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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31화 (131/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31화

“장군이시여……! 허잇! 장군께서 말씀하시길, 올해는 원하는 대학 갈 수 있을 것이네.”

“저…… 수험생 아닌데요.”

“큼…… 그…… 말이 그렇다는 거고 시험에 통과하거나, 결혼을 한다거나, 어려운 일이 다 풀린다는 의미인 거지.”

무속인의 두 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또 실패였다. 민혁이 꽤 실력 있다는 사람들만 모아서 추려 놓은 목록에 또 하나의 엑스 표시를 그었다.

평범한 가정집에 신당을 차린 무당부터 강남 한복판의 아파트, 상가 주택, 옥탑방까지 온종일 열 군데도 넘게 가 봤지만, 해명 도사처럼 단솔을 보자마자 사정을 알아맞히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

방금처럼 무턱대고 단솔을 수험생 취급하거나, 다짜고짜 민혁과의 궁합을 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순 엉터리네. 미안해요 단솔 씨.”

“아니에요! 형이 뭐가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급기야 단솔은 슬슬 민혁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제가 민혁이었어도 단솔이 회귀자라는 말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걱정을 하는 단솔과 달리 오랜만에 단솔을 만났다는 게 그저 즐거운 민혁은 연신 싱글벙글했다.

“배 안 고파요? 근처에 내가 아는 집 있는데, 밥이라도 먹고 움직여요 우리.”

터덜터덜, 민혁을 따르는 단솔의 발걸음이 잔뜩 무거워져 있었다. 단솔은 자연스럽게 주머니 속에서 만져지는 핸드폰의 감촉에 지수에게 먼저 연락을 해 볼까 고민했다.

아침부터 지수의 연락을 기다리는 제 모습이 싫어서 애초에 무음으로 돌려 놓은 뒤 주머니 속에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가는 점집마다 물을 먹어 속상한 마음이 들자 역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지수였다.

‘애초에 지수 형한테는 말할 수도 없는데.’

지수에게 자신이 회귀자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그의 성격에 아마 저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을까.

지수에게는 호기롭게 컴백만 하면 성공할 거라고 말했지만, 덜컥 겁이 났다.

일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신은 너무 많은 것을 지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어젯밤 괜히 지수에게 툴툴거린 것과 오늘 먼저 연락을 하지 않고 버티는 것 역시 그런 못난 마음의 발현이었다.

“어서 오세요~”

민혁을 따라 들어간 식당은 조용한 백반집이었다. 애매한 시간대라 식당은 손님이 민혁과 단솔 둘뿐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러게요…….”

점심때쯤 집 밖으로 나왔으니 무려 서너 시간을 점집만 돌아다닌 셈이었다. 단솔은 제 몸에서 향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늦게 일어나는 생활 패턴의 지수도 자고 있기에는 무리인 시간이었다.

‘형이 걱정할 텐데……!’

단솔은 그제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지수에게서 온 연락은 단 하나도 없었다.

* * *

숙소에서 단솔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멤버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단솔이 외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숙소로 내려온 지수는 연락도 받지 않고 어디로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 단솔 때문에 30분에 한 번씩 숙소의 문을 열었다.

“아직도 솔이 안 왔어?”

“네…….”

“알았어.”

우현은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혼나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연습도, 운동도 없이 쉬는 날인데 문을 열어 주느라 하도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했더니 허벅지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저기, 형!”

“왜.”

“그럴 거면 그냥 여기 앉아서 기다리시면 안 돼요? 비밀번호를 외워서 가시든가요.”

“그건 안 되지, 쉬는 날 거실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건 대표의 갑질, 집주인의 횡포니까.”

지수가 바로 윗집에 사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우현은 지수의 행동이 더 이해되질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진상인데 그런 걸 걱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니. 모순적인 지수의 말에 단호하게 답했다.

“솔이 형 오면 연락드릴게요.”

“어, 알았어.”

지수는 자신의 집으로 올라가면서 또 한 번 단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도 가지 않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무슨 일일까. 단솔이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참 나다…….”

다 큰 성인이고, 쉬는 날인데 어디 갈 수도 있지. 아니 그럼 어디 간다 온다, 말이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애인인데? 아니야, 내가 애인이지 부모도 아닌데.

지수의 마음속에서 속 시끄럽게 두 개의 자아가 싸우고 있었다. 그 어느 쪽이든 단솔이 와야 결판이 날 텐데,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제 애인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니 더 심란하기만 했다. 거실부터 주방, 침실까지 단솔을 데리고 온종일 집에서 뭘 하고 놀지 계산하고 세팅을 해 놓은 지 오래였다.

침대 옆 협탁 안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콘돔과 러브젤까지 종류별로 챙겨 놓은 지수에게는 이런 식으로 잠수를 탄 애인이 야속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형네 집에 놀러 가도 돼요? 하면서 아양을 떨 때는 언제고, 기껏 휴일을 만들어 줬더니 어디로 증발해 버린 걸까.

습관처럼 번호를 눌러 봤지만, 여전히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로 시작하는 기계음만 나올 뿐이었다.

결국, 지수는 겉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숙소엔 다른 멤버들이 영 싫어하는 눈치라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지수는 드레스 룸에서 아무 모자나 집어 들었다.

늦어도 오늘 안에는 오겠지.

집으로 오려면 이곳을 반드시 지나야 하니 주차장 안에 있는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릴 심산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는 게 싫어서 일부러 펜트 하우스 전용 주차장이 따로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온 지수였다. 이제는 제 발로 동네 주민이 돌아다니는 주차장에서 죽치고 기다릴 생각을 하다니.

과거의 제가 봤다면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했을지도 몰랐다.

‘비효율, 비이성.’

연애를 시작하고, 아니 단솔을 좋아하게 된 뒤로 내내 그랬다. 타산에 안 맞는 행동을 극도로 싫어하는 지수가 단솔에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저답지 않게 굴었다.

감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정상의 자리에서 돌연 사랑을 찾아 떠나거나, 삼각관계에 휘말려 이미지를 망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지수는 조소를 날렸다.

그깟 사랑 따위가 뭐라고.

물론 타인의 어리석은 사랑 타령 덕분에 어부지리로 기회를 얻게 된 적도 많았다. 그래서 더욱더 저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만이었다.

지금 지수는 그 누구보다 단솔이라는 존재 앞에 흔들리고 있었다.

* * *

“아무래도 제가 너무 약속을 급하게 잡았나 봐요.”

“아니에요, 그래도 오늘 열 군데는 확실히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영 수확이 없는 건 아니죠.”

마지막으로 해명 도사에게도 연락을 해 보았지만, 그가 지방에 내려가 있다는 직원의 답변만 받을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아파트 입구에서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뒤로 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일부러 모자에, 마스크에, 안 쓰던 안경까지 쓴 단솔을 용케도 알아본 모양이었다.

“형…….”

“종일 연락 한 통 없더니 민혁이랑 어디 갔다 오나 봐?”

연락이 없던 게 누군데. 단솔은 짐짓 화가 나 보이는 지수의 표정에 기분이 상하려고 했다.

“오랜만이에요. 단솔 씨랑 어디 좀 갔다 올 일이 있어서요.”

“어디?”

“음……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겠는데요. 하하. 아무리 소속 가수라지만, 연습생도 아닌데 너무 간섭하시는 거 아니에요?”

지수와 단솔이 연인으로까지 발전한 줄은 꿈에도 모르는 민혁이 대답했다. 모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지수의 표정은 이미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다 큰 성인인데. 저희 나쁜 짓 안 했어요. 단솔 씨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갈게요.”

민혁의 차가 사라지고 나자, 주차장은 적막이 감돌았다.

“솔아, 어딜 가면 간다고 말을 해 줘야지.”

지수는 최대한 제 성질을 누르고 이야기했다. 민혁이 거슬리는 소리를 하긴 했어도, 단솔에게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고 싶었다. 어떻게 돌고 돌아 만난 연인인데 이런 사소한 일로 지수는 단솔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됐어요. 어차피 형은 관심도 없잖아요.”

전화도 메시지도 한 통도 와 있지 않아서 바쁘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주차장에 돌아다닐 정도로 한가했던 건가. 괜스레 뿔이 난 단솔의 입에서 못된 말이 튀어나왔다.

전화를 얼마나 해댔는데, 단솔이 보면 미친놈인 줄 알 정도로 많이 전화를 건 지수였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지수가 단솔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으려 했다.

“너 핸드폰 줘 봐.”

그런 지수의 행동을 오해한 단솔이 제 핸드폰을 등 뒤로 숨겼다.

“네? 뭐예요, 형? 지금 제 핸드폰 검사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뭐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일단 줘 봐.”

지수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만지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단솔의 행동이 더 빨랐다. 도착한 엘리베이터로 뛰어 들어간 단솔이 닫힘 버튼을 마구 누르면서 외쳤다.

“애인 핸드폰 검사하는 남자 친구는 진짜 최악이에요!”

단숨에 숙소가 있는 층까지 올라온 단솔은 뛰어온 것도 아닌데 숨이 찼다. 혹시나 재빠른 지수가 계단을 타고 와 숙소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했지만 숙소 앞 복도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형! 왜 전화를 안 받아?”

도어록 번호를 누르고 손잡이를 채 다 돌리기도 전에 안쪽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우현이었다.

“무슨 소리야. 너 오늘 나한테 전화했었어?”

“전화했었냐고? 장난치냐, 백 통은 했을걸? 종일 형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괴로웠는데.”

생각해 보니 지수의 연락 말고도 핸드폰에는 그 어떤 연락도 와 있지 않았다. 심지어 대출 광고나 통신사 광고마저도.

“어…….”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단솔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간 우현이 외쳤다.

“아, 뭐야! 형 방해 금지 모드로 해 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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