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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19화 (119/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19화

    제발, 제발, 제발.

    거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내내 지수는 중얼거렸다. 성인식은 내일이니 오늘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최 PD의 말에도 지수는 왠지 불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맞아떨어졌다. 지수가 차에서 내렸을 때, 단솔은 모란의 어깨에 축 늘어진 채 매달려 있었다.

    “저게 뭐야?”

    “저 새끼가 모란인지 뭔지 하는 그 자식이에요?”

    “네……. 단솔 씨…….”

    지수는 그 순간 온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힘없이 늘어진 단솔의 모습에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만 아니길 빌었다.

    다행히 단솔과 가까워졌을 때, 들숨 날숨으로 움직이는 상체와 버둥거리는 팔다리를 확인하고서야 지수는 모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보니 단솔이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던 건 팔다리가 나무줄기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지수를 보자마자, 모란은 단솔을 내려놓고 뭐라 뭐라 말을 했다.

    [당신 누구야? 의사야? 얘 좀 말려 봐! 너무 이상해!]

    퍽.

    하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리 없는 지수는 일단 주먹을 날렸다. 그를 말릴 만한 사람은 최 PD와 다른 스태프 몇 명뿐이었지만, 그들은 단솔의 팔다리에 묶인 매듭을 풀기에 바빴다.

    [왜 나를 때려! 미친 건 쟤라고! 안 돼! 풀지 마! 풀지 마!]

    “이 새끼가!”

    지수는 벌떡 일어나 단솔에게 가려는 모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가 모래밭에 처박힌 사이, 단솔을 묶고 있던 매듭이 모두 풀렸다.

    마치 봉인 해제가 된 듯, 단솔이 갑자기 그 자리에서 점프를 하며 일어났다. 마치 음악 방송에서 리프트를 타고 등장한 아이돌 같았다.

    “흐어…… 여기까지 와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무대다 무대!”

    눈이 완전히 풀려 이지를 잃은 단솔이 마을 한가운데로 가더니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어찌나 격하게 추는지 몸이 부서질 것처럼 느껴졌다.

    지수는 단솔을 처음 봤던 날을 떠올렸다.

    “쟤…… 쟤 왜 저래……?”

    그때까지도 모래 바닥에 처박혀 있던 모란이 멍하니 서 있는 지수에게 뭐라 뭐라 소리를 질렀다. 지수에게 얻어맞은 것이 꽤 아팠던 모양인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는 빈 병 하나를 가리켰다.

    “저거? 저게 뭔데! 술이라도 마신 건가…….”

    모란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수줍음이 많은 하쿠카누족의 특성상 대대로 관례를 치르기 전 마시는 약에는 각성제와 환각제 성분이 들어가 있었다. 천연 약초로 만들었으나, 별다른 가공을 거치지 않았기에 그 약효는 실로 엄청났다.

    평소엔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던 사람을 달변가로 만들어 주고, 부끄럽고 수줍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성분이었다.

    문제는 다이노소울에서 그나마 얌전한 축에 속하는 단솔 역시 아이돌이라는 것이었다. 끼를 숨기고 있었을 뿐이지 이미 약물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무반주 댄스가 가능한 성향의 단솔이었다.

    “자, 이제 불 위를 걸어 보겠습니다.”

    “어어! 안 돼!”

    실컷 춤을 추다 그것도 재미가 없었는지 단솔은 불을 피워 놓은 돌 위를 걸어가려고 했다. 급작스러운 차력 쇼에 지수가 단솔의 허리를 잡아챘다.

    “어! 지수 형?”

    “너 괜찮아? 정신이 들어?”

    “지수 형이랑 되게 닮으셨네…… 이제 막 헛것이 다 보이나 봐요. ……형 진짜 미워요.”

    “어어…… 그래…… 미안해.”

    단솔은 여전히 꿈속을 거니는 모양이었다. 지수가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단솔을 토닥거리고 있을 때, 멀리서 사냥을 끝내고 돌아온 부족민들과 다른 멤버들이 보였다.

    모란과 함께 가지 않아서인지, 사냥감을 하나도 잡지 못하고 돌아온 그들이었다.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란 민재가 지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 한지수다!”

    “와…… 내가 배가 고파서 헛게 보이나.”

    그런 민재의 손가락을 접으며 지수가 민재의 머리통에 꿀밤을 줬다.

    “내가 네 친구야? 반말하지 말랬지.”

    “아! 아! 진짜네…… 형 여기 왜 있어요?”

    지수는 턱짓으로 여전히 제게 엉겨 있는 단솔을 가리켰다.

    “이 동네에 미친 사슴이 있다 그래서 녹용 뽑아 먹으러 왔다 왜.”

    “어?”

    단솔은 그 와중에도 눈이 풀린 채 헛소리를 이어 갔다.

    “올해의 신인상은…… 축하드립니다! 다이노소울! 얘들아, 우리 축하 공연 하러 가야 해 빨리 준비해…….”

    “형! 단솔이 형! 형은 또 왜 이래…….”

    멤버들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사이, 최 PD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저……기 한지수 씨. 시동 걸어야 할 것 같은데.”

    “예? 뭐라고요?”

    “시동…… 걸어야 할 것 같다고. 하하.”

    최 PD는 웃으면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피를 흘리는 모란과 엉망이 된 마을의 화로를 시작해, 지수가 오기 전에도 한참 동안 헤집고 다닌 모양인지, 그들의 움막이 공격을 받은 것처럼 흩어져 있었다.

    모란이 뭐라고 말을 하자, 사냥을 다녀온 사람들이 활과 작살을 고쳐 쥐는 게 보였다. 아까와 달리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있던 지수가 하나, 둘, 셋. 하고 숫자를 셌다.

    따로 입을 맞추지도 않았는데 다이노소울과 최 PD를 비롯한 스태프들, 단솔을 업다시피 안고 있던 지수까지 차로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

    “쫓아온다! 쫓아온다! 형! 시동! 빨리!”

    “으아아! 씨발 저거 뭐야!”

    비 오듯 빗발치는 작살과 화살을 피해 지수가 왼쪽 오른쪽을 왔다 갔다 하며 차를 몰았다. 작은 차에 이리저리 끼어서 탄 사람들의 곡소리가 들려왔다. 그 와중에도 조수석에 탄 단솔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난장판 속에 백미러를 확인한 지수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모란이 차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제아무리 전사니 어쩌니 해도, 달리는 차를 쫓아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저…… 저…… 저거…….”

    “으아아! 형 밟아요, 밟아!”

    발목이 부러져라 액셀을 밟아 보았지만, 비포장도로에서 더 이상의 속도를 내는 건 무리였다. 모란은 차와 비슷한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으아아, 앞으로 온다 앞으로! 형 앞에!”

    끼익.

    갑작스럽게 앞으로 뛰어든 모란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차에 탄 사람들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 와중에도 지수는 오른손을 뻗어 단솔이 앞 유리창에 머리를 박지 않게 붙들었다. 헉. 허억. 모란처럼 달리기를 한 것도 아닌데 지수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거칠게 뛰었다.

    차바퀴가 마찰하며 만든 모래바람이 사라지자, 창을 들고 서 있는 모란이 나타났다.

    “저 씹 새…….”

    지수에게 얻어맞은 게 분했던 걸까. 지수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런 지수를 최 PD가 말렸다.

    “한지수 씨! 왜 내리려고 해요! 저 새끼 무기 들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아이, 씨. 우린 뭐 무기 될 만한 거 없어요?”

    “그…… 이거라도.”

    음향 스태프가 마이크 봉을 내밀었다. 털이 달린 마이크가 끝에 달려 있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안 가지고 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지수가 그걸 건네받았다.

    “그냥 내리지 말고 기다리면 가지 않을까요?”

    우현의 말에 지수가 답했다.

    “그러다 여기서 차 방전되면 우리다 뒈지는 거 알지?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나 버리고 가요.”

    지수와 눈이 마주친 최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칵.

    지수가 문을 열고 나오자, 모란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주먹부터 날리고 봤던 지수도 이제는 모란이 조금 무서워지려고 했다. 이 정도 속도면 사자를 잡았다는 말도 거짓이 아닌 듯했다.

    지수가 차에서 한 발짝씩 모란에게 다가가자, 모란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서 중얼거렸다. 마치 주문을 외는 듯한 모습에 지수가 멈칫거렸다.

    그러더니 모란이 지수에게 무언갈 내밀었다. 미심쩍은 눈초리로 서 있는 지수에게 모란은 단솔을 가리키곤 손에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갖다주라고? 단솔이?”

    [횬, 단솔이 횬 갖다줘라. 소중한 사람을 지켜 주는 목걸이다. 비록 약을 먹고 미치긴 했지만, 그는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예쁘다. 나가서 치료를 한 뒤에 제정신이 돌아오면 받아 주겠다. 단솔이 횬과 ××도 하고 ××에 가서 ××도 하고 싶다. 이 목걸이가 단솔을 지켜 줄 것이다. 난 우리 부족민을 지켜야 하니 함께 나갈 수 없다.]

    지수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단솔의 이름뿐인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가 모란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었다면 또다시 육탄전이 벌어질 뻔했다.

    모란이 내민 것은 푸른빛이 도는 구슬이 달린 목걸이였다. 원시 부족의 물건이라기에는 꽤 공들여 만든 것이 느껴졌다.

    “알았어. 전해 줄게.”

    손짓, 몸짓으로 그의 말을 겨우 알아들은 지수가 뒷걸음질로 차로 돌아갔다.

    모란은 여전히 차 앞에 서서 단솔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차에 올라탄 지수가 여전히 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을 흔드는 단솔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그제야 모란이 차 앞에서 비켜나 옆으로 몸을 물렸다. 지수가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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