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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27화 (127/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27화

지수는 극구 괜찮다는 단솔을 데려다주겠다며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전에도 지수가 운전하는 차를 탄 적은 있었지만, 단솔은 왠지 부끄러워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말이 없었다.

그건 지수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도 역시 연신 헛기침을 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차에 올라타자마자 몰래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는지 들이마시는 숨이 달게 느껴졌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단솔이었다.

“집에 가서 애들한테 말해도 돼요?”

“우리 사귀는 거?”

“네? 우리 사귀어요?”

“뭐? 우리 그럼 안 사귀어?”

“그…… 저는 대표님이 형이랑 대수 선배라는 거 말해도 되냐는 말이었는데.”

차 안에는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지수는 조용히 차를 출발시켰다. 입을 맞추고 난 뒤로 단솔과 결혼해 증손자들 재롱 보는 상상까지 한 지수는 제 머릿속에서 그렸던 핑크빛 미래가 풍선 터지듯 팡팡 터지는 게 느껴졌다.

“형…… 화났어요?”

“아니.”

뭐라 더 길게 말을 하고 싶은데, 덧붙일수록 지질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에 대답을 짧게 했더니 그건 그거대로 삐친 사람처럼 보였다.

제가 원래 이렇게 연애에 서툰 사람이었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느라 우물쭈물하고 있던 그때, 단솔이 먼저 말했다.

“사귀는 사이 해요. 전 좋아요.”

끼익.

“헙, 미안.”

단솔의 말에 놀란 지수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나니 단솔은 꼭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굴었다. 머뭇거리고 부끄러움 탈 줄만 알았지, 이렇게 적극적일 수 있었구나.

이 모습조차 너무 사랑스러워 그간 주저한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지수였다.

“왜요? 형은 싫어요?”

“아니! 당연히 좋…… 좋지! 너무 좋지, 난…….”

푸흡. 버벅거리고, 당황하고, 뚝딱거리는 지수의 모습이 새로운 건 단솔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참다못한 단솔이 웃음을 터트렸다.

“왜…… 왜? 나 뭐 잘못했어?”

“아니, 크큭 너무 웃겨서요. 무슨 첫 키스 한 고등학생처럼 떠는 거 알아요, 형?”

“내가 그랬어? 오히려 옛날엔 안 그랬는데, 갑자기 왜 이러지…….”

“네? 뭐라구요?”

“아, 고등학생 땐 안 그랬.”

지수는 당황한 탓에 제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조차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제 실언을 뒤늦게 알아챈 지수가 말을 멈추었지만, 이미 방금 사귄 애인 앞에서 첫 키스를 회상한 미친놈이 되어 버린 후였다.

타이밍도 안 좋게, 지수의 차가 단솔의 동네에 도착했다.

“저기…… 솔아.”

“됐어요. 내릴게요. 안녕히 가세요. 근데…… 전 첫 키스였어요.”

“잠, 잠시만! 아이 씨! 이거 왜 안 빠져! 솔아!”

오늘따라 말썽을 부리는 안전벨트 때문에 지수가 머뭇거리는 사이, 단솔은 차 문을 열고 나가 감자탕집 옆 계단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막내 멤버 집에 얹혀산댔나. 남의 집에 쫓아 올라갈 수도 없고 지수는 한참이나 그곳에 서서 마른세수만 해 댔다.

그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느라 몰랐겠지만, 사실 새초롬하게 돌아선 단솔은 웃고 있었다.

제 작은 장난 하나에도 저렇게 당황하는 지수가 퍽 재밌게 느껴졌다.

물론 이게 첫 키스라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지만, 그건 회귀 전의 일이니까.

* * *

“솔이 형 왔다!”

“형! 어땠어? 괜찮았어?”

“뭐래?”

단솔이 문을 열자마자, 신이 난 강아지들처럼 달려드는 동생들에 단솔은 애써 방금까지도 두근거리던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이미 대수, 그리고 지수와 계약하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어디 가서 애인 덕을 봤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잘 이야기됐어. 다음 주에 가서 계약서 쓰재. 대표님이 우리 팬이라서 분석도 아주 열심히 하셨나 봐.”

“대박……! 진짜? 미쳤다…… 형 들었어? 대표님이 우리 팬이래!”

“단솔! 수고하셨습니다!”

“아, 제이콥…… 근데 내가 실수하는 바람에, 네 신발 망가졌어…… 미안. 내가 다시 사 줄게.”

마치 군인이라도 된 듯 단솔에게 과장해서 경례를 하는 제이콥에게 단솔은 솔직하게 말을 했다.

“괜찮아 단솔이 형, 우리 팀을 구한 히어로니까. 내가 봐줄게.”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이렇게 그냥 넘어가다니. 말은 안 했지만, 멤버들에게 얼마나 간절한 순간이었는지 느껴졌다.

“형! 오늘은 우리 파티하자 파티!”

“그래, 형이 사 줄게. 옷 입어 마트 가게.”

“아싸!”

바쁘게 옷을 입는 동생들 뒤로 혼자 심각한 표정을 한 우현이 있었다. 우현은 다른 멤버들이 신나서 신발을 신고 나가기까지 기다렸다가 단솔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응?”

“잠깐 나 좀 봐.”

단솔의 팔뚝을 우악스럽게 잡은 우현이 다짜고짜 민재의 방으로 단솔을 끌고 들어가 단솔을 침대에 앉혔다.

“왜? 애들 기다릴 텐데…….”

“지금 그게 중요해? 형…… 진짜 내가 묻는 말에 대답 잘해야 해.”

우현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마치 취조를 하는 형사라도 된 양 우현이 물었다.

“계약 조건에 다른 거 있는 거 아니지?”

“다른 거?”

지수는 원하는 걸 뭐든지 들어준다고 했다. 정규 앨범이든, 연기든 뭐든지. 남들에겐 어떨지 몰라도 단솔에게는 퍽 로맨틱한 말이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세상에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은 지수가 유일했다. 그 생각만으로 입꼬리가 올라가고 얼굴이 붉게 물든 단솔이 얼른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 그런 거 없어. 뭐든 다 해 주신대.”

“너 지금 숨기는 거 있지. 존나 수상한 거 알아?”

“뭐…… 뭐가! 그런 거 없거든?”

“없는데 말은 왜 더듬어?”

“……네가 취조하듯 그러니까,!”

“미팅하러 간다던 사람이 입술이 왜 이렇게 부었어?”

예리한 놈. 단솔은 서둘러 제 입술을 가렸다. 한참이나 서로 물고 빨고 있느라, 안 그래도 겨울이면 자주 트는 입술이 부어오른 모양이었다.

“혹시 그 대표 새끼…… 스폰서 이런 거 아니지? 성 상납 대가로 이런 짓 한 거면 나 가만 안 둬.”

빡.

예리한 척하며 지수를 파렴치한으로 만드는 우현에 단솔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우현의 뒤통수를 때렸다. 손바닥이 동그란 뒤통수와 마찰하는 소리가 꼭 박이 터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악! 미쳤어? 이것 봐! 과민 반응하는 게 수상하잖아!”

“우리 대표님 그런 사람 아니거든?”

“우리? 우리이? 언제 봤다고 우리야? 와……!”

“입술은 겨울이라 부르튼 거고, 짜식이 내가 형인데 가끔 너 반말하더라? 주의해! 알았어?”

괜히 성을 낸 단솔이 거실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갔을 때는 이미 마트에 가 있을 줄 알았던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갈 구경하고 있었다.

“우와…… 나 이 차 실물 처음 봐.”

“진짜 멋있다. 근데 왜 이 동네에 이런 차가 왔지?”

“뭐 음식 포장하러 왔나 보지 뭐. 여기에 맛집 많잖아.”

“아…… 그런가.”

멤버들이 모여서 구경하고 있는 차는 지수의 차였다. 차를 잘 모르는 단솔은 그저 또 차가 바뀌었네 하는 생각뿐이었지만, 꽤 희귀한 차종이었던 모양이었다.

“야, 안에 사람 있는 거 아니야?”

“없을걸? 아 씨꺼메서 하나도 안 보이네.”

선팅이 진하게 되어 있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얘들아! 거기서 뭐 해! 빨리 가자! 응?”

“아, 형 이 차 국내에 4대밖에 안 들어오는 거라고! 좀만 더 구경하자.”

“그러다 주인 오면 어떡해! 빨리 와!”

멤버들을 차에서 하나씩 떼어 낸 단솔이 양 떼를 몰듯 멤버들을 마트 쪽 방향으로 보냈다. 이럴 때 보면 망아지들이 따로 없었다.

단솔이 화난 줄 알고 앞에서 기다리던 지수는 갑자기 등장한 멤버들 때문에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괜한 오해를 살까 봐 가만히 얼어 있는 사이, 단솔이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가장 뒤쪽에서 마트로 걸어가던 단솔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지수의 차 쪽으로 윙크를 했다.

그 귀여운 모습에 몸서리치던 지수는 저도 모르게 클랙슨을 울렸다. 선팅이 진해서 차 내부의 모습은 단솔에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단솔은 지수의 상태를 추측할 수 있었다.

지수 형

추운데 어디 가? 데려다주고 싶다. 화난 거 아니지? 나 진짜 울 뻔했어.......

장난인 거 이제 알았어요? 원래 눈치도 빠르면서 ㅎㅎ 기분 좋아서 애들이 파티하자고, 마트 가요.

지수 형

몰라 네 앞에만 서면 눈치가 사라지나 봐. 그래도 예뻐해 줘. 잘할게.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었다. 핸드폰을 볼 때마다 올라가는 입꼬리에 단솔은 우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 잠시도 참기 힘든 듯 지수에게 메시지가 하나 더 날아왔다.

지수 형

뭐 필요한 거 없어? 형한테 말하지.......

저희도 돈 있어요. 짐 들고 올 손도 많구요. 괜찮아요! 형 근데 저 애들 눈치가 보여서...... 이따가 연락할게요!

저에겐 마냥 어린애 같은 단솔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지수는 제 손으로 다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산전수전을 겪은 다이노소울의 리더로서의 단솔은 저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웠다.

이런 데 서운함을 느낀다면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지수는 얼른 제 시선이 닿는 곳으로 단솔을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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