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36화 (136/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36화

    새로운 앨범의 가이드 곡을 받은 뒤로 멤버들은 매일같이 회사에 나왔다.

    체력이 더 중요하니 헬스클럽에 가서 몸부터 만들라는 지수의 불호령에도 막무가내였다.

    세 면의 벽에 거울이 달린데다, 넘어져도 아프지 않은 마룻바닥, 악기나 노래 연습을 해도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는 개인 연습실을 멤버들은 너무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단솔은 혼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개인 연습실이 좋았다. 컴백까지 귀가 괜찮아지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떤 상태로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연습해 두고 싶었다.

    “형! 이것 좀 봐!”

    “내가 연습할 땐 들어오지 말랬잖아.”

    단솔은 멤버들에게 제 귀의 상태를 들킬까 봐 일부러 제 시간을 방해받아 예민한 척했다.

    “아, 미안. 근데 이것 좀 봐.”

    나중에 포토 카드에 넣어야 한다며 온종일 셀카만 찍고 있던 지웅이 제 핸드폰을 내밀었다.

    “뭔데?”

    오랜만에 마주한 포털 화면이었다. 포털은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시판이라, 연예인들의 개인 포털과 달리 프로그램 포털의 경우 종영과 동시에 사라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난 지가 언젠데, 이게 아직도 살아 있나. 아니지, 생각해 보니 출연자들에겐 종영한 프로그램이지만, 방송 금지 가처분 소송 때문에 마지막 방송을 하지 않아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유두현이 진짜 이랬어? 형 그 사람한테 괴롭힘당했어?”

    “어…….”

    회귀 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괴롭힘을 당했지만, 그때에 비하면 단솔은 두현과 마주할 일이 지극히 적었다.

    이 글을 쓴 스태프가 도대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접점이 없다시피 했던 이번 생에서도 제가 두현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처럼 보였다니.

    혹시나 이 일로 욕먹을까 봐 단솔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우물쭈물하는 단솔의 반응을 긍정으로 생각한 지웅이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야, 이거 진짜인가 봐. 유두현 이 개새끼가!”

    “어이, 윤지웅 씨. 아이돌치곤 말투가 너무 거친 거 아니에요?”

    어찌나 흥분했는지, 지웅은 지수가 올라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지수의 목소리에 다시 연습을 준비하려던 단솔이 그제야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형!”

    애초에 단솔은 그 글의 당사자도 아니었다. 회귀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상황에서는 화가 나려면 이이연이 나야지. 진짜 괴롭힘은 저보다는 그쪽이 받았다.

    “야, 나 괜찮아.”

    “괜찮기는 뭘, 또 호구같이 엄청 당했겠지.”

    우현이 극구 괜찮다는 단솔에게 눈을 흘겼다.

    “아, 뭘 좋다고 웃어. 설마 형도 같이 막 괴롭힌 건 아니죠?”

    “허, 이 짜식이 사람을 뭘로 보고.”

    심지어 우현은 지수에게까지 눈을 흘겼다. 지수는 못 들을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단솔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말해 봐, 내가 괴롭혔어?”

    “형, 솔직하게 말해요. 학교 다닐 때 일진이었죠?”

    “야, 너……! 애들이 들으면 오해해!”

    지수는 단솔의 장난에 펄쩍 뛰었다. 단솔은 저도 모르게 그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났다.

    세상에 제 편이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인 걸까.

    “오늘은 이만하고 집에 가자.”

    지수의 말에 단솔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은 계속 두현과 관련한 글로 시끄러웠다. 제 차를 타고 가자는 지수의 호의를 거절한 게 단솔은 약간 후회가 되었다.

    “이제 유두현 끝났네. 걔 찍었던 드라마 스태프들도 폭로하고 난리 났어.”

    “어떤 사람은 카페 주인이라는데, 프로그램 끝나고 유두현이랑 이이연처럼 보이는 남자 둘이 와서 자기 카페에서 이야기하는 거 봤는데 유두현이 무릎 꿇고 난리 쳤대.”

    “얘네 소속사, 얘 하나 키우려고 돈 좀 들인 것 같은데 망했네?”

    단솔은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들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운 좋게 이번 생은 피해 갔지만, 지난번 삶에서는 저 역시 겪은 일이었다.

    물론 유두현을 옹호하는 건 아니었지만, 멤버들이 신나서 남을 까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단솔은 영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 머리 아파. 조용히 좀 가면 안 될까.”

    “어? 어…… 미안.”

    * * *

    숙소에 돌아와서도 단솔은 기분 나쁜 감각이 영 사라지질 않아서 제 방에 틀어박혔다. 분명 실내 온도를 높여 놨는데도 여전히 속이 메스껍고 오한이 들었다.

    차 안에서 잠깐 조용했던 멤버들은 집에 오자 다시 시끄러워졌다. 이제는 아예 연예 뉴스를 틀어 놓고 토론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본인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저리 떠들어 봐야 달라지는 게 없는데. 왜 저렇게들 매달리는 건지.

    ‘역대급 민폐 아이돌 주단솔’

    ‘알파에 미친 새끼ㅋㅋㅋ’

    ‘존나 평범하게 생겼는데 요샌 개나소나 다 아이돌하나봄.’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까 본 악플에 자꾸만 제 과거가 투영되는 바람에 잠이 오지도 않았다.

    “그만 좀 해…… 시끄러워.”

    단솔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하지만 그런다고 소음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지이잉.

    협탁 위에 올려 둔 단솔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수 형

    잠깐 올라올래?

    단솔은 메시지를 보자마자 이불을 걷고 겉옷을 들고 나왔다. 복잡했던 머리가 지수의 연락 한 통에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지수는 언제나 자신을 구하러 오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형 어디 가?”

    “……머리가 좀 아파서. 약 사러 다녀올게.”

    뉴스를 보던 멤버들의 시선이 현관으로 향하는 단솔에게로 일제히 꽂혔다. 시답잖은 연예 뉴스에서는 이연과 두현이 한 컷에 담긴 알오매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장면을 연속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 * *

    “형!”

    뛰어가듯 계단을 두 칸, 세 칸씩 올라간 단솔이 당당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지수의 집에 들어섰다.

    메시지에 답이 없어 걱정하던 지수가 도어록 눌리는 소리에 반갑게 현관 앞으로 나왔다.

    단솔이 지수를 보자마자 품에 안겼다.

    “푸흡, 뭐야. 우리 30분 전에 봤는데 왜 이렇게 반가워해?”

    “아까는 이렇게 못 안으니까…….”

    불안감 탓이었다.

    유두현이 겪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단솔은 지금 제가 누리는 행복을 빼앗기는 게 아닐까 불안했다.

    저를 향해 웃고 있는 지수를 보자, 그 불안한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평소라면 지수의 놀림에 민망해 팔을 풀었을 테지만, 단솔은 추위에 떠는 강아지라도 된 양 지수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갑자기 왜 그래? 애교 부리니까 좋기는 한데, 무슨 일 있어?”

    편한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지수의 옷깃에 얼굴을 문지르며 단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참이나 단솔을 그저 안아 주고 토닥거리던 지수가 제 가슴팍이 젖어 들어가는 걸 느끼고 그제야 단솔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너 뭐야, 무슨 일 있어? 솔아, 왜 울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단솔은 지금 자신이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도 가늠이 되질 않았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두드려 맞고 있는 사람이 제가 아님에 안심을 하면서도, 안심을 하는 자신이 환멸스러웠다.

    회귀 전 저를 괴롭히고 그 모양 그 꼴로 만든 사람이라 잘되길 바란 적은 한순간도 없지만, 막상 저런 모습을 보니 썩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형…… 혹시…… 두현 선배랑 연락해 본 적 있어요? 프로그램 끝나고 나서요.”

    “아니, 없어. 애초에 같은 계열 소속사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다른 회사였고, 사적으로도 그렇게 접점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거든.”

    굳이 따지자면 그쪽이 일방적으로 친한 척 굴긴 했지.

    지수가 형질을 밝히고 나선 불똥이 튈까 무례하게 굴었던 두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수 역시 그를 이용해 좋아하는 척을 한 적이 있기에 할 말은 없지만,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사람은 확실히 아니었다.

    지수는 단솔과 두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못내 껄끄러웠다. 두현을 떠올리는 건 제 과오를 헤집고 단솔의 상처를 파헤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왜? 걱정돼? 지금 그 자식이 걱정돼서 이렇게 우는 거야 솔아?”

    단솔의 눈물에 한껏 예민해진 지수가 약간은 화를 내듯 물었다. 저였어도 이렇게 물러 터진 애인이라면 답답하고 화가 났을 테지. 지수가 화난 이유를 잘못 짚은 단솔이 눈물을 애써 삼키고 대답을 했다.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라서 그래요. 욕먹는 게 내가 아니라서……. 근데 이런 내가 싫어요, 형.”

    지수는 다시 단솔을 달래듯 껴안았다.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단솔의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나도 욕 많이 먹었어. 그래도 지금 활동 잘하잖아. 이 일이 원래 그래. 저 새끼 끝났다 싶었는데 또 기어 나오고 또 기어 나오고. 결국엔 끝까지 버티는 놈이 이기는 거야.”

    그러고 보니, 지수도 처음 형질을 밝혔을 때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다. 단솔은 새삼 그 시간을 버텨 내고 금방 다시 일어난 제 애인이 대단하게 보였다.

    “어엇,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주단솔 씨. 여기 우리 둘밖에 없어요.”

    흐흐. 단솔의 눈빛에 눈부셔하는 것처럼 손으로 눈가를 가린 지수가 뒷걸음질 치자, 지수를 끌어안고 있던 단솔이 언제 울었냐는 듯 장난스럽게 지수의 니트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단솔은 지수의 이런 점이 좋았다. 저 혼자였다면 지하 저 깊은 곳까지 땅굴을 파고 들어갔을 텐데. 지수는 심각한 상황에도 단솔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재주가 있었다.

    “어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쓰읍.”

    “왜요? 뭐가 안 되는데요?”

    그렇게 뒷걸음치던 지수의 오금이 소파에 턱, 걸렸다. 지수는 못 이기는 척 단솔을 안고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래, 안 될 거 없지. 우리 한 이틀만 회사 쉬자.”

    안 그래도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찾아올 걸 대비해서 재택근무할 준비를 해 놓은 지수였다.

    “으엇, 저희도 안 나가도 돼요?”

    “크큭, 너희는 원래 안 나가도 돼. 나오지 말래도 저들이 나와 놓고선. 당분간 집 근처도 조심해야 해.”

    네네, 알겠습니다.

    이어지는 잔소리를 뒤로하곤 단솔이 지수의 니트 속에 쏙 하고 머리를 집어넣었다.

    “아아! 솔아, 잠시만! 타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