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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18화 (118/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18화

    “응? 나 먹으라고? 아니 괜찮아 나 많이 먹었어! 노! 아임 풀!”

    [먹어, 체력이 있어야 나랑 ××도 하고 ××도 하지. 성인식만 끝나면 널 데리고 가서 ××에서 ××할 거야]

    “아…… 됐다는데도…… 알았어! 고마워! 땡큐! 근데 나 진짜 네 자리 안 넘봐 알지?”

    [너도 나랑 ××하고 싶다고?]

    “고맙기는 짜샤, 형은 원래 감투 이런 거 관심 없어. 네가 짱 해!”

    각자 할 말만 하는 대화 끝에 단솔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모란이 엄지와 검지를 붙여 마치 반지를 끼워 주듯 단솔의 엄지에 고리를 걸었다. 모양새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이조차 그들만의 문화라고 생각한 단솔이 활짝 미소 지어 보였다.

    깨어난 후로 단솔은 모란의 일방적인 호의를 받고 있었다. 단솔을 보면 슬금슬금 피하는 부족 사람들과 제게만 과도하게 친절한 모란을 보면서 단솔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 사람들이 날 좀 무서워하는 것 같아.”

    “뭘 보고……?”

    모란이 가져다준 고깃덩이도 겨우 들어 올린 단솔이 우현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좀 이상해. 근데 아무래도 미의 기준이 좀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 여긴 나처럼 생긴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더 강해 보이는 거 아닐까?”

    단솔은 뚱뚱할수록 미의 기준에 가깝다는 어느 부족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우현은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지만, 단솔에게는 일부러 티를 내지 않았다.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단솔에게 걱정거리를 안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한 낌새를 다른 멤버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PD님, 근데 모란 말이에요…… 단솔이 형한테 좀 너무 엉겨 붙는 것 같지 않아요?”

    연규가 조용히 최 PD에게 가서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성인식이 끝나면, 그날 바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예? 그렇게 빨리요? 아직 여기 온 지 2주밖에 안 지났어요.”

    원래는 하쿠카누족을 찾으면 한 달 정도 함께 지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최 PD는 현지 가이드가 차를 고치러 가기 전 남기고 간 말을 떠올렸다.

    ‘사자 이빨로 만든 목걸이는 아무한테나 걸어 주는 게 아니야. 인생을 함께할 반려에게 주는 물건이라고.’

    ‘에이, 저거 그냥 동네 사람들이 장난으로 걸어 준 거라던데요?’

    ‘하쿠카누족은 다른 부족들이랑 달라. 정부에서도 얘네를 어쩌지 못하는 건, 부족민들이 모란에 대한 강한 충성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 지금이야 모란이 성인식도 안 거친 어린애지만, 성인식이 지나고 나면 위험할 수도 있어.’

    ‘위험하다니요?’

    ‘하쿠카누는 성인식을 마치자마자 반려를 맞아, 첫 잠자리를 거의 3일 내내토록 가진다고.’

    ‘으어…… 그럼, 지금 단솔 씨가 반려로 끌려갈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반려도 반려지만, 모란의 첫 잠자리를 방해하는 건 금기야. 차기 족장을 지키는 것도 이들에겐 중요한 임무거든. 역적으로 간주당할 수도 있어.’

    ‘아니, 잠자리하면 다 애가 들어서나? 무슨 차기 족장 잠자리까지 지켜…….’

    ‘그러니까 3일을 내리 보내지. 내가 말했잖아, 모란은 한 번 잡은 건 놓치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성인식 전에는 이 마을을 떠나야 해. 차를 고치는 대로 데리러 올게.’

    그와 약속한 성인식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최 PD는 그냥 성인식 전에 촬영을 끝내고 걸어서라도 하쿠카누족을 벗어날까 생각했다. 하지만 사방은 어떤 부족, 어떤 동물에게 습격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평야였다.

    게다가 지금은 모란이 단솔에게 꽤 노골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간다고 하더라도 순순히 보내 주려고 할지가 의문이었다.

    하쿠카누는 사자도 달리기로 따라잡는 전사의 부족이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든 VJ와 운동 부족의 스태프들, 영양실조 수준의 아이돌 8명……. 쪽수로도 전투력으로도 승산이 없어 보였다.

    최 PD는 지난밤 일찍이 이 부족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베일에 싸인 하쿠카누의 성인식이 궁금하긴 했지만, 출연자의 안전을 걸고 하는 도박은 더 이상 금물이었다.

    * * *

    하지만, 그들이 예정보다 더 일찍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한 듯, 모란의 성인식은 하루 일찍 시작되었다. 당장 내일 떠날 채비를 하기 위해 멤버들과 최 PD가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단솔 흐엉.”

    “흐엉 아니고 형!”

    “횬?”

    “형!”

    “어…… 현?”

    “됐다, 됐어. 이건 또 뭐야. 나 먹으라고?”

    멤버들이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함께 사냥을 나갔고, 최 PD가 현지 가이드와 연락을 해 고장 난 차 대신 다른 차량을 구하러 나간 참이었다.

    움집에서 혼자 쉬고 있던 단솔에게 모란이 찾아왔다. 단솔이 틈틈이 가르친 덕에 그는 이제 제법 형 소리를 그럴듯하게 할 줄 알았다.

    “오, 과일 주스네. 근데 너는 왜 다른 애들이랑 사냥을 안 나갔지? 모란이라며, 모란! 전사!”

    [얘는 왜 이렇게 수다스럽지? 빨리 마셔. 그래야 성인식을 하고 빨리 너랑 ××도 하고 ×××도 하지.]

    “말이 안 통하니까 답답해 죽겠네. 일단 잘 마실게!”

    최 PD에게 경고를 했던 현지 가이드도 모르는 사실을 단솔이 알 턱이 없었다.

    하쿠카누에게는 20살이 되는 해에 5번째 보름달이 뜨면 성인식을 한다는 오래된 전통보다 모란의 의사가 더 중요했다.

    이제 막 19살을 넘긴 혈기 왕성한 모란은 제 반려가 될 외지인에게 푹 빠져 당장이라도 첫날밤을 치르고 싶어 했다.

    “이거 뭐로 만든 거야? 맛은 있는데…… 왜 이렇게 어지럽지…… 이거 혹시 술이야? 알코올? 엉?”

    단순히 술이라기엔 너무 기묘한 감각이었다. 혼몽한 와중에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처럼 눈앞이 환해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하쿠카누족이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마시는 일종의 각성제. 주술사인 마누 아줌마가 만든 약이었다.

    “아…… 이거 뭐야 이상한데.”

    단솔은 비틀거리는 걸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 단솔을 모란이 들어 올려 어깨에 짊어졌다.

    [어딜 가, 그렇게 걷다간 넘어진다고. 새 신부한테 상처라도 나면 안 되지.]

    “어허! 이눔 시꺄. 이거 내려! 어? 형아 화낸다? 내려! 안 내려?”

    단솔은 힘이 다 빠진 주먹으로 모란의 어깨를 퉁퉁 치며 반항해 보았지만, 모란에겐 그저 간지러운 앙탈일 뿐이었다.

    [크큭.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꽤 앙칼지군. 볼수록 마음에 들어.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내 친히 너를 업고 한 바퀴 돌아 주지. 앞으론 부족민들 누구도 널 외지인이라고 얕보지 못할 거야. 내 반려가 될 사람이니까.]

    “이눔 시끼! 빨리 내려 줘야지! 뭘 쭝얼쭝얼해…….”

    약에 취한 단솔이 말해 보아도 당연히 그는 듣질 않았다.

    사실, 모란이 지금을 단솔을 건드릴 타이밍으로 고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사냥꾼은 아무 때나 사냥을 하지 않는다. 적이 방심한 틈을 찾을 때까지 때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하쿠카누의 사냥법이었다.

    * * *

    “한지수 씨.”

    “아닌데요.”

    “다 봤어요. 그냥 나와요.”

    하루를 꼬박 달려 그나마 문명이 닿은 또 다른 부족 마을에 도착한 최 PD는 그곳에 오자마자 지수를 찾았다. 지수가 촬영 팀의 뒤를 따라붙은 건 진작에 눈치를 챘다.

    따라오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를 했지만, 이 못 말리는 사생팬은 기어코 이 머나먼 탄자니아까지 단솔을 쫓아왔다.

    “나 진짜 그냥 여행 온 거예요.”

    지수의 궁색한 변명에 최 PD는 지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수는 혹시나 저 때문에 단솔이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연신 최 PD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여행 온 김에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한지수 특집은 안 돼요.”

    “그건 우리도 안 바라요. 한지수 씨처럼 말 안 듣는 출연자 뭐가 좋다고. 됐고, 차 좀 빌립시다. 거절은 거절할게요. 한지수 씨가 그렇게 좋아하는 주단솔 씨 안전에 관련된 건이라 좀 급해요.”

    최 PD의 시선이 지수가 타고 온 오프로드용 지프에 꽂혔다. 먼지가 잔뜩 묻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아프리카는 물론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차종이었다. 저 정도면 하쿠카누를 벗어나기에 최적이었다.

    “단솔이가 또 어디 아파요? 아니 그러니까 쓰러진 사람을 왜.”

    “놀러 오셨다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따라온 거예요?”

    지수는 저도 모르게 말실수를 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단솔의 안위였다.

    “따라온 건 아니고 동선이 겹쳤다고 칩시다. 스톤 타운에선 정말 나 혼자 다녔어요.”

    정말 이렇게 졸졸 따라다닐 계획은 없었다. 그저 우연이라도 스쳐 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 제가 생각해도 너무 음흉하고 변태 같은 행동이라 지수는 궁색한 변명을 덧붙였다.

    단솔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도 지수였다. 파리한 얼굴로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 단솔을 본 뒤로 지수는 촬영 팀에게 방해가 안 되는 거리에서 줄곧 이들의 뒤를 밟아 왔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건 한국 가서 따질게요. 난 차만 빌리면 돼요. 빨리 안 가면 하쿠카누 차기 족장한테 단솔 씨 시집갈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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