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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16화 (116/150)
  •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16화

    “일단 우리는 두바이를 경유해서 다르에스살람으로 갈 거고, 거기서.”

    똑똑.

    한참 최 PD가 다이노소울 멤버들을 앉혀 놓고 촬영 일정을 논의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 회의였지, 일방적으로 최 PD가 설명을 하면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방송국도 아직 낯선 이들에게 시사 교양국 회의실은 꼭 취조실에 끌려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들어와. 뭐야?”

    “PD님…… 저 이거…… 다이노소울 팬들이 준비한 간식…… 이래요…… 하하.”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디저트와 음료가 조연출이 연 문으로 줄줄이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목석처럼 앉아 최 PD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멤버들이 웅성거렸다.

    “우리가 팬이 있었나……?”

    “그…… 어떤…… 아저씨가…… 아니…… 형인가…….”

    조연출이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단솔이 형 팬 아니야?”

    “나도 팬 없는데…….”

    최 PD가 탕비실에서 가져왔던 초코파이나, 오렌지 주스를 새삼 초라하게 만드는 간식들이었다. 왜인지 바깥을 자꾸 바라보며 눈치를 주는 조연출에 최 PD가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야…… 아이돌이랑 작업하니까…… 역시 좋네요. 하하. 먼저 먹고 있어요, 난 밖에 볼일이 좀 생겨서.”

    최 PD가 회의실 밖으로 나와 조연출에게 물었다.

    “뭔데, 갑자기 웬 간식?”

    “그게…… 한지수 씨가 하도 똥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뭐? 한지수?”

    시사 교양국 복도에는 그녀가 나오는 걸 보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검은 인영이 있었다. 최 PD는 급하게 달려 지수로 추정되는 남자를 붙잡았다.

    “한지수 씨!”

    “하하하. 들켰네.”

    지수는 마치 총이라도 든 사람을 만난 것처럼 양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무슨 마니또예요? 아니면 키다리 아저씨? 아무리 그런 거에 심취했어도 남의 직장까지 와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제가 최 PD님 팬이라서 먹고 힘내시라고.”

    “지랄. 아깐 다이노소울 팬이라면서요. 아주 이러다 아프리카까지 따라올 기세네.”

    “가도 되나?”

    “한번 따라와 보시든가요. 그 길로 다이노소울 캐스팅 전면 취소하고 한지수 특집으로 만들어 드릴 테니까.”

    최 PD가 제 이름을 언급하자 지수가 움찔하며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더 깊게 썼다.

    “아! 안 가요! 안 가! 안 갈 테니까, 목소리 좀 낮춰요……!”

    “부끄러워요? 체면이라는 게 있어요? 한지수 씨한테 그런 게 있기나 해요? 단솔 씨한테 미련이 남았으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보시든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진짜? 번호 몰라서 그래요? 번호 알려 줘?”

    최 PD가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지수가 금세 그 손을 말렸다.

    “아니, 아니. 됐어요. 아직 좀 자신이 없어서……. 체면은 없어도 염치는 있어요.”

    카메라 수십 대가 돌아가는 곳에서 단솔에게 잔인하게 거절을 말한 저였다. 이제 와서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우스울지, 지수도 알고 있었다.

    “그 염치는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발휘되나 보죠?”

    “안 좋아하는 사람까지 신경 쓸 필요 있나. 진짜 그냥 팬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뭘 그렇게 오버해요. 돈 쓰고도 욕먹네.”

    최 PD가 지수를 세상 한심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무슨 고등학생들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밀고 당기기도 이만하면 민폐였다.

    “그럼 전 들어갑니다, 주단솔 사생팬님? 한 번만 더 내 일터에서 방해하면, 신고할 거예요. 그리 알아요.”

    “그, 저기…….”

    냉정하게 돌아서는 최 PD의 옷소매를 지수가 살포시 붙잡았다.

    “아! 뭐요! 뭐!”

    “솔이 고생시키지 마요…….”

    “이거 원래 고생하러 가는 프로그램이에요.”

    최 PD가 문 앞에 붙은 프로그램 이름을 가리켰다.

    [창사 100주년 특별 기획 원시 인류 대탐험]

    * * *

    “무슨 경유를 이렇게 많이 해…… 가는 데만 이틀도 넘게 걸려, 형아.”

    “난 오히려 좋아 해외여행 한 번도 안 가 봤는데 두바이도 가고 탄자니아도 가고. 여행 유튜버 된 거 같아.”

    단솔을 포함해, 여권도 처음 만들어 보는 멤버가 다수였다. 비자를 받고 짐을 챙기고 어떻게 시간이 흐른 건지 바쁜 나날이 지나갔다.

    벌써 내일이면 출국해야 하는데 단솔은 설레서 들뜬 멤버들과 달리 걱정이 앞섰다.

    “가서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말고. 우리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일도 그 사람들한테는 예의가 아닐 수도 있어. 현지 가이드님 말 잘 따르고, 웬만하면 제이콥 옆에 붙어 있어.”

    그나마 영어가 되는 멤버가 있다는 게 위안이었다.

    “형은 왜 이렇게 걱정이 많아. 다녀오면 정규 앨범도 내고, 우리 이제 좋은 일밖에 안 남았어.”

    “그러게……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단솔은 낮에 길성이 주고 간 계약서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우현은 그런 단솔이 들고 있는 계약서를 빼앗아 들었다.

    “그거 뭘 자꾸 들여다봐. 형,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자. 우리가 간다는 부족 이름이 뭐였지?”

    “하쿠카누족……? 검색해도 안 나와. 도대체 이런 부족을 어디서 찾은 거야…….”

    단솔은 최 PD가 미팅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옷 입고, 사진 찍어 주고 돈 받는 부족들이랑은 차원이 달라요. 하쿠카누는 정부에서 정착시키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실패했어요. 여기저기 유랑하며 떠도는 부족이라 아예 구경도 못 하고 돌아올 수도 있어요. 이도 저도 안 돼서 분량 못 채우면 탄자니아 시내에서 춤이라도 춰야 하는데. 진짜 자신 있어요?’

    ‘PD님 프레디 머큐리도 탄자니아 출신이래요. 저희는 자신 있습니다!’

    민재도 최 PD 앞에선 잔뜩 너스레를 떨어 놓곤 걱정은 됐던 모양이었다. 초등학생들이 읽는 아프리카 만화책을 빌려 와 놓곤 두 페이지 이상을 못 읽고 잠들어 있었다.

    “최 PD도 어차피 잘 모르는 거 같던데? 여기서 아무리 공부해 봤자 가 보면 또 달라. 푹신한 바닥에서 잘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자고, 먹을 수 있을 때 먹는 게 상책이야. 난 들어간다?”

    단솔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민재가 쌓아 둔 책을 집어 들자, 우현이 그마저도 빼앗은 뒤 한마디 남기고 가 버렸다.

    “그래…… 일찍 자.”

    한숨을 푹 내쉰 단솔은 우현을 들여보내고 거실에 혼자 남았다. 불빛이라곤 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전부였다.

    방송이 끝난 지 한 달이나 지났지만, 단솔은 왠지 이 휴식이 끝나면 또다시 춘몽각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이잉.

    그때, 단솔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단솔 씨, 나예요. 혹시 자고 있었어요?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그…… 소식 들었어요. 최 PD랑 같이 일한다고.

    “아…….”

    최 PD의 좌천 파티를 한다고 했었나.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게 바보 같았다.

    ―웬만하면 단솔 씨 연락 기다리려고 했는데, 최 PD님 말 들어 보니까 내일 출국한대서요.

    “다녀오면…… 연락하려고 했어요.”

    ―진짜요?

    단솔은 민혁에게도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자꾸만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았고, 돌려줄 수 없는 마음에 미안한 마음만 자꾸 커졌다. 그 와중에도 민혁과 연락이 닿고 나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기가 더 힘들었다.

    “진짜요……. 형, 저희 아프리카 다녀오면 정규 앨범 내 주신대요.”

    ―진짜요? 궁금하네. 방송국에서 자주 볼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작업하다가 내 도움 필요하면 말해요. 단솔 씨 일이면 공짜로 해 줄게요.

    “공짜는 안 되죠……! 어차피 대표님이 내는 거니까…… 다 받아도 괜찮아요…….”

    애초에 민혁처럼 비싼 프로듀서를 쓸 수 있을 리 없었지만, 단솔은 말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알았어요. 몸조심해요. 다녀오면…… 꼭 연락하고요.

    “……알겠어요.”

    ―저기…… 단솔 씨.

    “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서운해해요. 보고 싶지 않아요?

    “……연락할게요. 나중에요. 어차피 아프리카 가면…… 연락하고 싶어도 연락이 잘 안 될 것 같아서요. 다녀오면 진짜 할게요.”

    단솔은 애써 보고 싶다는 말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저라고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하지만 단솔은 아직 지수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질 않았다. 아무래도 그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것은 아직은 힘들 것 같았다.

    가끔 동네에 낯선 고급 차를 발견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웃거리는 단솔이었다.

    ―진짜죠? 그럼……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렇게 말해 줘도 괜찮아요?

    저 때문에 민혁이 난처한 입장이 될 거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한테 많이 시달린 모양이었다.

    어차피 활동을 하다 마주치면 더 이상 피할 수 없으니까, 언젠간 안부 인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약해진 단솔이 대답했다.

    “네. 갔다 오면, 진짜 연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 오래 비행해야 할 텐데 어서 자요.

    “네…… 안녕히 주무세요.”

    ―다치지 말고, 조심히 갔다 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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