스를 흘려도 움직일 생각이 없더구먼. 애초에 가진 게 없는 놈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씨발,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이야기해.”

“다시 살고 싶나. 내가 그 방법을 알고 있는데.”

처음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던 회귀자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모습에 두현은 넘어가고 말았다. 어차피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것은 두현 쪽이었다.

“……그게 뭔데. 원하는 게 뭐야.”

“현금 10억.”

“이 미친 새끼가, 노망이라도 났나.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어?”

“허, 믿기 싫으면 믿지 마. 난 자네가 거절하면 한지수를 찾아갈 거야. 내가 고작 점사나 봐주고 이 정도 부를 축적했다고 생각하나? 그러게…… 자네도 기왕에 새로 태어나는 거 다른 놈을 잡았어야지. 주단솔이 너보단 똑똑해. 두 번 만에 새 인생을 아주 멋지게 찾았으니까.”

그 말에 발끈해 두현은 있는 돈 없는 돈에 빚까지 잔뜩 내서 해명도사에게 돈을 건넸다. 분해도 어차피 회귀하면 그만이었다.

해명 도사는 단솔과 두현의 사주가 특별하다고 했다. 저와 단솔이 분명 시간 차를 두고 죽었음에도 또 같은 시공간에서 만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선 결국, 둘 모두의 죽음이 필요했다.

* * *

“그때도 지금처럼 이랬는데. 등신같이 네가 차로 뛰어드는 바람에…… 내 인생도 같이 나락으로 떨어졌었지…… 기억나? 아, 참. 죽어서 모르겠구나.”

“……당신 뭐야. 날 왜 찾아온 거야.”

“예나 지금이나 멍청하긴.”

두현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 관리와 메이크업을 밥 먹듯이 받던 때와는 달리, 두현의 얼굴은 초췌했고 마치 약물 중독에 빠진 것처럼 영혼이 소멸한 사람 같았다.

“내 인생은 또 이이연에 베팅했다가 이렇게 나락에 떨어졌는데, 너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꼴을 보라고? 우리가 같이 죽으면 혹시 모르잖아. 세 번째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단솔은 그제야 두현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아차렸다.

또 다른 회귀자, 반복되는 사건들.

그리고…… 달라진 자신의 삶과 또 나락에 빠졌다는 두현의 말.

복잡한 상황 속에서 단솔은 확실히 살의를 느꼈다. 두현은 지금 단솔을 죽이러 온 것이다.

또 한 번의 회귀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게 이런 말이었나. 막연하게 몇 년 뒤의 미래라고 생각했던 일이 단솔의 코앞에 와 있었다.

‘……도망쳐야 해.’

두현이 자신의 품속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번뜩이는 칼날에 단솔의 본능이 먼저 움직였다. 단솔은 뒤돌아 전속력으로 달렸다.

하지만 두현은 그런 단솔을 비웃기라도 하듯 빠르게 쫓아왔다.

“주단솔! 거기 서!”

안 돼,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단솔의 마음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혹사당한 다리는 점점 느려졌다. 두현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가 손만 뻗으면 단솔이 잡힐 것 같았다. 그 순간, 단솔은 지수에게 화를 내고 나온 일이 후회스러웠다.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남기고 싶지는 않았는데.’

단솔이 입고 있던 티셔츠가 유두현의 손끝에 스쳤다. 달리던 단솔이 사거리를 지났을 때였다.

끼이익.

쾅.

단솔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분명 아는 감각이었다. 단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상처받은 표정의 지수 얼굴이 보였다. 그다음은 새 앨범을 기대했던 멤버들과 길성. 제게 도움을 줬던 알오매치 서바이벌의 출연자들과 스태프들.

팬이라며 낡은 치킨집에서 사인을 받아 갔던 사람들까지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 죽음을 마주했을 때처럼 그 순간들을 붙잡고 싶었지만 단솔은 계속 헛손질을 했다. 이내 단솔은 암흑으로 떨어졌다.

그때, 단솔은 어렴풋이 생각했다. 이번 생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 * *

단솔은 허름한 영화관에서 정신을 차렸다. 차에 치이더니 순간 이동이라도 한 걸까. 비상구의 불빛만이 주변을 어렴풋이 밝히고 있을 때, 갑자기 스크린이 켜졌다.

그 순간, 객석이 50석이 채 될까 말까 한 아주 작은 상영관에는 누군가의 장례식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솔은 금세 그게 회귀 전 제가 죽었을 때의 장례식 장면이라는 걸 깨달았다.

회귀 전 장면을 보여 주는 걸 보니 정말 이대로 죽은 건가. 치열하게 지나온 삶이 아깝고 아쉽기보다 이젠 지수나 다른 멤버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서러워 자꾸만 눈물이 났다.

누군가의 시점에서 시작한 영상은 어느새 어른의 태가 나는 멤버들을 하나하나 비춰 주었다. 그들이 모여 상주 완장을 나눠 차면서 중얼거렸다.

“하…… 어떻게 아들이 죽었는데 와 보지도 않냐.”

“끝까지 불쌍하네. 주단솔.”

그래도 불쌍하게 생각은 해 줬구나. 장례식에 와 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상주로 서 주기까지 하고.

단솔은 정작 제 부모가 아들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음을 확인하곤 씁쓸하게 웃었다.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

“뭐?”

이제는 제법 한국어 발음이 정확해진 제이콥이 우현에게 말했다.

자신이 죽은 상황인데, 단솔은 자신의 영정 사진 앞에서 싸우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웃기게 느껴졌다.

“웬만하면 다른 사진으로 해 주지…….”

누가 골랐는지 하필이면 데뷔 초 프로필 사진으로 영정 사진을 만드는 바람에 단솔은 왠지 쑥스러웠다.

“네가 병원비 빌려 달라고 찾아온 사람 그냥 보냈다며. 치료 시기 놓쳐서 단솔이 형 귀 완전 망가졌었대.”

“솔로 앨범 내자는 회사도 간혹 있었다던데…… 몸 망가져서 오디션 보러 다니다 쫓겨났다고…….”

마음이 여린 지웅이 울먹거렸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저 자식 저렇게 만들었어?”

“야! 최우현! 말 다 했어?”

말보다는 역시 행동이 앞서는 연규가 우현의 멱살을 잡았다. 도대체 솔로 앨범 제의를 받았단 소식은 언제 들은 건지. 해체 이후 멤버들이랑은 연락도 한 적 없었는데 의문이었다. 하여간 이 바닥은 비밀이 없는 곳이었다.

“뭐? 최우현? 이 새끼가……! 형한테!”

“뭐! 치려면 쳐! 너도 단솔이 형한테 이 자식, 저 자식 하는데 나는 하지 말라는 법 있어?”

“이 개새끼가……!”

퍽. 우현이 먼저 주먹을 날렸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맞은 연규를 비롯해 멤버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장례식장 바닥을 뒹굴었다.

누가 누군지 모르면서 마구잡이로 주먹을 날리는 모습에 단솔이 어느새 눈물을 닦아 내곤 마치 영화를 관람하듯 멤버들의 싸움을 구경했다. 민재가 있었다면 팝콘 각이라며 좋아했을 텐데.

“다들 그만해. 그 앨범 냈어도 어차피 망했을 거야. 모르긴 몰라도, 그때 당시 여론으론…… 단솔이 형이 비틀즈 음반을 들고 나왔어도 안 됐을걸.”

제이콥과 우현을 말리기 위해 민재가 뱉은 말에 단솔이 발끈해 영화관 팔걸이를 붙잡았다.

바로 그때, 바닥에 대자로 누운 우현에게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에, 다른 멤버들이 하나둘 따라 울기 시작했다.

“돈 모으고 있었다고 씨발, 우리 다시 시작하려고! 주단솔 이 등신 새끼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악착같이……. 난 진짜 몰랐단 말이야 빌려 달라는 돈이 치료비인 줄…….”

우현의 말을 끝으로 스크린은 영정 사진 을 비춰 주었다. 울음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단솔이 손가락으로 D를 만들고 있었다.

한편의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단솔이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다시 장면이 뒤바뀌었다. 단솔도 익히 알고 있는 포털 화면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PD 최미진입니다.

최 PD가 이런 글을 썼을 줄은 몰랐다. 그저 시청률에 미쳐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단솔의 죽음 이후로 각성한 듯 그는 마치 고해 성사와도 같은 내용들을 털어놓았다.

유두현과의 마찰을 이용해 악마의 편집을 했고, 그로 인해 미래가 창창한 한 신인 가수를 매장시켰다는 것. 그 배후에는 유두현을 밀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까지.

뒤늦게나마 단솔의 억울함이 풀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단솔은 마치 아주 재미없는 영화를 보듯,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미 저는 지독한 생활고를 겪었고, 세상과 유리되었으며 쫓기다 죽기까지 했는데 저런 사과문이 다 무슨 소용이람.

“말해 줄 거면 살아 있을 때 해 주든가. 비겁하긴.”

⤷유두현, 주단솔 살려내라

⤷살인마 유두현

⤷유두현 사이코 패스 아님?

화면 한가득 유두현을 욕하는 악플이 둥둥 떠다녔다. 하지만 단솔은 그게 자신을 위한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단솔이 죽었으니, 돌을 던질 또 다른 대상을 찾았을 뿐이었다.

죽어서까지 이런 잔인한 스포츠의 관람객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단솔은 지수의 모습이 궁금했다. 과거에는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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