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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21화 (121/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21화

“쟤네 뭐야?”

“뭐가? 그냥 관광객 아니야?”

“파워레인저인가?”

“아니야. 오, 주단솔이다.”

“그게 누군데?”

“그 있잖아 알오매치 서바이벌!”

“아! 그 오메가?”

“쟤네도 시상식 갔다 온 건가?”

“아닐걸?”

하필이면 다른 아이돌 그룹 여럿이 해외 시상식을 마치고 들어오기 바로 직전에 들어온 다이노소울 멤버들은 이상한 옷차림으로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무방비하게 노출됐다.

“찌…… 찍지 마세요!”

단솔은 연신 찍지 말라고 외치며 이리저리 피해 보았지만, 도대체 길성은 어디로 간 것인지 나타나질 않았고, 스태프들은 짐을 찾으러 사라졌다.

어차피 찾을 짐도 없는 단솔과 멤버들은 결국 모든 걸 포기한 채 인천 공항 벤치에 앉아 자신들에게 온 간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들였다.

“아! 손가락 하트 한 번만 해 주세요!”

“하하…… 하하 네.”

연규와 지웅이 활짝 웃으며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하…… 이런 꼴로 공항 패션을 찍히고 싶진 않았는데. 형 아니었으면 아무도 못 알아봤을걸…….”

민재가 복화술로 단솔에게 말했다.

“미안……. 예능 같은 거 찍는 줄 알지 않을까?”

“저러고?”

민재가 턱짓으로 우현을 가리켰다. 우현은 카메라에 찍히든 말든 인천 공항 벤치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허리가 점점 내려가더니 끝내는 미끄럼틀을 타는 사람처럼 누운 자세가 되고 말았다.

단솔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자들이라도 없었더라면 영락없는 노숙자처럼 보였을 텐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다이노소울과 30분 차이로 들어온 다른 아이돌들 덕분에 잠깐의 스포트라이트는 금방 사그라졌다.

“어! 저거 제우스 아냐?”

“E 게이트에 센텀 왔대요!”

“횡단보도에 커넥티드!”

단솔이 아무리 찍지 말라고 해도 달라붙어 손 하트를 해 달라 볼 하트를 해 달라 요구하던 기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단솔은 혹시나 인파에 둘러싸인 제우스가 자신을 볼까 봐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고개 숙인 단솔의 뒷덜미가 하얗게 드러났다. 아프리카 햇볕에 타 버린 목 위와 옷에 가려져 여전히 뽀얀 살결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 드러났다.

* * *

<알오매치 서바이벌 in 아일랜드 포털>

(오늘 입국한 우리 아이돌 상태.jpg)

⤷와씨 입국한 아이돌이라길래 당연히 태오나올줄ㅋㅋㅋ솔이 왜 탄밤됐어

⤷ㅋㅋㅋㅋㅋㅋㅋ진짜 그말듣고보니까 군밤같음ㅠㅠㅠ

⤷옷은 또 저게 뭐임? 나만 모르게 새로 예능찍나 근데 옆에 누구임 다이노 소울임? 기럭지봐

⤷맞는 듯 ㅋㅋㅋㅋ다들 아이러브 코리아 맞춰입었어 졸귀 ㅋㅋㅋ

⤷알오매치 끝나고 관심 없으니까 별 어그로를 다 끄는 듯

⤷애초에 끼가 없는데 뜨려고 발악하니까 곱게 안보임

⤷끼가 없긴 왜 없어 알오매치 보고는 하는 소리임? 가만히 있어도 도화살오지는 애한테

⤷도화살 오지는 연예인이 공항에서 팬 한 명도 없이 널브러져 있음? 얼굴도 탄밤 같은 게 길거리 널브러져 있는 애들도 저것보다는 잘생김

⤷윗댓 개어이없네, 도대체 어느 길거리에 저런애가 널브러져 있음? 나도 가보자 ㅅㅂ노랑색 아이러브코리아 티셔츠 입고 저 정도면 선방한 거지

근데 우리 마지막회 언제하냐 설마 단솔이 탄밤짤이 마지막회 스포는 아니겠지?

⤷ㄴㄴ아님 마지막회 촬영은 이미 끝났는데 youdo현 때문에 못나오고 있는 거고, 다이노 소울은 무슨 다큐멘터리찍으러 갔다함.

⤷왜케 잘알앜ㅋㅋㅋㅋ

⤷알오매치로 주리더 입덕해서 다이노소울까지 파고 있음 다이노소울 후회공돼서 초창기 굿즈 찾아다니는 중임 너네는 진짜 제발 늦게 입덕하고 후회하지 마라 꺼진 아이돌도 다시보자 ㅠㅠ

* * *

길성은 끝끝내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 단솔과 멤버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기자들이 철수할 때까지도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려 봤지만, 길성은 오늘따라 더욱 연락이 되질 않았다. 스태프들이 공항을 떠나기 전 빌려준 방송국 바람막이와 패딩이 아니었다면, 창피해서 집에도 오지 못할 뻔했다.

그들은 공항 철도와 지하철 그리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탄 끝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성이 형 집에 무슨 일 있나? 회사에 전화해 볼까?”

“하지 마. 괜히 전화했는데 형이 땡땡이친 거면 어떡해.”

우현의 걱정스러운 말에 단솔이 답했다. 단솔 역시 길성이 걱정돼 계속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늦은 적은 있어도 아예 안 온 적은 없었으니까 걱정돼서 그러지.”

“이따 저녁까지 연락 안 되면 그때 회사에 물어보자.”

우현을 달랜 단솔이 서둘러 지하로 내려가 숙소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아…… 너무 힘들다. 배고파.”

“형! 빨리 문 열어! 나 화장실!”

삑삑삑삑.

삐삐삐―.

“어? 왜 이러지…….”

배고프다며 보채는 동생들 성화에 찬장에 라면이 몇 개나 남아 있었는지 생각하던 단솔의 상념을 깬 것은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시끄러운 알림 소리였다.

“아아! 빨리!”

삑삑삑삑.

삐삐삐―.

이게 맞는데 무슨 일이지. 화장실이 급하다는 멤버들의 재촉에도 천천히 하나하나 꾹꾹 비밀번호를 눌러 봤지만, 숙소의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철커덕.

바로 그때, 숙소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 씹. 자는데 왜 자꾸 남의 집 비밀번호를 눌러요?”

남의 집이라니. 단솔은 제가 피로한 탓에 층을 잘못 찾았거나 건물을 잘못 들어선 건 아닌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현관문에 덕지덕지 붙은 공룡 스티커와 연규와 민재가 장난치다가 부딪혀 찌그러진 자국이 현관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남의 집이라뇨. 여긴 저희…….”

“아, 그쪽들이에요? 전 세입자?”

“전 세입자라뇨. 저흰 집 내놓은 적 없어요!”

방금까지 자다 일어난 듯한 사람은 자꾸만 다이노소울의 숙소를 자신의 집이라고 주장했다. 신종 스토커는 아닐까, 단솔이 잔뜩 경계하던 그때, 우현이 숙소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았다.

남루한 구조는 그대로였지만, 이전에 비해 많이 휑한 느낌이었다. 투 룸 가득 차 있어야 할 다이노소울 멤버들의 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우리 물건 다 어디 있어. 여기 있던 물건 다 어디 갔어요?”

“아이 씨, 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요? 난 정당하게 여기 명의자랑 계약하고 들어왔어요.”

여자가 현관에 못 박힌 듯 서 있는 우현을 밀어 보았지만, 우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알량한 투룸의 주인은 다이노소울의 소속사 대표였다.

매번 대출 이자가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앓는 소리를 하는 통에 멤버들이 수입에서 월세를 까면서 살고 있던 집이었다.

정규 앨범을 내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 이 상황에 갑자기 숙소를 옮겨 줄 리도 없었다. 다이노소울이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사이 이런 일을 꾸민 걸 보면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짐은 저기 뒀으니까 가져가요. 정리하느라 팔 빠지는 줄 알았네.”

새로운 세입자는 지하 방 현관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계단 밑 공간을 가리켰다. 삼각형으로 비어 있는 공간 한가득 캐리어가 쌓여 있었다. 모두 멤버들이 처음 숙소에 들어올 때 가져온 캐리어들이었다.

쾅.

여자가 건물 계단이 울리도록 큰 소리를 내며 문을 쾅 닫았다. 단솔은 그 소리가 마치 제 뒤통수를 해머로 가격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형…… 뭔가…… 잘못된 거 맞지? 길성이 형 전화 안 되는 것도 수상하고.”

“아이 씨발! 우리 정규 내 준다며! 이것들 야반도주한 거 아니야? 그럼 계약서는!”

흥분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단솔이 우선 캐리어를 집어 들었다.

“형, 그거 왜 꺼내. 너 진짜 숙소 나가면 갈 데도 없잖아!”

그 손을 말린 것은 우현이었다. 단솔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현의 말대로 본가가 있는 멤버들과 달리 저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단솔이 캐리어를 꺼낸 건 어딘가로 가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계약서 있는지 찾아봐.”

단솔이 회귀 전 삶을 통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계약서를 잘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솔의 말에 다른 멤버들 역시 정신이 번쩍 든 사람들처럼 캐리어를 열어 계약서를 찾기 시작했다. 남의 손을 타서 싼 가방인 만큼 서로 주인이 다른 물건들이 뒤엉켜 엉망진창으로 짐이 튀어나왔다.

“찾았다!”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날만 해도, 우현이 잘 챙겨 놓은 계약서가 잔뜩 구겨진 채 민재의 캐리어에서 튀어나왔다.

단솔은 다시 한번 계약서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출국 전과 똑같이 다이노소울에게 불리한 내용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혹시 제가 오해한 걸까. 길성이나 대표를 만나지 않는 이상 지금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단솔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길성이었다. 단솔은 전화를 받자마자 빽 소리를 질렀다.

“형! 어떻게 된 거야!”

―어…… 단솔아. 한국 들어왔어?

“당연히 들어왔지! 형! 도대체 어디야! 어디서 뭐 하고 있어! 우리 숙소 왔는데 지금……!”

―그…… 나 대표님한테 잘렸어. 이제 너희 매니저 아니야. 그러니까…… 앞으론 나한테 이렇게 전화하지 마. 전화해도 못 가.

“뭐? 형! 형!”

뚝.

단솔의 외침에도 길성은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다시금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차가운 기계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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