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109화 (109/150)

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09화

싸늘한 분위기로 두 사람의 데이트가 마무리되는 걸 본 춘몽각의 출연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흩어졌다. 단솔 역시 무거워진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제 방으로 도망가려 할 때였다.

“단솔 씨!”

“네?”

단솔을 불러 세운 것은 태오였다. 그러고 보니, 태오는 두현 다음으로 데이트를 할 순서였다.

“저…… 저녁때 말이에요.”

올 게 왔구나 싶은 단솔이 잠자코 태오가 하는 말을 듣고 서 있었다. 어디로 가자고 하려나 생각하던 그때였다.

“데이트…… 안 하려고요.”

“네?”

처음으로 단솔과 데이트를 할 때만 해도, 신나 하던 태오였다. 혹시 그의 마음이 바뀐 게 지난번 제 행동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에 단솔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지난번 일 때문이라면…….”

“그런 거 아니에요.”

태오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평소답지 않게 할 말을 못 꺼내는 모습에 단솔의 머릿속은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너무 단솔 씨랑 데이트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네?”

“싫어하는데 질척거리는 거…… 상대방에게 내 마음 받아 달라 강요하는 거. 생각보다 훨씬 꼴불견이더라구요.”

두현을 보고 하는 이야기 같았다. 태오가 그런 사람이라는 건 아니었지만, 단솔은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어느 쪽이 됐든 간에 돌려줄 수 없는 마음은 태오에게 언제나 상처가 될 테니까.

“그래도…… 마지막인데. 괜찮겠어요?”

“왜 마지막이에요? 우리 프로그램 끝나면 안 볼 거예요? 와 단솔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었네!”

태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단솔은 그 말에 어렴풋이 웃었다. 춘몽각을 나가도 이들과 지금처럼 잘 지낼 수 있을까.

차트 1위의 제우스와 132위의 다이노소울만큼의 간극을 단솔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 *

그날 저녁, 이연과 두현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출연진은 모두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원래는 단솔과 태오가 단둘이서 할 예정이었지만, 태오가 불 맛을 내겠답시고 프라이팬에 불을 냈고, 단솔이 메인 요리를 한다는 말에 다른 사람들이 부리나케 뛰쳐나왔다.

“살치살, 키조개, 랍스터, 갈비, 전복……. 너희 도대체 무슨 요리가 하고 싶었던 건데?”

“어…… 그냥 맛있어 보이는 거 산 건데.”

“요리를 못 하니까…… 재료라도 좋아야죠.”

“말이나 못 하면.”

재료를 보는 지수의 한심하다는 눈빛에 태오와 단솔이 벌서는 어린아이들처럼 벽에 바싹 붙어 있었다.

“한지수, 옆으로 가. 너도 요리 못 하잖아.”

그런 지수를 밀치고 대수가 소맷자락을 걷어붙였다. 사실 먹을 줄만 알고 이런 식자재를 다뤄 보지 않은 건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도울게요!”

결국. 저녁 담당은 대수와 민혁이 차지하고 말았다.

하지만, 음식을 다 차려 놓고 이연과 두현이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도 그들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PD님! 데이트 아까 끝난 거 아니에요?”

“그렇기는 한데…….”

“저희 먼저 먹어요!”

“이연 씨는 오는 중이고…… 두현 씨는…….”

PD는 난처함에 눈썹 부근을 긁었다. 두 사람의 데이트가 파국으로 끝난 건 알고 있었지만, 이연과 두현이 차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두현이 오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택시를 타고 이동하겠다는 두현을 위해 택시까지 불러 줬건만, 스태프 차를 따돌리고 어디론가 빠져서 지금까지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출연자의 일탈 행위를 이들에게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PD가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태오가 배가 고프다며 난리가 났다.

“그 형들 원래 밥도 잘 안 먹어요! 특히 이연 선배는 여기 있는 풀떼기만 좀 집어 먹고 말걸요? 두현이 형도 맨날 저녁밥 먹으라 그러면 어디 가서 안 보이고…….”

“기다려. 금방 올 것 같은데.”

대수가 시계를 흘끗 보더니 말했다. 기다려. 말하는 말투가 너무 단호해서 꼭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아! 몰라요. 전 먹을 거예요. 원래 지금 이거 제 데이트 시간인 거 아시죠? 대수 형은 기다리든가 말든가. 소고기 내가 다 먹어야지.”

태오가 먼저 포크를 집어 들어 대수가 심혈을 기울여 구운 살치살을 입에 넣었다. 욕이라도 할 줄 알고 멋대로 굴었지만, 대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순간 싸늘함을 느낀 태오가 삐걱거리며 대수를 돌아보았을 때, 대수는 웃고 있었다.

“많이 컸네, 태오.”

절대 호의적인 웃음은 아니었다. 괜히 자신의 주먹을 매만지는 대수의 손에서 우두둑하며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태오와 덩달아 같이 포크나 젓가락을 들었던 다른 사람들도 살포시 다시 식기를 내려놓았다.

* * *

결국, 기다리다 못한 사람들이 식사를 한창 하고 있을 때 도착한 이연은 입맛이 없다며 그를 위해 준비해 둔 샐러드도 먹지 않고 제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생각보다 더 늦어지는 두현의 귀가에 거실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을 때였다.

“아니, 늦어도 너무 늦는 거 아니에요?”

“개인 촬영은 아니죠?”

출연자들의 물음에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PD가 털어놓았다.

“사실은 두현 씨가 중간에 사라져서요…….”

“네⁈”

“납치? 이런 거?”

깜짝 놀란 태오가 소리를 지르듯 자리에서 펄떡 일어났다. 민혁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무서운 얘기를 꺼냈다.

“같이 나가서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두현과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민혁의 말에 겁이 난 단솔이 제안했다.

“아…… 근데 찾긴 찾았대요. 그게…… 중간에 어디 가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나 봐요.”

갑작스러운 일탈 행동에 인상이 찌푸려지다가도, 아까 전 이연과의 데이트를 생각하면 그럴 법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실시간으로 집에 있는 출연자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 까였으니, 자존심 강한 두현의 입장에서는 춘몽각으로 바로 들어오기 껄끄러울 만도 했다.

“근데 좀 만취 상태라, 일단은 다들 방으로 들어가 계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PD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꽤 많이 취해서 진상을 부린 모양이었다.

최종 선택을 앞두고 또다시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뭉그적거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현 선배 가끔 좀 불쌍해요. 이연이 형 꽤 오래 좋아한 것 같던데. 평소엔 엄청 다정한 사람이 두현 선배한테만 유독 냉랭한 거 알아요?”

2층으로 같이 올라가던 단솔에게 태오가 말했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모두 짝사랑 중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엇갈릴 수가 있지.

단솔은 제가 지수를 좋아하는 마음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두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은 제 자존심을 내려놓으면서까지 임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게임이다. 먼저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쪽에게 고통의 무게가 기울어지는 아주 불공정한 게임.

“그러게요. 오늘 상처 많이 받았나 봐요. 모른 척해 줍시다.”

“그래야죠. 단솔 씨 잘 자요.”

“태오 씨두요.”

단솔은 원래 새벽에 잠자리에 들곤 했지만, 그날따라 일찍 침대에 누웠다. 깨어 있다가 괜히 두현을 마주치거나 그의 술주정을 우연이라도 듣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솔이 어렴풋이 얕은 잠에 들었을 무렵, 춘몽각을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쨍그랑―.

* * *

“꺄악!”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의 비명이 들리고 물건이 우당탕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잠에서 깨어난 단솔이 복도로 나갔을 때 저와 같은 소리를 들은 듯 태오 역시 바깥에 나와 있었다. 소리가 난 것은 알파 숙소 쪽이었다. 단솔과 태오는 다급하게 그쪽으로 향했다.

“윽, 이거 무슨 냄새야.”

그 시간까지 깨어 있던 스태프 몇 명과 지수, 민혁, 대수가 복도에 나와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맡아진 것은 날카로운 페로몬 향이었다.

오메가의 향이었지만, 너무나도 노골적인 페로몬에 알파들마저도 거부감이 들 정도의 강렬한 냄새였다. 태오가 본능적으로 코를 막았다.

같은 오메가의 공격적인 향을 갑작스레 들이마신 단솔은 토기가 밀려올 것 같아 자리에 주저앉았다.

“단솔 씨!”

“손대지 마! 솔이 데리고 나가. 여기 베타인 스태프 없어요?”

계단에서 비틀거리며 주저앉은 단솔을 본 지수가 외쳤다.

쨍그랑.

그때, 단솔의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알파의 페로몬이 복도에 가득 찼다.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이연이었다.

이연은 마치 공격당한 사람처럼 흰 셔츠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단추는 이미 다 뜯어진 후였다. 그의 손에는 어디서 가져온 건지 알 수 없는 깨어진 유리 조각이 들려 있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걸음걸음 복도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이연은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단솔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이지를 잃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단솔은 이연과 함께 단둘만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모든 게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베타 데려오라고!”

지수의 외침을 마지막으로, 단솔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