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23화 (123/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23화

단솔은 기억을 더듬어 길성의 동네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모자와 마스크를 푹 눌러쓴 채 차창 밖을 보면서 길성이 사는 동네를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아 주단솔 봤냐 개 귀엽.”

“난 걔 비호감이던데, 왜 이렇게 좋아함?”

단솔의 몸이 움찔하고 놀랐다.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자신을 알아볼까 봐, 단솔은 허리를 굽히고 모자와 마스크를 좀 더 푹 눌러썼다.

“왜? 귀엽잖아 비주얼 미쳤는데. 망돌이라서 짠한데 예뻐.”

“아, 정이 안 가. 걔 그거 다 콘셉트라는 소리 못 들었어? 원래 명품 엄청 밝히고, 요즘에 방송 안 나오는 것도 알오매치 나오고 나서 스폰서 물어 가지고 안 나오는 거래.”

“헤엑! 진짜?”

“어, 거의 백화점에서 산다던데.”

하루아침에 쫓겨나 집도 없는 처지인데 백화점이라니.

단솔은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어 버렸다. 창문을 보니 세상 초라한 제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화려한 삶과 실제 자신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도 컸다.

도대체 이런 소문은 누가 만드는 걸까. 한숨을 푹 내쉰 단솔이 길성의 동네에 도착하자 하차 벨을 누르고 일어났다.

여전히 학생들은 자신에 대해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른 승객들도 저처럼 안 듣는 척하면서 그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을지 몰랐다. 단솔은 도망치듯 버스에서 내렸다.

사실, 멤버들에게는 자신이 다 해결하고 오겠노라, 호언장담을 하고 왔지만 길성을 제대로 만나고 갈 수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무모하지만 누군가는 계속해서 좌절하는 멤버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 단솔은 그러느라 자신이 깎여 나가는 건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하…… 이쯤이었는데…….”

용궁 빌라. 길성이 사는 곳은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 정말 용궁이라도 되는 양, 동네를 몇 바퀴 돌아도 그와 비슷한 이름의 빌라는 나오질 않고 있었다.

“왜 안 나오지…… 옆 동넨가.”

혹시 제가 길성의 집 주소를 잘못 안 것일까. 수년을 함께 일했는데 그런 것조차 모르다니.

단솔이 스스로에게 실망한 채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골목 안쪽 피시방 앞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길성이 보였다.

“형! 길성이 형!”

단솔의 부름에 놀란 길성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렸다. 그는 순간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그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 * *

“드…… 들어와. 집이 좀 지저분하지?”

길성은 다행히 자신을 찾기 위해 먼 동네까지 온 단솔을 두고 도망을 가지는 않았다. 대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길성이 혼자 사는 용궁 빌라로 자리를 옮겼다.

발로 소주병과 빈 담뱃갑을 쓱쓱 치우는 모습에 단솔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계속 이러고 지낸 거야?”

길성의 집에는 그 흔한 소파도 침대도 없었다. 거실에 깔아 놓은 매트리스 한 장과 작은 밥상이 그가 가진 가구의 전부였다.

원래 안방이었어야 할 방에는 작은 행거만 덜렁 놓여 있었다. 그마저도 옷이 몇 벌 없어 작은 행거가 텅텅 비었다.

말을 하면 집이 왕왕 울려 메아리가 칠 정도로 휑한 집에는 손님을 대접할 제대로 된 머그잔 하나조차 없었다.

길성은 급한 대로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단솔에게 내밀었지만, 단솔은 고개를 저었다. 냉장고 역시 텅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그룹을 살려 보겠다고 다이노소울과 같이 살다시피 한 길성이었다.

“……혼자 살면 다 이래.”

길성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오랜만에 본 그는 수염이 잔뜩 자라 있었고, 술만 마신 모양인지 안 그래도 나와 있던 배가 잔뜩 나와 건강이 걱정될 정도였다.

“갑자기 해고된 이유가 뭐야?”

“다 내가 잘못해서지 뭐. 알잖아 너도, 나 원래 실수도 많이 하고 그러는 거. 새로운 매니저는 어때? 잘해 줘?”

그는 아마도 다이노소울이 전부 다 계약 해지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매니저가 어디 있어. 우리도 쫓겨났는데.”

“뭐⁈ 아…… 아니 왜? 그럴 리가 없는데…….”

“형은 뉴스도 안 보고 살아?”

단솔이 핸드폰을 내밀어 보였다. 공룡 엔터가 TYC가 되면서 다이노소울과 계약 해지를 했다는 기사였다.

아무리 그만둬도 그렇지, 우리한테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야? 농담조로 말했지만, 길성은 심각하게 기사를 읽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기력했던 길성의 눈빛에 불꽃이 튀었다.

“전부 거짓말이었어.”

“뭐가?”

“나한테는 더 좋은 매니저 붙여 주겠다고 했어. 합병되면 지금이랑은 달라질 거라면서.”

길성이 해고를 당하던 날,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대표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그는 조용히 길성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회사도, 다이노소울도 더 이상 구멍가게 수준에 머물지 않을 텐데 매니저 역시 전문 인력을 써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길성은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벌도 그저 그렇고, 이 바닥에서 인맥이랄 것도 없는 자신보다 더 좋은 매니저가 있겠지.

길성은 다이노소울이 그간 빛을 보지 못한 게 꼭 자신의 탓 같았다. 그래서 10년 넘게 일한 직장을 나오면서도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만뒀는데.

“너희 제대로 밀어주겠다는 말만 믿고 사직서까지 썼는데……. 계약 해지 통보는 언제 받은 거야?”

“입국하자마자. 숙소에 갔더니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더라. 짐은 다 나와 있고.”

심지어 회사 측에서 해고를 하면 추후에 문제가 될까 봐 대표는 길성을 구슬려 사직서까지 받아 냈다.

“그럼 지금은? 어디서 지내고 있어?”

“……민재네 집에서. 거기도 곧 있으면 나와야 할 것 같아. 이미 몇 명은 본가에 간다고 내려갔고.”

“하…… 시발 그런 줄도 모르고…….”

방금까지도 피시방에서 이력서를 쓰고 나온 길성이었다. 멤버들이 길바닥에 나앉은 줄도 모르고 저 살 궁리만 하다니. 속상한 마음에 길성은 먹다 남은 소주병을 붙잡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니까 왜 전화는 안 받아.”

“난 너희가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지…… 그럼…… 정규 앨범은? 아프리카 가기 전에 계약서 썼잖아.”

“뒷장에 장난질을 쳐 놨더라고. 방심한 우리 탓이지 뭐…….”

“그게 왜 너희 탓이야. 다 내 탓이지. 이럴 게 아니라 변호사라도 찾아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소용없어. 재판이 하루 이틀 만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쪽은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우리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설사 이긴다고 하더라도 그땐 이미…….”

해체하고 뿔뿔이 흩어진 뒤겠지.

단솔은 애써 마지막 말은 참아 냈다.

“일단 내가 다른 방편 알아볼 테니까, 당분간은 애들이랑 여기 와서 지내.”

“여기?”

단솔은 쿰쿰한 홀아비 냄새가 가득한 길성의 집을 둘러보았다. 반지하 숙소보다 좁고, 술 담배 냄새가 곳곳에서 났지만 적어도 곰팡이는 없었다.

“애들한테 물어보고……. 일단 오늘은 가 볼게.”

뭐라도 알아보려고 왔지만, 오히려 길성이 모르는 게 더 많았다. 역시나 해답은 없었다. 단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됐어, 나오지 마. 애들한테 물어보고 올 테니까 청소나 좀 해 놔. 이게 뭐냐, 인생 다 망한 사람처럼. 이건 내가 갖다 버릴게.”

길성의 집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단솔 역시 그 패배감을 느껴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단솔은 애써 따라 나오려는 길성을 만류하곤, 문 앞에 늘어선 빈 소주병을 봉투에 담아 들고나왔다.

그래도 갈 곳이 생겨 그런가, 아까보다 바깥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밖으로 나온 단솔은 주저앉아 소주병을 하나하나 분리수거 함에 넣었다.

복잡한 제 삶도 이렇게 정리가 되면 좋으련만.

그때,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꾸준히 안 읽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민혁은 단솔에게 줄곧 연락을 해 왔다.

민혁이 형

입국했어요? 사진 봤는데. 한번 봐요 단솔 씨.

정규 앨범 준비한다고 바쁜가 봐요... 날씨도 추운데 감기 조심하고 목 관리 잘해요.

무슨 일 있어요? 혹시 도움 필요하면 연락해요.

기사 봤어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은데. 안 미안해해도 되니까 연락 좀 줘요.

혹시 민혁이라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감이 들었지만, 단솔은 선뜻 답장을 할 수 없었다. 매번 도움이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는 것도 염치가 없이 느껴졌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하는 것도 이제는 조금씩 힘이 들었다.

“으…… 난 쓰레기야.”

단솔은 쓰레기장 앞에 주저앉아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냥 핸드폰을 집어넣으려는데 멤버들 얼굴이 둥둥 떠다녔다.

지금은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단솔은 민혁에게 답장을 보냈다.

형,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아시다시피 좀... 시끄러웠어요. 혹시 시간 되시면 내일이나 모레쯤 잠깐 볼 수 있어요?

민혁이 형

걱정 많이 했어요 단솔 씨. 작업실에 있을 테니까 언제든지 와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