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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32화 (132/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32화

    “하하하. 하하하하.”

    최악이라는 단솔의 외침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서 있던 지수는 단솔이 탄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자마자 실소를 터트렸다. 나중에는 주차장이 울리도록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제가 정말 미친 게 분명했다. 저런 모습까지 귀여워 보이다니. 하지만 아무리 귀엽다고 언제까지고 제멋대로 굴게끔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오늘 아침, 수 엔터가 다이노소울을 영입했다는 기사가 올라간 뒤로 연예부 기자들이 호시탐탐 세 사람을 노리고 있었다.

    보안이 꽤 철저한 아파트라 외부인이 주차장에 들어올 일이 없어 망정이었지, 단솔이 민혁의 차에서 내려 지수에게 소리를 지르고 올라가는 모습이 찍혔다면 당장 내일 아침 베스트 기사로 실려도 할 말이 없는 장면이었다.

    * * *

    형...... 방해 금지 모드 걸려 있었어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ㅠㅠ

    형 화 많이 났어요?

    지금 형 집 앞인데 어디 나갔어요?

    미안해요 형...... 화 풀리면 연락 주세요.

    단솔은 어젯밤부터 끊임없이 지수에게 연락을 하는 중이었다. 바보같이 제가 실수를 해 놓고 되레 지수에게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질렀다.

    지수 역시 화가 많이 난 듯 단솔의 전화며 메시지를 전혀 읽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자마자 지수의 집과 주차장을 뒤졌지만,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은 듯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회사로 가면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멤버들을 데리고 아침 일찍 연습실에도 나왔지만, 지수는 출근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형! 밥 안 먹어?”

    “됐어, 안 먹을래.”

    여전히 연락도 없는 지수에 답답함을 느끼던 단솔은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쉬는 시간마다 바람을 쐰다는 핑계로 다른 층에 내려가 지수가 출근을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길성은 벌써 몇 번째 들락날락하는 단솔에게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지금 복수라도 하겠다는 건가…….”

    처음엔 전적으로 제 잘못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지수의 화를 풀어 주겠다고 다짐했으나, 그 다짐이 무색하도록 단솔은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반팔에 패딩 점퍼를 입은 단솔이 1층 건물 밖으로 향했다. 이번엔 정말 바람을 쐬기 위해서였다. 단솔이 1층 현관을 나와 계단을 내려오고 있을 때, 대수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엇! 대수 선배!”

    두 사람이 공동 대표다 보니 함께 다니지 않을까. 뒤를 살펴보았지만, 지수는 보이질 않았다. 혹시나 주차를 해 놓곤 천천히 오고 있는 건 아닐까. 단솔의 걸음이 급해졌다.

    “우악!”

    온종일 연습한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하마터면 다섯 칸도 안 되는 계단에서 고꾸라질 뻔한 단솔을 앞에 있던 대수가 붙잡았다.

    조심. 평소라면 자연히 흘러나왔을 저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꼭 아이처럼 안겨 있는 모양새에 단솔이 힘을 줘 대수의 품을 벗어났다.

    “선배님! 혹시 지수 형은……?”

    하지만 대수는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단솔의 손목을 붙들었다.

    “갈 데가 있어. 따라와.”

    대수가 앞장을 서는데도 단솔은 허수아비처럼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에 연습하던 중에 나왔기도 했고, 크게 급한 일이 아니라면 자신은 지수를 먼저 만나고 싶었다.

    “주단솔 씨.”

    “에?”

    “공적인 일이니까 어리광 그만 피우고 따라오세요.”

    처음 만난 날 이후로 대수가 존댓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공적인 일이라는 말에 단솔은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와…… 선배님 존댓말 하니까 더 무섭다.’

    아직 컴백도 하지 않았는데 공적으로 이야기 나눌 만한 일이 뭐지, 잠시 고민한 단솔이 대수의 뒤를 따랐다.

    * * *

    대수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병원이었다. 동네 병원도 아니고 커다란 대학 병원까지 올 일이 뭐가 있을까.

    “선배님, 저 안 아픈데…….”

    “우리 회사랑 협정 맺은 곳이야. 직원들 건강 검진이나, 아프면 진료도 받을 수 있고.”

    “그……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예요?”

    간판 앞에서 사진이라도 찍어야 하는 걸까. 다이노소울은 아직 그런 위치까지는 아닐 텐데. 방금까지 땀에 젖어 있었던 단솔은 병원 유리문 앞에서 괜히 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너, 귀…… 언제부터야?”

    “……네?”

    대수의 나직한 물음에 단솔의 눈이 토끼 눈이 되었다. 그 짧은 말이 의미하는 바를 단솔이 모를 리 없었다.

    함께 사는 멤버들도 눈치채지 못한 걸 어떻게 안 거지. 단솔은 심장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언제부터?”

    “좀 됐어. 아무리 봐도 병원 다니는 것 같지는 않길래.”

    병원에 가 봤자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회귀 전에 생겼던 장애였고, 당시에도 치료 시기를 놓쳐 아예 회복이 안 된다는 판정을 받았으니까.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돈이 없어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던 기억이 단솔에게는 더 아프게 느껴졌다.

    “……저 갈래요. 어차피 예전에 병원 가 봤어요. 치료 안 된대요.”

    “그럼 온 김에 다른 데도 검사해 봐.”

    “싫어요……. 선배님, 저 그냥 갈래요.”

    대수는 자꾸만 병원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단솔에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야 연예인을 키우는 건지 애를 키우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주단솔.”

    “…….”

    “나 네 선배 아니고 대표야. 오늘 한지수는 프로듀서 만나서 콘셉트 회의하러 갔어.”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단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토록 기다린 앨범 준비인데, 혹시 제 귀가 방해가 되면 어쩌지.

    “조금만 걸어도 휘청휘청, 뒤에서 누가 불러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녹음이며 라이브 무대며…… 그 상태로 자신 있어?”

    “하아…… 알겠어요. 갈게요.”

    * * *

    “이상이 없습니다.”

    “네?”

    “자, 여기 보시면 귀 내부 모양이 보이시죠? 깔끔해요. 전체적으로 검사를 해 봤는데, 난청이 올 만한 요인이 없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사람 좋은 웃음을 띤 의사가 말을 하는 도중에도 단솔은 한쪽 귀가 물속에 있는 듯 먹먹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회귀 전에는 전 소속사 사장에게 맞아서 피까지 났었는데 멀쩡하다니.

    “심인성 난청으로 보여요. 기능상의 문제는 없는데 중요한 건 환자분 마음에 있다는 거죠. 극도의 스트레스나 불안, 우울감이 요인이 될 수 있어요.”

    “치료는 되는 겁니까?”

    보호자 자격으로 진료실에 들어와 있던 대수가 입을 열었다.

    “급성 난청이 아닌 이상, 한 번 떨어진 청력은 돌아오지 않아서 치료가 어렵지만. 환자분은 심적인 문제로 기능에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경우 치료 시기를 놓치면 시야 협착이 올 수도 있어서 치료해야 해요.”

    “시야 협착…… 그게 뭐예요?”

    “마치 천막을 친 것처럼 시야가 좁아지는 거죠. 어지럽다든지, 땅의 단차가 잘 안 보인다든지. 자주 넘어지는 것도 본인이 인지할 정도로 심해졌다면, 빨리 치료받아야 해요.”

    눈이 잘 안 보일 수도 있다니. 단솔은 할 말을 잃었다. 지난 생의 그림자 정도로만 생각했던 증상이 이번 삶도 좀먹고 있었다니.

    다음번 진료 예약을 마치고 다시 대수의 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오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대수도 잘 모르고 있었기에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혹시 저 때문에 앨범 내는 데 방해가 되면…….”

    “그러니까 멤버들 위해서라도 치료나 열심히 받아.”

    병원에 가기 싫다고 뻗대던 건 어디 가고 단솔은 이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선배님. 지수 형한테는 말씀…… 안 하시면 안 돼요?”

    한쪽 팔을 창문에 걸치고 운전을 하던 대수가 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고민을 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공동 대표의 입장에선 소속 가수의 몸 상태 또한 회사의 자산이니 마땅히 공유하는 게 맞지만, 연인 사이의 일에 끼어 이리저리 말을 전하는 것은 아무래도 제 성향상 맞지 않았다.

    단솔에 대한 마음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기도 했고.

    “그럼 네가 직접 해. 안 할 수는 없어. 어차피 알게 될 테고, 우리는 이제 비즈니스를 같이 하는 관계니까.”

    “……네, 제가…… 이야기할게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사귄 지 며칠이나 됐다고 ‘형, 제가 사실 귀 한쪽이 잘 안 들리는데요. 기능이 아니라 스트레스 문제래요. 근데 이게 심해지면 눈도 잘 안 보일 수도 있대요. 저를 책임져 주실 거죠?’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 그래도 너무 많은 걸 지수에게 의존하고 있는데 애인이기 전에 대표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몸 상태가 안 좋다는 말을 하기도 민망했다.

    지수에게 성공하겠노라, 호언장담을 했던 게 이제는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대수의 차가 회사 근처에 다다르자, 건물 1층에서 담배를 피우는 지수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다시 만난 이후로 통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지수였다.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서기 전, 단솔을 내려 주기 위해 차를 세운 대수가 창문을 열었다.

    “뭐야, 언제 왔어?”

    “두 사람 어디 다녀오나 봐?”

    지수의 물음에 단솔이 차 문을 열고 얼른 내렸다. 조수석에 놓인 약 봉투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잠깐…… 밥 먹으러요.”

    “뭐 먹었는데?”

    “어…… 돈가스요.”

    “다른 애들은 같이 안 가고?”

    “그게…… 배가 안 고프대서.”

    이렇게 거짓말이 서툴러서야.

    연습실에 올라 갔다온 지수는 이미 사흘 굶은 하이에나들처럼 지수가 사 온 간식을 해치우는 멤버들을 보고 온 뒤였다.

    “요즘엔 병원에서 돈가스도 파나 봐?”

    지수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어 보였다. 화면에 뜬 인터넷 기사에는 방금 전, 대수와 단솔이 서 있던 병원 대기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알오매치 서바이벌의 신데렐라 주단솔. 데이트는 제갈민혁, 병원은 정대수, 계약은 한지수와? 도대체 그의 진짜 연인은 누구인가.

    정확히 말하면 지수가 아니라 공동 대표인 두 사람과 계약한 거지만, 짜깁기하느라 바쁜 기자에게 그 사실이 중요할 리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제 민혁과 유명한 점집을 돌던 중 식사했을 때 찍힌 것으로 보이는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뭐에 그렇게 집중하느라 뒤에 똥파리가 따라붙는 것도 모르고.”

    지수가 혼잣말처럼 내뱉는 원망의 시선이 대수에게로 가 꽂혔다.

    하지만 단솔은 그 말이 제게 하는 말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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