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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22화 (122/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22화

단솔은 멤버들과 함께 그 길로 곧장 회사로 찾아갔다. 하지만 다이노소울을 키워 냈던 그 낡은 건물 역시 텅텅 비어 있었다.

“설마…… 야반도주라도 한 거야 뭐야.”

단솔은 상대가 받을 걸 예상하지 않고,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TYC 엔터테인먼트 박필구 대표입니다.

“네? 뭐라고요?”

하지만, 대표는 뻔뻔스럽게도 신호가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생전 처음 듣는 상호명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라고 소개했다.

단솔이 소속된 회사의 이름은 가요계에 큰 발자국을 남기겠다고 선언한 공룡 엔터테인먼트였다.

“박필구 대표님 전화 맞아요?”

―어, 이게 누구야 단솔이 아니냐.

“아니…… 씹…… 대표님.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도대체 어디 계세요? 길성이 형은 왜 해고했어요? TYC? 이건 또 뭐예요? 요즘 속옷 가게 해요?”

―뭐…… 그렇게 됐다.

“뭐가 그렇게 돼요? 똑바로 설명을.”

―뭐…… 길성이도 그렇고, 너희도 그렇고. 새 배에는 새것만 담아야 하지 않겠냐. 계약 해지라고 너희도.

스피커 모드를 켜 놓은 단솔의 핸드폰을 빼앗아 든 것은 우현이었다.

“우리 정규 내 준다고 했잖아요! 계약서도 써 놓고 이게 다 무슨 소린데요!”

―아휴, 우현이구나? 야 이 새끼 처음 왔을 때 아주 조그만 꼬맹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대표한테 화를 낼 정도로 컸냐. 목청 좋다 너.

“씨발, 그딴 감상 듣자고 전화한 거 아니니까 똑바로 말해. 우리 정규 앨범 내기로 했잖아. 그 말만 믿고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는데 뭔 개소리야.”

―우현아, 인마. 내가 너한테 큰 거 하나 가르쳐 줄 테니까 봐. 계약서 있지, 그거 뒷면 봐 봐, 새끼야. 그게 바로 이면 계약서라는 거다. 내가 늘― 말했잖아. 계약서에 도장 찍을 때는 잘 살펴서 읽고 찍으라고.

단솔이 우현의 주머니에서 챙겨 온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여기저기 구르느라 이미 계약서 종이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뒷면으로 넘기자 작은 회색 글씨로 무언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갑의 회사가 존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당 계약은 무효화되며, 을의 전속 계약 역시 해지됨.]

“이게 무슨 말이야 형?”

동생들이 달려들어 계약서를 살피는 동안 단솔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정규 앨범을 내 주기 싫어서 멀쩡한 회사까지 없애고 튀었다고? 도저히 단솔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제 좀 상황 파악이 됐어? 의리도 중요하지만, 돈 안 되는 너희 끼고 천년만년 살 순 없잖아. 나도 먹고살아야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그나마 내가 성격이 좋으니까 너희한테 위약금 안 물고 그동안 빚진 것도 안 받고 계약 해지해 주는 거야. 운 좋은 줄 알아.

“씨발, 누가 누굴 봐줘. 빚을 져? 우리가? 그동안 뭘 해 준 게 있어야 빚을 지지. 갈 때 가더라도, 정산서 내놓고 가.”

―아이고, 미안해서 어쩌냐. 정산서 떼 주는 직원도 해고됐어. 회사가 없는데 직원이 있을 수가 있나. 뭐…… 자신 있으면 법으로 해 보든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대표는 일부러 멤버들을 놀리듯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주단솔이는 좀 아깝긴 한데. 너 어차피 다른 애들이랑 같이 안 하면 안 한다고 할 거잖아. 알량하게 자존심만 있어 가지곤. 혹시 생각 바뀌면 연락해라?

뚝.

대표의 전화가 끊기고, 우현이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던지려다가 멈췄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단솔의 핸드폰임을 알고는 우현은 단솔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어찌나 세게 잡았던지 핸드폰에 뜨끈뜨끈하게 우현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형. 우리 이제 어떡해?”

악플은 피했지만, 해체는 피할 수 없는 걸까. 단솔은 동생들의 물음에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 * *

“아, 얘네 다 언제 꺼져 엄마?”

“서다솜! 그렇게 말하지 말랬지?”

“아 진짜 짜증 나!”

졸지에 숙소가 없어진 멤버들은 급한 대로 가까운 민재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하지만 민재의 집도 완전한 피난처가 될 수는 없었다. 그곳은 민재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1층 식당 위에 지어진 상가 주택이었고, 이미 네 명의 동생들로도 충분히 좁은 상태였다.

낮 시간에는 집에 올라와 동생들을 돌보거나 식당 일을 돕다가, 식당이 문을 닫는 시간이면 단솔과 멤버들은 이부자리를 들고 내려가 식당 한 편에서 잠을 청하는 식이었다.

“미안해 다솜아…… 빨리 나갈게.”

“단솔 오빠는 빼고, 예요.”

아직 아장아장 걷는 막내와 한창 뛰어놀 7살 쌍둥이는 온몸으로 놀아 주는 멤버들을 좋아했지만,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민재의 바로 밑에 있는 동생 다솜은 갑자기 생긴 객식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야! 단솔이 형은 왜 빼고야?”

“더러운 알파들이랑 단솔 오빠랑 같아?”

“너도 알파잖아! 열성 주제에 까탈스럽긴.”

“뭐!? 이 미친 기생충 새끼가.”

“뭐!? 기생충!?”

게다가 얼마 전 다솜은 열성 알파 판정을 받아 더 예민한 상태였다. 대다수가 알파인 멤버들, 특히 민재하고는 하루에 12번도 더 싸워 대는 통에 단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급기야 민재와 다솜은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 시작했고, 민재의 막냇동생은 그 모습이 신기한 듯 침을 줄줄 흘리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연규와 우현이 쌍둥이의 무한 동력 인간 비행기로, 활동할 때도 안 하던 복근 운동을 하고 있었고, 그 뒤로 화장실에서 나온 제이콥은 장난감을 밟고 넘어져 식탁 밑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모습인 걸까.

회귀 전보다 더 초라한 모습에 단솔은 가만히 있어도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렇다고 이렇게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해체한다고 하더라도, 뭐라도 해 보고 끝내야 한다.

* * *

그날 저녁, 영업이 끝난 식당에 모인 멤버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그냥 이렇게 끝낼 순 없어.”

단솔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왜인지 자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우선 내가 길성이 형을 좀 만나 볼게.”

“어디 있는 줄 알고?”

“그 형이 갈 만한 데가 거기서 거기지 뭐. 내일 나가서 좀 찾아볼게. 집에도 가 보고.”

단솔이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다른 멤버들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다들 왜 그래? 진짜 이대로 그냥 해체할 거야?”

“아니…… 뭐…….”

“형…… 우리가 생각해 봤는데. 형은 혼자 가.”

“무슨 소리야, 어딜 혼자 가.”

“형은 그래도 인지도도 좀 있고, 팬도 있는 편이잖아. 우리야 형한테 사실상 묻어갔던 거고…… 형 하나쯤 받아 줄 회사는 얼마든지 있을 거야.”

우현의 말에 멤버들이 동조하듯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러려고 그토록 애를 쓴 건 아니었는데.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무력감에 괜스레 화가 났다.

“개소리하지 마. 나 혼자서는 안 해.”

단솔은 그 길로 식당을 뛰쳐나왔다. 내일 해가 뜨면 길성을 찾을 생각이었으나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사실 그를 찾는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대로 멍하니 앉아 있다간 결국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게 분명했다.

* * *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나 며칠전에 이사했는데, 전 세입자가 다이노 소울이었음

⤷또 다이노 소울 얘기임? 여기가 알오매치 서바이벌 포탈인지 다이노 소울 포탈인지 모르겠네. 다이노 소울 포탈가서 해.

⤷아니, 있었으면 거기서 했지 ㅋㅋㅋㅋ 다이노 소울 포탈도 없음, 개망돌이라....

⤷ㅇㄴ그래서 만남? 윗댓 뭐임 나 궁금한데 쓰니야 말해 주라.

⤷아 ㅇㅋ전 세입자가 가구는 다 빼놓고, 짐은 하나도 안빼고 가서 내가 다 정리했거든. 나도 이사하느라 피곤하고 개빡쳐서 오면 개지랄 하려고 장전하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들이 바글바글 찾아온 거임. 자기들 집 내놓은지도 모르고 있었음. 키도 존나 크고 이상한 옷 같은 거 맞춰 입어서 좀 무섭기도 해서 걍 짐 밖에 있다고 알려 주고 잊어버렸는데 생각해 보니까 짐정리하면서 다이노소울 굿즈 존나 많았거든 찾아온 남자들도 여덟 명이었고, 근데 존나 우리집 반지하에 어두워서 긴가민가 한 거임. 근데 포탈 들어왔더니 단솔이 탄밤짤에 입은 옷보고 다이노소울인거 앎. 미친 사인 받을 걸ㅠㅠ

⤷헐 근데 애들 쫓겨난건가. 왜 숙소 이사했는데 말도 안 해 주고 함?

⤷이거 때문인 거 아님? [공룡 엔터, 차태영 회장과 손잡고 TYC 엔터테인먼트로 발돋움]

⤷저 차태영이 이번에 나오는 무슨 헤비메탈 걸그룹 멤버 아빠일걸? ㄹㅇ금수저라고함. 회사에 돈많아지면 다이노소울한테도 좋은 거 아님?

⤷그거 아닌듯 [공룡 엔터, 다이노소울과 계약 해지. 연습생 때부터 키워 왔으나 수익성 없다고 판단했나? 아이돌 산업의 실태]

⤷다이노 소울 아직도 정규앨범 한 장도 없는줄 처음 알았네.... 몇몇 빼고는 다들 진짜 열악한 듯.

⤷그나마 단솔이는 돈 좀 잘버는 줄 알았는데. 탄밤이 어캄 ㅠㅠㅠ천상 아이돌인데 이제 아이돌 안하려나.

⤷다른 소속사 가더라도 연기는 할듯 근데 보통 이러면 다른 멤버들이랑 다 같이 못 가니까 아이돌은 힘들지 않을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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