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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33화 (133/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33화

“병원엔 왜 간 거야.”

“진짜 몰랐어요…… 기자가 따라붙었을 거라고는…….”

“내가 지금 그거 물었어? 병원. 왜 갔냐고.”

단솔을 데리고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온 지수는 몹시 화가 난 듯 보였다.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최 PD에게 숙소를 바꿔 달라고 말했던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연습하다가…… 무릎이 아파서…….”

단솔은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결국 해야 할 말이라는 걸, 이렇게 회피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이렇게 화가 난 사람을 앞에 두고 귀가 안 들린다느니 스트레스 때문이라느니 약한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기사 때문에 화내는 것 같아?”

단솔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지수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가 누구야. 나 네 애인 아니야? 내가 너 아프다는 소리를 기사로 봐야 해? 병원은 왜 정대수랑 갔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서운함을 느낀다는 것을.

“넌 내가 등신으로 보이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면, 정형외과도 아닌데 무릎 아파서 갔다는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너한테 내가 그 정도 인간밖에 안 되나 보지.”

단솔은 눈물을 꾹 참느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또 한쪽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눈앞이 아찔해지더니 어지럽고 메스꺼운 감각이 올라왔다. 단솔은 지수를 등지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입 꾹 다물고 있을 거면 나가, 회의해야 하니까. 누구 덕분에 상큼 발랄 귀여운 콘셉트는 이제 물 건너가서.”

지수가 손에 들고 있던 회의 자료를 쓰레기통에 쏟아 버렸다. 프로듀서를 몇 날 며칠 괴롭혀 받아 온 자료가 모두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단솔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정말 저는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인 걸까. 어쩌면 이런 상태로 연애를, 아니 컴백을 할 생각을 했다는 게 용감할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소리가 안 들린 적은 없었는데. 단솔은 다시 물속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네.”

소파에 기대어 앉은 지수 눈썹 부근만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회의를 해야겠다며 대수를 불러다 앉혀 놓고는 몇 시간째 중요한 얘기들은 듣는 둥 마는 둥에, 계속 딴짓이었다. 제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은 채 벌써 주변은 깜깜한 밤이 되었다.

“야, 진짜 일 안 할 거야?”

“넌 어떻게 생각하냐.”

“뭐? 뭐가, 기사? 그까짓 기사에 한두 번 당해 봐? 저는 더한 짓도 해 놓고선. 아이돌은 사람 아니야? 아는 선배랑 밥 먹고, 병원 가고 그러면 안 돼?”

대수가 지수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아니, 그거 말고. 괴로운 듯 얼굴을 쓸어내린 지수가 입을 열었다.

“솔이 말고 나. 나 어떻게 생각하냐고. 네가 보기에도 내가 미덥잖아?”

“믿음직스럽지는 않지?”

지수의 질문에 대수가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아. 지수의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근데 결국엔 한지수가 이겼지.”

“뭐? 뭘 이겨. 누굴 놀리나.”

“결국 주단솔이 택한 건 너잖아.”

대수가 지수에게 서류 봉투를 하나 건넸다. 그 안에는 외장 하드가 들어 있었다.

“최 PD가 보냈더라. 연말 선물. 알오매치 서바이벌 마지막 회까지 있다네? 아무래도 소송이 길어질 것 같다고. 그냥 개인적으로라도 보라고 보냈나 봐.”

지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외장 하드를 받아 들었다.

* * *

“뭐 먹어?”

“커흡, 켁…… 아, 아무것도 아니야.”

단솔은 저녁 내내 울었다. 지수와 연인이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제 잘못으로 사이가 틀어지고 말았다.

늪에 빠지듯 생각에 잠긴 단솔은 애초에 그와 만나기로 결심한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부터 문제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회귀 후에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단솔을 죽음으로 이끈다면, 오히려 지수를 연인으로 묶어 두면 안 될 일이었다.

“아무것도 아니긴, 약인데?”

멤버들이 모두 자고 있다는 생각에 주방으로 나와 약을 먹은 게 잘못이었다. 약 봉투를 본 우현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형, 어디 아파?”

자세히 알약을 들여다보려는 걸 단솔이 빼앗아 들었다.

“비타민. 조금 피곤해서…… 나 자러 들어갈게.”

아무리 봐도 반응이 그냥 비타민이 아닌 것 같은데. 우현이 단솔을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나 잔다니까? 너 왜 따라와!”

“형,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 거 없어.”

집 구조상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어 멤버들이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단솔의 방이었다. 침대 옆 협탁에는 단솔이 눈물을 닦느라 썼던 휴지가 쌓여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데?”

단솔은 얼른 휴지를 모아 쓰레기통에 넣었다.

“콧물…… 닦은 거야. 감기 걸려서. 약 먹는 거 봤잖아.”

“아까는 비타민이라며. 지수 형한테는 무릎 때문에 병원 갔다고 했다던데?”

멤버들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온 단솔이었다. 연습실에 있었던 멤버들과 지수가 마주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제가 생각해도 제 거짓말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형, 지수 형이랑 싸웠어?”

“……뭘 싸워. 대표님이랑 싸우는 가수가 어디 있어.”

“그런 가수 많아. 그리고 형은 그냥 그런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잖아.”

“……어?”

“둘이 사귀는 거 아니었어?”

단솔의 퉁퉁 부은 눈이 커다래졌다.

“어…… 어떻게 알아?”

“……비밀이었어? 전혀 몰랐는데. 그 정도면 눈치를 못 채는 놈이 등신 아니야?”

“등신이라고 하지 마……!”

단솔은 괜히 낮에 지수가 한 말이 떠올라서 빽 소리를 질렀다.

“아니…… 뭐 그렇게 소리를 질러. 애들 다 깨우게?”

“……미안.”

“아무튼 지수 형이랑 싸우지 마. 지수 형이 형 얼마나 좋아하는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방금까지도 지수에게 어떻게 이별의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던 단솔이었다. 서로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깊을 때 그만두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저거.”

우현이 단솔의 방에 작게 놓인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는 단솔이 가끔 하는 게임기나 잡동사니가 올려진 트레이가 있었다. 우현이 일어나 트레이 안에서 작은 구슬을 꺼냈다.

“……사실 지수 형은 말하지 말랬는데. 아프리카에서 형 구해 준 사람. 지수 형이야.”

“……어?”

지수가 아프리카에 왔었다고? 단솔은 의식을 잃기 전 봤던 환영을 떠올렸다. 그럼 그게 짝사랑에 미친 제가 만들어 낸 환각이 아니라…….

“걱정돼서 따라왔대, 형이 그 주스 같은 거 받아 마셨을 때 모란인지 뭔지 그 미친놈한테서 구해 낸 것도 지수 형이고, 우리 입국하기 전까지 멀쩡한 숙소에서 지내게 도와준 것도 지수 형이야.”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아! 지수 형이 말하지 말랬어. 형이 알면 스토커라고 생각할 봐 무섭다고. 그 형 완전 센 캐인 줄 알았는데 형한테 밉보일까 봐 안절부절못해. 그러니까 좀 잘해 줘.”

단솔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잠옷 위에 겉옷을 입었다. 우현이 들고 있던 구슬도 함께였다.

아무래도 아직은 그와 헤어질 수 없었다.

“형, 어디가?”

“지수 형 만나러. 나 안 들어와도 걱정하지 마.”

“아니! 형! 그렇게 입고 가?”

“……어! 괜찮아.”

아직 지수가 바로 위층에 사는 걸 모르는 우현에게 단솔이 대충 대답을 하곤 슬리퍼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 * *

집으로 돌아온 지수는 알오매치 서바이벌을 첫 화부터 다시 보고 있었다.

중간에 알파임을 고백하고 나왔을 때는 단솔의 모습에 집중해서 보느라 몰랐는데, 다시 보니 다른 알파들도 모두 단솔에게 푹 빠져 있는 게 보였다.

“저런 애가 뭐가 아쉽다고 나 같은 걸 만나 줘. 고마운 줄도 모르고 미친 새끼야…… 넌 항상 그 입이 문제야.”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켠 지수가 괜히 화면 속 자신에게 화풀이를 해 댔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어느새 회차는 아직 방송에 나오지 못한 마지막 회였다.

제가 여론을 바꿔 보겠다며 머리를 쓰며 유두현에게 헛짓거리를 하는 와중에도, 단솔은 제게 올곧게 다가왔다.

―이번에도 남의 말에 흔들려서 포기하면, 다음은 영영 없을 것 같아요.

“한지수 눈치 더럽게 없네.”

지수는 마지막 회를 보자, 차라리 방송이 안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단솔의 눈빛이 말하는 감정은 분명한 사랑이었다. 그런 눈빛을 알아채지 못한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솔아, 나는 사랑……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잘해 준 거야.

씨발 놈. 개새끼. 미친놈.

세상 욕을 모두 갖다 붙여도 모자랐다. 과거의 자신이 저런 말까지 했다니. 저 지랄을 해 놓고 대충 좋아한다는 말로 퉁 치고, 믿니 안 믿니 떠들어댄 게 부끄러웠다.

“하아…….”

단솔이 헤어지자고 말한대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지수의 귓가에, 단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파×오메가 속마음 인터뷰>

Q : 한지수 씨가 끝내 유두현 씨를 선택했어요. 혹시 서운하지는 않으세요?

주단솔 : 서운…… 안 하면 거짓말이죠?

헤헤 하고 웃는 단솔의 눈이 붕어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민혁에게 단솔이 얼마나 울었는지를 전해 들었기에 그 모습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주단솔 : 근데…… 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엄청 기적 같은 일이잖아요. 괜찮아요, 그래도 제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 기적 같은 일이지. 넋 놓고 있다간, 제 손으로 그 기회를 또 날려 먹을 상황이었다.

지수는 안절부절못하며 제자리를 맴돌다 결국 현관으로 나왔다. 자고 있을 걸 알지만 집 앞에라도 가서 서 있고 싶었다.

이미 더할 나위 없이 가까이 있었지만, 더 가까이 가 닿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제대로 겉옷도 꿰어 입지 못한 지수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놀란 듯 서 있는 단솔이 있었다.

서로를 보고 놀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마치 기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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