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17화 (117/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17화

    푸스스.

    “아……! 또 멈췄어?”

    “와…… 그냥 이 정도면 차를 버리고 걸어가는 게 빠를 거 같은데.”

    “PD님 이거 차 끌고 가는 게 저희 미션, 이런 거예요? 이거 깜짝 카메라 아니야?”

    벌써 며칠째 아프리카 평야를 달리고 있는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경유를 해서 탄자니아로 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스톤 타운에 있을 때만 해도 상점이나 식당이 있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하쿠카누족을 찾기 위해 나선 일정부터 고생길이 시작이었다.

    주변엔 평야와 바위밖에 보이지 않았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몇 번이고 멈추는 차와 추위와 더위, 그리고 배고픔과 목마름이 멤버들의 한계를 시험하곤 했다.

    게다가 언제 어디서 야생 동물의 습격을 받을지도 몰랐기에, 야간엔 차 안에서 모두가 구겨져 자느라 허리를 펴고 편히 잠들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형! 형! 정신 차려!”

    “어? 어!”

    “PD님! 단솔이 형 이상해요!”

    “어…… 아니야…… 나 괜찮아…… 그냥 좀 졸려서 그래.”

    단솔은 아까부터 몸이 축 늘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제주도도 안 가 본 단솔은 난생처음 먹어 보는 아프리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스톤 타운에서도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했다. 게다가 제작진이 챙겨 온 생수들조차, 차를 미느라 고생한 멤버들에게 몇 번 양보하고 나니 동이 나 버렸다.

    “차…… 차 밀어야 해…….”

    “형! 그냥 타고 있어! 우리끼리 밀게.”

    “아니…… 아니야…… 나도…….”

    단솔은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땅에 발을 채 딛기도 전에 단솔의 상체가 우현이 있는 쪽으로 쓰러져 내렸다.

    “단솔이 형!”

    단솔은 눈앞이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쓰러진 단솔의 눈앞에 모래바람만 가득한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그 황량한 풍경 사이로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누구지.

    지수 형……?

    아닌 걸 알면서도. 단솔의 뒤집힌 시야에는 그가 보였다.

    * * *

    “아으…… 머리야. 나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단솔이 정신을 차린 곳은 나무를 엮어 만든 움막이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다행히 해가 지지 않은 걸 보면, 금방 눈을 뜬 모양이다.

    “애들은 다 어디 간 거지…….”

    근처 마을에 신세라도 진 건가 싶어 단솔이 움막 밖으로 나왔을 때, 원시 부족 의상을 입고 고기를 뜯고 있는 멤버들이 보였다.

    얼굴엔 색색의 원료를 칠하고 머리엔 장신구까지 달고 있는 모습이 피부색만 아니면 이곳 주민으로 오해하기 충분할 정도였다.

    “너희…… 뭐 해?”

    “어! 솔이 형 일어났다!”

    “형! 괜찮아?”

    어디선가 고소한 고기 냄새가 솔솔 풍겼다. 민재는 아예 얼굴에 검댕을 잔뜩 묻힌 채로 먹고 있었다. 단솔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검댕이 잔뜩 묻은 민재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뭘 이렇게 묻히고 먹어……? 나도 배고파…….”

    “배고플 만도 하지, 이틀 동안 누워만 있었는데.”

    “어?”

    쓰러진 뒤로 몇 시간밖에 안 지난 줄 알았는데, 이틀이나 누워 있었다니. 단솔은 멀쩡해진 몸에 다시 현기증이 이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여기 있는 마누 아줌마 아니었으면 형 죽었을걸. 차는 고장 났지, 물은 없지.”

    우현이 가리킨 쪽에는 마누 아줌마로 추정되는 여인이 서 있었다. 딱 봐도 장신구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화려한 게 남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아, 마누 아줌마는 하쿠카누족 주술사야. 약초 구하러 왔다가 우리랑 마주쳤어.”

    “하쿠…… 마누……? 여기가 그럼…….”

    “맞아요, 하쿠카누족. 우리가 길을 잘 찾아왔죠.”

    또 다른 움막에서 나온 최 PD가 단솔에게 옷을 건넸다. 하쿠카누족의 상징인 빨간 천이었다. 빨간 천을 드레스처럼 두르고 허리를 묶은 사람들은 각자 취향껏 목걸이나 귀걸이를 걸고 다녔다.

    자신이 잡은 동물의 뼈로 만든 장신구를 달고 다니는 전사의 부족. 오로지 사자를 잡은 사람만이 족장이 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그들은 생각보다 순박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죠? 저기로 들어가면 옷 입는 거 도와주실 거예요.”

    “어…… 네…….”

    단솔은 얼이 빠진 채로 최 PD가 열어 주는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다른 부족민들이 있었는데, 다들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땋거나, 옷매무새를 고치고 있었다.

    단솔이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자기들끼리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언어를 모르니 단솔은 멍하니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오메가인가, 허리가 얇네. 매듭을 만들면 예쁘겠어.]

    “으앗! 왜 그러세요오…….”

    다리 사이를 툭툭 쳐 보곤, 허리를 매만지는 손길에 단솔이 만류했지만, 그들 역시 단솔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피부가 하얗네. 겁먹었나 봐, 귀엽다.]

    [쟤네 중에 제일 약해 보여. 막냇동생인가. 귀여워 사위 삼을까.]

    [그러지 마, 모란이 눈독 들이고 있어.]

    [모란이? 정말 그 모란이 외지인에게 관심을 가졌다구?]

    [그래! 이번 성인식이 끝나면 제 부인으로 삼겠다고 했어.]

    [어휴…… 그럼 괜히 불똥 튈 수도 있으니까 우린 잠자코 있어야겠다. 아! 그럼 사자 이빨 목걸이를 걸어 줄까? 모란의 표식으로.]

    [그게 좋겠다! 다른 놈팡이들이 괜히 건드렸다가 피를 보면 안 되니까.]

    “모…… 모란? 뭐라는 거야…….”

    거침없이 단솔의 옷을 벗기고 천을 둘러 매무새를 다듬어 주는 부족민들은 반복해서 ‘모란’을 언급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단솔은 그저 눈이 마주치는 부족민을 향해 헤헤하고 웃을 뿐이었다.

    대충 옷을 다 입은 것 같았는데,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인이 단솔에게 손짓했다.

    그녀를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가자, 벽에 걸린 커다란 목걸이가 보였다. 흰색 돌멩이와 빛나는 보석을 엮어 만든 목걸이는 척 보기에도 크고 무거워 보였다.

    여인은 벽에서 목걸이를 떼어 낸 뒤, 단솔의 목에 걸어 주었다.

    “응? 이거? 이거 제가 해도 돼요? 아니, 노! 암 오케이! 노!”

    단솔이 이리저리 손을 저어 보았지만, 그녀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계속 단솔의 목에 몇 바퀴씩 둘러 목걸이를 걸어 줄 뿐이었다.

    “뭐야 이거…… 비싼 건데 괜히 내가 걸었다가 화살 같은 거 맞는 거 아니겠지?”

    밖으로 나간 단솔은 나가자마자 최 PD를 찾았다.

    “PD님!”

    “오…… 단솔 씨, 우리 중에 제일 화려하게 꾸며 주셨네요? 얼른 앉아서 먹어요. 배고플 텐데.”

    “아…… 네…… 근데 혹시 모란이 뭐예요? 이 사람들 말로.”

    “모란? 우리 말로 하면 특급 전사. 사냥을 제일 잘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인데 한 세대에 한 명씩만 있대요.”

    “오…….”

    최 PD가 뜬금없이 그런 걸 왜 묻냐는 듯이 물었다.

    “그건 왜요?”

    “아무래도…… 여기 사람들이 절…… 특급 전사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히힛. 괜히 뿌듯한 웃음을 지은 단솔이 최 PD가 건넨 고깃덩이를 받아 물었다. 약간의 고기 비린내가 나긴 했지만, 단솔은 오히려 씩씩하게 뜯어 먹었다.

    마치 족장이라도 된 것 같은 그의 기세에 최 PD가 오히려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단솔이 무언갈 오해하고 있다는 걸 최 PD는 알아챘지만, 이제야 탈수 증세를 이겨 내고 일어난 단솔에게는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많이 먹어요…….”

    모란이 일부러 새벽부터 잡은 거니까…….

    최 PD는 뒷말을 삼켰다. 단솔은 아직 거울을 보지 못한 듯했다. 하쿠카누족의 오메가들은 단솔의 볼에 핑크색으로 부족의 상징을 일직선으로 그린 뒤 붉은 입술을 찍어 주었다.

    미의 기준은 국경을 초월한다고 했던가. 이 먼 곳에서도 단솔의 미모가 빛을 발하는 모양이었다.

    “형!”

    “단솔!”

    그때, 모란과 함께 사냥을 나갔던 다른 멤버들이 돌아왔다. 단솔을 본 제이콥과 연규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형! 일어났네? 괜찮아? 이제 안 어지러워?”

    “응…… 난 괜찮아.”

    “오 일어나자마자 고기 먹고 있네.”

    “어…… 이거 맛있어. 무슨 고기야?”

    “뱀.”

    “뭐?”

    단솔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렸다. 길쭉한 모양새에 그저 손질해 놓은 고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어어, 떨어진다. 흘리면 안 돼.”

    제이콥이 단솔의 손에서 떨어지려는 뱀 고기를 잡아서 다시 살짝 벌어진 단솔의 입에 넣어 주었다.

    “식량은 소중하다, 단솔. 떨어트리면 안 돼.”

    “괜찮아. 우리 오늘 또 많이 잡아 왔어. 저기 모란이 따라서. 나이는 19살밖에 안 됐는데, 여기 차기 족장이래. 사냥도 엄청 잘함.”

    아직 뱀 고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단솔이 연규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을 가진 미남자가 단솔을 향해 웃었다.

    조각조각 나뉜 탄탄한 근육질 위로 빨간 천, 그리고 단솔과 똑같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저거 목걸이 보이지? 쟤가 잡은 사자 이빨로 만든 거래. 와, 어떻게 사람이 사자를 잡냐. 사자한테 잡아먹히면 몰라도. 쟤는 진짜 전사야. 한번 물면 안 놓쳐.”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