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씩이나 이 거지 같은 섬에 떨어지다니 107화
“기분이 이상하네.”
다음 데이트를 할 이연이 단솔을 고르는 바람에, 대수는 본의 아니게 단솔을 이연에게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단솔의 품에는 수족관에서 산 참치 인형이 들려 있었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묘하게 풀이 죽은 고등어 대가리를 본 대수가 반강제로 단솔에게 안겨 준 것이었다.
단솔은 괜히 민망해 참치 인형에 달린 택을 읽는 척을 했다.
인형을 사면 멸종 위기 해양 생물을 돕는 단체에 기부가 된다니. 수족관의 상술에 가까웠지만, 물고기를 본 뒤로 울적해진 기분에 약간은 위로가 되는 듯했다.
“죄송해요…….”
“네가 뭐가 죄송해. 룰이 그런걸.”
이연을 만나기로 한 곳은 유명한 미술관이었다. 차를 세운 대수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장소도 꼭 저처럼 고리타분한 데로 골랐네.”
안전벨트를 천천히 푼 단솔이 대수의 눈치를 살폈다.
“……다녀와. 집에서 기다릴게.”
두 사람의 마지막 데이트가 되겠지만, 대수는 애써 안녕이란 말을 미뤄 두는 것 같았다. 단솔은 고개를 꾸벅 숙이곤, 차에서 내렸다.
“귀여운 걸 사 줬네.”
“아……! ……네.”
차에서 내려 미술관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찰나에, 문 앞으로 이연이 단솔을 마중 나왔다. 저도 모르게 들고 온 참치 인형이 거대한 미술관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단솔은 코트 자락 안으로 참치를 숨겼다.
“참치는 좋겠네. 단솔 씨 품에 안기는 호사를 다 누리고.”
“어…….”
단솔은 이연의 장난에 고장 난 병정처럼 움직였다.
“쳇, 내가 그렇게 재미가 없나. 그거 알아요? 단솔 씨는 되게 장난 잘 치다가도 내가 말만 하면 어색해하는 거?”
이연은 남을 웃기는 데에는 소질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단솔이 유독 이연의 앞에서 웃지 못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회귀 전엔 이연이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허허, 실실 웃곤 했으니까.
유난히 과거의 기억이 많은 사람이었다. 단솔은 그 때문에 이연을 만날 때면 항상 제 마음속의 브레이크를 다시 잡아야 했다.
익숙함이라는 건 생각보다 더 위험한 감각이었으니까.
“근데…… 여긴 사람이 많이 없네요.”
단솔이 화제를 돌리려고 주변을 보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가면을 써야 했던 대수와의 데이트와 달리, 늦은 시간에 도착한 미술관은 사람이 전혀 없었다.
미술에 문외한인 단솔도 알 정도로 이름 있는 곳이라 꽤 인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림 외에는 텅텅 빈 공간에 두 사람의 대화가 울릴 정도였다.
“빌렸지. 오늘 전시회가 아는 분이라, 개장 시간 끝나고 한 시간만.”
“아…….”
단솔은 어두운 표정으로 괜스레 참치 인형을 더 고쳐 쥐었다. 혹시나 둘만 있는 곳에서 뭐라도 사라지거나 망가지면 괜히 덤터기를 쓸까 봐 겁이 났다.
“어머니.”
“에?”
“우리 어머니 전시회라고.”
“아…….”
사람들 앞에선 매번 깍듯하게 높임말을 쓰던 이연은 어느새 편하게 말을 놓고 있었다.
가끔 둘만 있을 때면 나오는 모습에 단솔은 꼭 회귀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연은 어머니 전시회라는 말에 깜짝 놀라는 단솔의 표정을 보고는 귀엽다는 듯 웃었다. 단솔은 괜히 작가의 프로필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사랑을 다시 할 수 있다면>은 정수련 작가의 열한 번째 개인 전시회로 지난해 표절 논란을 딛고 처음으로 대중 앞에…….
첫 줄부터 강렬한 내용에 단솔은 괜히 건조한 목을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했다. 그런 단솔의 반응이 귀여웠는지, 이연이 단솔의 손목을 잡곤 한 작품 앞에 가 섰다.
“이리 와 볼래요?”
“네?”
“이거예요. 표절 논란 있었던 작품.”
이연이 끌고 간 곳에는 한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연이 가족의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었다. 회귀 전에도 그는 가족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았다. 단솔은 그때 어렴풋이 짐작했다. 이연은 어쩌면 저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단솔 역시 밖에서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법이 없었다. 상처가 깊은 사람들은 울타리를 장벽처럼 쌓곤 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온갖 상처투성이인 작고 여린 내가 있어서, 두꺼운 성벽으로 그걸 가려야 했으니까.
그래서 제게 묘하게 거리를 두는 이연의 모습도 단솔은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릴 뿐 언젠간 말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저 역시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형이 있었는데…… 나는 태어나기도 전이라 잘 모르지만, 어머니가 한창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때였다네.”
단솔은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림을 다시 바라보았다. 고개 숙인 어린아이가 블록을 갖고 노는 뒷모습이 어딘지 처량하게 느껴졌다.
“일찍 사고로 죽었어. 어머니가 작업에 몰두해 있던 사이에……. 그때 이후로 어머니는 오랫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않으셨지. 내가 태어난 뒤로도 꽤 오랫동안. 난 그래서 어머니가 화가인 것도 몰랐어. 그냥 취미 생활인 줄로만 알았거든.”
단솔은 작품 밑에 쓰인 설명을 확인했다.
“이 작품이 ‘사랑을 다시 할 수 있다면’이군요.”
꽤 직관적인 제목이었다. 죽은 아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 있었다.
“미공개 작품으로 오래 묵혀 있었어. 작년부터 다시 전시회도 하기 시작했는데…… 딱 이 작품이랑 비슷한 작품이 있었던 거야. 하필이면 어머니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어머니 친구분 작품이.”
“네? 친구요?”
“응. 그다지 유명한 작가는 아니었는데, 발표는 그분이 더 빨리했거든. 대중은 어머니를 오랜 시간 슬럼프를 겪다가 무명 작가인 친구의 작품을 베껴서 갖고 나온 사람으로 매도했지.”
“어떻게 그런……. 그래서 지금은 밝혀진 거예요? 너무 억울하잖아요.”
단솔은 마치 자신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사람처럼 울먹거렸다. 대중의 오해라는 건,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고통이었다.
“다행히 증거가 있었어.”
이연은 자신의 핸드폰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듯 해상도가 낮은 사진이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카메라를 사 주셨거든. 그래서 이것저것 찍는 게 취미였어.”
사진 안에는 절반쯤 완성된 ‘사랑을 다시 할 수 있다면’을 그리고 있는 한 여성의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뒤태만 나왔을 뿐인데도, 단솔은 그게 이연의 어머니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어머니랑 많이 닮으셨어요.”
“얼굴도 제대로 안 나왔는데?”
“느낌이 비슷해서요.”
“그런가…… 아무튼, 이 사진 덕분에 오해는 풀렸어. 1년 동안 어머니가 마음고생 많았지. 괜히 아들 커리어에 방해될까 봐 어디 가서 이이연 엄마라는 말도 못 하고 지냈으니까.”
“그럼 이 작품은…… 세 분이 완성한 거네요.”
“응?”
“선배의 형님이 모델이 되고, 어머니가 그리시고, 선배가 오해를 풀었으니까요.”
이연은 단솔의 말에 한참 동안이나 그림을 살펴보았다. 단솔 역시 그를 따라 조용히 그림을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던 아이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듯도 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 줘서.”
“제가 뭘요…….”
“네가 날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항상 내 삶이 우연히 얻어진 거라고 생각했거든. 형이 죽지 않았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남이 나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사실 아무 관심이 없었어. 덕분에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길을 올 수 있었던 거기도 하지만.”
단솔은 이연이 찍었던 수많은 독립 영화가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도 다른 배우들이라면 거절할 법한 독특한 역할이 많았다. 저런 얼굴로 왜 굳이 그런 역할을 하나 싶었는데,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근데…… 너한테 미움받는 건 두렵더라.”
“누구나…… 미움받는 건 두렵죠. 선배가 그동안 특이했던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는 여전히 그래. 그럼 주단솔 씨가 나한테 좀 특별한 거 아닐까?”
단솔은 이연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때는 정말 그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아주 먼 과거의 일이었다.
“저 선배 안 미워해요.”
“……응?”
한때는 그를 진심으로 미워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다. 이제는 단솔 역시도 제 자신이 과거의 단솔과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지난번에 선배가 사과해 줬잖아요.”
이렇게 쉽게 풀릴 일이었다면, 애초에 왜 그토록 그를 미워했을까.
단솔은 어쩌면 자신이 미워한 건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세상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혼자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단솔의 머릿속은 온통 과거의 기억들로 가득 찼었다.
미워하고 또 미워하고. 원망할 대상을 찾다 보니 자꾸만 남 탓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면 꼭 종착지는 자기 자신이었다. 상상 속의 원망할 대상들은 꼭 사라지고, 결국엔 당시에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을 가장 미워하기 마련이었다.
“근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물어봐도 돼? 도대체 뭐 때문에 사과를 받으려고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어. 네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다면 고칠게. 알려 줘.”
“형은…… 이미 고쳤어요.”