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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35화 (135/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35화

“저! 이의 있습니다!”

“뭔데?”

지수의 말에 손을 번쩍 든 민재가 말했다.

“저희 그렇게…… 잘 먹고 잘살지 않는데요? 저런 콘셉트는 되게, 되게 잘나가는 아이돌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요……? 저희는 망…….”

“잠깐, 이제 앞으로 망돌의 망 자도 언급 금지. 내가 너희한테 부족하게 해 준 거 있어? 숙소는 제우스보다 더 좋을걸? 기각.”

지수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이노소울은 회사를 옮긴 뒤로 웬만한 대형 소속사 아이돌보다 더 좋은, 많은 지원을 받고 있었다.

“다들 이의 없지?”

지수가 마무리를 지을 때쯤, 조용히 있던 대수가 손을 들었다.

“난 왜 부른 거야?”

애초에 동업을 하자고 했을 때부터, 대수가 배우 쪽 매니지먼트를 맡고, 지수가 그 외에 다른 분야를 맡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아직 소속된 배우라고 해 봤자 지수와 대수 두 사람이 다인 데다가 지수는 그마저도 다이노소울을 관리하느라 스케줄을 전혀 잡고 있질 않으니 사실상 대수는 자신의 스케줄만 관리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좀…… 동의를 구해야 할 게 있어서. 다 갈아엎을 거야. 그래서 돈이 좀 필요해, 정 대표.”

그럼 그렇지.

지수가 평생 해 본 적 없던 해사한 표정을 지으며 대수를 쳐다보았다. 다이노소울의 컴백을 위해 기존에 의뢰한 모든 것을 중단하고 모든 걸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돈…… 필요해요…….”

눈치 빠른 멤버들이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대수를 올려다보았다. 대수가 못 볼 꼴을 본 사람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시발…… 알아서들 해.”

* * *

선전포고 같은 콘셉트 변경 회의 이후 지수는 칼을 갈고 나온 사람처럼 다이노소울의 컴백에 매달렸다.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정작 자신의 몸은 챙기지 못해, 살이 약간 빠져 예리한 턱선이 드러나 단솔을 더욱더 설레게 만들었다.

“안경 쓴 모습도 멋있어…….”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지수는 세상 진지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빠진 단솔은 줄곧 2층에만 있는 얼음 정수기를 쓴다는 핑계로 3층 연습실에서 내려와 소녀 팬처럼 손을 모으고 지수를 구경하고 있었다.

“진짜 저게 멋있어……? 나는 저 형 저렇게 진지할 때가 제일 무서워. 또 뭘 시키려고 저러나 싶어서.”

가끔 열정이 과할 때도 있었다. 며칠 전엔 공중제비를 도는 영상을 보여 주면서 안무에 꼭 넣어야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메인 댄서인 윤성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은 단솔에게 아크로바틱을 시키겠다는 엄포에 한발 물러난 것은 지수였다.

“다 우리를 위해서 그런 거야.”

지수를 옹호하듯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 단솔을 우현이 혐오스럽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여전히 단솔의 눈에선 하트가 뿅뿅 나오고 있었다.

한편, 바깥의 기대와는 달리 유리창 안쪽에서는 현진과 지수의 쓸모없는 기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섹시 콘셉트라면서요, 왜 다 안 된다는 건데. 섹시 몰라? 이건 새색시잖아!”

“아…… 새색시…… 그것도 안 돼.”

현진은 새색시 소리에 얼굴을 붉히는 지수에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명색이 섹시 콘셉트라면서 노출은 없어야 하고, 그렇다고 다른 아이돌보다 후진 옷은 절대 안 된다는 까다로운 요구 사항 때문에 여덟 명이나 되는 멤버들 의상을 하나도 준비하지 못했다.

물론 현진도 알고 있었다. 이토록 지수가 까다롭게 구는 이유는 제 애인에게 절대로 야한 의상을 입히고 싶지 않은 고집 때문이라는걸.

하지만 그렇다고 단솔만 쏙 빼고 의상을 미리 만드는 건 현진 본인의 프로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자고로 아이돌은 하나. 8―1은 0이어야 하는 법인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빠, 자꾸 이렇게 나오시면 저 사표 써요?”

“아니……! 그건…….”

이만한 경력과 실력을 가진 코디네이터를 어디 가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지수도 알고 있었다.

잘나가는 연예인일 때는 주변에 귀찮을 정도로 들러붙던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하자 또 다른 모습을 보였다. 물론 현진처럼 의기투합이 잘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연예인의 사업이란 으레 그렇듯 망할 거라고 시작도 전에 초를 치는 사람도 많았다.

지수는 현진의 말에 또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괜찮은 사람을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깨닫는 요즘이었다. 어디 가서 고집 하나는 지지 않는 성품이었는데, 사업을 하다 보니 매일매일 깎여 나가는 기분이었다.

“알았어…… 그래도…… 노출은 안 돼.”

“노출만 없으면 되죠?”

의미심장하게 웃는 게 영 수상했지만, 지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될 것 같아요. 다이노소울.”

“갑자기? 하나도 위로가 안 되는데.”

“난 그때 느꼈어요. 오빠가 제갈민혁한테 자존심 팍 굽히고 들어갈 때. 어―엄청 싫은 표정인데 말은 뭐랬더라.”

그때만 생각하면 지수는 지금도 이가 으득으득 갈렸다. 이전 앨범의 콘셉트를 맡겼던 프로듀서와는 아무래도 의견 차이가 있었다. 이제 와 거의 다 나온 노래를 갈아엎어야 했으니 성질이 날 만도 했다.

대수가 동의해 준 덕분에 지수는 초기 투자 비용을 싹 날린 뒤, 새로운 프로듀서와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민혁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단솔이 지난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서 했던 무대만큼 인상 깊은 노래가 없었다.

“음악 좋고, 댄스 좋고, 의상도 또 죽여줄 테니까 잠 좀 자요. 걱정 많잖아요, 요즘. 사람들이 떠드는 말 신경 쓰지 마요.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뭐야, 그 말투는…… 기대하는 사람들은 되게 소수인 것 같은 뉘앙스인데?”

“들켰네, 그래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어디예요. 솔직히 망…… 아니 전 소속사였으면 다이노소울 컴백한다 그래도 아무도 기대 안 했을걸요?”

망돌 이야기를 꺼내려던 현진이 살벌한 지수의 시선에 입을 꾹 다물었다. 괜스레 민망해진 현진이 커뮤니티 반응을 보여 주려 포털을 열었다.

“어? 이게 뭐야.”

분명 30분 전만 해도 다이노소울의 컴백에 대한 이야기가 인기 글 3위였는데, 게시판 전체가 한 사람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유두현때문에 마지막회 못 나가는 이유 알려 드림. (전 스태프입니다.)

나는 우선 알오매치 서바이벌 제작팀 중 한 명이었고, 그때 일로 환멸나서 그냥 방송업계 뜨고 다른 일 하는 중임. 근데 마지막회 안 나오는 거 관련해서 스태프들 무능하다는 둥, 다른 출연자들이 왕따시켰다는둥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추측하는 거 빡쳐서 그냥 글쓴다.

ㅇㄷㅎ이 ㅇㅇㅇ음료수에 약탔고, ㅇㅇㅇ러트사이클 왔음. 뭐 어떻게 해 보려고 했는데 헛짓거리 하기전에 다른 알파들 와서 말리고 ㅇㅇㅇ눈돌아서 ㅈㄷㅅ한테 달려드는 바람에 ㅈㄷㅅ페로몬 샤워당하고 쓰러지고 ㅎㅈㅅ가 ㅇㅇㅇ존나 패고 그랬음.

⤷ㅇㄷㅎ진짜 노답이네? 이 글 사실이면 그래 놓고 방송금지해 달라고 소송건거임?

⤷심지어 나는 막화 편집본까지 보고 나왔는데, 막화에 ㅇㄷㅎ나오지도 않고 ㅇㄷㅎ이랑 ㅇㅇㅇ사이에 벌어진 사건 언급도 없이 싹다 편집했음.

⤷그럼 ㅈㄷㅅ은 진짜 ㅎㅈㅅ랑 스폰관계임?

⤷ㄴㄴ절대아님. ㅈㄷㅅ 소속사 옮긴 것 갖고도 스폰이니 뭐니 이런 어이없는 소리 하는데 나였어도 소속사 옮겼을듯. 매번 촬영때마다 ㅈㄷㅅ은 매니저나 코디네이터 동행 없었고 매니저가 그냥 섬에 내려 주고 가기 바빴음. 들어 보니까 멤버 8명인데 매니저 한 명에 차 한대임. 뭔 일 터지고 나서도 지방에서오느라 ㅈㄷㅅ매니저가 행사 때문에 제일 늦게 오고 그래서 ㅈㄷㅅ 항상 스태프들보다 젤 늦게 퇴근하고 존나 불쌍했다. 그래서 다들 ㅈㄷㅅ 챙겨 주는 분위기였고, ㅎㅈㅅ도 많이 챙겨 줬지만 다른 알파들도 ㅈㄷㅅ존나 챙겼음. ㅊㅁㅈPD가 괜히 무슨 다큐 찍는다고 ㄷㅇㄴㅅㅇ데리고 아프리카 갔겠냐고, 걔네 방송끝나고 노저어도 모자랄 시간에 맨날 지방 행사나 뛰고 제대로 앨범도 안내주니까 불쌍해서 꽂아준거지.

⤷아니 난 솔직히 이 글 안 믿김. 나름 ㅇㄷㅎ도 인기 꽤 있는데 미친놈 아니고서야 스태프들도 다 있는 촬영장에서 그런 짓을?

⤷걔 미친놈 맞음 카메라 앞에서나 생글생글이지 스태프들은 다 개또라이라고 불렀음. 우리 카메라 진짜 뜬금없는 곳에 많이 설치해놔서 못볼꼴도 가끔 보는데 ㅇㄷㅎ이 앞뒤가 제일 달랐고 오죽하면 편집하다가 소름 끼친 게 한두번이 아님. 이제와서 피해자 코수프레하는 게 역겨워서 걍 총대메고 글쓴다.

⤷그럼 ㅈㄷㅅ이랑 ㅇㄷㅎ이랑 사이 별로 안 좋아 보이던건 추측아니고 ㄹㅇ임?

⤷사이 안 좋은 거 맞고 솔직히 일방적으로 ㄷㅅ이가 당하는 위치. ㅇㄷㅎ이 지랑 비슷한 성향 사람이랑 편먹고 하나 매장시키는 데 특화된 스타일임. 한명 골라서 무리에서 왕따시키고. 중간에 탈락한 사람들 중에 그거 편들어 주는 새끼들 있었고 초반부엔 ㄷㅅ이가 다른 멤버들이랑 지금처럼 친하지도 않아서 존나 개불쌍했다.

⤷근데 이런 글 쓰는 이유가 뭐임? ㅇㄷㅎ한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거 아님?

⤷할수 있으면 해보라그래, 방송일 그만두고 해외에 나와있은지 오래고, 여기는 익명에 나는 해외서버라서 찾기 쉽지 않을걸. 찾는다고 해도 방송일 할때보다 많이 벌어서 벌금 내라그러면 내지 뭐 ㅇㅇ

“오빠…… 일 났는데요, 지금?”

“뭔데, 줘 봐.”

현진에게서 핸드폰을 받아 들고는 게시 글을 읽어 내리던 지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익명의 뒤에 숨어 영웅 행세를 하는 꼴이 역겨웠지만, 글 내용을 봤을 때 자신이 스태프 중 한 명이라는 말은 분명 사실인 듯했다.

단솔은 알오매치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인해 인지도를 쌓은 만큼, 안티도 많았다. 지수는 이 글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쉽사리 예측이 되질 않았다.

안 그래도 심인성 난청에 스트레스가 쥐약이라는데.

컴백도 컴백이지만, 지수는 단솔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했다.

“나 위에 올라가서 애들 데리고 바로 들어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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